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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회귀해버렸습니다-121화 (121/161)

121화.  < 썩은물은 글라키의 계략을 듣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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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소식은 전해 들었다.

연로한 관계로 화랑의 교장직에서 사퇴했다고.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초인, 그것도 꽤 대단한 경지를 이룩한 교장 할배에게 연로라는 이유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를. 외압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이사회든, 혹은 내부 정치든. 어떠한 이유로 교장 할배는 교장의 직위를 지키지 못했고, 밀려났다.

사실 도움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초에 교장 할배의 교육 방식이라는 것도 인재를 위한 차별적이었던 데다가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뭐, 결정적으로 보자면 워낙 바쁜 일이 많아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게 맞겠지만.

교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더는 은퇴를 선언, 조용히 지내는 것 같더니 설마 글라키의 숙주로 전락했을 줄이야.

“할배, 미쳤어? 어쩌자고 괴물 따위의 숙주로 전락한 거야?”

이미 지나간 일이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사명감으로 무장한, 나름 초인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권로 이율학이 괴물의 숙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왜 안 되지? 위대한 이의 힘을 받을 기회가 아니냐. 무武를 숭상하는 자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기회이거늘.”

“웃기고 있네!”

천금 같은 기회라는 그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기회? 괴물의 숙주가 되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그 길이 기회라고?”

그래. 솔직히 말해 괴물의 숙주가 된다면 어마무시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맞다. 그러나 그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괴물의 부하가 되어 동족을 해쳐야만 하는 수라修羅의 길이다.

“힘이란 건 보다 약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 설마 초인의 제일 규칙을 잊은 건 아니겠지?”

화랑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게 초인의 절대 규칙이다.

꽤 많은 구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의 규칙은 약자를 위해 힘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

이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던 교장 할배가 괴물의 부하를 자처한다?

정녕 이 양반은 자신의 욕망을 세상에 숨기고 있었던 걸까?

“그래.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

교장 할배, 아니 권로의 눈동자에 회한이 어린다.

“...하지만 네 녀석이 어찌 알겠느냐. 아무리 노력해도 재능이란 괴물을 따라잡지 못하는 그 절망을, 그 참담함을, 나은 이를 질투할 수밖에 없는 그 혐오감을!”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 담긴 눈빛은 잠깐에 불과했다.

검은 동공이 눈 전부를 차지한다. 심연이 깃든 것처럼 칠흑으로 물든 그 눈은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나는 세상에 증명하고 싶다. 아직 내가, 권로 이율학이 살아 있다는 것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구궁!

가공할 만한 기운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쓰읍. 무척 익숙한 기운이다.

꿈속에서 봤던 죽은 꿈들의 지배자 글라키. 녀석이 내뿜는 기운과 흡사했다. 단지 본질적인 기운이 닮은 것만 아니라 나를 위협할 수 있는 그 위력도 닮았다.

“말은 번지르르하네. 뭐야? 결국은 밑에서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싫다는 거 아니야.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네. 아니, 씨벌 그 정도 해 먹었으면 알아서 비켜줘야지. 아직도 뭘 보여줄 게 그리 많아서 이 난리야, 난리는.”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권로가 하는 말은 자신이 밀려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고 있는 마당에 이런 단어를 쓰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권로는 꼰대 중에서도 가장 질 나쁜 꼰대였다.

후배 초인들이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성장을 기뻐해 줘야 하는 게 어른의 도리다. 그러나 그는 이를 인정하지 못한 것 같다.

받아들이기는커녕 나보다 재능이 있어서, 인맥으로, 운이 좋아서. 온갖 말도 안 되는 합리화로 무장했다.

내가 화랑에 다닐 때만 해도 그게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권로에게 가장 큰 심적 타격은 교장직에서 물러난 그 사건이었을 것이다.

인정할 수 없었던 사퇴 요구에 벼랑 끝까지 몰렸을 테고, 마침 찾아온 글라키의 유혹에 굴복했겠지.

“그깟 화랑의 교장이 뭐라고…”

“네가 무엇을 아느냐!”

쿠르릉!

벼락과도 같은 외침에 대기가 진동했다.

“나는 일생을 바쳤다. 내 일생을 바쳐 인류를 위한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 노력했단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나를 헌신짝 버리듯 그렇게 내칠 수 있단 말이냐!”

촤촤촥!

강렬한 분노와 함께 변화가 일어났다.

권로의 육신을 뚫고 나온 건 익숙하게 보아온 강철 가시였다. 하지만 감염자들이 지니고 있었던 보통의 가시와는 다르게 검게 물들어 있었으며 기묘한 광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내 꿈속에 나타난 글라키의 가시와 매우 흡사했다.

“나를 버려? 그렇다면 나도 너희를 버리겠다. 내가 믿는 건 위대한 그분뿐. 그분의 의지에 따라 인간을 멸하는 선봉장에 설 것이다!”

다가올 가시를 대비하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퍼퍽!

가시가 향한 곳은 내가 아니라 바닥. 마치 영양분을 주입하듯 가시를 통해 강력한 기운이 주입되었다.

“일어나거라!”

권로의 외침과 함께.

드드득!

지면에 균열이 일었다.

종내에는 거대한 틈을 만든 균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

“화랑?”

익숙한 복장, 화랑의 문양이 수놓아진 교복을 입은 수백의 애송이가 보인다.

“소개하지. 그분의 권능을 통해 내가 양성한 수제자들이다. 너를 비롯한 다른 녀석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척 보기에도 일반 감염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마도 숙주인 권로의 권능을 받아 강력한 존재로 탄생했을 터.

스르륵.

수제자 카드를 꺼낸 권로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가거라. 너희의 실력을 선배에게 직접 보여주도록 해라.」

아마도 권로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더는 그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콰콰콰!

사방을 포위한 애송이들이 그린 궤적이 쇄도했다.

녀석들이 휘두른 무기에서 뻗어 나온 그것은 기를 유형화한 형태. 이른 바 검기라는 형태의 고급 기술이었다.

솔직히 놀랍다.

아무리 준 초인으로 인정받는 졸업반이라 해도 검기를 다루는 건 무리였다.

검기는 초절정에 이른 이, 랭커에 들어가는 이들도 쉽게 발휘할 수 없는, 그야말로 고급의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수제자라고 했던 권로의 말이 과언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애송이!”

피할 곳 하나 없는 궤적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것은 녀석들이 혼신을 다해 펼친 합공에 대한 내 감상의 전부였다.

꽈악.

주먹을 꽉 쥔다.

양손에는 어떤 무기도 없다. 살상은 금물이었기 때문이다.

글라키의 숙주인 권로야 갱생의 여지가 없다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멋도 모른 채 감염되어 권로, 아니 최종적으로는 글라키라는 괴물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렇기에 죽일 수 없다.

이지를 상실한 그들을 죽인다면 나는 감염된 모든 인류를 죽여야만 할 것이다.

지금에 와서 내 인간성을 잃어버릴 순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인간의 경지를 탈피하며 여러 가지 혼란한 상황에 부닥쳤다.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잃게 된다면 나 또한 외부의 존재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지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용만 당하는 인간들을 지켜낼 테다.

“합!"

의지를 담아 주먹을 내질렀다.

팟!

누군가 본다면 무척 느릿한, 거북이도 피할 수 있는 동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혼신을 다하고 있다.

느릿해 보이는 건 너무도 빠르기 때문이다.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의 동작. 내 경지는 눈에 보이는 속도마저 초월했다.

퍼퍼퍼퍼퍽!

그저 일권을 내질렀을 뿐인데 둔탁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털썩.

마치 합을 맞춰놓은 것처럼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귀여운 후배님들이 쓰러진다.

권로는 내가 이들에게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십분 이용하려고 했겠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수준의 차이가 심각하기에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건 권로, 이 정신 나간 할배 또한 마찬가지.

“어디서 개수작이야!”

외침을 터뜨리며 마력의 파장을 실었다.

콰아아!

대기를 타고 퍼져 나간 파동이 장내를 휩쓸었고.

스륵.

마치 투명한 필름을 벗겨낸 것처럼 사라진 권로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 어떻게?”

의기양양하던 조금 전과는 달리 꽤 당황한 모습이다.

“왜 그렇게 당황하셨을까? 고작 그 정도 힘으로 나랑 맞먹을 생각은 아니었지?”

타락해버린 그에게 존중을 보일 마음은 없다.

아마도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글라키의 권능을 부여받았으니 나와 대등한, 혹은 그 이상의 전력을 가졌을 거라고.

실제로 자신에게 깃든 힘의 크기를 가늠했을 테니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

내 수준은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지금 수준이라면 외부의 존재, 혹은 관리자, 담당자가 아닌 이상에야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없다.

핏!

손을 떠난 궁니르가 붉은 궤적을 그렸다.

푸욱!

"컥!"

궤적은 검은 가시로 뒤덮인 권로의 복부를 꿰뚫었다.

감히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궁니르와 함께 날아간다.

콰앙!

힘을 주어 지면을 박찼다.

꺼지듯 공간을 도약한 내 전면에 날아가고 있는 권로가 들어온다.

“고작 이깟 힘을 위해 영혼을 팔아?”

퍽!

잔뜩 힘을 준 주먹으로 광대뼈를 가격했다.

휘리릭!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한 육신이 팽이처럼 회전한다.

퍼억!

빠르게 회전하는 그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끄윽...”

새우처럼 등이 굽어진 그의 육신이 이번에는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팟!

하지만 그보다 내가 더 빠르다.

솟구치는 그를 따라잡은, 아니 그보다 높은 곳을 선점한 채 양손에 깍지를 끼었다.

“인정했어야지. 재능 있는 후배가 올라온다면 기꺼이 박수를 쳐줬어야지!”

깍지 낀 손을 그대로 내리쳤다.

콰앙!

거죽이 터져나가며 다시금 아래로 떨어진다.

슈아악!

유성우가 떨어지는 것처럼 빠르게 지면을 향해 낙하하는 권로. 그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솔직히 동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인재를 교육하는 방식은 조금 삐뚤어졌을지언정 그는 인류에 이바지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던 이가 분명했다.

게다가 과거, 나는 그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지지 않았던가.

그때 권로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깝다.

남을 위해 스스로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왜?

그깟 화랑의 교장직위가 뭐라고. 왜 인간성을 잃어가면서까지 굴복했느냔 말이다.

물론 그는 말하겠지. 그것이 자신의 전부였다고. 일생을 바쳤던 모든 것을 잃은 자의 절망을 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블랙 포탈 사태로 육신이 망가진 이후 나 또한 허송세월을 보냈으니 말이다.

내게 찾아온 회귀의 행운, 그리고 게임 시스템의 능력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허무한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과 사는 분명해야 하는 법.

사정은 이해가 가는 바지만, 지구를 글라키의 사육장으로 만들려고 했던 그를 용서할 수 없다.

웅웅!

외살의 권능을 가진 창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리고 혼신을 다한 투창.

쐐애액!

대기를 가른 외살의 창은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 한참이나 거리를 벌린 권로를 따라잡았다.

푸우욱!

"커흐헉..."

글라키의 숙주가 되어 외부의 존재로 화한 권로는 그 일격을 감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쿵.

지면에 착지한 즉시 정면을 바라봤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몰아쉬는 권로가 외살의 창에 꿰뚫린 채 쓰러져 있다.

투투툭.

육신을 삐져나온 가시가 힘을 잃은 채 지면에 떨어진다.

영혼까지 팔아 얻은 글라키의 권능이 사라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저벅.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에게 다가갔다.

“권로 이율학. 화랑의 교장이자 학생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의인義人. 그 모습만을 간직하겠습니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흐으...내 인생이 그래도 아주 형편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로군.”

외살의 창에 깃든 권능이 그의 육신을 녹이고 있었다.

이미 하반신은 모두 녹아, 진득하고 검은 액체가 된 상황.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목숨을 유지한 채 말을 이어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그가 세운 계획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획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권로가 ‘그’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서둘러라. 중국 청해성의 청, 청해호를 찾아 가라. 그곳에서 그의 마지막 계획이...”

푸스스.

하지만 한 줌의 액체로 화한 권로는 마지막 말을 잇지 못했다.

“청해호?”

하지만 얻어야 할 정보는 모두 얻은 셈이다.

가만. 그런데 청해호라면 미약한 기운을 감지하곤 바포르와 임수아를 파견 보낸 곳인데?

갑자기 불안감이 일었고, 이내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연우 님. 빨리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이곳에 그의...꺄악!」

잘 짜인 각본처럼 귓가에 파고든 임수아의 의지. 하지만 비명을 끝으로 더는 그녀의 의지를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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