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 썩은물은 그분의 진명을 듣습니다 >
“어, 어...”
니알라토텝의 쌍욕 시전에 뇌가 정지했다.
솔직히 안개 녀석이 등장한 것만 해도 놀라운데 거기에 더해 갑작스러운 광역 도발이라니. 도무지 이 녀석의 성향을 종잡을 수 없다. 아니, 성향이라는 게 있는지 궁금하다.
「크하하하하!」
콰르릉!
니알라토텝의 도발에 안개 녀석이 웃었다.
그냥 큰 소리로 웃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파장은 웃는다는 행위로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콰콰콰콰!
대기가 불안정하게 떨리며 소용돌이를 생성한다.
드득, 드드득.
대지의 균열이 점차 영역을 확장해 마지 거미줄과 같은 거대한 상흔을 새겼다.
「패주들이여. 고작 그 정도 수로 나를 겁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안개 녀석이 자신의 위엄을 보였다.
확실히 다르다. 저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존재감은 현재의 나나 반란군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메신저, 네 녀석의 존재가 심히 거슬렸었다. 가지지도 못할 탐욕으로 인해 형제들이 반대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오늘 네 녀석의 비굴한 삶을 끝내주도록 하마.」
단단히 작정한 안개 녀석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어디서 수작을!”
수상쩍은 기운을 감지한 크툴루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사아아아.
영역을 넓히는 안개에 대응하여 크툴루의 기운이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영역을 확보하려는 기운의 충돌. 서로의 결계를 확고히 하려는 두 절대자의 승부였다.
「주제를 모르는군.」
냉소적인 한 마디. 그리고 그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콰앙!
"큭!"
폭음과 함께 크툴루가 한쪽 무릎을 꿇는다.
안개 녀석의 기운이, 그의 존재가 크툴루를 압도하고 있었다.
“나도 있다!”
크툴루는 혼자가 아니다.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노덴스가 중력 지배의 권능을 일으켰다.
쿠웅!
항거할 수 없는 중력의 힘이 안개 녀석을 짓눌렀다.
울타르를 비롯해 사도들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 속박의 권능.
「...」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안개 녀석은 너무도 평온한 모습이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녀석의 형상은 중력의 힘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고 있었다.
「금제를 당하기 전이라 해도 지금의 내게는 미치지 못한다.」
“헛소리!”
그 도발에 노덴스가 전력을 방출했다.
구구구궁!
안개 녀석의 주위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짓눌렸다.
「하압!」
안개 녀석의 대응은 단순했다.
힘찬 기합성과 함께 미지의 파동이 한 차례 주위를 휩쓸었고.
파챵!
지구 전체를 짓누르고 있던 중력이 해소되었다.
"커헉!"
권능을 싣고 있었던 노덴스는 반발력을 이기지 못한 채 새빨간 액체를 토해야만 했다.
치이익!
녀석의 혈액은 인간의 것과 달랐다.
지면에 닿는 순간 요란한 소릴 내며 대지를 녹였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게 진짜 현실이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거대해 보이던 크툴루와 노덴스가 이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 여기 있는 반란군이 힘을 합친다면 어느 정도는 몰아세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몰아세우기는커녕 변변한 반항도 못 한 채 처참하게 발리고 있었다.
망할. 아무래도 라인을 잘못 탄 것 같다.
“그만!”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마지막 희망인 요그 소토스가 남아 있다.
장남인 그는 다른 두 동생에 비해 보다 강력한 권능을 소유하고 있었다.
쩌억!
울타르와 사도를 정리했던 것처럼 공간을 찢은 것이 아니라 시간을 멈췄다.
공간을 지배한다는 건 그 영역의 시간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뚝!
예상했던 것처럼 요그 소토스가 지정한 공간, 안개 녀석의 주위 시간이 멈췄다.
「...」
그 공간에 갇힌 안개 녀석의 움직임 또한 정지했다.
“사라져라!”
과연 요그 소토스!
시간을 빼앗은 것으로도 모자라 동시에 공간을 찢어버린다.
찌익!
마침내 공간이 찢겼다.
"어?!"
아니. 찢기다 말았다.
요그 소토스의 지배 영역에 들어간 공간은 마저 찢기지 못한 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나마 요그 소토스. 너만이 내게 흥미를 주는구나.」
멈춰진 시간 속에서도 유유히 움직인다.
애초에 요그 소토스가 발휘한 공간 지배는 안개 녀석에게 통하지 않았다.
잠깐 당했다고 생각했던 건 녀석의 장난에 불과했다.
“으음...”
요그 소토스가 침음했다.
권능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 그건 곧 서열이 확실히 정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흥미 그 이상을 줄 수 없다. 하지만 아쉬워 하지 마라. 금제를 당하기 전이라 해도 지금의 내게는 소용이 없을 테니까.」 정상에 있는 자만이 보일 수 있는 광오한 자신감.
「그러니 그만 사라져라!」
쿠콰콰!
보이지 않는 미증유의 힘이 요그 소토스에게 쇄도했고.
퍼억!
가해진 충격에 의해 요그 소토스의 신형이 튕겨져 나갔다.
「세월이 무상하구나. 그래도 한 때는 렐름을 쥐락펴락했던 너희가 이토록 쇠락했을 줄이야.」
크툴루, 노덴스, 요그 소토스. 절대적인 힘을 소유한 존재를 무릎 꿇린 안개 녀석의 시선은 이내 니알라토텝에게 향했다.
「이제 너희와 나의 차이를 알겠느냐?」
지금에 와서 그걸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아직 희망을 놓기엔 이르다. 믿었던 세 개 카드를 잃었지만, 아직 우리에겐 마지막 히든 카드 하나가 남아 있었다.
니알라토텝.
녀석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괜히 도발을 날리진 않았을 테지. 넷 중에서도 가장 수수께끼로 덮여 있는 녀석이라면 분명 뭔가 방법을 낼 것이다.
“놀랍군요. 더 미스트 네임리스. 분명 당신의 힘은 전에 비할 바 없이 강력합니다.”
어라, 이 새끼 봐라?
조금 전에는 계급장 떼고 한 번 붙자고 하더니 이제 와서 왜 정중한 척이지?
「후회해도 늦었다. 우리의 지배에 반기를 든 이상 너희는 살아갈 자격을 잃은 것이니.」
그래.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반란을 일으키려는 주동자를 살려둘 턱이 없지. 그러나 아직 결과가 정해진 건 아니다.
니알라토텝, 너만 믿는다!
“하하하하!”
돌연 청아한 웃음을 터뜨린다.
조금 전 안개 녀석이 발휘했던 것과 달리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그런 종류의 확신을 심어주는 독특한 웃음이었다.
“더 미스트 네임리스여. 당신은 정녕 이 싸움의 승자가 정해졌다고 보십니까?”
와, 자신감 봐라.
저 정도 자신감이면 당연히 감춰둔 비장의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 나타난 이상 네 녀석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그 결과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안개 녀석의 자신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니알라토텝과는 달리 녀석은 실력으로 자신의 힘을 증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괴물 같은 녀석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진 않는다.
그러면 안 되지만, 결과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곳에서 나와 반란군의 파멸만이 그려질 뿐이었다.
하지만 니알라토텝이 괜히 이런 상황을 만들진 않았을 터. 불안하지만, 녀석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후후후.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요. 당신은 그분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분?」
“그분?”
나와 안개 녀석이 동시에 반문했다.
니알라토텝이 그분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던가?
아무리 떠올려도 전능하신 그 양반을 제외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자, 소개해 드리죠. 당신과 탐욕에 젖은 형제들의 왕국을 파괴할 구원자. 그리고 반란군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니알라토텝의 음성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녀석이 이토록 확신할 정도면 정말 그분은 대단한 존재일 게 틀림 없다.
“자, 당신의 위엄을 보여주십시오. 승리의 신 이연우!”
곧게 뻗은 니알라토텝의 양손이 나를 가리켰다.
“어?”
「뭣?!」
녀석의 소개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안개 녀석도 마찬가지인 듯 자신의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설마 나는 아니지?”
손가락으로 확실히 나를 가리키며 물었고.
“맞습니다. 승리의 신격을 가진 이연우님이야 말로 반란군을 이끌 진정한 지도자, 그리고 혼돈으로 가득한 지금의 지배를 끝낼 구원자이십니다.”
“착각한 게 아니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확실히 니알라토텝을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이 새끼.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자 머리가 살짝 돌아버린 게 아닐까?
아니, 미쳐도 어떻게 이따위 발상을 할 수 있지.
솔직히 말해서 지금 자리한 존재들 중에서 내 전력이 가장 약하다.
안개 녀석의 손짓 한 번에 날아가버리는 건 기정사실이고, 녀석에게 패배한 세 존재에게도 비빌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 나보고 지금 안개 녀석을 상대하라고?
단단히 열이 받은 지금 이 상황에서?
“아니, 그건...”
「크하하하하!」
우르릉!
다시금 안개 녀석의 광소가 지구 전역에 울려 퍼졌다.
씁. 고작 고함을 지르는 것만으로도 뇌가 울린다. 음파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내 주위의 고유 영역을 침범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 차이가 심각하다는 증거다.
「천궁의 메신저여. 네가 믿고 있었다는 마지막 희망이 이따위 하찮은 존재였느냐?」
힘 좀 쓴다고 사람 무시하네?
하지만 그 말에 반박할 수 없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객관적인 전력에서 녀석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너의 헛된 희망을 여기서 산산이 부수어주마.」
니알라토텝을 향한 시선이 내게로 옮겨졌다.
이런 씨부럴. 단지 바라본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녀석의 위엄, 녀석이 지닌 존재감이라는 건 보통의 존재가 견딜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미친 니알라토텝. 이 새끼는 제정신이 아닌 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긴장이 되는 존재를 무슨 수로 상대하라는 건가.
「하찮은 존재야. 너를 궁지로 몬 그를 원망하도록 해라.」
동정심도 없는 새끼.
녀석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날 끝내기 위해 전력이라는 것을 다하고 있었다.
우웅, 우우우웅!
감히 측정하기 힘든 미증유의 힘이 녀석의 주위에 맴돈다.
찌릿찌릿!
단지 기운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전기가 통한 것처럼 온몸이 찌릿하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은 내 의식을 아득한 곳으로 날려 보낸다.
위험, 진짜 위험하다.
이대로 녀석이 기운을 완성하도록 방치한다면 진짜 죽는다.
“흐으읍!"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강대해지는 힘과 권능이 나를 짓누른다.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지금의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혹시 그거 아십니까?”
절체절명의 순간 태연한 니알라토텝의 음성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전능하신 분. 그분의 진명은 Azathoth. 전지전능한 유일의 존재 아자토스!”
두근!
지금껏 듣지 못했던 전지전능한 이의 진명. 그 순간 격한 떨림이 찾아왔다.
두근두근!
심장박동이 미친 듯이 빨라진다.
신기한 건 그 심장박동 소리가 일정한 주파수를 방출, 내게 어떤 의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너의 부름에 답하노라...나의 충실한 메신저, 니알라토텝이여...」
내가 말한 게 아니다.
내 입을 빌린 누군가의 의지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