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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1화 (1/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

0. 수고하셨습니다. 베타테스트였습니다!

뭉게구름이 몽실거리는 하늘에서 핏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괴성과 비명 소리가 노랫소리처럼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옆에선 절규와 함께 사람이 죽어 나가고, 앞에선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든다.

“지긋지긋한 새끼들!”

한 남자가 바닥까지 힘을 쥐어짜 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드는 괴물을 이등분했다.

악을 쓰면서 괴물 하나를 베어 낸 남자가 곧바로 뒤돌아서 달렸다.

옆에서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 지 한목숨 살겠다고 도망치는 것 같아 보이겠지만 이미 이 방어선에 희망은 없었다.

“모두 후퇴해! 무조건 살아남아라! 성을 버려!”

남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인 후퇴 명령을 내렸다.

고작 이것이 휘하 병력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란 사실에 허탈해짐과 동시에 아득바득 목숨을 연명해 온 자신의 마지막이 서글펐다.

한때 최강의 가문의 자리를 두고 다투던 공작가가 이제는 멸문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도 서글프지만, 더 절망적인 건 북부 전체가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개처럼 일했는데 이렇게 버리냐? 쓰레기 새끼들.”

부족한 재능으로 공작가의 가주까지 됐는데 바로 그게 문제였다.

재능의 부족을 인맥발로 커버 치려 했는데 문무 모두 재능이 달리다 보니 결국 머리 좋은 놈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이 꼴이 된 것이다.

“애초에 환생이라는 개 같은 소리를 믿는 게 아니었어.”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던 개 같은 놈이 생각났으나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곳에서 잡생각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겠으나 오늘따라 유난히 잡생각이 많아졌다.

“이곳이 내 무덤 자리인가?”

남자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어느새 포위한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북부 최강의 가문답게 견고한 성을 갖고 있었으나 개떼처럼 밀려들어 오는 몬스터들에게 반파된 지 오래였다.

최후의 보루인 내성조차 안전하지 않았다.

“후……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남을 위해 희생하는 건 자기 스타일이 아니었으나, 이미 이런 몸으론 살기 글렀다.

그렇다면 도망치는 자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버는 게 맞았다.

“와라!”

마지막으로 멋지게 폼 한번 잡아 보고 죽자는 생각에 남자가 검을 들고서 고함치자 몬스터들이 도망치지 않는 먹잇감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싸운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보상으로 유니크 칭호 ‘최후의 용맹’을 드립니다.

-최후의 용맹 : 위기의 순간 모든 능력이 3배 상승한다.

“다 죽어 가니까 주네.”

혀를 차면서도 남자는 처음으로 얻은 유니크 칭호의 효과에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럽게 온몸에 힘이 넘쳐 나는 것을 느끼면서 이전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힘을 발휘했다.

신의 게임이라는 말과 함께 이곳에 보냈음에도 상태창도, 스킬도 없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이곳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힘.

그것이 바로 칭호와 고유 능력이었다.

하지만 칭호의 효과라도 부실한 능력을 갑자기 소드 마스터급으로 만들어 주진 못한다.

그것을 증명하듯 기습적으로 돌진해 온 헬 카우의 공격에 남자는 그대로 날아가 내성의 성벽에 처박혔다.

“쿨럭!”

단번에 몸이 으스러지면서 온몸의 장기가 파열되었다.

강렬한 충격 때문인지 의식이 점차 흐릿해져 갔다.

“엿 같네.”

남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 때문에 흐릿해져 가는 시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괴물들이 병사들의 시체로 파티를 벌이고 있었고, 뒤이어 온 괴물들이 남은 시체들이 없나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의식이 꺼지는 순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멀리서 자신을 보고 달려오는 괴물들을 보면 차라리 이대로 죽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산 채로 씹어 먹히는 것보다는 얌전히 죽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바로 그때.

“이게 뭔…….”

멀리서 달려오던 괴물이 달려오는 모션 그대로 정지하자 놀란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후드득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과 죽어 나가는 사람들 역시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이 정지해 있는 것 같은 그 순간 허공에 빛덩이가 하나 생성되었다.

-축하합니다. ‘이정후’ 님께서는 제이든 레온하르트 다잔으로 갓 게임 베타테스터 중 최후까지 살아남으셨습니다.

“베타테스터?”

베타테스터란 말에 눈을 끔뻑거리면서 멍청하게 되묻는 순간 빛덩이에서 다시금 기계음이 들려왔다.

-생존 기간 중 퀘스트 완료 목록 생성 중…….

-서브 퀘스트 : 최후까지 살아남기.

-서브 퀘스트 : 공허의 습격에서 300일간 살아남기.

-서브 퀘스트 : 칭호를 하나 이상 획득하기(생존왕, 황실의 개, 북부의 수치, 최후의 용맹).

-서브 퀘스트 : 서른 살까지 생존하기.

-메인 퀘스트 : ‘대륙을 지켜라’를 실패하셨습니다.

-메인 퀘스트에 관련된 퀘스트 완료 목록이 없습니다.

기계음이 잠시 멈추더니 빛덩이가 제이든의 몸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깃덩이처럼 망가진 몸이 서서히 가루가 되어 빛덩이에게 흡수되기 시작하면서 제이든의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베타테스트가 끝났습니다. 정식으로 오스리아 대륙에 환생합니다. 목표한 바를 이룰 시 본래 세상으로 귀환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 목표는 대륙 멸망 저지 혹은 서른다섯 살까지 생존입니다. 단! 단순 생존의 경우 보상의 규모가 작을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최후의 생존자 특전으로 다른 유저들보다 10년 이른 시점으로 회귀합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고유 능력 ‘불완전한 가문의 재능’을 획득합니다.

-베타테스터로서 훌륭히 생존한 당신께 경의를 표합니다. 부디 본게임에서도 목표한 바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기계음이 들려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혼 상태로 있던 그는 빛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이정후이자 제이든으로서 플레이하게 될 그가 다시 깨어난 시점은 베타테스터로 시작할 무렵,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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