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썩은물은 프록 일족을 삼킵니다 >
“저, 정녕 이 보물, 아니 신물을 내려주신단 말입니까?”
그들의 눈동자에 깃든 감정이 분노에서 탐욕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내게 질문을 던진 프록을 응시했다.
오호라? 두꺼비같이 생긴 저놈은 조금 전 데모라의 주인, 그러니까 날 욕보이겠다고 지껄인 녀석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나는 관대한 신이다.
「물론 나는 관대하다. 네가 데모라를 죽여 나를 모욕하겠다고 지껄...아니 말했어도 너에게 신물을 내려줄 것이다.」
“히끅!”
놀란 녀석이 딸꾹질을 해댄다.
아마 몰랐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 서서 녀석들이 뱉은 모든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번은 넘어가겠지만, 항상 언행을 조심하라. 나는 다른 신격과는 달리 전능한 존재. 모든 차원을 굽어 살필 수 있으며 또한 모든 차원에 나의 눈과 귀가 있으니.」
물론 허세다.
아무리 내가 대신격이라곤 하지만 어떻게 모든 차원을 살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건 확인할 수 없는 거짓말. 녀석들이 나를 더욱 신뢰하게 하는 하나의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물을 내리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 법. 이 정도의 신물을 내리기 위해선 대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는지..."
좋은 질문!
청개구릴 닮은 프록을 응시했다.
「그는 베이바. 일족을 다스리는 제사장입니다.」
강림으로 인해 무의식에 녹아든 데모라가 의지를 전했다.
제사장이라. 하긴.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부족에서 제사장의 위치는 중요한 법이니까.
「어리석구나 베이바여.」
화악!
짐짓 근엄한 척 의지를 전하며 후광 효과에 힘을 실었다.
마치 태양이 된 것처럼 주변을 환히 비추었고, 덩달아 내 존재감이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오오오!”
“위, 위대한 분이시여!”
후광의 효과는 대단했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가는 신격으로만 생각하던 부락민 녀석들이 찬양을 시작했다.
「말하지 않았더냐. 나는 위대한 신. 다른 신과 달리 아무런 제한없이 너희에게 신물을 내려줄 수 있다.」
“그, 그게 정녕 가능한 일입니까?”
「그렇다 베이바여. 하지만 세상의 이치란 게 그렇다. 마냥 공짜란 존재하지 않는 법. 너희가 신물을 얻기 위해서는 그 자격을 증명해야만 한다.」
“자격? 무슨 자격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베이바 뿐만 아니라 일족 모두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그랬다. 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눈앞에 휘황찬란한 아이템이 있으니 어찌 욕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간단하다. 너희를 구속하고 있는 창조주, 차토구아의 손길에서 벗어나 나를 섬기면 된다.」
“헙!”
“그, 그것은?!”
곳곳에서 당황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예상한 반응이다.
직접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강림의 형태. 그렇기에 프록 일족에게 드리운 차토구아의 그늘을 완전히 벗겨내지 못했다.
그런 상태의 이들에게 개종 강요는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그건 아니 될 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아직 내 이야기는 다 끝나지 않았다 베이바여.」
잠깐의 망설임 뒤에 나올 베이바의 말을 차단했다.
녀석은 부락의 제사장. 차토구아에 대한 가장 깊은 신앙을 가진 존재였다.
발언의 기회를 주는 건 좋지 않다.
최대한 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상황을 이끌어야만 한다.
「혹 너희가 섬기는 차토구아가 신격 중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
종복이 주인을 배신하는 이유에는 뭐가 있을까.
막대한 제물? 물론 물질적인 부분에 움직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애초에 배신할 만한 녀석들의 변심에 불과하다.
창조주 차토구아가 남긴 창조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게 필요하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창조주인 그분은 중신. 사이크라노쉬 행성을 다스리는 신격들 가운데서도 발군의 격을 지닌 분이시죠.”
베이바가 자랑스럽게 떠들어댄다.
하긴. 대충 살펴본 바에 의하면 차토구아는 사이크라노쉬 행성을 다스리는 신격 가운데서도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였다.
그럼에도 행성 내 권세가 부족한 것은 워낙 본능에 충실한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다른 신격과 달리 치열한 삶을 살지 않았다.
적당한 유흥을 위해 피조물을 창조할 뿐, 사실상 디바인 파워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피조물을 방치한 채 잠이나 퍼질러 자진 않았겠지.
디바인 파워, 그리고 권세에 대한 욕심이 없으니 지금처럼 소신의 피조물 연합에도 밀릴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그래도 중신이다.
프록 일족은 차토구아의 피조물이라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자긍심을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것도 간단하다.
「하하하하하!」
호쾌한 웃음으로 녀석들의 자긍심을 비웃었다.
「중신이라. 그래. 너희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격이겠지.」
"당신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까?”
베이바의 말에 슬며시 웃었다.
「그렇다, 어리석은 베이바여. 너는 내 존재를 느끼지 못한 모양이구나.」
이 대목에서 후광 효과 발사!
“서, 설마…?”
베이바의 눈에 깃든 경악의 감정을 보며 나는 말했다.
「나는 대신격. 승리의 신 이연우. 너희가 섬기는 차토구아는 감히 내 발가락에 닿지도 못할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오오오!”
“대신?!”
“대신격이 강림하셨다!”
인류와는 달리 신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있는 녀석들은 대신격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사이크라노쉬 행성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야말로 위대한 존재.
“하지만 대신격은 고대의 맹약에 의해...”
베이바 녀석이 다시금 딴지를 걸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나는 녀석이 계속 딴지를 걸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자각’하지 못한 것 같으니 내버려둘 수밖에.
다만 녀석이 재를 뿌리지 않도록 적절히 대화를 끊는 스킬을 발휘해야만 했다.
「의심하지 마라 베이바여. 대가 없는 신물, 그리고 모든 존재감. 나는 위대한 신격을 이룬 존재이니라.」
본래 섬기는 주인보다 더욱 뛰어난 주인이 나타났을 경우 종복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꺼내려는 비장의 카드.
[소량의 디바인 파워를 소모, 신언神言을 발동합니다.]
지금껏 사용한 권능 중 가장 많은 량의 디바인 파워를 소모했다.
「들어라!」
쿠르릉!
내 음성은 천둥과도 같이 장내를 지배했다.
하지만 음성의 전달은 고작해야 100m 부근. 이 영역 내에 존재하는 이들에게만 들리는 강력한 의지였다.
「나는 비탄에 빠진 세계, 사이크라노쉬 행성을 구하기 위해 현신한 구원자. 너희 프록 일족 뿐만이 아니라 절망과 공포에 빠진 가엾은 양을 구원할 것이다!」
“아아아...”
“과연!”
“구원의 신이 내려오셨다!”
모두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 다른 것도 아니고 신언이다. 이것은 언령과도 같은 힘을 가진 권능으로 말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 하위 개체의 정신을 조종한다.
물론 아무 때나 가능한 건 아니다.
내 격보다 떨어지는 하위의 종족, 그리고 창조주가 남겨놓은 속박을 벗겨내야만 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작업은 차토구아의 속박에서 프록 일족을 꺼내는 것이었고, 마침내 성과를 발휘하여 신언은 발휘했던 것. 어떻게 보자면 결정적인 순간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프록 일족 알카루아가 개종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프록 일족 샹드라가 개종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
대다수가 개종을 갈망하고 있다. 단 하나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이익!”
환희에 빠진 다른 녀석들과 달리 분통이 터질 듯한 표정의 프록이 있었다.
「왜 그러지 베이바여. 너는 나의 말을, 아니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 같구나.」
“어찌 너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겠느냐. 나를 비롯한 일족 모두는 차투구아님의 은혜를 받은 피조물. 네 녀석의 현혹에 결코,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지잉!
느낄 수 있다.
녀석이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에 깃든 강력한 의지를. 그것은 하등한 피조물 따위가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그렇게 녀석이 의지를 실은 파장이 퍼져 개종을 갈망하는 일족에 닿았다.
「소용없는 짓이다. 베이바.」
하지만 녀석의 행동은 발악에 지나지 않았다.
「나약한 의지로 그들에게 닿은 내 영향력을 벗겨낼 순 없다.」
“뭣이?!”
베이바가 원하는 건 하나였다.
일족에게 미친 내 영향력을 벗겨내어 본래의, 차토구아를 섬기는 프록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토구아 녀석이 직접 현신하지 않는 이상 지금 일족의 영향력을 벗겨내는 건 무리다.
「고작 차토구아, 녀석의 파편에 불과한 네 녀석이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는 말이다.」
"..."
부정하지 못하는 베이바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녀석이 보통의 일족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겠지만, 녀석은 평범한 피조물이 아니었다.
베이바 내부, 잠재의식에는 차토구아가 심어놓은 존재의 파편이 심어져 있었다.
아마도 만약의 때를 대비하기 위한 카드였을 것이다.
혹은 모종의 임무를 받은 채 일족 사이에서 감시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언제부터 알아챘지?”
결국, 순순히 인정하기로 한 모양이다.
「처음부터.」
“그렇군. 확실히 알겠다.”
「무엇을 말이지?」
“네 녀석이 하급한 신격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풉!
녀석은 아직도 내 진실된 존재를 보지 못한 것 같다.
하긴. 차토구아의 본체가 현신하지 않는 이상에야 내 진실된 존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겠지.
고작해야 녀석의 파편 따위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건방도 여기까지다. 감히 대신을 자처하며 나의 피조물을 강탈하려 하다니. 네 녀석에게 신벌이 내려질 것이다!"
파아앗!
녀석이 방출한 에너지의 흐름이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으음?”
하지만 베이바 녀석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 그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게 무슨...?”
「뭘 놀라고 그래. 내가 연락 수단에 대한 방비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베이바가 시도했던 건 본체, 차토구아와의 교신이었다.
목적이야 빤하지. 여기 현세에 건방진 신격이 개입했으니 강력한 신벌을 내려달라는 것.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진즉 그 시도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결계를 펼쳐두었다.
지금 이 공간 내에서는 그 어떤 감응도 시도할 수 없다.
“건방진 놈!”
콰콰콰콰!
간단히 이을 해결하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녀석을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감춰두고 있었던 존재의 힘을 끌어내어 사나운 기세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억겁의 시간을 버티며 인과를 쌓았다. 네깟 녀석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이 힘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녀석의 말이 맞다.
신격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과를 쌓는 것이다.
인과를 쌓아야 현세에 개입할 수 있는 건 물론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용량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차토구아가 심어 놓은 존재의 파편은 억겁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상상할 수 없는 인과를 쌓았다. 그렇기에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허나 녀석은 아주 큰 착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흐아압!”
파지직!
거대한 뇌전의 창이 생성되었다.
과연 자신감을 보일만하다.
지금까지의 인과를 통해 획득한 디바인 파워가 가득 들어간 강력한 권능.
“사라져라!"
녀석의 의지가 전해지고.
팟!
뇌전의 창이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필멸자는 절대 인지할 수 없는 광속의 영역.
「응. 아니야.」
내가 한 대응은 그저 가볍게 손을 휘젓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사아아.
내게 쇄도하던 뇌전의 창이 소멸했다.
“마, 맙소사!”
전력을 다한 일격이 허무하게 소멸하자 그제야 경악하는 베이바.
「잘 가. 배웅은 하지 않을 게.」
굳이 디바인 파워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팟!
내 의지에 따라 궁니르가 적빛 궤적을 그렸고.
푸욱!
“커헉!”
궤적을 파악하지도 못한 녀석의 심장이 꿰뚫렸다.
존재의 파편이라고 해봐야 준신의 격에 가까운 정도. 순수한 내 무력도 감당할 수 없는 나약한 적이었다.
“이, 이럴 수가...이 힘은...그렇다면 너, 너는...”
부릅뜬 베이바의 두 눈이 내게 고정되었다.
「말했잖아. 대신격이라고.」
그런 녀석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털썩.
힘없이 쓰러지는 베이바. 아니, 차토구아가 남겨 놓은 존재의 파편.
「보아라. 너희가 섬기던 차토구아, 녀석이 남긴 존재의 일부가 소멸하였다. 이래도 나를 따르지 않을 테냐?」
“승리의 신 이연우를 따르겠습니다!”
“부디 미천한 저희를 구원해 주십시오!”
마지막 훼방꾼마저 처리한 지금, 프록 일족을 내 신도로 만드는 작업은 순탄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