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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회귀해버렸습니다-142화 (142/161)

142화.  < 썩은물은 프록의 전사를 개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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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진득한 살의를 뿌리며 누군가 접근했다.

물론 진즉 알고 있었다.

내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녀석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할 턱이 없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다른 차원의 존재를 응시했다.

휘익!

하지만 내가 볼 수 있었던 검은 피가 덕지덕지 묻은 초승달 형태의 검 샴쉬르Shamshir였다.

다짜고짜 칼을 휘두르다니, 이 차원에는 예의란 게 없는 모양이다.

키이잉!

본인은 전력을 다해 휘둘렀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위협이 될 수 없었다.

하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다.

굳이 그 동작에 집중을 발휘하지 않아도 슬로우 모션처럼 더없이 느리기만 했다.

어디 지금쯤이면 되려나?

상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찰나에 불과한 순간, 그러나 내게는 한참이나 뒤늦은 반응.

스윽.

내 방어 행위란 건 간단했다.

다가오는 샴쉬르를 향해 빳빳하게 세운 오른팔을 드는 것이었다.

누군가 이 행위를 봤다면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당연하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으로 쇠붙이인 검, 그것도 마력이 실린 날카로운 공격을 막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팔리 잘리고 싶어 안달이 난 녀석이 아니라면 지금의 나와 같은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빠캉!

“으흡?!”

그러나 드러난 결과는 상식과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다.

보다시피 내 팔은 멀쩡하다.

잘려나가기는커녕 그 흔한 생채기 하나 없다.

대신 팔에 닿은 샴쉬르가 두동강 났을 뿐이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처음 겪어보는 일에 주춤 물러난다.

물러나는 그를 유심히 응시했다.

아마 평상시의 나였다면 감히 주제도 모르고 덤빈 녀석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시급한 건 분풀이가 아니라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차원에 관한 정보였다.

감히 내 권역을 염탐한 관음증 변태의 차원을 방문했으나 당장 깽판을 칠 마음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최종 목적은 디바인 파워를 모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계획적인 움직임이 필요했다.

그리고 디바인 파워를 모으는데 있어서 이 차원의 정보는 필수.

물론 내게 유용한 정보를 전해줄 녀석은 정해졌다.

연신 물러나기 바쁜 덩치. 칠흑의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저 녀석이 될 것이다.

지잉!

[극소량의 디바인 파워를 소모, 투시안透視眼을 발동합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화가 아니었다.

아직도 다량 남은 디바인 파워를 소모해 신격의 권능을 발휘했다.

오, 보인다. 보여!

투시안은 단어 뜻 그대로 어떠한 장애물에 상관 없이 원하는 곳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

“제길!”

"...?"

하지만 익숙하지 않아 보지 말아야 할 것 (?)을 보고 말았다.

녀석은 남성, 아니 수컷이 분명하다.

새끼. 덩치만 큰 게 아니라 그것(?)도 그리 거대할 줄은 몰랐다.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적당히 투시안을 조절해 견고한 방어구 속에 가려진 녀석의 외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르다.

기본적인 외형은 인간과 흡사하다. 다만 비정상적으로 울퉁불퉁한 근육과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갈퀴, 심지어 얼굴은 개구리와 인간을 합성해 놓은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외형만 봐서는 도대체 뭐하는 녀석인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극소량의 디바인 파워를 소모, 관찰안觀察眼을 발동합니다.]

관찰안. 마찬가지로 신격에게 허락된 유용한 권능 중 하나였다.

[관찰안을 통한 대상의 정보가 창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름 : 데모라

종족 : 프록

나이 : 11세

무력 : 45

잠재력 : 81~85

재능 : 탁월한 지도력(S), 불굴의 정신(B+), 독실한 신앙(A+)

설명 : 사이크라노쉬 행성에서 살아가는 토착 종족 중 하나인 프록의 전사. 생존을 위한 종족 보존의 전쟁에 참여했으나 연합에 의해 패배 직전까지 몰린 상태로 힘겹게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다.』

예전에도 아이템이나 특별한 권능을 이용해 상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관찰안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대략적인 특징이 아니라 정보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녀석의 신상정보는 물론 현재 녀석이 처한 상황까지도 꿰뚫어볼 수 있다.

“오호라?”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처음에는 단지 현재 정보를 모으기 위한 용도로만 녀석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지닌 재능은 지나가는 엑스트라 1 수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탁월한 지도력과 독실한 신앙은 내 계획에 적합한 후보자의 자질과 맞아떨어지는 부분.

재능 자체도 쉽게 볼 수 없는 능력이었지만, 더욱더 마음에 든 부분은 잠재력이었다.

신격이 아닌 필멸자의 최고 무력 수치는 100이다. 물론 특별한 무구를 통해 여기서 더 올라갈 수도 있으나 그건 일단 논외로 하고.

이 모든 점을 고려했을 때 잠재력 81~85는 굉장히 높은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능도 마음에 드는데다가 적절한 무력까지. 녀석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허수아비 왕’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차원을 넘은 즉시 원하는 이재를 발견하다니. 어쩌면 이건 운명의 여신이 내게 주신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데모라, 너로 정했다!”

“어, 어떻게 내 이름을?!”

언급된 이름에 재차 놀란 녀석이 펄쩍 뛰었다.

“지금부터 너는...”

“아직 적이 남았다!”

“어서 녀석을 죽여!”

건방지게 내 말을 끊은 녀석들이 접근하는 중이었다.

나와 데모라를 둥글게 포위한 채 다가오는 무리.

지잉!

다시금 투시안과 관찰안의 권능을 발현했고, 대강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토끼를 닮은 레푸스,

돼지를 닮은 포르쿠스.

사슴을 닮은 케루스.

프록과는 적대적인 진영에 있는 세 일족의 전사들이었다.

사정은 대강 이렇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생존을 위한 전쟁이 벌어졌고, 데모라를 비롯한 프록은 방심하고 있다가 나머지 세 일족의 연합에 무너지고 있었다.

"끝인가..."

털썩.

그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독백과 함께 무릎을 꿇는다.

당연한 반응이다.

녀석에게는 아군이 되는 프록 일족의 전사들은 이미 몰살한 상황. 생존자는 녀석이 유일했다.

한가락하는 실력 덕분에 지금까지 생존하긴 했지만, 그게 다다.

쪽수에는 장사 없는 법 .

동맹을 맺은 연합에 의해 패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눈을 감는 녀석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각종 병장기를 든 적군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것이다.

“너 혹시 종교 있냐?”

절망에 빠진 녀석을 향해 물었다.

“종교?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눈을 감은 녀석이 대답했다.

아마 다른 상대였다면 대답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녀석의 본능은 대신격인 나에 대한 대답을 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신. 따로 믿는 신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거다.”

"...?"

그 말에 의구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놀리는 것이냐?”

“아니. 내가 지금 놀리는 거로 보여?”

“아니면 그 질문의 저의가 뭐지? 나는 프록 일족의 전사다. 당연히 은카이의 수면자를 모시고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은카이의 수면자?”

옳거니!

예전에는 이명을 듣는다고 해서 뭔가 정보를 얻을 만한 건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소량의 디바인 파워를 소모, 은카이의 수면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합니다.]

[검색중…]

크으!

이 얼마나 유용한 권능인가.

내가 괜히 디바인 파워를 욕심내는 게 아니다.

디비인 파워만 넉넉하다면 지금과 같이 편리한 각종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신격의 싸움은 본신의 무력도 중요하지만, 소유하고 있는 디바인 파워도 중요한 전력이 된다. 그렇기에 이제 갓 신격을 얻은 나로서는 디바인 파워를 모으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은카이의 수면자 차토구아 : 사이크라노쉬 행성을 다스리는 중신 중 하나. 제물을 바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축복과 권능, 강력한 마법 도구 등을 내려준다. 그러나 너무 게으른 성향을 지닌 탓에 배고파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굳이 식사를 찾거나 혹은 활동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경우가 많다.』

별다른 욕심이 없는, 본능만 충실하게 따르는 타입이로군.

얼마 전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외부의 존재라고 해서 전부 다 개새끼들인 건 아니었다.

물론 내 기준에서 보자면 선善이라고도 볼 수 없으나 그렇다고 악惡도 아닌 존재들도 많다.

차토구아는 그저 본능을 따르는 중립의 신격이었다.

성향으로 봐서는 내 권역을 염탐한 관음증 녀석이 아닐 확률도 높다.

“은카이의 수면자, 아니 차토구아가 잘 대해주디?”

짚이는 바가 있기에 대놓고 물었다.

“어, 어떻게?!”

놀란 데모라 녀석이 눈을 부릅 떴다.

“어떻게 그분의 진명을? 그것은 일족 내에서도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거늘.”

“지금 그게 중요해? 내가 묻고 있잖아. 차토구아가 너희 일족을 잘 보살펴줬냐고.”

"..."

곧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건 녀석의 믿음과 관련된 것. 대신격인 내게도 쉽게 대답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거,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는데?

“더러운 프록 녀석을...”

“좀 닥쳐!”

어느새 가까이 접근한 연합의 개입을 방지하고자 시간의 흐름을 바꾸었다.

째깍째깍!

1m 남짓한 나와 데모라의 공간과 녀석들의 공간, 그 시간의 흐름을 뒤틀었다.

연합 녀석들에게 정지한 시간, 하지만 나와 데모라에게는 멀쩡히 잘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이다.

적당히 권능을 조절했으니 다른 신격이 눈치챌 염려는 없을 터.

“왜 말을 못해? 간단히 답하면 되잖아. 차토구아가 너희를 어떻게 대했는지. 너희가 멸족하는 위기의 순간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말이야.”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모라에게 물었다.

“은카이의 수면자는 우리의 어버이시다. 우리를 창조하셨고, 또한 지금 내가 착용하고 있는 강력한 갑옷 또한 그분에게 받은 선물이다.”

말은 그리 하고 있지만, 녀석은 이미 차토구아에 대한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

말 속에 묻어나는 불신. 신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순간 믿음은 모래성과 같이 산산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아, 그렇구나. 사랑하는 피조물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순간까지도 잠만 퍼질러자는 신을 너는 끝까지 믿는다는 거지?”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불신이라는 불경한 마음을 품은 녀석의 아픈 곳을 사정없이 후벼파는 것.

“그렇지 않다. 그분은, 그분은 우릴 위해 아낌없는 사랑을...”

“너는 네가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갈 때 나 몰라라 잠만 자고 있나 봐?”

"..."

꽤 아플 거다.

하지만 이게 결정적인 한 방은 아니다.

“게다가 다른 일족을 보니까 그들의 신이 손을 댄 흔적이 역력한데 말이야. 가만 보면 그 차토구아라는 녀석은 너희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거 아닐까?”

거짓말이 아니다.

레푸스, 포르쿠스, 케루스 일족에게서 신격의 권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전쟁의 승리를 위해 특별한 축복을 내려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프록은?

게으름뱅이 차토구아는 피조물의 죽음도 모른 채 잠만 자고 있을 게 틀림 없었다.

“굳이 말할 필요 없다. 나는,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결국, 데모라는 인정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프록의 전사 데모라가 차토구아에 대한 불신을 품었습니다.]

[프록의 전사 데모라를 개종改宗할 수 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적절히 파고들어 개종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신에게 버림받은 우리 일족이 걸어야 할 길은 멸족뿐이니.”

“아니.”

여전히 절망에 빠진 녀석에게 단호히 말했다.

“이곳에 내가 온 이상, 그리고 너를 눈여겨 본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도대체 네가 무엇이기에?”

“나?”

의미심자한 미소를 지으며 뒤틀었던 시간의 흐름을 원상복구시켰다.

“죽여!”

“와아아!”

최후의 일격을 위해 다가오는 연합 무리.

“너희를 구원할 새로운 신.”

손에 쥔 궁니르를 힘차게 찔렀다.

파파파파파팟!

그것은 권능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나의 무력.

“마, 맙소사!”

경악한 데모라가 비명을 지른다.

녀석은 알고 있는 것이다.

멀쩡히 서 있는 것 같은 연합 무리. 하지만 그들 모두의 미간에 육안으로 분간할 수 없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벼운 내 손짓에 의해 주변을 포위한 연합의 적 모두가 죽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리라!”

화악!

적절하게 준비한 특수 효과, 후광後光이 뿜어져 나왔고.

“아아아...”

감격에 찬 데모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프록의 전사 데모라가 개종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녀석은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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