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 썩은물은 크타니드를 가지고 놉니다 >
「네, 네 놈은...?」
당황한 녀석이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뭐 하는 수작인지는 빤하다. 혹 자신과 같이 개입한 신격이 아닌지 조사하는 중이겠지.
「신격이 아니란 말인가?!」
풉!
지레짐작 나왔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존재하지 않는 자. 대신격이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권능 중 하나로 완벽하게 신분을 위장하는 능력이었다.
이것을 간파할 수 있는 건 나와 동등하거나 혹은 높은 신격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쉽게 말해서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한 초월 신격이나 몇 존재하지 않는 대신격이 아닌 이상에야 진실된 내 모습을 볼 수 없는 것.
물론 이것도 절대적이진 않다.
다량의 디바인 파워를 소모하여 ‘간파’의 권능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내 진실된 모습을 볼 수도 있겠지만, 녀석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설마 이 자리에 대신격이, 그것도 자기가 모르는 존재가 나타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위대하신...아니, 지고하신 분의 대리자. 바니타스. 남이 공들여 마련한 거점을 빼앗아가려는 몰상식한 녀석에게 그분의 뜻을 전하러 왔다.”
「하찮은 것. 죽어라!」
쿠웅!
녀석이 발현한 언령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말로 살인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신격에 도달한 존재라면 언령이라는 특수한 권능을 발휘해 특정한 존재를 없앨 수도 있다.
특히 거스를 수 없는 자와 같은 중신이라면 하찮은 피조물 따위 없애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뭐하냐?”
나는 태연히 웃었다.
태풍이 불어닥치는 와중에 미풍 좀 분다고 해서 영향이 있을까? 녀석의 존재감은 결코, 나를 누를 수 없다.
「이게 어찌 된...」
당황하는 녀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변태처럼 웃고 있을 수만은 없지.
녀석이 당황한 사이 슬쩍 권능을 발현했다.
[소량의 디바인 파워를 소모, 거스를 수 없는 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합니다.]
[검색중…]
[검색 완료!]
일전에도 발휘한 바 있는 검색의 권능을 발휘했다.
『거스를 수 없는 자 크타니드 : 사이크라노쉬 행성을 다스리는 중신 중 하나이며 아우터 갓에 소속되어 있다.
과거 아우터 갓을 지배했던 크툴루의 쌍둥이 형제로, 그 능력은 형인 크툴루에 비해 미약한 편. 하지만 야망의 크기는 모든 신격을 통틀어서도 최고라 단언할 수 있다.
과거, 지배의 전쟁에서 크툴루를 봉인한 장본인이기도 하며 지금가지도 그러한 업적을 널리 떠벌리고 다니고 있다.
현재 수정과 진주의 궁전에 머물고 있으며 수정구를 이용해 세상을 살펴 자신에게 이득이 될 만한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찾아 다닌다.』
뜻밖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전에 대면한 적 있는 르뤼에의 주인 크툴루와 형제시란다.
더욱더 놀라운 점은 쌍둥이 형제라면서 정작 크툴루룰 봉인한 게 녀석이라는 점이다.
형제의 배신 이야기만 해도 상당히 궁금할 텐데, 여기에 하나가 추가된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언급된 적 없는 단어, 지배의 전쟁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환웅이 전해준 판테온과 외부의 존재들의 싸움인 질서와 혼돈의 전쟁이 전부였다.
그 큰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아마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조만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눈앞에 있는 독수리, 크타니드를 통해서 말이다.
“어떻게 되긴, 이렇게 되는 거지.”
팟!
의지가 움직인 순간 이미 내 육신은 크타니드를 면전에 두고 있었다.
“고개를 조아려라, 크타니드.”
진명을 언급한 순간 놀란 크타니드의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어떻게 내 진명을...?」
“그러니까 내가...는 아니고 그분이 전능하다는 거다.”
나를 모시는 그분으로 지칭하려니 조금 힘들다.
하지만 별수 있나. 쓸데없는 분쟁을 피하고 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전능을 들먹이는 것이냐!」
처음엔 당황하던 녀석이 전능이라는 단어에 분노를 표출했다.
「전능은 네깟 녀석이 함부로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 단어는 오직 한 분, 어둠을 먹는 존재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왜 그렇게 흥분하는가 했더니 혹시가 역시네.
“아, 다크니스?”
「커흡?!」
그 어떤 때보다 놀란 녀석이 눈을 부릅뜬다.
황금색으로 물든 녀석의 안광이 파도처럼 격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그분의 진명을...?」
내가 언급한 건 어둠을 먹는 존재 다크니스.
크타니드 녀석이 소속된 아우터 갓을 다스리는 수장이다.
부하를 보면 그 상사를 알 수 있다고. 이렇게 흥분해서 떠받드는 걸 보면 다크니스란 녀석은 꽤 유능한 수장인 듯 하다.
“별 인연은 아니야. 우연히 만난 적이 있거든.”
거짓이 아니다.
니알라토텝 덕분에 아우터 갓의 수장인 다크니스를 비롯 엘더 갓의 크삭스클루트, 그리고 별로 좋지 않은 인연의 그레이트 올드 원의 더 미스트 네임리스와도 만났었다.
세 개의 파벌을 대표하는 수장과 모두 만난 전적이 있는 것.
「헛소리!」
물론 크타니드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더는 네 녀석의 헛소릴 들어줄 이유가 없구나. 네가 누구를 섬기고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내 앞에서 그분을 모욕하고도 살기를 바란단 말이냐. 내 존재를 걸고서라도 용납할 수 없다!」
콰릉, 콰르릉!
분노한 녀석의 외침이 천둥처럼 세계에 울려 퍼졌다.
그냥 의지의 전달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강력한 파장고 힘이 담겨 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
나를 비롯해 신도들에게 피해를 주고자 권능을 발현했을 테지만, 이미 이 거점은 내 보호 아래 있었다.
굳이 결계를 펼치지 않아도 대신격의 존재는 일정 공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녀석의 권능은 그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고, 내 의지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신도들에게 피해를 줄 순 없다.
“뭐하냐?”
그런 녀석을 향한 비웃음을 일발 장전!
「이익!」
결국, 분노가 폭발했다.
「오만방자한 놈. 오늘 네 녀석에게 위대한 신격의 진정한 위엄을 보여주마!」
쿠콰콰콰콰!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 빛과도 같은 그것이 창공을 향해 솟구쳤다.
음. 조금 전부터 느낀 바지만, 아무래도 외부의 존재들은 머리가 그리 비상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정도 능력까지 보였는데 아직 내가 대신격인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거기에 더해 신격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녀석들의 존재나 신격을 이루기 전만 해도 신이란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생각했건만,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탐욕스러운 존재. 어떻게 보면 인간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
지이잉!
귓가로 파고드는 소음에 상념을 뒤로했다.
정면, 여전히 폭발하는 기세가 하늘을 뚫은 상태다.
크타니드 녀석은 그렇게 기운만을 방출하며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내 공격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녀석을 둘러싼 저 기운은 절대의 보호막이었기 때문이다.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이상에야 저 기운을 뚫고 녀석에게 타격을 주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웃긴 사실이 뭐냐면 불가능에 가까운 그 일을 나는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금 내가 손을 쓴다면 얼마든지 녀석을 소멸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 어느 때건 녀석을 소멸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녀석에게 절망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해라.
그리고 그 끝에 있는 절망, 희망도 없는 나락의 끝에 서게 되었을 때 녀석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 이 모든 과정은 신격을 향한 시험의 무대였다.
「지고하신 분...허가를...요청...」
아련히 들리는 누군가의 의지.
지금 크타니드가 행하고 있는 건 별다른 게 아니라 누군가와의 교신이었다.
아마 녀석은 모르겠지만, 대신격인 나는 그 교신을 엿들을 수 있었다.
물론 자세히 들을 수는 없다.
신격간의 비밀스러운 교신인만큼 뜻을 명확하게 알아듣는 건 극소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다량의 디바인 파워를 소모, 도청을 발동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 극소수에 해당한다.
디바인 파워를 소모해 도청의 권응을 발휘. 크타니드와 배후에 있는 누군가와의 비밀 교신을 도청했다.
「사이크라노쉬 행성에 현신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제야 녀석이 하는 말을 아주 잘 들을 수 있었다.
녀석이 노리는 바는 실체의 현신이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해?
내가 알기로는 고대의 맹약에 의해 신격의 현신은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을 텐데.
「맹약의 수호자가 말한다. 거스를 수 없는 존재 크타니드. 너의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
크타니드 녀석과 비밀 교신을 나누고 있는 건 맹약의 수호자라는 의문의 존재였다.
정확히 그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대의 맹약이라는 절대적인 법칙을 수호하는 무리일 터.
아마도 현신이나 기타 맹약에 위배되는 일을 벌이고자 한다면 이 맹약의 수호자라는 녀석들에게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것 같다.
「알고 있습니다. 고대의 맹약에 따라 신격의 현신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렇다. 맹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 그대의 현신에 재고는 없다.」
「하지만 섬기는 주인의 모욕을 참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맹약은 절대적인 것. 허가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맹약의 면책권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면책권?
가만 이걸 어디서 들었더라?
아!
그러고 보니 니알라토텝과 수장 녀석들이 맹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면책권을 언급했었지.
「그대가 어떻게?」
놀란 맹약의 수호자가 되물었고.
「형제 크툴루를 봉인한 무공을 통해 지고하신 분에게 하사 받은 것입니다.」
그렇군.
녀석의 주인인 다크니스 녀석은 꽤 많은 면책권을 가지고 있었지.
그 중 하나를 공을 세운 부하에게 하사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알겠다. 맹약의 수호자 전원이 그대의 현신에 동의하였다.」
교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파아아앗!
교신이 끝나면서 눈부신 광채가, 형용할 수 없는 힘의 광채가 세상을 지배했다.
「너의 어리석음을 탓하여라. 거스를 수 없는 존재 크타니드가 현신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건 끝도 없이 펼쳐진 날개 뿐이었다.
사이크라노쉬 행성도 중신이라는 거대한 신격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했다.
신체의 일부, 거대한 황금빛 날개만이 그 위용을 드러낸 상태였다.
“쯧. 덩치만 컸지, 별 거 아니네.”
중신의 현신이었지만, 큰 감흥은 없다.
실제로 더 미스트 네임리스의 현신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대신격과 비교하면 중신의 현신 따위는 뭐.
게다가 그때와 지금은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고작해야 반푼이에 불과했던 당시와는 달리 지금 나는 대신격을 이룬 존재.
“응. 돌아가.”
[초대량의 디바인 파워를 소모, 중급 현신 취소를 발동합니다.]
파아앗!
장내를 지배하던 녀석의 존재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 이 무슨...!」
크타니드는 현신 이전의 모습, 칼로쉬의 육신에 강림한 그 상태로 나를 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