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 썩은물은 발로르와 대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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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마수로 묶인 녀석들이 융합하면서 종말의 마룡, 마수를 먹어치우는 괴물 니드호그가 탄생했다.
“캬오옥!”
등장과 동시에 거친(?) 울음을 토한다.
사실 과정만 보자면 뭔가 대단한,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존재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눈앞에 나타난 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화르륵!
위협적으로 불을 뿜는다. 문제가 있다면 그게 라이터에서 나오는 불길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는 그건 머리의 3분지 1이 커다란 눈망울로 장식된, 귀염뽀짝한 용가리였다.
「그게 끝이냐?」
어처구니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티폰.
녀석은 내가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불만 있냐?”
「아니. 없다. 그러니 죽어라.」
쿵쿵쿵!
녀석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 마리 마수가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不死의 괴물. 물론 녀석들을 처치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일전에도 선보인 바 있는 미스틸테인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불사의 능력을 깰 수 있을 것이다.
빤히 해답을 알고 있지만, 그 답을 선택하지 않았다.
왜?
하나의 문제에 여러 정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미스틸테인이라는 정답은 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반면, 지금 준비한 것, 비장의 카드는 편한 건 물론 효율적이기까지 하다.
“카오옥!”
니드호그. 녀석이 나와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괴물들에게 위협적인 울음을 토했다.
하지만 그 울음은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인마. 그만 카옥 대고, 제대로 해.”
“카옥!"
녀석과 나는 영혼으로 연결된 존재.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화악!
돌연 장내를, 세상을 집어 삼키는 강렬한 색채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근원지는 니드호그. 태초의 마수 셋을 융합시켜 탄생한 절대의 괴물이 마침내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컹!"
"캬악!"
마침내 빛이 사라지고, 장내에 나타난 존재를 본 네 마리 마수가 위협적으로 울음을 토해냈다.
가만. 위협적이다?
말을 정정해야겠다.
어딜 봐도 그건 곧 포식자의 먹이가 될 나약한 동물의 울부짖음이었다.
「쫄았냐?」
마치 깊은 동굴에서부터 전해지는 듯 울리는 의지.
정면. 그곳에는 귀염뽀짝한 니드호그 대신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그야말로 전설속 드래곤이 있었다.
네 마리 마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거대하다.
육신을 덮은 녹색 비늘은 오묘한 광택을 뽐내고 있으며, 일반적인 드래곤과는 달리 머리에 장식된 뿔은 9개에 달했다.
「이게 무슨...」
여유롭게 방관의 자세를 취하던 티폰마저도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긴, 나도 놀랄 지경인데 녀석이라고 멀쩡하겠는가.
솔직히 예상치 못했다. 아니, 예상은 했는데 막상 직접 겪어본 감상이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태초의 마수 셋을 융합했다지만, 이 사기적인 힘은 뭐냐.
그건 영혼의 감응을 통해 수준을 파악하고 있었던 나에게도 적응하기 힘들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서로의 입장과 관계가 명확한 만큼 긴 말은 하지 않을 게.」
고작해야 뀨뀨 거리던 녀석들이 융합과 동시에 똑똑해졌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쿠쿠쿠!
니드호그가 더욱더 강렬한 기세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펄럭!
잠시 후 한 쌍의 날개를 펄럭였고.
팟!
태산과도 같이 거대한 녀석의 흔적이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컹!"
공포가 깃든 울음.
공간을 뛰어 넘은 니드호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케르베로스의 곁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쩍하고 아가릴 벌린 녀석이 공격했다.
콰드득!
인지할 수 없는 그 동작이 섬뜩한 소음을 발생시켰다.
“깨갱!”
놀랍게도 케르베로스가 지닌 세 개의 머리 중 하나가 없어졌다.
꽈득, 꽈드득.
물론 그 범인은 니드호그였다.
녀석은 빠르게 턱 관절을 움직이며 케르베로스의 머리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맛 좋다!」
순식간에 머리 하나를 씹어 삼킨 녀석이 기쁨에 찬 탄성을 내뱉었다.
[니드호그가 강력한 마수 고기를 섭취했습니다.]
[무한한 탐욕을 일부 채워 그 권능이 더욱더 강력해집니다.]
녀석의 포식 행위는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목적이 아니었다.
포식을 통해 능력이 강화된다. 물론 그 강화 효과는 영구적인 게 아니라 일시적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케르베로스의 머리가 복원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니드호그가 지닌 권능 중에는 ‘다른 마수가 지닌 모든 능력의 무효화’가 있다.
쉽게 말해 불사의 능력은 물론 설령 모든 공격을 차단하는 무적의 능력이라도 니드호그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제한이 있다면 니드호그보다 격이 낮은 마수여야만 한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케르베로스 및 티폰의 자식 네 마리는 그 모든 조건에 부합되는 훌륭한 먹잇감들이었다.
「멀었어 짜사.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을 지껄인 녀석이 재차 움직인다.
쿠콰콰콰!
하지만 녀석보다 네 마리 마수의 동작이 더 빨랐다.
녀석들도 아주 멍청이는 아니었다.
그 찰나의 틈을 이용해 독과 불길을 내뿜어 니드호그를 견제했다.
케르베로스가 무사히 거리를 벌릴 수 있도록 시간을 벌려는 목적이었다.
「풉!」
하지만 니드호그는 녀석들의 공격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케르베로스를 향해 접근했다.
그리고.
푸스스.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는 녀석들의 공격이 니드호그의 육신에 닿은 순간 허무하게 소멸한 것.
「응. 소용없어.」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던 니드호그가 이죽거리며 웃었다.
크으. 역시 사기 펫.
녀석이 지닌 또 다른 권능은 ‘무적’이었다.
물론 절대적인 무적이 아니라 조금 전 언급하기도 했었던 격이 낮은 마수의 공격에 한해서다.
보다 격이 낮은 모든 마수의 공격에서부터 피해를 받지 않는다.
여기서 예외가 있다면 유일한 약점인 역린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유일한 약점인 역린은 쉽게 찾을 수 없는 몸 구석 어딘가에 숨겨두었으니 말이다.
마수들의 공격을 사뿐하게 무시한 니드호그.
쩌억!
녀석의 아가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벌어졌다.
“컹, 컹컹!”
목표가 된 케르베로스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지만, 늦었다.
니드호그를 저지하기 위해 펼쳤던 공격이 도리어 결정적인 틈을 제공하고 말았던 것.
콰쟉!
그리고 예상했던 결과가 펼쳐졌다.
케르베로스를 통째로 삼킨 니드호그가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마치고 있었다.
몇몇 저급한 관람자를 능가하는 마수의 허무한 죽음이었다.
「감히!」
하지만 녀석의 그 행위는 도화선에 불을 지핀 것과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쿠쿠쿠쿵!
폭발적인 기가 뿜어져 나온다.
분노한 일갈을 터뜨린 티폰.
팟!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녀석의 신형이 사라졌다.
“어딜!”
물론 녀석의 행동을 좌시할 생각이 없다.
굳이 니드호그를 꺼낸 건 효율을 위한 것도 있지만, 관전에서 태도를 바꾸어 참전할 티폰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가랏!"
피잉!
반드시 명중하는 궁니르. 그 붉은 궤적이 공간에 새겨졌다.
캉!
이어서 들리는 날카로운 쇳소리.
「감히 내 행사를 막겠다는 것이냐!」
불과 같은 분노에 휩싸인 티폰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녀석은 쇄도하는 궁니르를 맨손으로 쳐냈다.
명중한다는 인과의 법칙에 놓인 궁니르의 상쇄. 하지만 그리 놀랍지 않다.
티폰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날 만한 강력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죽어라!」
가공할만한 기세가 티폰을 감쌌고.
지잉!
녀석의 팔과 어깨에 장식된 100개의 용의 머리, 붉게 변한 시선이 내게 향했다.
[티폰의 마안魔眼의 당신의 정신을 붕괴시키려고 합니다.]
단순한 시선이 아니다.
가장 위험하고도 강력한 정신계 공격.
[당신은 티폰의 마안에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새끼, 놀라기는.
아마 녀석은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과 같이 높은 격을 이룬 존재라면 마안을 통해 내 정신을 붕괴시킬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내 정신 세계는 녀석이 생각했던 것만큼 약하지 않다.
승리의 격이다.
약속된 승리를 보장하는 이 격은 상대의 정신계 공격에서 완벽하게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만약 이런 사기적인 격이 없었다면 조금 전 마안으로 인해 정신은 붕괴하고 말았으리라.
“나도 째려보는 건 잘하는데.”
그리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발로르의 사안
종류 : 부적
등급 : 불멸
효과 : 적안(적안으로 바라본 대상은 약점이 노출, 평상시보다 3배에 달하는 피해를 받는다)
청안(청안으로 바라본 대상의 시간을 빼앗아 동작을 굼뜨게 한다)
백안(백안을 활성화 해 시야의 영역을 확장한다. 주입하는 마력이 양에 따라 그 범위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흑안(흑안으로 바라본 대상의 모든 시야 및 감각을 차단한다)
금안(금안에 저항하지 못한 대상은 일순간 당신의 명령을 따르게 된다)
사안(낮은 확률로 바라본 대상을 즉사시킨다)
설명 : 마신 발로르가 자신의 봉인을 푼 존재에게 선물한 권능의 부적.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발휘되는 매우 희귀한 이 아이템은 강화를 해야만 그 능력을 활성화할 수 있다.』
우연히 만난 발로르, 그에게서 받았던 선물.
지금까지는 사용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템 마스터의 권능, 진혼을 부여합니다.]
[ 발로르의 사안이 ‘발로르의 진안眞眼’으로 강화됩니다.]
아이템 마스터의 고유 권능을 부여해 아이템의 능력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 목적은 최종 능력인 사안을 발휘하는 것이었지만.
[발로르의 진안에 깃들어 있던 고대의 존재가 티폰의 마안에 반응합니다.]
웅웅웅!
손에 쥐고 있던 발로르의 사안이 격하게 진동하기 시작했고.
휘오오오오!
급기야 거대한 차원의 홀을 생성하는 것이었다.
“이건?!”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경험한 적이 있는 종류였다.
「누가 이 몸을 부른 것이냐!」
과연 예상은 다르지 않았다.
“발로르?!”
사안의 발로르. 선물을 건네준 당사가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호오! 네 녀석은 일전의 그 녀석이 아니냐? 아니, 가만. 이건...」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그의 기운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 뭐야?」
그건 나를 향한 물음이 아니었다.
보이진 않으나 시선의 대상이 바뀌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티폰. 경악으로 눈을 부릅 뜨고 있는 녀석이었다.
「다, 당신은 설마 발로르? 판테온Pantheon의...」
「오호라. 여기서 이걸 발견할 줄은 몰랐는데.」
티폰의 말을 끊은 발로르. 거대한 차원의 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폭풍과도 같이 변했다.
「빌려간 그 힘을 거두어가마!」
그것은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파스스.
멀쩡히 서 있던 티폰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육신은 가루가 되었고, 그곳에 남은 건 그의 흔적으로 짐작되는 검은 가루뿐이었다.
"엌?!"
지상최악의 청소부이자 투견, 녀석이 맞이한 허무한 죽음에 절로 신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