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썩은물은 아이템을 뿌립니다 >
아주 허접한 마을이다.
외지인의 발길이 미치지 못한 오지, 그곳의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마을 정도가 적당한 표현일까?
철퍽.
지면 또한 제대로 정비하지 않아 늪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지.
정비할 필요가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이 마을에 살아가는 주민은 각종 정비가 필요한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웅성웅성.
정면, 마을 중앙 광장에 모인 무리가 보인다.
개구리와 인간의 외형을 합성한 듯한 생김새, 그들은 사이크라노쉬 행성을 살아가는 종족 중 하나인 프록 일족이었다.
포위하듯 둥글게 에워싼 그들을 지나친다.
스르륵.
멀쩡히 서 있는 프록과 충돌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실체가 아닌 것처럼 그를 통과해 지나간 것.
‘실제하지 않는 존재’라는 권능의 효과다.
신격이 아니고서야 내 존재의 기척을 감지할 수 없는 건 물론 실제하지 않기에 모든 물리적인 법칙에서 자유롭다.
한 마디로 지금의 상태를 정의하자면 유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 당신이 최상급 전사인 데모라?”
“하지만 그 모습은...?”
실제하지 않는 존재를 통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당황하는 프록 무리의 중심. 그곳에 서 있는 건 내 사도로 거듭난 데모라였다.
녀석을 사도로 영입한 후 곧바로 프록 일족의 부락으로 이동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외형과 기운, 심지어 존재마저도 완전히 변화한 녀석을 알아보는 일족은 없었다.
적이 침입했다며 한바탕 난동이 일어났고, 그 소동을 단숨에 종식한 건 데모라의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마을의 경계인 울타리를 단숨에 두 동강 낸 것은 물론,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경비대를 제압했다.
그 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아니 그 이상의 저항을 할 수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일족의 명운을 건 생존 전쟁에 프록의 전사 모두가 동원 되었다. 현재 남은 일족의 전사라 해봐야 조금 전 데모라에 의해 제압된 소수의 경비대뿐.
광장에 모인 이들은 전사 계급이 아닌 일반 부락민들에 불과했다.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버리고 위대하신 분의 종으로 새로이 거듭났으니까.”
저렇게 말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광장에 모인 프록의 눈동장에 깃들어 있는 건 노골적인 불신이었다.
그도 그럴 게 현재의 데모라는 과거의 데모라가 아니다.
존재 자체가 바뀌었으니 예전의 데모라는 소멸, 현재의 데모라만 남은 셈. 그렇기에 과거의 그를 기억하고 있는 프록 일족에게 자신이 데모라라고 말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밖에.
“나를 과거의 데모라, 아니 데모라로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찮은 존재를 증명하고자 함이 아니니.”
데모라 또한 그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던 듯 빠르게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프록이라는 일족의 미래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사실이 있다.”
“일족의 미래?”
“그게 무슨 말이지?”
한 차례 동요가 일었다.
그럴 수밖에. 다른 이유도 아니고 일족의 미래를 언급하는데 어느 누가 무시할 수 있겠는가.
특히 사이크라노쉬 행성은 정해진 주기마다 일족의 생존을 건 전쟁을 벌여야만 하는 가혹한 세계. 설혹 지금 하려는 말이 거짓이라고 해도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대로 은카이의 수면자, 차토구아를 따르게 된다면 멸족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
고작 한 마디. 데모라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바를 내뱉었을 뿐이다.
“뭐, 뭣이?!”
“건방지구나!”
“감히 위대하신 분의 진명을 입에 담다니!”
“천벌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장내의 분위기가 변했다.
눈 폭풍이 몰아닥치는 설원처럼 싸늘한 공기가 주변을 장악했다.
비록 전사 계급은 아니지만, 프록의 일반 부락민 수준은 초인 랭커에 준하는 정도. 그들 수백 명이 동시에 발산하는 기세는 장내의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설사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네 녀석을 처단하리라.”
단지 기세만 발산하는 게 아니다.
데모라의 압도적인 무력을 견식 했음에도 덤비려는 태세를 취한다.
창조주인 차토구아를 부정당한 그들을 지배하는 건 분노와 광기뿐이었다.
“어리석은!”
콰르릉!
수백 명의 함성은 데모라 하나의 일갈에 파묻혔다.
“으으으...”
“마, 맙소사!”
뿐만 아니라 음성에 실린 파동이 부락민들을 주춤 물러나게 만들었다.
당연한 현상이다.
데모라는 나의 사도. 그 전력을 보자면 이 행성에서 상대할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속단할 수 없으나 신격이 아닌 이상에야 무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신격이 직접 현신한다 해도 이기게 만들 방안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직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우리는 버림 받았다. 차토구아는 우리의 바람과 기도에 대답하지 않았고, 일족의 명운이 걸린 생존의 전쟁에서 전사 모두를 사지로 몰았다.”
“그, 그것은 일족의 힘이 부족하여...”
“당치도 않은 소리!”
변명하려는 부락민의 말을 막은 데모라.
녀석의 강렬한 시선이 좌중을 한 차례 훑었다.
“전력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중신인 차토구아의 권능에 의해 탄생한 일족이 적을 압도하는 게 일반적이다. 헌데 그런 일반적인 상황히 펼쳐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
그의 질문에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정해진 답을 내뱉는 건 창조주에 대한 불경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신격이 피조물에게 축복과 신물을 내려준 것에 비해 차토구아는 무엇을 했지? 오래 전 공양을 통해 얻은 몇 가지 신물이 다였다. 축복?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숙면에 빠져 우리를 외면했다.”
데모라와 나는 정신이 감응된 상태.
점차 녀석의 분노가 커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과거의 데모라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태어났으나 아직 과거의 망령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모양이었다.
“웃기는 소리!”
“우리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하찮은 우리가 어찌 그분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하지만 데모라의 진심은 일족에 전달되지 못했다.
이 또한 당연한 일이다.
내가 데모라를 설득할 수 있었던 건 급박한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 존재감 때문이었다.
대신인 내 존재감은 중신인 차토구아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그 거대한 차이를 깨달았기에 창조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부락민들은 다르다. 실제하지 않는 존재를 펼치고 있는 지금 부락민들은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다.
“불경하고 또 불경하다!”
“내 목숨을 바쳐 그분을 위해 싸울 것이다!”
데모라의 존재감은 차토구아의 그늘을 없애지 못했다.
고오오!
싸늘했던 분위기가 다시금 급변했다.
데모라를 향한 끈적한 살의가 폭풍처럼 몰아친다.
자신의 창조주를 모욕한 존재를 더는 용납하지 않을 태세.
“정녕 모르겠단 말인가? 너희는 지금...”
“닥쳐라!”
“데모라를 사칭하는 이방인!”
“네 녀석을 죽이고 더러운 너의 주인을 모욕할 것이다!”
사나운 기세를 품은 그들이 달려간다.
하지만 녀석들은 알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금기를 범하고 말았음을.
“감히, 감히 누구를 입에 담는 것이냐!”
쿠쿠쿠쿠쿵!
장내를 완벽히 장악한 건 가공할 만한 데모라의 기세.
조금 전의 기세는 장난이었던 것처럼 그 기세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분은 하찮은 너희가 입에 담을 만한 분이 아니다.”
콰콰콰콰!
작정한 듯 데모라의 기세가 폭풍이 되어 장내를 휩쓸었다.
음. 내 위엄을 보여주는 것으로 뭐라하긴 싫은데, 이 이상의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아아, 그만. 섣부른 행동은 다른 신격의 이목을 끈다고 경고했을 텐데, 데모라.」
휘우웅.
폭풍같이 몰아치던 기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데모라는 이 행성의 피조물이 가질 수 없는, 정도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녀석의 전력이 노출된다면 당연히 수상하게 여길 테고, 그건 곧 신격의 개입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내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조용히, 외부의 존재들이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피조물들을 장악하는 것.
조금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이뤄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곳 사이크라노쉬 행성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디바인 파워의 노다지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데모라를 사도로 받아들인 순간 그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녀석을 사도로 받아들인 후 엄청난 디바인 파워를 획득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디바인 파워를 획득할 수 있었던 건 막대한 보너스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알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른 신격의 피조물을 개종시켜 사도, 혹은 신도로 받아들일 경우 막대한 디바인 파워의 보너스가 주어진다.
데모라는 내 예상을 훨씬 웃도는 다량의 디바인 파워를 전해주었다.
생각해 보라.
이 행성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격, 그리고 그들이 창조한 피조물들을 모두 내 휘하에 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생각지도 못했던 힘, 어쩌면 단숨에 외부의 존재와 대적할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을 갖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바.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데모라의 역할이 중요했다.
「어차피 네 말빨은 여기서 먹히지 않아.」
「그러한 것 같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그럼 이제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고 있겠지?」
「기꺼이 따르겠나이다.」
「오냐.」
녀석과의 통신은 그것으로 끝.
“내가 누구를 모시냐고 물었느냐?”
"..."
아직도 데모라의 기세에 얼이 빠진 프록 일족은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보아라. 지금 그분이 내 몸을 빌려 강림하신다!”
번쩍!
데모라의 육신, 아니 정확히는 녀석이 착용한 황금 갑옷에서부터 눈부신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영웅왕 길가메시의 애장품 중 하나인 오만한 지도자 세트의 특수 효과를 발동한 탓이다.
갑옷의 능력이라고 해봐야 전투와는 하등 상관없는 카리스마 상승뿐. 하지만 지금 순간에 카리스마 상승은 더할 나위 없는 찬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데모라의 카리스마 수치가 놀랄 만큼 상승합니다.]
[약속된 승리의 전사 데모라가 당신의 강림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종 데모라에게 강림하겠습니까?]
전투와는 상관없는 카리스마. 이 능력치가 관여하는 부분 중에는 신격을 강림할 수 있는 수치가 포함된다.
쉽게 말해 카리스마가 높을수록 신격의 강림, 그리고 더욱더 위대한 신격을 부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내가 데모라에게 준 오만한 지도자 세트는 어마어마할 정도의 카리스마 상승 효과를 주는 아이템이었다.
강림은 고대의 맹약에 위배되지 신격의 개입. 그렇기에 외부의 존재들에게 눈치를 볼 필요없이 마음껏 내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가즈아!”
대신격을 받아들일 만한 그릇을 만든 데모라의 육신에 강림했고.
쿠웅!
행성이 창조된 이후 단 한 번도 강림한 적 없는 대신격, 그 위대한 존재감이 행성 전체를 지배했다.
"오오오..."
“마, 맙소사, 이 존재감은 대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납게 부르짖던 부락민 모두의 적의와 살의가 사라졌다.
차토구아가 남긴 창조의 속박은 내 존재를 대하는 것만으로도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데모라의 주인, 승리의 신 이연우.」
딱!
미리 준비했던 멘트와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터터텅!
바닥에 떨어지는 건 내 권능으로 더욱 효과가 향상된 각종 무구였다.
“이, 이건?!”
“어찌 이런 보물이!”
촌스러운 녀석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보물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긴 말하지 않으마. 지금 여기서 내 신도가 되는 녀석은 그 아이템을 가질 수 있다. 자, 어찌하겠느냐?」
많은 유저가 말했다. 아이템 앞에 장사 없다고.
그리고 그건 현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개구리 인간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