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3)
5.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다 (2)
아카데미 생활 첫날부터 충격적인 실전 경험을 쌓은 아이들은 흥분을 쉬이 가라앉히지 못했다.
특히 제이든의 충격적인 모습은 모두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모두가 힐끔거리면서 제이든을 바라볼 때, 정작 제이든은 한숨을 쉬면서 부들거리는 육체를 풀어 주었다.
어린 몸으로 너무 날뛴 탓인지 근육이 놀란 것도 있었고, 제대로 된 첫 실전이라 그런지 몸 자체가 매끄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격렬한 움직임에 대한 대가가 컸다.
‘요양 사흘 각인가?’
사흘 정도는 격렬한 수련은커녕 가벼운 몸풀기조차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럴 때 뱁새가 있으면 좋갰지만, 공작가를 떠나오고 나서부터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가 공작가에 돌아갈 때까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물론 떠나기 전에 막내 녀석이 신수는 주인 곁에 있을 것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언젠가는 돌아오겠다 싶었지만 너무 모습을 안 보이니 살짝 서운해졌다.
‘뱁새 녀석. 돌아오면 떼끼 해 줘야겠어.’
주인의 마음도 몰라주고 어디선가 먹이를 쪼아 먹고 있을 뱁새를 생각하면서, 제이든은 선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곧 병력이 추가적으로 아카데미에 오기 시작하면서 선생들도 하나둘 자신의 자리에 복귀했다.
“다들 잘해 주었다. 첫 실전이라 다들 힘들었을 테니 오늘은 푹 쉬도록.”
처음 보는 선생이 와서 그렇게 말하고는 가자 다들 환호성을 지르면서 피범벅이 된 몸으로 숙소를 향해 뛰어갔다.
제이든 역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가서 몸부터 씻었다.
찝찝한 몬스터 피를 깔끔하게 씻어 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제이든이 터덜터덜 밖으로 나와 아카데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학생이 우리뿐만은 아닐 텐데……. 어떻게 돼먹은 구조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건물 자체는 신입생들의 숙소와 선생들만 있었다. 그러다 한쪽 벽에 걸린 지도에 눈이 갔다.
“뭐야. 아카데미가 뭐 이딴 식으로 생겼어?”
제이든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도를 바라봤다.
그가 있는 신입생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산봉우리마다 각 학년의 아카데미 건물이 있었는데, 중간중간에 요새로 보이는 건물들이 보였다.
그것을 쭉 연결해 보자 일종의 방어선이 만들어졌다.
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방어선을 만들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이상적인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북동부의 병력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서 아카데미의 학생들까지 방어선에 합류시키기 위한 구조인 것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신입생 아카데미는 방어선에서 가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거의 변방 수준이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선에 가까워졌다.
6학년이 머무는 곳을 보니 최전선 바로 뒤에 존재했다. 유사시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배치한 것 같았다.
‘전혀 이상한 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완전히 이상한 배치는 아니었다.
1학년인 제이든이 있는 곳은 가장 약한 몬스터들이 있는 곳이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달라졌다.
3학년까진 하위 몬스터들이지만 점차 숫자가 많아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면, 고학년들은 상위종의 몬스터들이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4학년은 단순 대형종이라면, 5학년은 비룡들이나 공중 몬스터들이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즉, 각 지형의 몬스터들과 대응 방법들을 학년마다 가르치고 있는 셈이었다.
“괜찮네. 이러면 무난히 졸업할 시 즉시 전력감은 되겠어.”
“그걸 단번에 알아봤어?”
제이든이 곧바로 아카데미 구조가 왜 이딴 식인지를 파악하자 옆에서 한 여교사가 걸어왔다.
그러자 이름을 모르는 제이든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마수학을 가르치는 셀리나라고 해.”
“13번입니다.”
“아까 싸우는 거 상당히 인상적이었어.”
“감사합니다.”
셀리나의 말에 고개를 숙인 제이든이 인사를 하면서 가려고 하자 셀리나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 것 같아?”
“예?”
주어도 없이 갑작스럽게 묻는 셀리나의 말에 제이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배치 말이야. 문제점이 있는 것 같지 않아?”
셀리나의 말에 제이든이 가만히 지도를 바라봤다. 인재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상당히 인상적인 구조였고, 방어선 역시 독특했다.
지속적으로 몬스터 헌팅을 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이상적인 구조였다.
실제로 북동부의 병력이 몬스터를 잡는 족족 중앙으로 그 사체를 보내고 막대한 군수품을 지원받고 있는 구조이기도 했다.
다만 이건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구조라는 것이 문제였다.
실제로 북동부는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기 전부터 망한 상태였다. 몬스터 웨이브 조짐이 일어나기 전부터 북동부에서는 몬스터들의 대규모 준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의 숫자가 5배만 늘어나도 문제가 생긴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이든은 눈치채기는 했지만 대답하면 괜히 귀찮아질까 봐 말을 아꼈다.
북동부 사령부라고 그가 단번에 눈치챈 문제를 몰라서 고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있기에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여러 방법들이 필요했는데, 현시점에선 거의 현실성이 없는 얘기였다.
미래 학자들이 이랬으면 북동부가 좀 더 버텨 주지 않았을까 하는 논문이 나왔지만 전부 현실성 없는 얘기로 취급되었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레온하르트 가주로 있을 때도 북부에서 이렇게 해서 막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황실과 여러 이권 사업이 연결된 그 시점에서 그것이 가능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흠…….”
제이든의 대답에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 셀리나가 잠시 고민하더니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나한테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 주면 가산점을 주겠어. 만약 네가 조기 졸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이건 매우 중요한 기회야.”
셀리나의 제안에 제이든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셀리나가 미소를 지으면서 추가 제안을 했다.
“만족스러운 대답만 해 준다면 군사학 교수님까진 설득해 볼게. 어때?”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까지 끌어들이자 제이든의 눈이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재 몬스터의 숫자와 분포도가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몰라서 확답은 못 드립니다.”
“알겠어. 감안할게.”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는 셀리나의 눈을 피해 제이든은 지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현재 이 방어선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구심점이 될 북동부 사령부가 빈약하다는 점입니다. 유사시에 모여서 대항하며 후방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힘이 없습니다.”
“또?”
“언뜻 보면 전방과 후방의 방어선이 잘 구축된 것 같아 보이지만 빈약한 병력 수 때문에 억지로 짜 맞춰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아마 지금보다 몬스터 규모가 많아지고 북방에서 대규모 몬스터라도 몰려온다면 금방 뚫려 버릴 겁니다.”
제이든의 말에 셀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우리 병력 규모는 현재의 2배 이상 되는 몬스터도 막을 정도야.”
“예, 하지만 보통 역사서에 적힌 몬스터 웨이브는 현 수준의 5배에서 10배 정도죠. 가끔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몬스터 준동도 3배는 넘습니다.”
제이든이 역사를 들먹이면서 말하자 셀리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해 보라는 듯 셀리나가 턱짓을 하자 제이든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북동부 역시 이것을 알고 후방에서 지원군이 빨리 오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한 것 같습니다만…….”
제이든이 후방에 배치된 비공선이 내릴 수 있는 공군기지와 대규모 워프 게이트를 바라보았지만 그때가 되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몬스터가 대규모로 내려오는 상황이면 마력 안개가 공군기지까지 내려갈 수도 있었고, 비공선 역시 대규모 비행 몬스터로 인해서 진입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제대로 도우려면 지상군 전력과 공군 전력이 같이 움직이는 게 이상적인데, 문제는 그때까지 버틸 수가 없다는 점이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면 북동부는 전멸입니다.”
“그럼 답은 병력 충원이야?”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건?”
“북동부의 자생 능력을 키우는 겁니다.”
제이든의 대답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은 셀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예상했던 대답은 병력 충원과 후방의 신속한 지원을 위한 후방 기지 건설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에 셀리나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자생 능력?”
“예, 현재 북동부가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중앙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군수품 말이지? 하지만 여기선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사람도 없는데?”
“상업은 가능할 겁니다.”
“몬스터 사체로? 하지만 상인들이 여기까지 오려고 할까?”
셀리나의 말에 제이든은 이것까지 말해야 하나 싶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북동부에는 동부로 이어지는 강이 있지 않습니까?”
“응. 하지만 거기도 몬스터가 넘쳐 나지.”
“예, 하지만 동부와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린 수군이 없어.”
셀리나의 말에 제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동부 해군과 연계해야 합니다. 동부 해군 중에 북동부 쪽은 중앙에서 지원이 가장 적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긴 하지. 동남부처럼 해군이 많은 것도 아니고 동부 주요 도시처럼 발전된 것도 아니니까. 몬스터가 많기도 하고.”
“그래서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부 해군 전력을 강에 투입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병력 일부로 강 주변만 토벌하면 어느 정도 안전은 확보될 겁니다.”
제이든은 자신이 북부에서 그려 봤던 것들을 대입해서 생각했다.
그 당시 몬스터로 초토화된 북부 상황을 어떻게든 재건해 보고자 열심히 머리를 굴린 끝에 나왔던 방안이다.
레온하르트의 견고한 성을 중심으로 최전선까지 뻗는 강 주위에 병력을 배치하고 몬스터 사체를 중심으로 한 공장단지를 만들어 중앙에 수출하는 꿈을 꾸었었다.
그리고 강을 중심으로 유사시를 대비하는 성들을 지으며 점차 규모를 확대해 나가는 방식을 취해 보려 했었다.
하지만 중앙이 그것을 가만 놔둘 리 없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저해하는 짓을 놔둘 리 없었고, 황실 역시 북부인들의 희생으로 자신들의 황권 강화에만 몰두하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었다.
그 때문에 실패했지만 어쩌면 북동부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북부와 달리 북동부는 중앙과 상당히 멀었다. 게다가 군부대 역시 독립성을 띠고 있었기에 잘만 하면 완전 독립 역시 꿈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의 장점인 몬스터 사체와 동부의 해군이 연계한다면 북동부도 타 대륙과 무역으로 발전할 가능성 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흠…… 다 좋아. 하지만 우리가 매번 중앙에 납품하는 양을 제외하면 그리 많은 양이 못 될 텐데?”
“굳이 중앙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제이든의 말에 셀리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곳에서 자생하는 희귀한 약초, 동물의 가죽 등도 고위층이 환장하는 것이죠. 솔직히 북동부가 주는 것들의 가치에 비해 중앙에서 주는 군수품은 빈약한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중앙에 몬스터 사체를 주지 말라는 거니?”
“어느 정도는 줘야겠죠. 세금처럼 일정 부분만 주고 나머진 다른 곳으로 돌려도 된다고 봅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데? 중앙에서 그걸 가만 놔둘까?”
셀리나의 말에 제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힘들 겁니다. 그러니 일단 그동안 일어났던 여러 문제를 바탕으로 밑밥을 깔면서 지속적으로 병력 지원 요청을 해야 합니다. 그럼 당장의 대규모 병력 지원은 어려우니 적어도 지원되는 군수품량이라도 늘려 줄 겁니다. 그걸 바탕으로 동부 해군과 몰래 접촉해 북동부 강 유역을 점령할 때까지 시간을 벌면 됩니다.”
“후…… 좋아. 그렇게 해서 자생 능력을 얻으면? 중앙에서 시비를 걸어올 텐데?”
“그다음은 북부와 연계해 북동부 독립을 준비하면 됩니다. 그럼 중앙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겁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