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8)
3. 입대 (2)
훈련소에 처음 들어왔을 때 열심히 굴러서인지, 더 이상 멍청하게 구는 녀석들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얼타는 순간 곧바로 구르기 때문에 훈련이 시작될 때면 항상 긴장 상태로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훈련이 끝나면 풀어 주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군기 빠진다고 쉴 시간도 없이 몰아세우는 통에 아이들의 표정은 점점 썩어 들어갔다.
“각 잡아!”
“삐뚤어졌잖아. 다시 개!”
“일어나! 이 새끼야!”
아침부터 자신들을 조지러 오는 교관들 때문에 항상 긴장한 채로 잠들고 일어날 때도 재빠르게 모든 침구류를 각 잡고 있어야만 하는 현실.
이곳이 바로 군대라는 것을 매일마다 깨닫게 해 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무턱대고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교관들은 영악했고, 때론 휴식이라는 달콤한 보상으로 아이들의 의욕을 돋우기도 했다.
“점령군을 넘어 깃발을 차지하면 내일 하루는 휴식이다.”
“우아아아아!”
“죽여!”
“깃발부터 잡아!”
“막으면 내일 휴식이다! 막아! 무조건 막아!”
점령군과 대항군으로 나뉘어 깃발을 걸고 싸우게 만들어 기초적인 전투 감각을 익히게 하는 동시에 산악 지형에 대한 이해도까지 끌어올렸다.
그 모든 훈련을 하면서 생각보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북부군의 훈련 방식에 제이든조차 감탄했다.
어떤 면에선 현대 훈련보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부분도 있었고, 아이들의 한계치를 잘 정해 놓고 훈련의 난이도를 조절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점령군이 깃발을 잡았기 때문에 점령군 소속 훈련병들은 내일 휴식이다.”
“와아아아아!”
“내일 휴식이래!”
“난 하루 종일 잘 거야.”
“나도!”
아이들은 저마다 입가에 미소를 그리면서 내일 뭐 할지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제이든 역시 순수하게 내일 휴식을 기뻐하면서 내일 일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1223번!”
“왜?”
“넌 내일 뭐 할 거야?”
“글쎄…… 아직 정하진 못했는데? 체스라도 둘까?”
“둘 줄 알아?”
“그럼.”
제이든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아이가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나도 알려 줘.”
“나도!”
그 말에 근처에서 듣고 있던 아이들이 자기들도 체스하고 싶다면서 알려 달라고 제이든에게 다가왔다.
훈련소 내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나무를 깎아 체스보드와 체스 말 등을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게 있었는데 그것을 갖고 체스를 하는 것이다.
훈련병들 사이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오래된 체스 말을 교관들도 알고 있지만 딱히 그것까진 제재하지 않았다.
이런 소소한 것이라도 있어야 아이들이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날, 교관이 아침 일찍 깨우러 온 것과 밥때를 제외하곤 일절 터치가 없자 제이든은 자신의 조원들에게 체스를 가르쳐 주면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검술 훈련을 할 수 없다는 게 살짝 아쉽긴 하네.’
다 같이 하는 공동체 생활에서 혼자만 검술 훈련을 한다고 설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사실 2단계에 들어서는 단계인 제이든에게 훈련소의 훈련은 크게 도움 되지 않았다.
가끔가다 아이의 몸으로 힘들 정도로 빡센 훈련조차도 마력 각성을 한 제이든에겐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교관들도 그것을 알고 있을 텐데 따로 빼지 않고 이런 식의 훈련을 하는 이유는 공동체 의식이란 걸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
괜히 마력 각성자들을 처음부터 특별 대우해 주다간 훈련병들 사이에서 벽이 생길 수 있었고, 마력 각성자들이 특권 의식에 젖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기초 훈련 동안만은 똑같은 훈련과 똑같은 행동을 하게끔 강요하는 것이다.
그렇게 약 한 달간 군대에서 필요한 상식과 제식훈련, 체력 훈련 등으로 빡세게 굴려진 후, 불침번과 기초적인 야간 감시 방법 등을 훈련했다.
‘야영과 행군이 없는 걸 보니 나름 배려한 건가?’
아이들이기 때문에 30km 행군이나 무리한 산에서의 야영 등은 배제하고 최대한 연병장에서 훈련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안 힘든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클 수 있도록 꼬박꼬박 재워 주고 규칙적으로 밥을 주고는 있지만 훈련 자체는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겐 상당히 힘든 훈련 때문인지 모두 어느 정도 체력이 붙었다고 판단되자 점차 체력 훈련이 줄어들더니 하루를 푹 쉬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모든 아이들을 연병장에 모이도록 했다.
천 명이 넘는 훈련생 전원이 대연병장에 일시에 모이자 엄청난 숫자로 인해 연병장이 꽉꽉 들어찼다.
“오늘은 마력 각성 여부를 판단하는 날이다. 마력을 각성한 자들은 손들고 앞으로 나오도록.”
천여 명의 훈련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마력 각성자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제이든 역시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쉰 명도 안 되네.’
천오백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 중 아홉 살에 마력 각성을 한 아이들은 쉰 명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어린 나이에 마력 각성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재능이었다.
어릴 때 마력 재능 여부를 알아보고 가문에서 지원을 해 준다고 하더라도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2~3학년은 되어야 마력 각성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마저도 운이 따라 줘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열 명 중 두 명 정도만이 마력에 대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력 각성 자체가 재능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날 따라오도록.”
교관 중 하나가 제이든을 포함한 마력 각성자들을 데리고 특수한 건물로 들어갔다.
“이곳은 마력 각성 유무를 판단하는 곳이다. 거짓을 말한 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용서해 주겠다. 솔직하게 손들도록.”
그럼에도 누구 하나 손을 드는 아이들이 없자 교관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력 유무를 판독하는 장치로 향했다.
“이곳에 들어가면 된다.”
작은 유리관 안에 들어가라는 말에 아이들이 한 명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력 각성이 거짓이라면 붉은 불이, 각성을 했지만 군대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노란 불이, 정상적인 마력 각성이라면 푸른 불이 켜진다.
다행히 아이들 중 그 누구도 붉은 불이 들어오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문제는 십수 명의 아이들에게서 노란 불이 켜졌다는 점이었다.
“노란 불이 들어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너희들은 충분히 재능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격려해 준 교관이 제이든을 포함한 푸른 불이 나온 훈련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다. 날 따라오도록.”
교관의 말에 삼십여 명의 아이들이 그를 따라 검사실을 지나서 특수 처리된 훈련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검사 잘 부탁드립니다.”
“예.”
기사로 보이는 자와 교관이 서로 존대하면서 인사를 하고는 물러나자 기사가 묵직한 철검을 들어 올렸다.
“지금부터 한 명씩 저 철검을 들고 나와 싸우게 될 거다. 가장 앞에 있는 놈부터 나와.”
기사의 말에 가장 앞에 있던 녀석이 긴장한 채로 아이에게 맞게 개조된 철검을 들고 나갔다. 그러고는 공격해 보라는 기사의 말에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녀석은 자신이 배운 검술과 마력 각성으로 상승된 체력을 통해서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스피드와 힘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기사는 가볍게 쳐 냈다.
“헉……헉…….”
“수고했다. 4급이군.”
“며…… 몇 급까지 있는 겁니까?”
“4급.”
기사의 대답에 아이가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도 기사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다음 차례를 하나씩 불러냈다.
“4급.”
“3급.”
“4급.”
“3급.”
그 뒤로 쭉 이어진 평가에도 전원 3~4급밖에 안 나왔다. 하지만 이게 정상이라는 듯, 기사는 크게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제이든이 거의 마지막 차례였는데 쭉 살펴본 바에 의하면 마력을 막 각성한 자가 4급, 마력을 약간 쌓아서 순간이나마 활용할 줄 아는 게 3급인 듯싶었다.
‘2급은 검술을 접목시킬 줄 아는 자인가? 1급은 뭔지 궁금하네.’
앞에서 기사 하나에 철저히 농락당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잠시 고민하던 제이든에게 마침내 차례가 돌아왔다.
“전력을 다해 공격해 봐라.”
“예.”
철검을 들자마자 자세를 잡은 제이든을 보고 기사가 속으로 감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썩 괜찮아 보이는 자세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기사가 플러스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기초 검술 자세였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나온 녀석들은 각자 배운 가문의 검술이거나 스승이 사용한 검술 등을 사용했는데, 제이든은 기초에 충실한 검술 같아 보였다.
이것이 어떻게 플러스 점수가 될 수 있냐면, 이곳에서 가장 먼저 배울 검술이 기초 검술이기 때문이다.
그가 확인한 모든 훈련생들 역시 한동안은 이제껏 배운 검술을 버리고 기초 검술만 배우게 될 터였다. 그렇게 될 시 가장 앞서 나가는 사람은 제이든이 될 것이다.
“들어가겠습니다.”
“오냐.”
제이든은 그 말을 듣자마자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들었다.
콰앙!
“흡!”
생각보다 강력한 일격에 기사가 밀려나려던 것을 힘으로 버텨 내면서 밀어냈다. 그러자 순순히 밀려난 제이든이 이번엔 하단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제법 매서운 공격에 반사적으로 한 발자국 물러나면서 그것을 쳐 낸 기사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자 제이든 역시 몸 안에 있는 모든 마력을 끌어 올렸다. 2단계에 걸쳐진 제이든의 신체 능력은 평범한 인간의 것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2단계? 아니…… 아직은 좀 모자란가? 그래도 훌륭하군.”
쾅! 쾅! 쾅!
몇 군데 비어 있는 듯싶었지만 희미하게 빛이 나오는 것을 보니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게다가 제이든이 더 대단한 점은 나이에 맞지 않는 노련한 검로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분명 기초 검식이었지만 그것을 응용해서 절묘하게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 실전을 겪어 본 자의 움직임이었다.
“이런…….”
잠시 잡생각을 하는 사이에 또다시 사각을 파고드는 제이든의 움직임을 보고선 기사가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여태껏 자신의 발을 움직이게 한 훈련병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제이든은 그것을 넘어서 그를 당혹스럽게 할 정도의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몰아치는 제이든을 보면서 기사가 감탄하는 사이 옆에서 빨리 끝내라는 선임 기사의 수신호가 들어왔다.
그것을 본 기사가 제이든을 강하게 밀어내면서 말했다.
“그만.”
“헉……헉…….”
기사가 처음으로 도중에 멈추게 하자 제이든이 숨을 헐떡이면서 제자리에서 숨을 갈무리했다.
“훌륭하군. 어렸을 때부터 군대에 입대할 생각을 갖고 있었나?”
“그렇습니다.”
“좋은 자세군. 넌 2급을 주지. 마음 같아선 1급을 주고 싶지만…… 좀 모자라서 말이지.”
“괜찮습니다.”
제이든의 대답에 기사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차례를 불렀다.
실망할 줄 알았던 제이든이 별문제 없다는 듯이 내려가자 기사는 그 마음가짐에도 좋은 점수를 주었다.
1급을 못 받았다고 실망할 만한 재능이었지만 사실 1급은 훈련소가 생긴 이래로 몇 명 받은 적 없는 진짜 ‘천재’들만이 받을 수 있는 등급이었기 때문에 못 받는 게 정상이었다.
“한 놈은 건졌군.”
기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음 훈련생에게 공격해 들어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