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2)
5.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다 (1)
아무리 북동부 아카데미가 악명 높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은 학생들에게 뭘 하라고 요구할 정도로 냉혹한 곳은 아니었다.
다만 북동부 아카데미의 위치상 주변에 몬스터가 널려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선생들이 상냥하게 가르쳐 본다 한들 주변 여건이 그러질 못하니 결국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엄격하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전 같은 훈련을 위해 의도적으로 몬스터들이 바글거리는 곳에 자리 잡았는데 가끔 문제를 일으키고는 했다.
그때마다 학생들과 합동으로 몬스터를 퇴치하는데 이번처럼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는 했다.
아직 몬스터 퇴치는커녕 기초 훈련에 집중할 기간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교수들이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더 상황이 안 좋은 것이 바로 어제 들어온 신입생들이라는 점과, 몬스터들의 침입 규모가 아카데미에서 상정한 것의 배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병력 지원은!”
“3시간은 걸릴 겁니다!”
“제길!”
늙은 교수의 말에 젊은 교수가 그렇게 말하면서 무기를 들어 올렸다.
몬스터들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 교수와 경비대가 막을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영악한 녀석들은 연병장에 모여 있는 어린 먹이들을 노리고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게 진작 결계 좀 설치하자니까! 그놈의 실전 같은 풍경을 만든다고! 아오!”
교수 하나가 열불을 토해 내면서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는 동안에도 몇몇 자잘한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진입해 들어왔다.
“신입생들에게 최대한 가지 못하게 막아!”
“신입생 수준에서 처리 못할 녀석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해!”
이미 너무 많은 몬스터들이 몰려들어서 우선적으로 처리할 녀석과 그렇지 않은 녀석을 선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몬스터들은 넘어갔고 마침내 연병장에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하나둘 도달하기 시작했다.
“뚫렸나?”
최하위 몬스터지만 여기까지 도달한 것을 보고 제이든은 중얼거리면서 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완전무장을 하고 오라는 말에 다른 아이들은 자신의 주 무기와 경장갑만 입고 왔지만 제이든은 온갖 것을 전부 다 들고 왔다.
기초 군사훈련을 위해 준비된 단검, 마탄을 쏠 수 있는 총, 검 등이 있었다.
아무리 마력 사용자와 몬스터에게 총이란 무기가 그리 쓸 만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마력석을 갈아 넣은 마탄과 최하급 몬스터라는 조건이라면 이것보다 더 좋은 무기도 찾기 힘들었다.
타당!
“역시 짬밥은 어디 가지 않네.”
아이에 맞게 개조된 작은 총은 어깨에 견착하자마자 바로 느낌이 왔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클링크 조절이 안 되었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근거리에서 조지면 될 일이었다.
“총?”
“저 녀석 총을 쏜 거야?”
“마탄인가? 몬스터에게 잘 박히는데?”
자신이 총을 쏘는 모습에 다들 웅성거릴 때, 제이든이 다시 움직였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도 자신들의 무기를 챙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처럼 총을 들고 있는 아이들 역시 몬스터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제이든처럼 잘하지 못했다.
아무리 재능 있는 녀석들이라지만 날렵한 몬스터들을 다 맞힐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몬스터들의 특징도 모르는 이상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은 몸부터 조져. 괜히 머리 노리고 쏘면 못 맞혀. 팔다리도 가늘어서 무조건 몸통에 때려 박아야 해.”
“근데 마력 처리된 경갑을 입고 있는데?”
처음 겪는 고블린의 날렵한 몸놀림에 당황하는 학생을 향해 제이든이 지나가는 말투로 조언을 했다.
그러자 여전히 어렵다는 듯 녀석이 울상을 지었다.
고블린들도 머리가 있는 이상 자신의 약점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몬스터 중에 영악함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녀석이니 자신의 약점을 보호할 장비 하나쯤은 차고 있는 게 당연했다.
“상관없어. 마탄이 뚫지는 못하더라도 충격은 줄 수 있거든.”
제이든이 그렇게 말하면서 손수 시범을 보여 주었다. 마탄을 몸통에 때려 박은 제이든이 충격에 멈칫하는 고블린을 향해 검을 뽑아 들어 그대로 베어 냈다.
마력이 깃든 검은 아니지만 강력한 힘이 달린 일격에 그대로 목이 날아간 고블린의 몸이 쓰러졌다.
“이런 식으로 조져. 칼 쓰기 힘들면 총으로 대가리에 갈기면 돼.”
“으……응.”
제이든의 말에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 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학생을 뒤로하고 다시금 제이든이 움직였다.
이번엔 시험 때 만났던 놀 무리가 한쪽에서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똥개들 죽이는 게 가장 쉽지.”
수십 마리의 놀들이 몰려왔지만 제이든은 제대로 무장된 자신의 상태를 보고 활짝 웃었다.
남은 장탄 수를 확인한 제이든이 놀 무리를 향해 앞으로 달려가면서 일시에 총알을 갈겨 댔다. 그리고 총성에 잠시 멈칫하던 놀들의 머리통 두어 개를 단번에 날려 주었다.
학생용 검이라지만 훈련생의 철검이 아닌 나름 벼려진 검이기에 놀들의 머리를 날려 버리기엔 충분했다.
그 이후로 광산에만 서식하는 코볼트 놈들이 개처럼 킁킁거리면서 달려오기도 했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자이언트 레빗까지 등장했지만 철저히 약점을 공략해서 조져 버렸다.
시험 때처럼 산을 탄 것도, 연이은 전투를 치르면서 힘을 소모한 것도 아니기에 말 그대로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은 제이든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그의 전투 방식을 흉내 내면서 싸워 나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제이든을 따라 하면 손쉽게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몸 좀 풀리는 느낌이네.”
오랜만에 느끼는 제대로 된 실전에 몸이 반응하듯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마력의 빛이 점차 온몸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좀만 더 격하게 움직이면 완벽한 2단계에 들어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제이든은 더더욱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발 몬스터들이 좀만 더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는 미친 듯이 최하위 몬스터를 썰어 댔다.
심지어 중간중간에 옆의 아이들에게 탄창도 빌려 마탄도 난사하면서 몬스터들을 죽여 나갔다.
마치 몬스터를 죽이기 위한 준비된 스페셜리스트처럼 들어온 몬스터들을 족족 죽여 나가자 다른 애들도 질 수 없다는 듯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전장에서 승기를 잡은 병력처럼 삼백여 명의 학생들이 전의를 불태우면서 몬스터들을 보이는 족족 죽여 나갔다.
그러자 혹시라도 위험에 처한 학생들이 있을까 걱정된 선생들이 멍하니 학생들이 싸우는 것을 구경했다.
특히 선두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는 제이든을 지켜보았다.
“마치 전장에 몇 번이나 서 본 적이 있는 베테랑 같네.”
“그러게. 몬스터들 약점만 노려서 힘들이지 않고 죽이는 모습이 일품인데?”
13번 학생이 나름 뛰어나다지만 사실 20번대 안에서 가장 뒤떨어지는 실력과 재능이 아닐까 싶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1~10번까지 학생들은 벌써 2단계를 완성한 지도 꽤 된 듯싶었고, 1~3번 학생은 이미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특히 제일 괴물 같은 애는 3번 학생이었다. 1번, 2번은 나이라도 열세 살이었지만 3번은 아홉 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괴물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13번이었다.
“노련해.”
“그래, 특히 처지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 주면서 같이 끌고 가는 모습은 지휘관의 모습까지 보이네.”
“기사가 될 필요도 없겠어. 지휘관의 재능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아.”
“나중에 우리 아카데미 선생으로 왔으면 좋겠네. 잘 가르치겠어.”
실전 한번에 평가가 급상승한 제이든이었지만 그는 지금 완벽한 2단계 완성에 정신이 팔려 몬스터를 썰어 대고 총을 갈겨 대느라 바빴다.
“헉……헉…… 더 없나?”
열심히 움직인 탓인지 숨을 몰아쉬면서 몬스터가 없나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 연병장에 살아 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제이든 혼자도 아니고, 삼백여 명의 학생들이 죄다 썰고 다녔으니 남아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칭호 ‘신입생의 패기!’를 획득하셨습니다.
“응?”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기계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추가적으로 음성과 함께 반투명한 창이 펼쳐졌다.
-악명 높은 북동부 군사 아카데미에서 괴물 같은 신위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명성은 북동부 군사 아카데미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칭호 효과 : 위엄 30% 상승, 체력 30% 상승, 실전을 치를 때마다 마력 소폭 상승
-※칭호 효과는 중첩될 수 있습니다.
-첫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특전으로 마력 각인을 얻습니다. 앞으로 마력을 사용할 때마다 몸 안에 마력이 축적되는 속도가 상승합니다.
-교관들이 당신의 믿을 수 없는 노련함에 감탄합니다.
-칭호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다!’를 획득하셨습니다. 칭호 효과로 몬스터의 약점을 알고 있을 시 치명타 확률이 200% 상승합니다.
-처음으로 연이어 2개의 칭호를 얻으셨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효과가 상승합니다.
폭발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과 함께 뭔가 부족한 것 같았던 몸 상태가 완벽하게 변했다. 동시에 온몸에 은은히 마력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특전으로 얻은 마력 각인 효과 덕분인지 곧바로 완벽한 2단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괴물…….”
자신을 괴물처럼 보는 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가슴팍에 140번이라고 달고 있는 아이가 제이든을 바라보다가 근처에 피 칠갑을 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1~3번이라고 쓰인 아이들 역시 제이든이 활약하는 것을 보고 투쟁심이 생겼는지 후반부에는 미친 활약을 보여 주었다.
부족한 경험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이번 단 한 번의 실전으로 아카데미에서 제이든과 1~3번 학생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과의 격차가 확인되었다.
“왜 나만 노려보는 거지?”
너무 날뛰어서 그런지 애들의 견제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문제는 1~3번도 있는데 자신만 노려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게, 실력적으로는 그보다 약간 위에 있는 애들이 4~20번까지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짬밥의 힘으로 1~3번마저 압도할 만한 무력을 보여 주니 더더욱 견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3번은 노력하면 어찌어찌 따라붙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들겠지만, 제이든은 전혀 다른 종류의 강함을 보여 주다 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제일 견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게 따라잡지?’
‘어떤 식으로 수련해야 저렇게 될 수 있지?’
‘저 녀석은 뭘 배웠길래 저렇게 잘 싸워?’
이런 식의 생각 때문인지 제이든은 알게 모르게 아카데미 최강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사실 제이든 입장에서는 1~3번이 진짜 괴물 같아 보였다.
특히 3번은 정말 괴물 같았다.
여자아이라서 근육량도 많지 않은 상황인데도 순수한 마력에 대한 재능만으로 열세 살인 1~2번을 따라잡고 있었다.
‘진짜 괴물은 3번이네. 살아만 남는다면 3번도 영웅의 반열에 들 수 있을까?’
마스터 중에서도 최상위 혹은 그랜드 마스터급에 올라야만 받는다는 영웅의 칭호.
그 경지에 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 3번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찬란한 재능이었다.
‘막내 녀석보다 더한 것 같기도 하고…….’
제이든이 생각하는 최고의 재능은 막내 녀석이었는데, 오늘 그 생각이 좀 달라질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3번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때, 다른 아이들은 제이든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았다.
아홉 살의 나이에 절대 가지지 못할 압도적인 경험.
그러나 제이든은 그것을 부러워하는 아이들의 시기심을 생각지 못한 채, 왜 1~3번을 놔두고 자신한테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구시렁대며 아카데미 건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