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 썩은물은 좀비 바이러스와 마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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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만리장성의 붕괴로 인근에 있던 관광객 수천 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혹 이것이 새로운 격변의 징조가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여러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인류의 수호신인 이연우 님이 함께...」
마치 속삭이는 듯한 음성이 파고든다.
이 편리한 권능 때문에 더는 TV를 시청하지 않아도 세계 각지의 정보를 수집할 수가 있었다.
창공의 눈. 새로이 얻은 권좌의 권능은 내가 원할 때면 언제, 어디서든 신도들의 눈과 귀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만리장성의 붕괴와 그 여파로 생겨난 변화.
처음 예상은 대격변에 준하는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정작 드러난 현실은 별거 없었다.
음.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실제로 붕괴한 만리장성을 찾아 단서를 찾으려 했으나 정작 발견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고, 계속 한 자리에 머물 수 없었던 터라 바빌론에 앉아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지만, 변화의 변자도 찾지 못했다.
“시황제의 말이야 뻥이라 쳐도, 알림이 거짓말을 하진 않을 텐데...”
죽기 직전 시황제의 말은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알람은 아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알람이 내게 거짓을 전해준 적은 없었다.
게다가 만리장성이 붕괴한 순간 느꼈던 마력의 파장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불쾌하고 끔찍한 기운. 그것은 분명 외부의 존재들을 마주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외부의 존재라 하면 인류를 벌레보다 더 못하게 생각하는 외계인 아닌가.
당장 학살이 벌어져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왜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
정작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현 상황에 의문을 넘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믿을 만한 이들을 보내놨으니 그나마 안심이로군.”
그래서 믿을 만한 이, 동료들을 각지로 파견 보냈다.
아이템을 통해 수준이 많이 향상된 동료들이라면 웬만한 변화를 금방 눈치채고 알려올 것이다.
후우.
그나저나 최근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런지 급격히 피로가 몰려온다.
사실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다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인 건 분명하다. 그렇기에 먹는 것과 자는 것. 이 두 가지 욕구를 반드시 충족시켜야만 했다.
가만, 내가 잠을 잔 게 언제였더라?
애써 기억의 편린을 붙잡아도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상태로도 더 버틸 수 있겠지만, 컨디션에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기에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슈슉!
의지가 움직인 순간 곧장 내 침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최고급 재료로 만든 침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풀썩.
최대한 힘을 뺀 채로 드러누웠다.
“하암...”
기다렸다는 듯 수마가 덮친다.
이번에는 저항하지 않았다. 수마가 안내하는 대로 긴장을 푼 채 눈을 감았고, 점차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휘이잉!
「응?」
살을 베어낼 듯한 날카로운 바람에 의식을 깨웠다.
「여긴 어디?」
분명 조금 전 안락한 침대에 몸을 뉘었건만, 여긴 또 어디란 말인가.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칠흑과도 같은 어둠뿐이었다.
어둠을 꿰뚫는 두 눈도, 절정의 감각을 동원해도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이 괴이한 공간으로 날 끌고 온 존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나는 모든 꿈을 지배하는 존재...」
과연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어디선가 음산한, 마치 지하에서 울부짖는 듯한 음성이 퍼져 나왔다.
꿈을 지배하는 존재라.
곧장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죽은 꿈들의 지배자?」
라파엘을 상대했을 때, 그리고 시황제의 죽음과 함께 전해진 알림에서 언급되었던 존재였다.
「그렇다. 본좌는 죽음 꿈들의 지배자 글라키. 너희들의 꿈을 이루어줄 초월적 존재다.」
처음이다.
외부의 존재 중 이명이 아니라 이름이 밝혀진 이는.
하지만 이 상황이 마냥 기쁘지 않다.
고유의 이름을 밝혔다는 것. 그건 인과에 개입하겠다는 명백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지금껏 모든 외부의 존재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 하지만 알림에서 들었던 것과 같이 죽은 꿈들의 지배자, 이 글라키라는 녀석은 지구에 직접적인 개입이 가능한 것 같다.
「꿈을 이루어주기는 개뿔.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하지만 나는 녀석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는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감히 내게 이따위 말을 한다고? 이 새끼도 정상이 아닌 게 분명하다.
「어리석구나. 본좌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스륵.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미약한 감각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것이 어떤 형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시황제?」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을 언급하고 말았다.
눈앞에 나타난 그건 괴물화가 진행된 시황제와 똑같은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
달팽이와 같이 점액질로 번들거리는 몸체, 그리고 등을 감싸고 있는 건 둥글게 말린 껍질이 아니라 강철 가시였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한 쌍의 더듬이만 존재하던 것과 달리 길쭉하게 늘어진 세 개의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
「시황제라. 그 하찮은 존재는 본좌의 힘 일부를 전해 받았을 뿐이다.」
역시 그랬나.
권주, 그리고 천사, 시황제까지. 녀석들이 괴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건 외부의 존재가 전해주는 힘이었다. 어떤 존재가 그 힘을 전해 주느냐에 따라 형체도 각양각색으로 달라지는 모양.
「본좌는 네게 무척 관심이 있다.」
「왜 안 그렇겠어.」
익히 예상하였던 바였기에 놀라지 않았다.
외부의 존재 모두가 나를 적대하면서도 은근한 관심을 표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나를 이용하고자 한다.
무엇을 위해?
예전에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최근, 녀석들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녀석들이 나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건 지구, 아니 새로운 사육장이었다.
이건 짐작이긴 하지만, 어떤 제약에 의해 아직 지구는 외부의 존재에게 넘어가지 않은 것 같다.
녀석들은 지금 지분을 두고 싸우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정점인 나를 이용한다면 많은 지분을 차지할 수 있을 터. 그렇기에 어떻게든 나를 회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본좌는 영생을 전해주는 이. 네가 원한다면 시황제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 그리고 완전무결한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움직임이 있었다.
취릭!
마치 촉수와도 같은 길쭉한 가시가 느릿하게 접근했다.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야?
혹여나 뭔가 수상한 짓거릴 할까 봐 경계하며 녀석의 행동을 주시했다.
「의심하지 마라. 경계하지 마라. 그것은 영생을 주는 축복. 네가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너는 완전무결한 영생을 얻어 나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
순간 장내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 변화의 중심지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가시.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주변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날카로운 가시의 끝. 그곳에서 미증유의 힘이 느껴진다.
녀석이 했던 말이 마냥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저 가시를 받아들이는 순간 저 어마무시한 힘은 내 것이 될 것이다.
그건 아찔한 유혹이었다.
받아들여라.
그 힘을 받아들여 영생과 영광을 누리자.
달콤한 속삭임이 귓가에 파고든다.
아찔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내 심신을 뒤흔들었다.
「수작 부리지 마!」
아마 보통의 인간, 아니 초인이라고 해도 그 유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종말의 미래를 경험했으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굳건한 내 의지는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꽈악.
언제인지 모르겠다.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건 외살의 창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이 이상하지 않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모든 광경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팟!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창을 횡으로 휘둘렀고.
「끼이이익!」
소름 끼치는 괴성과 함께 가시가 잘렸다.
잘린 단면에서 주변의 공간과 같은 검은 액체가 흘러나온다.
「이 새끼가 누굴 호구로 아나!」
가시를 잘라낸 것으로 그칠 생각이 없다.
탓!
보이지도 않는 지면을 박차며 힘차게 도약.
「으리압!」
어떠한 기교도 없는 단순한 찌르기를 선보였다.
푸욱!
「끼이이이익!」
한층 더 강해진 녀석의 괴성이 통쾌하다.
모든 외부의 존재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외살의 창이다. 몸뚱이를 찔린 녀석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발버둥 쳤다.
푸스스.
그리고 다음 순간,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형체가 축소되기 시작했다.
「어리석구나. 본좌의 호의를 무시하다니.」
비록 꿈에 불과하지만, 소멸하면서도 입은 여전히 살아 있다.
「호의는 개뿔. 닥치고 꺼져. 혹여 마주치게 되면 그냥 아작을 내줄 테니까.」
그 어떤 외부의 존재와도 타협할 마음은 없다.
어디까지나 내 목표는 담당자가 되어 녀석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는 것. 그것 이외에는 관심 밖이었다.
「잠시 후면 네 녀석은 알게 되리라. 본좌의 호의를 거절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그 끝에는 파멸만이 남아 있음을 말이다.」
「응. 아니야.」
꼴 보기 싫은 녀석을 빨리 보내기 위해 다시금 창을 찔렀고.
퍼엉!
작은 폭발과 함께 녀석의 형상은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아!"
되돌아온 감각을 느끼며 눈을 떴다.
다급히 주변을 둘러본다.
칠흑의 어둠은 없다. 익숙한 광경, 바빌론에 마련된 내 방이다.
“이것들이 이제는 꿈에서까지 나와서 지랄이네.”
마음 편히 잠도 못하는 현실에 투덜거렸다.
그리곤 침대의 오른쪽, 간이 탁자에 놓인 시간을 확인하자 30분 정도가 지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이 잤네.”
보통의 인간이라면 30분 자고 피로를 해소할 수 없을 테지만, 나는 다르다. 30분의 수면은 12시간을 푹 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준다. 비록 글라키라는 재수 없는 녀석의 면상을 본 게 찝찝하긴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몸 상태는 최상.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경고! 권좌의 신도 수가 급격히 감소합니다.]
[고인물의 권좌에 앉은 템빨 왕의 신도가 21,364,111 감소했습니다.]
“뭐?!"
하지만 들려오는 알림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신도 수가 감소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갑작스레 2,000만이 넘는 신도 수가 갑자기 감소한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상에 다급히 창공의 눈을 발휘, 각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폈다.
「오, 오지 마! 으악!」
「아빠, 왜 이래. 어, 어어? 꺄아악!」
곧바로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세계 곳곳, 모든 신도가 공격을 받는 중이다.
그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가족, 친구, 그리고 인접한 지인들이었다.
단체로 미친 것도 아니고 가족, 친구가 갑자기 돌변해 공격한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 사실이건만, 내가 경악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경고! 권좌의 신도 수가 급격히 감소합니다.]
[고인물의 권좌에 앉은 템빨 왕의 신도가 10,551,900 감소했습니다.]
공격을 받은 이들 또한 신도에서 제외되었다.
죽었기 때문에? 아니.
신도들의 감각을 공유한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갑자기 돌변한 이들. 그들의 육신을 꿰뚫고 나온 가시가 신도들을 공격하는 광경을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가시에 찔린 이들 또한 공격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변화했다.
“이게 무슨 좀비 바이러스도 아니고...”
그 광경을 본 나는 오래전 보았던 좀비 영화를 떠올려야만 했다.
물리는 순간 같은 좀비가 되는 끔찍한 바이러스.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좀비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