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 썩은물은 반란군 제안을 받습니다 >
물음표. 그래. 지금까지 녀석의 얼굴은 물음표로 가려져 확인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나는 대신격을 이룬 존재. 녀석이 펼친 환영의 장막을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지잉!
고도의 집중.
안구이 힘을 주며 녀석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과연...?”
물음표에 가려져 있지만, 알 수 있다.
니알라토텝은 분명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펼친 환영의 장막을 뚫을 수 있다는 건 내가 녀석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격을 쌓았다는 말이 되니까.
기대한다면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게 인지상정!
스르르.
마치 물속에 투영된 것처럼 물음표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보인다, 보인다 아니, 안보인다.
대신격이고 나발이고 녀석의 얼굴을 가린 물음표는 조금 흐릿해졌을뿐, 여전히 진면목을 감추고 있었다.
말이 되냐?
대신격의 눈으로도 진면목을 볼 수 없다고?
아무리 녀석이 과거 전능하신 분의 비서이자 메신저로 활동을 했고, 실질적인 과거의 2인자라곤 하지만, 그 영향력은 과거의 영광에 불과했다.
일전에도 증명된 바 있지만, 현재 녀석의 영향력은 수장들에게 미치지 못한다.
현재 나의 격은 수장 셋과 같은 대신격. 그런데 왜 녀석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거지?
내 능력으로 불가능하다면 다른 아이템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설마 이게 전력을 아니겠죠? 잔뜩 기대하고 온 저를 실망시키면 곤란합니다.”
광역 도발이다.
뭔가 꿍꿍이를 가진 도발이었지만, 놀림을 받고도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오냐. 내가 오늘 네 녀석의 그 잘난 면상을 확인해 주마.
실제 나의 전력은 대신격의 권능만이 있는 게 아니다.
디바인 파워, 그리고 인벤토리에 보관된 아이템, 아니 이제는 신물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들. 그 모든 것을 더해야만 내 전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디바인 파워를 소모해 각종 투시의 권능을, 관찰의 효과를 가진 아이템을 모조리 사용했다.
“그렇지!”
그제야 보인다.
여전히 흐릿하나 그 뒤에 숨은 녀석의 진면목이, 면상이라는 게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간다, 간다, 가즈아!
스르륵.
마침내 녀석을 감추고 있던 가면이 벗겨졌다.
"미친!"
드러난 광경에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물음표가 사라지고 물음표가 나왔다.
이 황당한 심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으려나.
아, 한 가지 다른 점이 있긴 하다. 처음 물음표는 검은색이었다면 지금은 황금 물음표라는 것.
설마 저게 본래의 얼굴은 아니테고...
“아뇨. 맞습니다. 이 모습은 지고하신 분이 직접 빚으신 것. 저의 본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물음표가?”
“그렇습니다. 지고하신 분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는데, 이 모습은 저의 진실된 모습입니다.”
지고하신 분까지 거론하는 마당에 그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어, 아마도 그 지고하신 분의 취미가 참으로 독특한 것 같다.
가면을 벗겼더니 똑같은 가면이 나온 기분. 괜한 곳에 힘을 쓴 것 같아 뭔가 기분이 그렇지만, 녀석의 진면목을 확인했으니 그것으로 만족이다.
“그래서. 저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죠?”
깜짝이야!
물음표 사이로 녀석의 눈으로 짐작되는 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진짜다.
저 물음표는 녀석의 얼굴이 확실하다.
그 놀란 마음을 빠르게 다스리며 니알라토텝을 응시했다.
“무슨 말이 나올지는 잘 알고 있을 텐데?”
크타니드의 지식을 통해 알게 된 내부의 사정, 그리고 지금껏 녀석이 내게 베푼 일. 그 모든 건 하나의 목표점을 향하고 있었다.
“과연 선택 받으신 분! 눈치가 빠르시군요.”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지금의 판도를 뒤집어 엎을 거래를 말이다.
“그런데 이곳으로 괜찮겠어? 임시 결계라 안전하지는 않을 텐데.”
비록 내 권능으로 펼치긴 했지만, 임시적인 결계였다.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누군가 들여다 볼 가능성이 있는 것.
“그렇군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결계입니다.”
“그럼 자릴 옮길까? 지구로 가도 상관 없고, 네가 아는 장소가 있어도...”
“굳이 자릴 옮길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 말한 녀석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어?"
그 순간 일정 영역이 완전리 분리되는 기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와, 이건 사기다.
단적으로 내가 펼친 결계가 종이 박스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 녀석이 펼친 결계는 강철, 아니 아다만티움 정도로 단단했다.
절대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완벽한 결계였다.
“제가 전투 쪽에는 재능이 없지만, 이러 쪽으로는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분께서도 인정한 바 있는 고유의 능력이지요.”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저 정도 결계라면 내가 아니라 다른 어떤 신격도 파괴할 수 없을 것이다.
아, 아닌가?
혹 수장 녀석들이라면 가능할지도?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파괴할 수 있습니다. 대신격 중에서도 그들은 무척 특별한 존재니 말입니다.”
대신격 중에서도 특별하다?
“그 정도야? 그렇게 차이가 나진 않을 것 같은데...?”
명색이 나도 대신격이다.
그렇기에 녀석들과 어느 정도는 비벼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녀석들과 나와의 차이가 그렇게 크다고?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그들은 전능하신 분을 탐한 존재. 같은 대신격이라 해도 그 힘의 차이는 상상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쿵!
이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건만.
“솔직히 말해 줘. 어느 정도야?”
직설적으로 물었다.
지금까지는 막연히, 그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기준은 얼마 전 느꼈던 더 미스트 네임리스의 존재감.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알라토텝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원로와 같은 인물. 이왕 그를 만나게 된 김에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의문을 풀 생각이었다.
“흐음. 어느 정도일까요. 지금 전력보다 3배 더 강해진다면 어느 정도 버틸 만한 수준은 될 겁니다.”
“맙소사!”
지금 전력의 3배. 그것도 반드시 이기는 정도가 아니라 적당히 버틸 만한 수준이란다.
미친!
대신격을 이뤘다고 그렇게 좋아했건만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
“그들은 억겁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권능과 격을 쌓았습니다. 그들의 격은 날카롭게 다듬은 보도賣刀와도 같은 것. 게다가 디바인 파워의 양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시간은 재능으로 살 수 없는 법.
녀석들이 쌓아올린 업은 고스란히 그들의 격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은 전능하신 분을 탐하여 전능한 권능을 손에 쥐었습니다.”
삼라만상 그 자체인 전능하신 분. 그 육신을 탐하여 얻은 권능이란 건 얼마나 강력할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
절망적인 상황에섣 희망을 담아 물었고.
“당신은 능히 그들을 넘을 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어리석은 계획으로는 닿을 수 없겠지만 말이죠."
“내 계획을 알고 있어?”
“이 조그만 행성, 아니 적의 내부에 파고들어 그들의 권역을 집어삼킨다.”
“정답!”
과연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 내 옆을 스토킹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건 현실성이 없는 계획입니다.”
“왜지?”
너무 신랄한 반응에 반항하듯이 물었다.
“대다수 멍청한 존재들에게는 통할지 모르나 최후의 적인 그들에에게는 먹히지 않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외부의 존재면서도 대다수 외부의 존재가 멍청하다는 건 알고 있는 모양이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는 대체적으로 멍청하지요. 힘과 탐욕, 그리고 유희만을 쫓는 어리석은 것들. 그러나 당신이 최후로 맞이해야 할 그들은 다릅니다.”
“그들이라면 수장 셋을 말하는 거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당신이 상대해야 할 최후의 적은 파벌을 이끄는 수장 셋뿐만 아니라 그 휘하에 있는 신장들도 포함됩니다.”
“신장?”
의외의 대답이었다.
신장이라면 신격의 휘하에 있는 정예 부하라 부를 만한 존재.
하지만 그래봤자 신장이다.
고작해야 신장 주제에 대신격인 내게 대항할 수 있을까?
“신장이라고 해서 얕보면 곤란합니다. 그들 또한 전능하신 분의 육신을 탐하여 절대적인 권능을 얻은 존재. 불완전한 대신격 상태에서 맞이하기엔 너무나도 강력한 적입니다.”
“하지만 녀석들도 쉽게 움직이진 못할 거 아냐.”
무분별한 전쟁을 막기 위해 마련된 맹약. 녀석들은 스스로 족쇄를 달았다.
맹약에 묶여 있는 이상 쉽게 준동하지는 못할 터.
“그들을 얕보면 곤란합니다. 이미 암중에서 움직이고...”
니알라토텝의 말이 채 끝맺기도 전.
[감시하는 눈 울타르가 승리의 신 이연우의 권역을 침범합니다.]
“뭐, 뭣?!”
갑작스레 찾아든 비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침공? 갑작스럽게 신격이 전쟁을 걸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울타르!”
하지만 니알라토텝은 전쟁의 알림보다는 그 대상에 주목한 것 같다.
쿠르릉!
녀석의 음성이 넓게 퍼지며 굉음을 퍼뜨렸다.
놀랍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엄청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울타르는 크타니드의 기억 속에 없는 이름이었다.
“그는 지배의 전쟁에서 경계에 잠복한 자를 배반한 그의 혈육입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배신으로 인해 지배의 전쟁의 승패가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아!”
과거 아우터 갓, 엘더 갓, 그리고 그레이트 올드 원을 다스리고 있었던 수장은 다른 존재였다.
아우터 갓을 다스리는 경계에 잠복한 자 요그 소토스.
엘더 갓을 다스리는 순차시간의 파멸자 제자노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레이트 올드 원을 다스렸던 르뤼에의 주인 크툴루.
가장 높은 존재로 칭송 받던 그들은 지배의 전쟁의 패자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만 했었다.
그리고 이 전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게 울타르였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자. 혈육을 배반하여 더 미스트 네임리스에게 붙은 교활한 존재.
“녀석의 전력은?”
가장 궁금한 물음을 던졌고.
니알라토텝은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대단을 대신했다.
하지만 녀석의 부정적인 대답에도 나는 태연할 수 있다.
“자,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서. 니알라토텝. 내게 바라는 바가 있지?”
강렬한 시선으로 녀석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과연 제 눈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택받은 이여. 당신에게 제안하는 바입니다.”
잠시 말을 끊은 녀석의 숨겨진 눈이 나타나고.
“혼돈의 시대를 이끌고 있는 그들에게 철퇴를 가할 반란군. 질서의 군대를 이끌어갈 일원이 되어 주십시오.”
마침내 녀석은 내게 처음으로 본심을 꺼냈다.
현재 렐름을 지배하고 있는 외부의 존재, 그들을 뒤엎을 반란군의 일원이 되어달라는 제안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