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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회귀해버렸습니다-114화 (114/161)

114화.  < 썩은물은 장삼봉의 소멸을 지켜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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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축?”

물론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인간이 가축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고? 그래도 한때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었던 인간이?

“인간으로 한정 지을 수 없소. 모든 차원에 존재하는 지적 생물체, 즉 인간과 유사한 그 모든 존재가 가축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으니.”

장삼봉이 말하고자 하는 차원의 개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블랙 포탈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벨라렌스 차원. 비록 그 진실한 모습을 본 적은 없으나 그들 또한 인류, 아니 지구와 비슷한 문명을 이룬 생명체일 것이다.

결국, 위대한 존재들이 사육하는 건 인간만이 아니라 이 우주에 셀 수 없도록 많이 존재하는 그 모든 생명체를 말하는 것.

“인간을 비롯한 모든 지적 생명체를 가축화한다. 대체 그 저의는 뭡니까?”

불과 얼만 전까지만 해도 이런 장삼봉의 말을 못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아는 그 존재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인간을 가축화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충분히 신빙성 있는 말이다. 여기서 생기는 한 가지 의문은 그들이 무엇을 위해 사육장을 만드냐는 것이다.

“인간과 다르지 않소. 식량을 얻기 위함이지.”

역시 그랬나.

가축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식량일 수밖에 없었고, 내심 식량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진인眞人의 말은 그 위대한...은 무슨, 미친 새끼들이 지구라는 사육장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우리 인간을 사육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단지 식량을 얻기 위해서?”

“짐작하고 있겠지만, 식량만을 얻기 위한 건 아니오. 그들의 또 다른 목적 중에는 유희도 포함되어 있으니.”

유희?

그건 여동빈이 끝맺지 못했던 유언에도 담겨 있었던 말이다.

“유희라 하면?”

“투우關牛, 투계圖鷄, 투견關犬. 그것은 인간이 다른 가축에게 해왔던 행위와 다를 바 없소. 위대한 존재들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가축에게 싸움을 붙이고, 이들의 전투를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중이지.”

아하!

안개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유희를 위해 각종 행위를 자행해왔다.

조금 전 장삼봉이 언급했던 가축을 이용한 원초적인 싸움은 물론 바둑이나 장기,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게임까지.

위대한 새끼인지 뭔지가 벌이는 행위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평화로운 세계에 몬스터를 등장시키는 건 물론 다른 차원과 고대의 존재를 이용해 싸움을 붙인다.

그 목적이야 명백하다.

가축에 불과한 인간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 버틸 것이며, 어떻게 멸망을 맞이할 것인가.

가축들의 싸움을 바라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

"개새끼!"

그제야 초월자라 생각한 그들의 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언급되었던 책임자, 관리자, 담당자는 이 빌어먹을 게임을 진행하는 스태프였다.

관람자? 그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 관람자. 가학적인 게임을 관전하며 즐기는 변태들이었다.

엿 같은 기분이다.

나름 노력하며 성장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성장이라는 게 사육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대장 노릇이나 하는 것이었다니. 자부심을 느꼈던 그 모든 순간이 자괴감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분노를 되새기지 못했다.

퍽!

둔탁한 소음과 함께.

“진인, 팔이?!”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장삼봉의 팔이 조립식 인형처럼 지면에 떨어졌다.

퍼석!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지면에 떨어지는 그 충격으로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는 것.

“개의치 마시오. 이 모든 게 천기天機를 누설한 대가이니. 불사의 삶이라는 헛된 미혹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쳤으니 누구를 원망하리오?"

불사의 삶?

그러고 보니 조금 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어떻게 인간이 8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올 수 있었던 걸까.

“진인. 진인은 정말 1,0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겁니까?”

“허허!”

내 말에 장삼봉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1,000년이라. 노도가 살아온 세월이 그리 짧았다면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터인데.”

1,000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시간인가?

아니. 애초에 말이 안 된다. 분명 역사에 기록되기로 장삼봉이란 이름은 원나라와 명나라에 언급되지 않았던가.

“현혹되지 마시오. 그 모든 건 위대한 존재들이 주입한 거짓된 역사니.”

장삼봉이 내뱉은 그 말과 함께.

쿵!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린다.

그래. 인간을 사육할 정도로 격이 높은 존재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역사를 조작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게임 속 NPC들이 개발자가 만든 세계를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지금의 세계 또한 위대한 존재들이 만든 가상의 역사와 세계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내가 믿고 있었던 역사라는 건 모두 조작된 소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진인은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살아온 겁니까?”

“그들의 유희가 시작되는 주기는 10,000년, 지금껏 4번의 유희를 지켜보았으니 40,000년 동안 부질없는 생을 이어오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무려 40,000년 동안 이어진 역사. 거짓으로 점철된 역사 속에서 홀로 진실을 엿본 이가 장삼봉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장삼봉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지금 연자가 걸어가는 길을 과거 노도가 걸어갔다면 믿으시겠소?”

내가 걸어온 길?

“제가 걸어온 길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 진의를 깨닫지 못해 되물었고.

“노도 또한 연자와 마찬가지로 담당자 후보가 된 적이 있었소.”

충격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설마 그에게서 담당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순간 당황했으나 이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다른 무엇보다 담당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 담당자라는 게 무엇입니까?”

막상 후보가 되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

“사육장을 담당하는 이. 인간을 사육하여 위대한 존재에게 바치는 자. 새로운 유희를 고안해 세계를 도탄에 빠뜨려야만 하는 배반자...”

짙은 회한이 어린 눈빛의 장삼봉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위대한 존재들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기도 하오.”

별빛처럼 반짝이던 눈동자가 심연에 가라앉은 듯 광채를 잃었다.

“여동빈이 연자를 노도에게 보낸 건 무엇보다 지금의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의도일 터.”

그렇게 장삼봉은 숨겨진 역사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40,000년 전 노도는 담당자 후보로 내정되어 7번의 시험을 치러야만 했었소. 하지만 담당자가 짊어져야만 하는 막중한 짐을 이해하지 못했음은 물론 자만심이 넘쳐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말았지.”

“해서는 안 될 일?”

“첫 번째 시련을 통과하기 위한 신물神物을 빼돌린 것이오.”

의외의 말이었다.

장삼봉이나 되는 인물이 뭐가 탐이 나서 물건을 훔쳤단 말인가.

“당시의 노도는 자신감이 넘쳤소. 시간,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단련을 거듭해 위대한 존재들을 넘어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지. 허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란 말인가.”

오직 후회만이 느껴지는 말과 함께 남은 오른팔을 내밀었다.

그의 손아귀에는 뭔가가 쥐어져 있었다.

“이건?”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신물이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장상봉이나 되는 인물이, 명색이 도가에 몸을 담은 그가 탐을 낼 수밖에 없었던 물건. 그 정체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건네받은 그것을 살폈다.

생각했던 삐까뻔쩍한 귀중품은 아니었다.

불꽃을 형상화한 듯한 기이한 모양의 꽃. 신기한 건 꽤 오래전에 꺾인 것 같은데도 여전히 생기를 발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노도가 불멸의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근원, 바로 불로초不老草요.”

“불로초?!”

맙소사!

불로초라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배자들이 그토록 애가 타게 찾았던 전설의 영초. 물론 전설로만 여겨지던 것이었지만, 장삼봉의 말을 곧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불로초

등급:Unknown

종류 : 이벤트 아이템

효과 : 불로불사不老不死

설명 : 어떤 지배자가 애타게 찾고 있던 영초. 정해진 주인이 아니라면 복용할 수 없으나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불사의 삶을 살 수 있다.』

그것을 손에 쥔 순간 나타난 정보창이 불로초라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랬군.

장삼봉이 40,000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건 불로초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도에게 불로불사의 삶이 주어진다면,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위대한 존재들에게 맞설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 그러나 그건 크나큰 오만이었소.”

담당자 후보로 내정되었을 정도면 장삼봉 또한 시대의 정점에 올랐던 고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만만했을 테지.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위대한 새끼들 따위는 가볍게 누를 수 있을 거라고.

“영겁의 세월을 지나 노도가 깨달은 사실은 아무리 연마한다 한들 그들의 발끝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소.”

그의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른 바 그릇의 차이로 인해 도달할 수 없는 영역. 그 절망감은 이루 망할 수 없을 것이다.

“오만으로 인해 노도는 실패했으나 다시금 기회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소.”

강렬한 눈빛이 나를 직시했다.

“연자는 명심하시오. 시험관이 내리는 시련을 통과해 반드시 담당자 자리를 쟁취해야만 하오. 신명神名을 얻는 것. 그것이 위대한 존재들로부터 인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갑작스레 장삼봉이 입을 닫았다.

그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퍼석.

이번에는 왼쪽 다리였다.

고장난 인형처럼 떨어져 나간 다리가 먼지가 되어 흩어졌고.

티틱.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떨어져나간 팔과 다리를 시작으로 몸 전체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건 장삼봉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진인!”

놀란 내가 다가가려 했지만, 힘겹게 들어 올린 팔로 제지했다.

“연자는 진시황릉을 찾으시오. 불로초를 소지하고 있으니 위대한 황제가 내쫓지는 않을 터."

티티틱.

말을 이어가는 중에도 장삼봉의 육신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능력이 부족하여 노도는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연자라면 능히 이룰 수 있을 것이오.”

천기의 누설은 곧 소멸을 의미하는 것. 그것을 알면서도 장삼봉은 끝까지 입을 닫지 않았다.

“부디 노도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파스스-

회한이 진득하게 남은 말을 남긴 장삼봉은 한 줌의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나는 흩날리는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장삼봉을 통해 이면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나 아직 개운하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어째서 담당자가 되는 것이 그 빌어먹을 새끼들에게 대항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인지, 여동빈은 남기고자 했던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 있으나 먼지가 되어 흩어진 그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없었다.

아마 그는 어떤 특별한 금제를 받은 상태였을 것이다.

정해진 것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정해진 대사만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NPC와 같은 역할인 셈.

장삼봉의 소멸을 지켜보며 느낀 감정은 씁쓸함이었다.

어쩌면 내 운명도 그와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기분.

“그래도 쉽게 당해줄 순 없지.”

변태 새끼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대강은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적어도 그들이 무엇을 꾸미는진 알았으니 이제 남은 건 그 빌어먹을 계획에 잿가루를 날려주는 것.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진시황릉. 거짓된 역사에서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의 황제로 알려진 진시황의 무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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