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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회귀해버렸습니다-137화 (137/161)

137화.  < 썩은물은 대신격을 마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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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정확히 두 동강 난 육신이 허물어진다.

육신을 베었지만, 육신만을 벤 건 아니다.

존재를 베었다. 육신과 정신의 모든 것. 그렇기에 불사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 해도 부활할 일은 없을 것이다.

“노, 놀랍군...”

리액션 담당 환웅이 펄쩍 뛰었다.

이제는 익숙한 그의 반응을 뒤로했다. 대신 귓가로 파고드는 알림에 집중했다.

[가면에 숨은 그림자를 처치했습니다.]

[타오르는 불길의 손을 처치했습니다.]

[뱀의 아버지 이그를 처치했습니다.]

[신격을 가진 존재를 쓰러뜨려 그 격을 흡수합니다.]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신격 흡수를 통해 디바인 랭크Divine Rank가 활성화됩니다.]

[당신의 디바인 랭크는 E, 준신違神의 격이었습니다.]

[랭크가 변동되었습니다.]

[승리의 신 이연우의 이름이 렐름Realm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명성을 얻은 당신의 디바인 랭크가 D, 반신半神에 이르렀습니다.]

[당신의 신도 및 사도, 그리고 신장에게 특수한 주문 및 권능을 하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싱거운 전투. 하지만 그 전투를 통해 얻은 건 가벼운 게 아니었다.

모든 정화의 전사를 처치해 얻은 보상은 디바인 랭크였다.

신격을 얻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같은 격이 아니다.

그들 사이에도 계급은 존재했고, 조금 전만 해도 난 모든 신격 중에서도 최하급의 격인 준신에 불과했다.

하지만 같은 신격에 해당하는, 이그를 비롯한 35의 적을 쓰러뜨린 명성을 통해 최하급에서 하급의 신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이거지!

명색이 신神이라는 뜻을 가진 존재라면 이 정도 권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이제야 신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격을 얻은 셈이다.

“신격, 신격. 그렇게 노랠 부르더니 이래서 그랬군...”

왜 장삼봉이 신격을 얻으라고 했는지 지금에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고작해야 하급의 반신도 휘하 신도들에게 강력한 축복을 내려줄 수 있다. 만약 그보다 상위의 신격을 얻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신도들에게 내릴 수 있는 축복과 권능도 늘어날 테고, 내 힘의 증가와 더불어 강력한 병사를 덤으로 얻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었어. 디바인 랭크를 얻은 건가?”

환웅 또한 디바인 랭크라는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관리자 노릇을 해 왔으니 여러 가지 주워들은 게 있었겠지.

내가 궁금한 건 그가 왜 끝까지 남아 있었느냐는 점이다.

분명 그와 함께하고 있었던 가이아는 적절한 시점에 발을 뺐다.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 자체도 수상한데 거기에 각종 정보까지 제공했다.

어딜 봐도 그 모양새는 이그가 말했던 것처럼 외부의 존재에 대한 반역으로 밖에 비춰질 수밖에 없는 것.

“왜지? 왜 끝까지 남아 나를 돕는 거지.”

“물론 그건...”

“얼을 이어받은 후손이서어? 그딴 헛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얼간이도 아니고. 그런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백번 양보해서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가 있는 거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인맥의 한계는 지금까지 편의를 봐준 것만으로도 족하다 못해 넘친다.

고작해야 머나먼 핏줄, 솔직히 핏줄이 맞는지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리고 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존속을 걸 만한 인연은 아니었다.

"..."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 환웅이 나를 직시했다.

고뇌의 흔적이 얼굴에 드러난다.

어딜 봐도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 듯하다. 하지만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어느새 평상시의,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온 환웅이 입술을 깨물었다.

“엿 봐서는 안 될 비밀을 보았기 때문이지.”

“비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비밀이라는 단어에는 무척 약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거짓된 역사 속을 살아가고 있었던 병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베일에 싸인 진실, 진실이라는 이름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단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그가 말하는 비밀에 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수억, 수십억에 이르는 존재 중 그대를 직시하게 된 건 운명의 이끌림, 아니 그것마저도 초월하는 어떤 강력한 힘의 영향이었겠지.”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처음부터 날 계획적으로 스토킹(?)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가?

“나는 보았다. 그대에게 뿌려진 씨앗을.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임무는 그 씨앗이 무사히 자랄 수 있도록 양분을 주는 것이었지.”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지...”

“하지만 씨앗이 무엇으로 자라날지 몰랐던 게 사실이야.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치 대화 상대 없이,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독백을 이어간다.

“너…”

하지만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환웅, 그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비밀을 발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쩌적.

몽롱한 표정의 얼굴에 균열이 인다.

놀랍게도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내뱃는 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하지만 지금 깨달았다. 그대가 품은 씨앗이 무엇인지.”

꿀꺽.

마른 침이 넘어간다.

초월자인 환웅을, 이 대단한 존재가 감당하지 못할 비밀. 실로 그건 엄청난 내용을 간직하고 있을 게 틀림 없었다.

“심연에 있는 그분이 돌아오리라. 경외하라, 전지전능한 Azath...”

뚝!

마치 광기에 지배 당한것처럼 부르짖던 환웅이 멈췄다.

“기어다니는 혼돈?”

주변, 아니 세계의 시간이 정지한 그 현상은 내게 익숙한 것. 기어다니는 혼돈, 녀석이 등장할 때마다 겪었던 기이한 현상이었다.

쿠웅!

"으음?”

하지만 이내 그 양반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전혀 다른 존재감이 장내를 지배했다. 낯설지만, 처음 느껴보는 존재감은 아니다.

조금 전에도 느꼈던 적 있는 형용할 수 없는 존재의 무게.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이 맹약의 예외 조건을 발동, 자신의 실체 일부를 드러냅니다.]

타르타로스를 열어 기간테스를 풀어준 새끼.

외부의 존재 중에서도 한가락 할 것 같은 대단한 존재가 재차 등장했다.

그것도 현신이나 화신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실체의 일부를 드러낸, 그렇게 주구장창 말하던 맹약마저 깨버린 등장이었다.

「혹시 몰라 의식의 일부를 남겨두었더니, 설마 여기서 그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군.」

음. 예감이 좋지 않다.

모두가 그분이라고 말하면서 경외하던 존재를 그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내가 품은 씨앗, 그 근원적인 존재를 적대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불경한 이름을 뱉은 어리석은 것아.」

안개와도 같은 그의 시선이 환웅에게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만 사라져라.」

그건 단순한 경고의 의미가 아니었다.

팟!

어렸을 적 봤던 마술처럼 환웅의 존재가 이 세계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버렸다.

“이런!”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몰랐던 그 힘의 단편을 엿봤기 때문이다.

언령이다. 그것도 절대적인, 거부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이 깃든 언령.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은 알 수 있다.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 그는 대신大神이었다.

모든 신격의 위에 군림하는 최상위 신격, 손짓 하나로 생명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무한한 창조의 권능을 가진 절대적인 신.

「결국, 네 녀석이 문제였군.」

그의 시선이 내게 날아와 꽂혔다.

“으읍!”

고작 시선을 마주했을 뿐이지만, 숨이 멎을 듯하다.

아예 신격을 얻지 못했던 예전이었다면 멋 모르고 설쳤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반신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 존재를 똑바로 볼 수 있다.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 대신이 가진 힘은 감히 내가 올려다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반딧불과 태양을 비교할 수 있을까?

지금 나와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 사이에는 그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존재했다.

「자, 말해라. 녀석이 네게 무슨 말을 전하고자했는지.」

지잉!

머릿속에 그의 말이 계속 울려퍼진다.

말해라, 말해라, 말해라!

“그, 그가 말하길…흡!”

썅!

하마터면 조금 전 들었던 내용을 모두 발설할 뻔했다.

언령이다. 그는 언어의 힘을 통해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호오? 내 언령을 극복했다? 과연 아주 하찮은 존재는 아닌 모양이로구나.」

분하지만, 녀석의 말이 맞다.

만약 디바인 랭크가 D로 상승하지 않았다면 쉽게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반신의 격을 손에 넣은 후에야 겨우 녀석의 언령에 저항할 수 있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지잉, 지이잉.

귀에서 들리는 이명과 끔찍한 두통이 쉴 새 없이 괴롭힌다.

언령을 거부한 후유증이다. 육신과 정신은 그에게 저항한 대가에 대한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고통스럽지만, 굴복할 수 없다.

조금 전 녀석의 말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짐작했다.

어떻게 된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녀석은 환웅이 내게 한 말을 듣지 못했다.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건 ‘Azath’라는 특정한 발음. 그렇기에 언령이라는 힘을 써가며 내 대답을 들으려는 것이다.

「하하하! 하찮은 네가 내 말을 거역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냐? 어리석은! 네 녀석은 결국, 굴복하게 될 것이다.」

감춰두고 있었던 실체, 그 힘의 일부를 개방했다.

고오오!

장내를 지배한 그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말해라, 말해라, 말해라!

"으으으..."

존재감이 커질수록 언령의 힘이 더욱 강해진다.

점차 거부하기가 힘들다.

마치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의식이 희미해지며 꾹 다문 입술이 저절로 열렸다.

“그, 그가 말하길...내가 품은...”

씨발!

그건 내 의지가 아니다.

녀석의 언령이 내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그만!」

위기의 순간 울려 퍼진 의지.

팟!

그 의지가 전해지면서 내게 가해지던 압박이 거짓말같이 해소되었다.

「누구냐!」

안개에 둘러싸인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이 새로이 나타난 존재를 직시했다.

「이거, 오랜만입니다. 더 네임리스 미스트The Nameless Mist.」

위기의 순간 등장한 그는 너무도 반가운 존재였다.

「기어다니는 혼돈?」

아직 언령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나를 대신해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이 그 존재를 언급했다.

「건방진! 네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건 옛일. 함부로 내 진명을 언급하지 마라!」

콰아아!

이런 씨부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하더니. 지금이야말로 딱 그짝이다.

이 거대한 두 존재의 끼인 나만 죽을 맛이다.

「아, 이런.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그만. 설마 진명을 언급한 정도로 절 어떻게 하실 생각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기어다니는 혼돈도 그리 만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분명 장내를 압도하는 기세를 내뿜고 있는 건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 더 미스트 네임리스였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힘이 그 압력을 깨끗하게 해소하고 있었다.

「흥! 너와 싸워 봐야 녀석들에게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 될 테지. 그러니 시덥잖은 도발은 사양하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딜 봐도 꼬리를 마는 모양새다.

역시 기어다니는 혼돈, 저 양반의 위세가 상당히 대단한 것 같다.

「하지만 내 행사를 방해한 정당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아무리 네 녀석이라 해도 무사히 이 자릴 벗어나진 못하리라.」

한 발 물러섰지만, 마지막 자존심은 세우려는 모양.

「어찌 미천한 제가 당신의 행사를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허면 지금의 행동은 뭐지?」

「이건 방해가 아닙니다. 아디다시피 제가 중재자Peacemaker의 막중한 임무를 맡지 않았습니까? 해서 룰을 어기는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나타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룰을 어겼다? 내가?」

「그렇습니다.」

역시 싸움은 명분 싸움. 거대한 두 존재의 맷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맹약에 관한 사항이라면 나는 어긴 적이 없다. 고대의 맹약에 의하면 대신격을 지닌 존재는 위급 상황 시 자신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 않은가.」

위급한 상황은 개뿔.

고작해야 반신인 내가 조금 설친 게 위급 상황이라고?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하하. 대신격을 얻은 당신이 고작 반신 따위의 도발을 위급 상황이라 판단하다니.」

역시 기어다니는 혼돈. 내가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반론을 제기했다.

「흥! 내가 위기 상황으로 인식했다면 위기 상황인 것이다. 네 녀석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특히 위기 상황에 관한 어떤 상세 내용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모르진 않겠지?」

이래서 계약서는 꼼꼼히 살펴보고 특약을 삽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엿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겠죠. 대신인 당신이 고작 반신에게 위기감을 느꼈다면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만...」

말끝을 흐린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기어다니는 혼돈이 여기서 그냥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제가 지적하는 건 그 부분이 아닙니다. 더 살펴보십시오. 분명 위기 상황에 대신격이 개입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이에 대해 하나 이상의 대신격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동의까지 했으니 설마 잊지는 않았겠지요?」

과연 중재자.

맹약이라는 것에 대해 꽤 공부한 듯 조항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공격한다.

「…」

할 말이 없는지 잠시 침묵을 지키던 더 미스트 네임리스.

「그건 있으나마나한 조항이다. 녀석들이 내 개입을 동의할 턱이 없으니까.」

결국, 그 사실을 인정한다.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맹약은 맹약. 한 번 정해진 맹약은 대신격이 모두 모여 수정하지 않는 이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논리 싸움에서는 기어다니는 혼돈이 이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개 논리 싸움에서 진 녀석들이 무슨 행동을 벌일지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나서야겠다면?」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저 무뢰배 새끼. 맹약이고 나발이고 지 멋대로 할 생각이다.

과연 기어다니는 혼돈은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할까.

논리로 조질까, 아니면 이대로 양보하게 될까.

아무리 봐도 현 시점에선 더 미스트 네임리스 녀석의 위치가 높은 것 같긴 한데.

「뭐,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저와 박 터지게 싸우게 되겠죠.」

쿠웅!

기어다니는 혼돈의 기세가, 그 존재감이 세계를, 더 미스트 네임리스를 뒤덮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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