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6)
2. 가출 (2)
제이든이 기쁜 표정으로 뱁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 수련을 마친 에이든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형님! 축하드려요. 드디어 찾으셨군요.”
“그래, 얼떨결에 된 것 같지만 찾긴 찾은 거 같네.”
에이든 덕분에 알게 된 신수 능력이 정말 우연찮게 개화되면서 그동안 보던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자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에이든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내가 이 분야는 선배님이다!’라는 표정으로 제이든을 바라보았다.
“흠흠……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래.”
“그러시겠죠.”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지만 제이든은 그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련이나 하자.”
“에이! 신수도 계약하셨는데 저한테 노하우 좀 전수받으셔야죠.”
“끄응~.”
에이든의 말에 제이든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다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에이든이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백사자에게서 들은 정보와 자신이 느낀 감각 등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간간이 그가 물을 때면 호통치듯 그게 아니라면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생각보다 어렵네.”
“그렇죠? 그래도 백사자는 오랜 세월 살아온 덕분에 저는 할 일이 별로 없었지만 형님은 어려울 거래요. 뱁새가 아직 어려서 하나도 모를 테니 하나하나 이끌어 줘야 한댔어요.”
“그러게.”
“그래도 저보단 형님이 나을걸요. 전 이 녀석에게 맞는 육체도 찾아 줘야 된다고요.”
에이든은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육체가 사라져 버린 백사자의 왕에게 그에 걸맞은 육체를 찾아 줘야 했다. 신수의 특징이 육체를 갖게 되면 훨씬 더 강력해진다는 것을 볼 때 언젠가는 녀석이 사자형 몬스터를 사냥해 백사자를 깃들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근데 뱁새는 계속 이렇게 놔둬야 하는 거야?”
“아뇨. 좀 크면 알아서 형님이 생성한 아공간에 들어갈걸요. 물론 형님도 성장하셔야겠지만요.”
“그런 게 있어?”
“너무 허접해서 쥐알만큼도 공간이 없기 때문에 못 느끼는 거라고 했어요.”
“너…….”
“백사자가요. 하하…… 하하하…….”
에이든의 말에 눈살을 찌푸린 제이든이 요 녀석을 어떻게 혼내 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쉬고는 동생을 가까이 불렀다.
“너도 알겠지만 너도 일정 나이가 되면 사자의 길이란 걸 할 거야.”
“아…… 들었어요. 굉장히 위험한 훈련이라고…….”
“그래, 맹수와 몬스터가 가득한 숲에서 몇 날 며칠을 지내야 하는 훈련이야. 자칫 죽을 수도 있겠지만 이 빌어먹을 가문은 그런 데에 신경 안 쓰거든.”
제이든의 말에 에이든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들이 죽는 건 약해서 죽는 거라고 생각하는 곳이 레온하르트 가문이었다.
반대로 모든 훈련을 끝내고 나면 그만큼 대우를 받는 곳이기도 했다.
강자존.
대륙에서 이곳만큼 그 표현에 잘 어울리는 곳도 없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실전처럼 대련할 생각이야. 그래야 네가 사자의 길에 대비할 수 있을 거거든.”
“어…….”
에이든이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마치 제이든은 상관없는 것처럼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묘한 위화감 속에서 제이든이 다시 말을 이었다.
“또 네가 명심해야 할 게 있어.”
“말씀하세요.”
“맹수의 숲의 식생에 대해서 조사해. 어떤 몬스터가 어디에 얼마나 분포되어 있는지, 또 먹을 수 있는 풀과 아닌 것들을 구분하는 방법, 각 몬스터들의 약점 같은 것들을 공부해.”
“그 정도나요?”
“그만큼 위험하니까.”
막연히 위험한지 알고 들어가는 것과 정확히 얼마나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들어가는 것은 천지 차이다.
이 미친놈들은 맹수의 숲에 랜덤으로 떨궈 놓고 오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하고 가도 위험했다.
“형님이 제일 위험한 거 아니에요? 맨 먼저 가실 텐데요.”
“난 사자의 길을 할 생각이 없어.”
“어…… 어떻게요?”
“가문을 나갈 생각이거든.”
에이든의 물음에 제이든이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일한 버팀목인 제이든이 가문을 떠난다고 말하니 심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자 그가 그런 녀석의 양팔을 붙잡고 차분히 설명했다.
“네가 전에 그랬지, 왜 기초 검술만 수련하냐고?”
“……네.”
“이게 나랑 잘 맞으니까. 넌 사자검식에 재능이 있잖아.”
“그건…….”
“네가 강해지기 제일 좋은 곳은 이곳이야. 반면에 난 아니지.”
제이든의 말에 에이든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형은 어디로 가실 거예요?”
“군부. 정확히는 북부 훈련소에 갈 거야.”
“거기…… 위험한 곳 아니에요?”
북부 훈련소에 입대하는 아이들은 전부 최전선에 배치될 예정인 자들이었다.
게다가 재수 없으면 북동쪽에 배치되는데, 그쪽은 대륙 전체에서 가장 위험한 곳 톱 3 안에 들어갈 만큼 위험한 곳이었다.
즉 운 좋아도 북부 최전선, 운 나쁘면 북동부에 배치되는 것이다.
“형님…….”
제이든은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는 에이든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이제 너도 기초 정도는 다져졌어. 이젠 백사자의 가르침을 따라서 훈련하면 금세 실력이 늘 거야. 나 정도는 금방 넘어서겠지.”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입술을 삐죽이면서 말하자 제이든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실전처럼 수련 좀 해 볼까?”
사악한 표정으로 말하는 제이든을 보면서 에이든이 살짝 떨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에이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옥을 맛봤다.
봐주지 않는 제이든의 공격에 수없이 넘어지고 맞아 가면서 온갖 변칙적인 검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에 에이든의 실력은 빠르게 늘어났다.
사자검식의 정식 검로로 변칙적인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대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이든은 천재의 재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전까지 하수나 쓰던 잡기들이었다면 이젠 기사들도 사용하는 변칙 검로를 사용했는데, 몇 가지는 처음 보는 순간 대응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인 것이다.
“괴물 같은 놈.”
“형님이 그런 말 하시면 안 되죠.”
자신을 개 패듯 쥐어 패 놓고 저렇게 말하면 에이든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막내 녀석의 억울한 표정을 본 제이든은 피식 웃고는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면서 말했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말고.”
“……노력해 볼게요.”
작별 인사를 겸하는 것임을 눈치챈 에이든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볼 수는 있는 거죠?”
“한 20년 뒤에?”
“네?”
“장난이야. 휴가 나오면 한 번씩 들러 볼게.”
제이든의 말에 에이든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 두고 간다는 서운한 마음에 울상을 짓는 에이든이었지만 눈물을 꾹 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녀석이 기특했던 제이든은 처음으로 수련 대신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일찍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야밤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간단하게 나갈 준비를 하고선 편안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자신의 개인 연무장으로 향했다.
“열심이네.”
“형님.”
아침 일찍 나온 제이든의 옷차림은 평소 입던 훈련복 차림이 아니었다.
“가시는 거예요?”
“응.”
제이든의 대답에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든에게 작별 인사 겸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녀석이 두 손으로 붙잡으면서 한동안 놓지 않았다.
“무사히 다녀오세요.”
“그래, 너도 무탈하고.”
“……네.”
애써 대답한 에이든에게 편지 한 장을 넘겨주었다.
“이건…….”
“내 방에 남겨 두긴 했는데…… 혹시 찾으면 네가 대신 말해 줘. 내 입영 신청서 사본이야.”
제이든의 말에 잠시 그것을 펼쳐 본 에이든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피로 찍힌 직인에 여러 법 조항과 경고 사항 등이 가득 적혀 있는 입영 신청서는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상하긴 해도 맞아.”
“그렇군요.”
좀 이상한 입영 신청서를 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다시 한번 작별 인사를 하면서 몸성히 다녀올 것을 당부했다.
제이든은 그런 녀석에게 ‘너도 무탈해라.’라고 재차 말해 주면서 발길을 돌렸다.
오랜만에 개인 연무장이 아닌 레온하르트의 저택을 걸은 제이든은 묘한 감상에 빠졌다.
아침 일찍 나섰기 때문에 풀잎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고, 어슴푸레한 저택의 풍경은 상당히 멋있었다.
현실 세계에서 이러한 곳을 사진으로 찍었다면 꽤나 인기가 있을 정도로 제법 멋들어진 풍경이었다.
그런 저택의 풍경을 뒤로하고 그는 곧바로 정문을 향해 똑바로 걸어 나갔다.
매번 개인 연무장에서 막내 녀석과 훈련이나 하면서 지내다 보니 이곳에 와서 제대로 저택을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누구…… 혹시 첫째 도련님이십니까?”
“그래.”
웬 어린아이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경계하던 기사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제이든과 에이든의 모습을 잘 본 적이 없어서 긴가민가했겠지만, 그는 훌륭한 눈치와 처세술로 알아차리자마자 허리를 굽혔다.
“아침 일찍 어디 가십니까?”
“잠시 들러 볼 곳이 있어서……. 무기도 보고 구경도 하고.”
“그러시군요. 혹시 신분패를 챙겨 가시는지요?”
기사의 물음에 제이든은 품 속에서 작은 신분패를 꺼내 보여 주었다. 그러자 기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혼자 나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누군가 동행하셔야 할 겁니다. 아니면 날이 밝을 때 가시는 게…….”
“대장장이들은 아침에 집중력이 좋다지?”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도 홀로 가시는 건 위험하십니다.”
기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병사 두 명을 호출했다.
“이들이 호위하게 해 주십시오. 뭘 하시든 눈치가 빨라서 방해가 되진 않을 겁니다.”
기사의 말에 제이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호위라고 하지만 사실상 감시자를 붙여 두는 것이었는데, 이 정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괜한 오해만 사게 될 것이다.
어차피 북부군 입영 관리소에 들어가게 되는 순간 끝날 일이니 이들이 따라오든 말든 딱히 상관은 없었다.
제이든의 허락과 함께 문이 열리자, 그들은 저택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를 말해 주시면 그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일단 장인의 거리 쪽으로.”
“예!”
병사가 힘차게 대답하면서 제이든의 걸음에 맞추어서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제이든은 대충 둘러본 후 용병의 거리, 상인의 거리 등을 지나서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다 왔네. 너희들은 이만 돌아가라.”
“예?”
멍청하게 되묻는 그들에게 제이든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러자 병사들이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는지 멍청한 표정으로 귀를 후벼 팠다.
그런 그들에게 너희들의 귀는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제이든은 친히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나 입대할 거니까 돌아가면 그렇게 전해. 여기까지 호위해 줘서 고마웠어.”
“어…… 도련님?”
“도련님? 그렇게 가시면 저희는 어떻게…….”
상큼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 준 제이든이 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병사들은 멍청하게 되묻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한참을 서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인지부터, 공작가 장남이 왜 자진 입대를 하는 것인지, 자신들은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그들은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지금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최대한 빨리 위에다 보고해야겠다는 생각에 둘 다 재빨리 저택으로 복귀했다.
다급하게 뛰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건물 안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확인한 제이든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건물 안에서 입대 희망자들이 줄 서 있는 곳에 재빨리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