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썩은물은 타르타로스의 죄수들을 맞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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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승리란다.
이길 승勝에 이로울 리利.
사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겨루어서 이기다.
내가 얻은 신격이란 게 이 사기적인 의미를 품고 있었다.
승리의 격이라니.
감히 어느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아니, 이런 미치광이 신격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네크로노미콘. 시작의 장에 잠든 전지전능한 존재가 희미한 웃음을 터뜨립니다.]
내게 일어난 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련하게 들리는 마지막 알림과 함께 세계의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당신은 정식 담당자 W의 자리를 계승하게 되었어요.”
정면. 태연한 얼굴로 가이아가 말을 잇는다.
그 반응을 보니 알겠다.
모른다.
그녀는 내게 일어난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단군왕검의 격, 투지를 계승한 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축하하네. 그대라면 내 아들의 유지를 이어줄 수도 있겠지...”
뭔가 복잡한 감정이 깃든 환웅.
스쳐 지나갔던 가이아와는 반대로 유심히 그를 응시했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나는 못 속인다.
책임자인 가이아도 눈치채지 못했던 변화. 그러나 환웅은 내게 생긴 변화를 조금이나마 감지한 것 같다.
확실히 뭔가 숨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억지로 밝혀내거나 아는 듯한 티를 내지는 않았다.
만약을 위해 내 속마음을 감춰야만 했다.
“호오?”
감탄사를 내뱉는 가이아.
“대단한 재능이네요. 벌써 내가 펼친 관심觀心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그녀가 말하는 관심이란 것, 조금 전까지 깨닫지 못했던 그녀의 이능異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내 영역을 침범하려는 간질간질한 기운. 이것이 그녀가 말한 관심일 터. 물론 그 용도는 대상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줘야죠.”
여유가 깃든 미소로 화답했다.
불과 조금 전만 해도 제집처럼 들락날락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신격을 손에 넣은 건 물론 네크로노미콘에 깃든 존재의 조작 덕분에 예상치 못한 힘을 손에 넣었다.
이제는 그녀의 권능을 감지할 수 있다.
감지할 수 있다는 건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마음에 판금을 두른 것처럼 살살 건드리는 그녀의 권능에서부터 나를 보호했다.
“좋아요. 충분한 재능을 보여주었으니 더는 지체할 이유가 없겠네요.”
자애의 눈빛이 바뀌었다.
날카로운, 마치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W.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겠죠?”
물론 알고 있다.
정식 담당자가 된 지금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던 비밀을.
[당신은 공석으로 남아 있던 ‘지구’의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고대의 맹약에 따라 담당자는 관람자와 포식자를 위한 공물을 바쳐야만 합니다.]
[신임 담당자 W가 바쳐야 할 공물은 지구의 인간 1,000만 명입니다.]
조금 전부터 경고처럼 울리기 시작한 알림.
그제야 장삼봉이 했던 지난날의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육장을 담당하는 이. 인간을 사육하여 위대한 존재에게 바치는 자. 새로운 유희를 고안해 세계를 도탄에 빠뜨려야만 하는 배반자.’
장삼봉이 내게 전하고자 했던 담당자의 정의였다.
담당자는 말 그대로 관람자와 포식자라는 외부의 존재를 위해 사육장을 담당하는 존재였다.
하하하. 정말 웃기지 않는가.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지위라는 게 사실은 관람자와 포식자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앞잡이에 불과하다니.
“자, 위대한 분들께서 공물을 원하시는군요. 1,000만 명의 인간이라면 비교적 가벼운 편에 속하니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하도록 하세요. 단, 서둘러야만 합니다. 그분들의 심기를 언짢게 만든다면 더욱 많은 공물을 원할 수도 있으니.”
마치 밀린 일을 하라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을 잇는다.
“망설이지 말아요. 당신은 이제 선택을 받은 이. 인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세요. 개미와 같은 하등한 존재를 죽일 때 죄책감을 느꼈나요? 인간을 바치는 것 또한 그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금 전 나는 신격을 손에 넣었고, 인간이 발을 들일 수 없는 영역에 도달했다.
육신이 바뀐 건 물론, 정신 또한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
그녀가 말했던 대로 지금 내게 있어서 인간은 개미나 다른 동물들과 같은 생명체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1,0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간을 공물로 바친다 한들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인간이라는 규정을 넘어선, 그야말로 초월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남은 게 있다.
신념信念.
비록 내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존재가 되었다 해도 여전히 남은 신념과 사명감이 인간 이연우를 존재하게 한다.
나는 괴물이 될 수 없다.
“싫은데?”
“뭐, 뭣?!”
단호한 내 대답에 놀라는 가이아.
하지만 그녀는 꽤 경험이 풍부한 듯했다.
당황한 마음을 금방 가라앉히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해요. 아무리 선택을 받았다 해도 조금 전까지는 같은 동족이었으니 망설이는 게 당연하죠. 저도 그렇고 관리자 Z 또한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했던 게 사실이에요.”
다시금 자애의 여신으로 돌아온 그녀가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아니에요. W. 더 큰 미래를 바라보세요.”
“더 큰 미래?”
“그래요. 혹 담당자가 없는 무법지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알고 있나요?”
아마 담당자가 없는 구역을 무법지라 칭하는 것 같다.
“고대의 맹약 아래 보호를 받지 못한 무법지가 맞이할 결말은 두 가지예요. 위대한 분들에 의해 개인 사육장이 되거나 청소부들에 의해 종말을 맞이하거나.”
그녀가 말한 개인 사육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
바로 조금 전 글라키가 시도했던 일. 지구를 자신의 권역으로 선포한 후 인간들을 먹어치우며 주지육림의 삶을 즐겼을 것이다.
아마 탐욕스러운 그들은 끊임없이 인간이란 먹이를 먹어치울 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탐욕에 의해 인류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청소부?
그녀가 말한 그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위대한 분들의 무분별한 전쟁을 막기 위해 사육장이 되지 못한 무법지에는 몇 단계 과정을 거쳐 말소의 역할을 받은 청소부들이 파견된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종말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아!
그제야 그녀가 말한 청소부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대격변과 같은 변화 그리고 시련. 그 모든 게 무법지에 행해지는 일련의 과정일 테고, 결국에 등장한다는 청소부는 종말의 일곱 군주와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이리라.
“동족을 공물로 바치는 게 망설여지나요? 아니요. 미래를 보세요. 만약 W, 당신이 담당자의 임무를 소홀히 한다면 결국, 지구는 위대한 분들의 개인 사육장이 되어 잡아 먹히거나 혹은 청소부들에 의해 말소될 뿐이죠. 담당자는 그것을 방지하는 마지막 보호 장치인 셈이에요. 담당자의 임무만 충실히 이행한다면 지구와 당신의 동족인 인간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 테니.”
안개로 걷혀 있던 머릿속이 환해지는 기분이다.
아마 가이아나 환웅도 과거에는 나와 같은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련을 거쳐 책임자, 혹은 관리자의 자리에 올라 동족이라는 공물을 바치며 행성, 차원의 안위를 연명했겠지.
그 심정을 이해는 한다.
비록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다곤 하나 어딘지 모를 세계에서 바라보고 있는 관람자나 포식자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감히 대항할 엄두가 나겠는가.
아마 끊임없이 자위했을 것이다.
동족을 바치는 일이, 오직 그 길만이 행성과 동족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길에 동참하지 않을 생각이다.
“응. 아니야.”
그들이 걸었던 길을 부정한다.
“하압!”
힘찬 기합성과 함께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기운을 발산했고.
구구구궁!
무한하게 이어진 백색 공간은 무너질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이건?!”
그 절대적인 기운을 느낀 가이아와 환웅이 경악한다.
어찌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제 갓 신격을 손에 넣은 애송이의 기운이 이토록 어마어마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이건 내 힘의 전부가 아니다.
다만 나를 감싼 이 결계를 부술 만큼, 적당한 힘을 방출한 것뿐.
그렇게 기운을 방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뒤.
콰챠챵!
백색 공간이, 가이아가 펼친 결계가 부서졌다.
“우왁, 깜짝이야!”
“연우 님?!”
산산이 조각난 공간 사이로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바포르와 임수아.
결계를 부수고 나온 곳은 조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장소, 글라키를 소멸시켰던 바로 그곳이었다.
“어, 어떻게 이런 격을...?”
가이아. 그녀는 급기야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내 전력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흐읍!”
혼신을 다한 힘의 방출.
쿠콰콰콰콰!
유형화된 기세가 해일처럼 세계를 뒤덮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그건 일전에 글라키가 시도했던 권역의 생성이었다.
녀석과 나의 다른 점은 감히 이 기운에 대항할 만한 존재가 없다는 것.
[지구를 권역으로 선포했습니다.]
[지금부터 외부의 그 어떤 시선도 지구를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권역을 생성한다는 건 모든 존재에게 이곳이 내 구역임을 알리는, 일종의 선포였다.
“권역 생성이라고?!”
“허어!”
깜짝 놀란 가이아와 환웅이 펄쩍 뛰었다.
“너희는 동족을 공물을 바쳤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어. 지구와 인류는 반드시 지켜낸다.”
“제, 제정신이 아니로군요. 그분들에게 대항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가이아가 표독하게 소리를 지른다.
“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구역을 지킬 만한 힘이 있으면 안 될 것도 없잖아?”
“말도 안 되는!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요. 그분들의 힘은 무궁무진. 고작해야 글라키 따위를 쓰러뜨렸다고 너무 오만하군요. 그는 위대한 분 중에서도 저급한 존재. 당신의 힘으로는 그분들의 위엄에 도전할 수 없어...”
말끝을 흐린 가이아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결국에...”
그 반응을 지켜보던 환웅의 눈에 두려움이 일었고.
"음?"
뒤늦게야 환웅이 보인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감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부르르 떨던 가이아. 그녀의 존재 위를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뒤덮었다.
「흥미로운 일이로군. 이제 갓 담당자가 된 하등한 네가 권역을 생성하다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존재감이 장내를 짓눌렀다.
"음..."
측정할 없는, 미증유의 힘이 느껴진다.
그건 글라키는 애송이로 취급할 정도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넌 또 누군데?”
도발하는 말에 흰자위만 가득한 가이아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존재.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
딱 어울리는 이명이다.
녀석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만약 녀석의 본체가 이곳에 강림한다면 그날로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한낱 기우에 불과한 일이다.
녀석들은 고대의 맹약인가 무엇인가로 인해 활동의 제약은 받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본체의 강림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해볼 만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미 없는 그 발버둥. 결국, 끝을 향해 다가가는 그 몸부림이 나를 기쁘게 하였노라.」
온갖 폼은 다 잡더니 스토커에 불과한 녀석이었군.
「그렇기에 새로운 게임을 준비하였다.」
딱!
갑작스레 등장한 녀석이 손가락을 튕겼고.
드드득!
세계가 흔들리는 지진과 함께 지면에 생기는 거대한 균열을 볼 수 있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창공에 떠 있던 태양, 그것이 인위적인 무언가에 의해 가려졌다.
마침내 어둠이 세계를 지배했다.
「너의 저항을 짐작하고 있었던 바. 그래서 준비하였다. 억겁의 시간 동안 수많은 행성을 파괴한 최강의 청소부를.」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이 지구에 봉인되어 있던 타르타로스를 개방합니다.]
[영겁의 세월을 지나 마침내 연옥燥獄에 갇혀 있던 죄수들이 해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