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4)
5.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다 (3)
제이든의 말에 셀리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인 듯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런 셀리나를 향해 제이든은 묵묵히 다음 말을 내뱉었다.
“안 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부 역시 그동안 중앙에 쌓인 것이 많고 북부인들은 대부분 레온하르트를 중심으로 뭉쳐 있으니 그들만 설득한다면 될 겁니다.”
“하…… 그 맹수 같은 놈들을 설득한다 해도 북부만 떨어져 나오면 고립될 텐데?”
“그렇진 않을 겁니다. 중앙에 불만이 있는 건 북부만이 아닙니다. 중앙의 지원 부족으로 열받은 곳이 한 곳 더 있지 않습니까?”
“아…… 서부.”
수많은 나라와 국경을 마주 보고 있는 서부는 매번 분쟁이 터져 나오는 곳이었다. 무역으로 막대한 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분쟁 상황에 돈을 쏟아붓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현 중앙 정치는 타 국가와 정치적 해결은커녕 지들끼리 정쟁만 일삼고 있는 상황이니 서부 입장에선 속 터질 만했다.
“북부의 강군을 바탕으로 서부와 협력만 한다면…….”
“동서가 북부를 중심으로 새로이 연결될 수도 있겠구나?”
“또 서부뿐만이 아니라 동부와 남부의 일부 영주들 역시 중앙에 불만이 있을 겁니다. 특히 동부 상인 연합 같은 경우 중앙에 매번 막대한 세금을 바치는데 해적 퇴치에는 미온적이니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이든의 말에 그런 것까지 아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셀리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가볍게 제이든의 생각을 들어 보려 했던 것인데 생각보다 엄청난 것을 들어 버렸다.
방금 제이든이 말한 것을 토대로 논문을 작성한다면 북부 사령부에까지 들어가 검토해 볼 여지가 있을 정도였다.
‘꿈같은 얘기지만 몇 가지는 검토해 볼 만해.’
단번에 어느 정도 가능성이 되는지 파악한 셀리나가 잠깐 고심하더니 제이든에게 말했다.
“오늘 네가 말한 거…… 다른 이들에게 얘기해도 되겠니?”
“상관없습니다.”
“그래, 알겠어. 네 생각은 잘 들었어. 군사학 교수님께도 말해 놓을게. 고맙다!”
뭔가 생각났는지 쌩하고 사라지는 셀리나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제이든 역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때만 하더라도 제이든은 별생각 없었다.
그저 이런 식으로 가산점을 차곡차곡 모아서 나중에 조기 졸업을 할 수 있을 점수를 획득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전부였다.
실제로 전생에도 생각만 했지 성공한 건 없었고, 북동부라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꿈은 꿈일 뿐이다.
중앙의 손아귀에서 북동부가 제대로 벗어날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우리 뱁새는 어디 있나…….”
급작스러운 몬스터 침입으로 수업이 통째로 쉬다 보니 할 일이 없어진 제이든은 나무 그늘 아래서 혹시 우리 뱁새가 없나 기웃거리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짹!
“응?”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하지만 뱁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환청인가?”
뱁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환청이 들린 건가 하고 생각하던 순간.
-짹!
위에서 들려오는 뱁새의 소리에 제이든이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보고 싶었던 뱁새의 모습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황색과 붉은색을 섞어 놓은 듯한 색깔에 드문드문 푸른색이 보이는 자신만의 뱁새.
녀석이 드디어 나타났다는 생각에 제이든의 표정이 환해졌다.
“뱁새야!”
-짹!
제이든의 부름에 뱁새는 작은 날갯짓으로 날아와 그의 머리에 살포시 안착했다.
그러고는 마치 힘든 거 안다는 듯 콕콕거리다가 짹짹거리면서 뱁새의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백색소음처럼 들려와, 제이든은 멍하니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뱁새의 노래를 감상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시 뱁새의 노래를 듣던 그는 녀석이 짹짹거리는 것을 멈추자 눈을 떴다.
“녀석…….”
그리 오랜 시간도 아닌데 몸에 활력이 감도는 것 같다.
소모된 마나 역시 회복되면서 마력 회로를 타고 돌기 시작했다.
“고맙다.”
-짹!
녀석이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제이든은 귀여운 녀석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준 뒤 조심히 물었다.
“또 어디 갈 거 아니지?”
-짹! 짹짹짹짹!
“음? 친구가 생겼다고? 나보다 더 좋아?”
-짹짹!
제이든이 질투심에 질척대자 뱁새가 작은 날개로 손가락을 툭 하고 쳐 냈다.
-짹짹!
“이 근방에 있다고? 흠…….”
힘들 때마다 찾아올 테니까 열심히 수련하라고 말하는 뱁새를 보면서 제이든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 뱁새는 방랑벽이 심하네.”
-짹!
질척거리는 그를 단호하게 쳐 내고 날아오르는 뱁새를 보면서 제이든은 야속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뱁새 덕분에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그런지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전투의 피로도가 어느 정도 가시자 아카데미를 한 번 더 쭉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정식으로 교실이 정해졌다.
아무리 군사 아카데미라도 상식선에서 이루어질 필수 교육과정은 들어야 했고, 덕분에 군사학과 마수학 역시 가장 기초적인 것들만 들을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다른 아카데미처럼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목이 필수과목이 되어 버린 탓에 반이 나뉜 것이다.
여기에 경쟁 시스템이 더해졌는데 1~30등까지 1반으로 정하고 그 후로 서른 명씩 끊는 것이다.
정확히 4개월에 한 번씩 반이 바뀌는데, 현재 등수를 유지하거나 올려야 하는 학생들 입장에선 지옥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군사 아카데미답게 군사학과 마수학이 가장 중심이었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13번?”
“예!”
“셀리나한테 들었다. 가산점은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따로 불러서 얘기하는 게 아닌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가산점을 주겠다고 하는 순간, 아이들의 얼굴에 궁금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체 뭘 했길래 제이든이 가산점을 받은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군사학 교수가 셀리나가 한 말이 정말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계속해서 제이든에게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가장 기초적인 군사학에 불과하기에 무리 없이 대답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군사학 교수는 쉽게 흥분하는 체질인지 제이든이 대답할 때마다 더 어려운 문제를 냈다.
문제는 제이든 입장에선 그래도 구른 짬밥이 있는데 이딴 것도 대답하지 못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대답한 것이었다.
“제법이군. 다음번에는 더 기대하겠네.”
“가…… 감사합니다.”
교수가 질문만 하다가 첫 수업이 끝나자 제이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교수 짬밥을 허투루 먹은 것은 아닌지 질문 과정에서 중간중간 진도를 나가긴 했다.
그리고 그다음 시간인 마수학…….
셀리나 역시 이 소식을 들었는지 재밌다는 표정으로 진도를 나가면서 제이든에게 질문을 했다.
군사학과는 달리 마수학은 정말 지식이 없으면 조금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전부 대답한 순간 셀리나를 비롯한 학생들의 표정이 벙 쪘다.
“음…….”
군사학 교수의 질문 공세에 지쳐서 대충 대답하겠다는 생각으로 막 대답한 것이 문제였다.
적당히 모른 척도 좀 해 줘야 하는데 심신이 지친 상태라 그냥 아는 거 모르는 거 다 대답했다.
“고…… 고블린한테 그런 습성이 있었나?”
셀리나도 처음 들어 보는 고블린 습성.
10년 뒤에 알려진 고블린의 특이한 습성인데, 썩은 우유 혹은 썩은 과일 냄새를 과하게 맡으면 마약에 취한 것처럼 해롱거리는 약점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것까지 말한 제이든이 멈칫했다.
‘망한 건가?’
아직 이 시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약점이었다.
북부가 초토화될 당시에 우연히 모두가 피난을 간 탓에 썩은 음식들로 가득한 마을을 점령한 고블린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제이든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셀리나의 눈빛을 피했다.
그렇게 마수학까지 끝나고 그 이후로도 이론 수업에서 제이든은 교수들의 질문 공세를 받아야 했다.
사실 기초학이라는 게 어려운 학문이 아닌지라 제이든 입장에서는 쉬울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의 관심은 사양하기에 우물쭈물할 때면 벌점을 줄 거라고 협박하는 교수도 있어서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13번은 1학년에 어울리진 않는 것 같군.”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한데?”
“후…… 그래도 1학년은 월반하지 않는 게 관례 아니오? 어떻게든 1년 정도는 이곳에 두고 월반시켜야지.”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이면 저 학생은 듣는 게 의미가 없을 텐데?”
교수들이 저마다 모여서 제이든을 두고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군사 아카데미에서 기초학을 가르칠 때 몇몇 학생들 중 배울 필요가 없는 학생들이 들어오고는 했다.
하지만 그들도 2~3학년 수준의 학문을 개인적으로 가르치거나 과제를 내면 곧잘 어려워하고는 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는데, 제이든은 그 수준을 아득히 넘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곳 군사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이론은 제이든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전쟁 병기로 만들기 위한 곳이나 다름없다 보니 가뜩이나 이론적인 면이 약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논문.”
조용히 듣고 있던 셀리나가 뜬금없이 논문을 얘기하자 다른 교수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13번에게 상식 부분의 학과목은 6학년 수준으로 시험을 보고, 군사학과 마수학은 논문을 내게끔 해 보죠.”
“아홉 살짜리한테 말이오?”
군사학 교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별수 있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시험이야 당장 볼 수 있다 쳐도 논문은 준비 기간이 필요할 텐데?”
“그렇죠. 그러니까 한동안 13번은 마수학과 군사학 시간에 개인 논문 준비를 시키면 되지 않겠어요?”
그녀의 말에 군사학 교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13번이 천재라는 사실은 다들 함구하세요.”
“왜? 소문나면 더 좋은 것 아닌가?”
“이론적으로 천재적인 면이 부각된다면 다른 지역의 아카데미에서 빼 갈 수도 있잖아요!”
셀리나가 멍청한 소리를 하는 머리 벗겨진 교수를 째려봤다.
“군인인데?”
“뭔 상관이에요. 군사 아카데미가 여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중앙에서 명령을 내리면 꼼짝없이 뺏길 수도 있는 거죠.”
“그…… 그렇군.”
셀리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든 교수가 셀리나의 말에 따라 제이든에게 특별한 시험과 논문이라는 과제를 내렸다.
모두들 제이든을 특별 취급하는 것에 불만을 가질 만도 하건만, 그간 보여 준 제이든의 행보 때문인지 별다른 문제를 삼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진행된 시험에서 만점을 맞은 제이든은 군사학과 마수학의 논문을 썼다.
제이든 입장에선 이왕 이렇게 된 거, 귀찮은 이론 수업을 완전히 끝장낼 기세로 아는 건 다 끌어다 논문을 작성했다.
혹시나 부족한 게 있을까 봐 아카데미에 있는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에 살을 붙여 가면서 군사학과 마수학의 논문을 작성했다.
그런데 두 가지를 한번에 준비하다 보니 2개의 논문이 비슷하게 작성되었는데, 그런 것도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그가 교수도 아니고, 아홉 살의 나이에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에 그냥 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13번.”
“예.”
군사학 교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 시간에 제이든을 호명했다.
“넌 이론 수업 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