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 썩은물은 판테온의 비밀을 듣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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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군.」
더 미스트 네임리스, 아니 언제까지 긴 이명을 부르기가 힘드니까 줄여서 그냥 안개 녀석이라고 부르자.
녀석은 기어다니는 혼돈, 아니 혼돈 형님의 도발에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놀랍다.
아마 저 살벌한 기세의 대상이 녀석이 아니라 나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거품 물고 쓰러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혼돈 형님의 의지와 함께 뿜어져 나온 존재감은 무거워도 너무 무거웠다.
한낱 반신인 내가 버틸 수준이 아니었다.
하물며 신격을 손에 넣지 못한, 설령 그게 초월자라 해도 그 존재를 느낀 즉시 즉사를 면치 못하리라.
하지만 이 살벌한 기세를 온전히 받는 입장의 안개 녀석은 태연하다 못해 여유로웠다.
그건 마치 당연히 이길 수 있는 승부를 앞둔 이의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직도 네가 무소불위의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줄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참으로 어리석구나.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네 녀석을 소멸시키는 건 일도 아니다.」
저 건방진 새끼가 혼돈 형님을 무시해?
형님. 얼른 아니라고, 네 녀석은 내 한주먹 거리도 안 된다고 말해 주십시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성체聖體를 섭취해 어마어마한 권능을 손에 넣었는데 어찌 제가 상대가 되겠습니까.」
예상과 다르게 혼돈 형님은 내 믿음을 배반했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태연한 저 태도. 분명 혼돈 형님에게 뭔가 기발한 수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어찌 내 앞에서 건방을 떠는 것이냐?」
「더 미스트 네임리스. 당신이 지닌 힘은 저보다 강할지 모르나 현 상태에서는 제가 더 강하기 때문이지요.」
파앗!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존재를 키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팽팽하게 대립하던 기세, 그 무게의 추는 한 쪽으로 기울었다.
콰콰콰!
혼돈 형님이 기세가 안개 녀석의 존재를 밀어내고 주변을 완전히 장악했다.
「네 녀석...」
「오랜만이라 잊었나 봅니다? 저는 그분께 모든 제약의 면책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지구에서도 본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굿!
왜 실력도 안 되는 혼돈 형님이 까불었는지 이해했다.
이 외부의 존재라는 것들은 고대의 맹약 이전에도 본신의 힘을 함부로 발휘할 수 없는 제약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혼돈 형님의 경우 굉장히 높은 분의 총애를 받고 있었고, 그래서 받은 특별하 권한이 모든 제약을 받지 않는 면책권이었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50의 힘을 가진 혼돈 형님과 100의 힘을 가진 안개.
하지만 실체의 일부로 10의 힘 밖에 쓰지 못하는 안개 녀석을 상대로 혼돈 형님은 50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여기서 끝내죠.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디바인 파워로 생성한 아바타Avatar가 소멸하게 된다면 신격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밑줄 쫙!
그건 무척 유용한 정보였다.
아바타, 즉 신격의 화신 소멸은 아예 타격이 없는 건 아니다.
아바타 또한 디바인 파워라는 신격의 힘을 통해 만들어진 분신.
디바인 파워라는 게 사실상 신격을 유지하는 에너지인 만큼 그것을 잃는 것은 그들에게도 상당히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고작 아바타를 잃는다고 해서 내 신격이 떨어질 일은 없다.」
하지만 안개 녀석은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말을 바꾸죠. 아무리 미약한 힘의 상실이라곤 하나 당신과 대등한 그들에게는 아주 큰 차이로 작용할 거로 봅니다만?」
혼돈 형님이 가진 필승의 패는 안개 녀석을 견제하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의문의 존재들이었다.
솔직히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대신격인 안개 녀석과 그 세력을 견제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이들 힘의 균형은 대등하다는 사실.
만약 혼돈 형님과 싸워 패하기라도 한다면 아바타가 가진 만큼의 디바인 파워를 잃을 테고, 그것은 곧 다른 라이벌에게 틈을 내어주는 여지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
쉐끼, 정곡을 찔린 모양이다.
혼돈 형님이 왜 이 자리에 이토록 자신 있는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알겠다.
준비가 대단하다.
절대로 패하지 않을, 최고의 전략을 준비해 온 것이다.
「하지만 저도 더는 압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대로 물러나는 게 어떻겠습니까?」
잃을 게 많은 승부.
당연히 물러나야 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아니. 네 녀석이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나오니 더 물러설 수 없다.」
안개 녀석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반대의 상황을 만들었다.
「아마 다른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나도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불경한 그의 이름을 들은데다가 그의 심복, 메시지를 전해주는 네가 이토록 만류하는 것을 보니 그냥은 넘어갈 수 없겠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싸워야 할 이유를 찾은 것 같다.
「결국, 끝을 보겠다면...」
「아니. 끝은 네 녀석이 볼 것이다.」
쿠웅!
태산과 같았던 묵직한 존재감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예상치 못한 상황인 듯 혼돈 형님이 당황한다.
기세가, 둘의 존재감이 역전되고 있었다.
그건 역전되다는 표현이 맞지 않다. 그냥 절대적인 존재가 그대로 덮은 것처럼 혼돈 형님의 존재는 자취를 감추었다.
「면책권은 너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다. 전장에서 세운 공훈을 통해 나 또한 일시적인 면책권을 부여 받았으니.」
혼돈 형님만 총애를 받았던 거 아닌 것 같다.
안개 녀석이 면책권을 사용했다.
아득히 먼 곳에 존재하던 그의 존재가, 그 실체가 마침내 지구에 나타났다.
스르, 스르르.
보인다. 미지의 힘으로 뭉쳐진 안개가.
마치 은하수와 같은 색색의 입자가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크으으...”
내가 감히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마치 인간이 우주를 바라볼 때와 같은, 수수께끼로 가득한 존재였다.
감히 내가 추측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줄곧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아무리 네가 공이 있어도, 중립의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그의 심복이었던 너를 살려둔다는 게. 그렇기에 지금 후환을 남기지 않을 생각이다.」
지지리 운도 없지.
알아서 모시는 다른 외부의 존재들과는 달리 안개 녀석은 혼돈 형님에게 직접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절 그렇게까지 싫어하고 있었다니. 그건 미처 몰랐습니다.」
여유롭게 말은 내뱉고 있었지만, 상황이 급변한 건 사실이다.
「오늘 모든 화근을 제거하리라!」
스아아!
그의 권능이 날뛰기 시작했고.
“씨부럴...”
나는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1대 리액션 장인이었던 환웅의 뒤를 이은 것만 같아 불쾌하기 그지없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거 환웅이 그러했듯 리액션 밖에 없었으니까.
부릅!
창공, 세계 전체의 하늘을 지배한 것은 눈이었다.
눈꺼풀이 내려와 그 속을 들여다볼 순 없지만, 살의로 가득한 절대적인 힘을 품고 있었다.
「사안死眼에서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리라.」
그 눈의 주인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곳, 그곳에 자리한 안개 녀석의 본체. 그의 진실된 눈동자가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신격을 이룬 그의 시선은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강대한 권능을 지니고 있을 터.
스르륵.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눈이 떠지는 그 순간이 지구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다급히 혼돈 형님을 직시했다.
우연이 었을까.
동시에 혼돈 형님의 시선이 내게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씨익.
물음표로 가려진 얼굴, 어쩐지 그가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한 순간.
「그만!」
「당장 멈춰!」
장내에 울려퍼지는 의지가 기적을 낳았다.
팟!
지구의 하늘을 지배한 안개 녀석의 사안이 사라진 것.
「어째서 너희가?」
희미한 존재를 느낀 안개 녀석이 당황한다.
「어서오십시오. 크삭스클루트, 그리고 다크니스여.」
내 수준으로는 갑작스레 나타난 존재의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장내를 지배한 안개 녀석의 기운을 갈아먹고 있다는 것과 그 존재감이 거의 대등하다는 사실이다.
대신격. 그 위대한 존재가 셋이나 나타나는 기적의 현장에 내가 있다.
「웬만하면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더는 용납할 수 없다.」
「아무리 면책권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다니. 도대체 맹약을 무엇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말하는 것만 봐도 각이 나온다.
새로이 나타난 두 존재, 크삭스클루트와 다크니스는 안개 녀석이 경계하는 라이벌이 분명했다.
「흥! 평소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너희가?」
그들의 개입에 거침없는 불만을 드러낸다.
휙!
그리고 안개 녀석의 시선이 두 존재를 뒤로한 채 혼돈 형님에게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전에 협약이 되었던가?」
나 또한 이 일의 배후에 혼돈 형님이 있을 것으로 짐작,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글쎄요?」
아리송한 답변을 했지만, 그건 긍정의 뜻과 다를 바 없다.
「사전에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진 모르겠지만, 이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조금 전 하찮은 것이 불경한 그의 이름을 언급한 건 물론, 내 앞에 기어다니는 혼돈, 아니 니알라토텝이 나타난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두근!
처음으로 밝혀지는 혼돈 형님, 아니 니알라토텝이라는 진명.
그 단어를 든는 순간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기이한 느낌이 전해졌다.
나대지마 심장아.
첫사랑을 본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미쳐 날뛰는 건데?
「너희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녀석이 비록 중립의 입장을 밝혔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음을. 경계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 그 진위를 밝혀내야만 한다!」
안개 녀석이 진심을 담아 호소했지만.
「아니. 그는 소멸했고, 니알라토텝은 우리의 중재자로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다. 괜한 너의 오해다.」
다행히 두 존재는 안개 녀석의 호소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정도를 넘은 네 녀석이야말로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떠한 말도 듣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제길! 만약 내가 내 의지를 강행하겠다면 어찌할 생각이지?」
안개 녀석이 최후의 수를 빼 들었다.
「우리 또한 간과하지 않겠다.」
「명심하라. 면책권은 너와 니알라토텝의 전유물이 아니라느 것을.」
상황은 명확하다.
대등한 상대가 둘, 게다가 제약이 없는 건 서로가 마찬가지다.
한바탕 승부가 벌어진다면 안개 녀석의 필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
「하!」
분노에 찬 안개 녀석의 외침과 함께 장내를 지배하던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과연 교활한 자로고. 이번에는 내가 너의 손바닥에서 놀아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안개 녀석은 자신의 패배를 시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분통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번에는 물러서지만, 반드시 녀석은 복수를 꿈꿀 것이다.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스르륵.
조금 전까지 장내를 지배하고 있었던 안개 녀석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
잠깐의 침묵.
「그때의 약속은 지켰다.」
「명심하라. 이제 그대와 우리의 빚이 없다는 사실을.」
니알라토텝을 향한 마지막 말과 함께 크삭스클루트, 그리고 다크니스의 존재 또한 사라졌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을 채우고 있었던 거대한 존재가 모두 사라졌다.
「휴우. 겨우 끝났군요.」
물음표로 가려진 니알라토랩의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도대체 이게...”
「아, 할 말이 많은 건 알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 대신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할 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딱!
니알라토텝이 손가락을 튕겼고.
부웅!
환웅이 소멸한 자리. 그곳에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기운의 응집체가 생겨났다.
「보는 눈이 많아 그분의 이름을 더는 언급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기억하십시오. Azath. 완성되지 않은 그분의 이름을 언젠가는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사사삭!
역시 그 말을 끝으로 니알라토텝 또한 자취를 감추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일단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자.
확실한 건 죽을 위기를 넘겼고, 그 단서가 남겨져 있다는 것.
저벅.
내 걸음은 너무도 당연하게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응집체 , 그곳으로 향했다.
스윽.
내 손길이 빛의 응집체에 닿았고.
「나는 환웅. 이것은 내 생이 끝나기 전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다.」
놀랍게도 그건 환웅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그분의 힘을 삼킨 외부의 존재들이 판테온을 괴멸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건 일부 왜곡된 진실일 뿐이다. 판테온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이 위대한 존재들은 때를 기다리며 모든 힘을 비밀의 장소에 봉인시켜 두었다.」
환웅이 전하고자 했던 것. 그것은 외부의 존재들마저도 모르는 놀라운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