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 썩은물은 펫도 썩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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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화의 시작은 기간테스가 남긴 흔적, 잿더미였다.
장내를 뒤덮은 거대한 존재감과 함께 지면을 장식한 잿더미가 붉은 액체로 화하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는 양이었다.
하지만 증식을 하듯 점차 양이 불어나 마침내 거대한 웅덩이를 형성할 정도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 믿을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촤아악!
웅덩이에서 솟구치는 거대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흐음. 상쾌한 외부의 공기. 그리고 이 식욕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를 맡은 게 얼마만이던가!」
내 눈앞에 나타난 건 괴물이었다.
조금 전 상대했던 기간테스와 마찬가지로 일단 상반신은 인간. 그리고 하반신은 수백 마리의 뱀이 휘감고 있는 것처럼 엉켜 있는 상태였다.
물론 지금까지 보아온 게 있는게 고작 그 정도로 괴물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녀석이 특별한 이유는 거대한 어깨와 팔에 돋아난 100개의 용 머리 때문이었다.
입이 아니라 눈에서 불을 뿜고 있는 100개의 용 대가리가 매섭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름 : 티폰
성별 : 집합체
나이 : 추측 불가
사용 무기 : 권
무력 랭크 : AAA
특징 : 일부 외부의 존재들도 두려워하는 지상 최악의 투견. 너무도 강력한 그 힘을 경계해 24의 기간테스로 쪼개어 봉인했다.』
녀석의 상태창을 살핀 후에야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24의 기간테스는 녀석의 힘을 쪼개어 봉인한 존재에 불과했고, 그 봉인을 푸는 행위가 기간테스의 소멸이라는 것.
“정말 터무니없는 존재로다!”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보는 건 처음인 듯 환웅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 할 말이 없네...”
“도대체 이 힘은?”
환웅이 놀라서 펄쩍 뛸 정도인데 바포르와 임수아는 어떻겠는가.
“일단 너희는 돌아가 있어.”
곧장 권능을 펼쳐 두 사람을 바빌론으로 전송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티폰. 하지만 녀석의 관심은 곧장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네 녀석은 관리자인가?」
환웅을 바라보는 티폰의 시선은 오만했다.
일련의 그 태도를 통해 티폰의 위상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녀석은 관리자인 환웅을 안주에도 두지 않고 있다.
“그렇다. 나는 관리자 Z의 직을 수행하는 환...”
「거슬린다. 사라져라!」
화륵!
왼쪽 어깨에 장식되어 있던 용가리 하나가 불길을 뿜었다.
“허업?!”
갑작스러운 공격에 비명을 지르는 환웅.
설마 관리자인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누구 마음대로!”
하지만 나는 이를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촤악!
물의 기운을 끌어올려 환웅의 전방에 거대한 물의 방패를 생성했다.
치이익!
불길과 닿은 물의 방패가 요란한 소릴 내며 증발한다.
끝내 방패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티폰이 뿜은 불길이 먼저 소멸한 것.
막긴 막았다. 하지만 기간테스의 공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꽤 하네?”
멀쩡하던 바람의 방패와는 다르게 물의 방패 절반이 증발되어 버렸다.
그저 파리 내쫓듯 발휘한 불길에 의한 결과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관리자를 공격하다니. 고대의 맹약을 깨버릴 심산이냐!”
분노한 환웅이 티폰을 보며 외쳤다.
「고대의 맹약? 웃기는군. 내 임무는 눈을 뜬 행성의 모든 것을 소거하는 것. 이 절대적인 임무에 예외는 없다.」
아마도 녀석을 이곳에 떨어뜨린 뒷배, 가이아의 몸을 빌렸던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이란 녀석의 지위가 상당히 높은 것 같다.
계속 언급되었던 고대의 맹약이라는 것을 일부 무시할 정도면 말 다했지.
「그나저나 네 놈.」
100개, 정확히는 101개의 눈길이 내게 향했다.
「내 힘의 일부에 불과한 녀석들이긴 하나 기간테스를 쓰러뜨릴 만한 자격이 있구나. 마침 기다리던 차였다. 오랜 시간 동안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던 무적의 내게 대항할 수 있는 존재를 말이다.」
오만하다 못해 광오하다.
「모처럼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순 없지.」
101개의 눈이 호선을 그릴 무렵.
「웨엑!」
당연히 덤빌 줄로만 알았던 녀석이 갑자기 토악질을 시작했고.
쿵, 쿠웅!
4개 덩어리를 뱉어냈다.
“이, 이런...?”
그 덩어리의 저체를 파악한 환웅이 다시금 경악한다.
쯧. 저 양반은 뭐만 하면 놀라 자빠지는 게 아무래도 여기서 리액션을 담당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그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녀석이 뱉어낸 건 단순한 덩어리가 아니었다.
고오오!
등장과 동시에 주변을 압도하는 기세를 발산한다.
괴물이 뱉어낸 건 괴물이었다.
머리가 세 개 달린 검은 털의 개 케르베로스.
하나의 육신을 공유하고 있는 케르베로스와 달리 세 개 육신이 끔찍하게 뒤엉켜있는 개 오르토로스.
아홉 개의 머리가 달린 뱀 히드라.
마지막으로 염소, 사자, 뱀이 뒤섞인 마수 키마이라.
아!
그러고 보니 언뜻 기억이 난다.
거짓된 역사 속에서 티폰이라는 괴물은 에키드나라는 여신과의 사이에서 이 네 마리 괴물을 낳았다.
그게 바로 지금 등장한 케르베로스, 오르토로스, 히드라, 그리고 키마이라 남매(?)였다.
거짓된 역사 속에서는 그래도 낳았다고 표현해 놨는데, 알고 보니 몸 속에서 키우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였나보다.
문제는 이 녀석들의 무력 랭크가 A에 달한다는 점.
기간테스의 리더인 알키오네우스와 포르피리온의 무력은 -B였였다.
어떻게 보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지만, B와 A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자, 즐거운 게임을 시작하도록 할까?」
녀석 또한 제 주인과 닮아서인 듯 전투를 관전하려는 모양이다.
음. 이 패턴은 익숙하다.
항상 저런 식으로 거만을 떨던 녀석들은 애꿎은 부하나 자식을 잃고 괜히 열 받아서 설치다가 죽는다.
녀석은 악당의 전형적인 패턴을 밟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전형적인 패턴을 구현할 생각이었다.
쿠콰콰!
주인의 명령에 케르베로스와 오르토로스의 불길, 키마이라와 히드라의 독이 뒤섞여 나를 휘감았다.
하지만 당황할 이유는 없다.
꽈악.
어느새 빼 든 방패를 정면으로 치켜든다.
아테나 여신을 상징하기도 하는 이지스 방패.
조금 전까지는 신화급의 방패에 불과했으나 아이템 마스터인 내 손길이 닿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진다.
[아이템 마스터의 권능, 진혼을 부여합니다.]
[이지스가 ‘아이기스Aegis’강화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원형의 방패에 불과했던 이지스, 아니 아이기스의 중앙에는 뱀의 머리칼을 가진 여성의 머리가 장식되었다.
메두사.
신화에 등장했던 괴물, 자신을 보는 모든 생명체를 돌로 만들어 버렸다는 존재다.
웅웅!
마력을 부여하자 방패의 장식, 메두사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꺄아악!
방패에 깃든 메두사의 영혼이 울부짖었고.
지이잉!
눈에서 발사된 회색 광선이 나를 향한 괴물의 권능과 충돌했다.
드드득.
그와 함께 일어난 놀라운 현상.
신화에서 메두사는 자신을 보는 모든 존재를 돌로 만들었다.
하지만 진혼이 부여된 메두사의 권능은 무생물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나를 향한 괴물들의 권능을 석화시킨 것.
이게 아이기스가 가진 특수 능력이다.
모든 원거리 공격을 석화시키는 개사기 능력 말이다.
“그리고 네 녀석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도 알고 있지.”
처처척!
몸에 두른 건 야만인과 같은 가죽 소재의 경갑옷. 가장 특장점은 역시 사자의 머리를 형상화한 투구일 것이다.
당시 존재하던 가장 강력한 마수인 네메아의 사자를 처치해 얻은 가죽으로 제작된 ‘네메아의 사자 세트’다.
그리고 손에 쥔 건 그 영웅이 즐겨 사용했던 활과, 몽둥이.
[최강의 영웅 헤라클래스의 기운이 스며듭니다.]
[모든 세트 아이템에 진혼의 기운이 깃들었습니다.]
[‘최종병기영웅, 헤라클래스 세트’가 완성되었습니다.]
[거짓된 신화가 진실로 바뀌어 인연이 있는 모든 마수에게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하압!”
마력을 실은 외침이 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케르베로스가 근원적인 공포에 몸을 떱니다.]
[케르베로스의 능력치가 대폭 하락합니다.]
[오르토로스가 근원적인 공포에 몸을 떱니다.]
[오르토로스의 능력치가 대폭 하락합니다.]
[히드라가 근원적인 공포에 몸을 떱니다.]
[히드라의 능력치가 대폭 하락합니다.]
키마이라를 제외한 세 마리의 마수가 피어에 영향을 받았다.
진혼을 통해 거짓된 이야기는 진실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헤라클래스는 케르베로스와 오르토로스, 그리고 히드라를 상대한 전적이 있었다.
키마이라를 제외하면 사실상 헤라클래스에게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콰앙!
곧장 지면을 박차며 케르베로스에게 쇄도했다.
“컹!"
잠시 몸을 떨던 녀석의 반응은 빨랐다.
아가리에서 뿜어낸 강력한 지옥의 불길, 녹색 불꽃이 전방을 휩쓸었지만.
팟.
괜히 최종병기 영웅이겠는가.
육신이 능력은 모든 것을 아득히 초월했다.
꺼지듯 그 자리를 회피한 후 곧장 녀석의 품에 파고들었다.
퍼억!
헤라클래스의 권능이 깃든 곤봉이 녀석의 허리를 강타했다.
퍽, 퍼퍽!
그게 끝이 아니다.
연이어 곤봉을 휘둘러 케르베로스의 머리를 모두 짓이겨버렸다.
쿠웅!
찰나의 순간을 버티지 못한 채 쓰러지는 케르베로스.
다른 괴물 녀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뿌득.
그야말로 괴력이라는 단어가 걸맞는 힘으로 키마이라의 목을 뽑았다.
휘익!
그리고 그것을 오르토로스에게 던진 후.
피잉!
곧바로 시위를 매겨 녹색 기운이 물든 화살을 발사했다.
“캬악!”
화살이 명중한 순간 발작적인 괴성과 함께 녀석의 육신은 한 줌의 핏물로 화했다.
그건 단순한 화살이 아니 다.
헤라클래스가 가진 화살에는 히드라의 강력한 독이 깃들어 있었고, 그 독은 오르토로스라는 괴물을 단숨에 액체화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흐아압!”
끝이 아니다.
복수를 위해 달려오는 히드라의 머리. 마치 두더지 게임을 하듯 유연한 궤적을 그리며 9개의 머리 모두를 박살내 버렸다.
"..."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변화.
그 찰나의 순간 강력한 기세를 발산하던 네 마리의 괴물은 쓰러지고 말았다.
“흐음..."
하지만 만족할 수 없다.
조금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분명 쓰러진 네 마리의 괴물, 녀석들이 지닌 생명의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크흐흐. 어리석은. 내 자식은 불사의 마수. 그 어떤 공격으로도 죽일 수 없다.」
어쩐지 쓰러질때까지도 여유롭더라.
스윽.
티폰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는 건 곧장 알 수 있었다.
“크르르.”
“캬아악!”
마술처럼 짠!
어느새 육신을 복원한 네 마리 괴물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사의 마수라.
뭐, 충분히 구경은 잘 했다.
“이 정도면 적당히 몸 풀기 운동은 했네.”
사실 내가 직접 움직인 건 몸을 푸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신격과 권역을 생성한 게 얼마 되지 않아 내 힘을 조절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던 차였다.
마침 나타난 네 마리 괴물은 내 힘을 가늠하는 게 아주 좋은 전투력 측정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상대에 걸맞는 존재를 불러들일 시간이다.
“레비!”
“뀨!"
호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자고 있었던 레비였다.
사실 요즘 적들의 능력이 워낙 강해져서 녀석을 소환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계의 존재를 처치하면서 나는 레비를 비롯한 녀석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베히!”
"뿌우!"
내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레비와 베히.
이 두 녀석은 애초에 내가 보유하고 있었던 애완동물(?)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원시천존을 처치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새 친구가 있다.
“지즈!”
“뺙!”
뾰족한 울음과 함게 내 앞에 나타난 건 영락없는 병아리였다.
하지만 축소화된 모습이 병아리일 뿐, 녀석의 실체는 그게 닥 아니다.
[태초에 세 마리의 마수가 존재했으니.]
[바다의 레비아탄, 육지의 베헤모스, 하늘의 지즈.]
[영겁의 세월을 지나 마침내 바다, 땅, 하늘을 지배하는 태초의 마수가 모였습니다.]
[융합을 통해 세 마리 마수를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병아리 지즈를 얻는 순간 들을 수 있었던 알림.
지금까지는 필요를 느끼지 못해 사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지금이야말로 녀석들이 나설 차례라는 것을 깨닫고 있던 중이었다.
“가즈아!”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녀석들의 융합. 바로 이 순간 나는 그것을 승인했다.
파아앗!
세상을 집어 삼키는 빛, 그리고 어마어마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튀어 나왔고.
[태초의 마수 진화에 성공했습니다.]
[‘종말의 마룡 니드호그Nidhogg’가 마침내 눈을 뜹니다.]
더이상 위는 없다.
마침내 최종 진화 마수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