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이 회귀해버렸습니다-102화 (102/161)

102화.  < 썩은물은 정우손이 싫어요! >

===========================

대한민국 서울.

“어? 눈이다!”

“대박! ”

“진짜 미쳐 돌아가는구나. 여름에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눈.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매우 놀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은 8월이었다.

아무리 이상기후가 늘어나는 추세라곤 하지만, 8월에 눈이 오는 경우는 쉽사리 보기 힘든 게 사실.

한여름에 일어난 기적과 같은 광경에 장내에 있는 모두가 넋을 놓은 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휘이잉!

“어우, 뭐야!”

하지만 이상기후는 눈으로 그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볕더위의 날씨가 변했다. 마치 온탕에서 냉탕에 들어간 듯,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으으. 추, 추워.”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진다.

여름에 맞춰 얇은 옷을 걸치고 있었던 터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기겁할 수밖에 없는 것.

툭!

"악!"

“어엇!”

복잡한 도심 사이로 움직이는 인파. 당연히 의도치 않은 접촉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벼운 접촉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인사만 주고받고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쌍!”

“뭐 새까!”

접촉이 일어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사이로 고성이 오고 갔다.

단지 목소리를 높인 것만이 아니다.

어깨를 부딪친 단순 접촉에도 불구하고 온갖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 광경은 뭐랄까.

마치 분노 바이러스라는 게 존재해 사람들은 감염시킨 듯했다.

“씨발, 죽고 싶어?”

“어린 놈의 새끼가 어디서 건방지게!”

곳곳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충혈된 눈, 과잉 감정. 사소한 접촉으로 시작된 감정은 순식간에 모두를 전염시켰다.

“개새끼, 죽엇!"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폭탄이 마침내 터지고 말았다.

노인과 다툼을 벌이던 젊은 사내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주먹을 날렸다.

퍽!

살과 살이 만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그러나 젊은 사내의 주먹이 노인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어허! 어른을 공경해야지.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노인에게 폭력을 가하면 쓰나.”

어느새 나타났는지 모를 중년인. 황금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그가 노인을 대신해 주먹을 받아냈다.

“지랄하고 있네. 무슨 나이가 벼슬도 아니고.”

기이할 정도로 흥분한 사내가 다시금 주먹을 휘둘렀다.

“그렇지. 나이가 벼슬은 아니지.”

휙!

날아오는 주먹을 살짝 옆으로 틀어 회피한다.

물 흐르듯이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동작. 그 하나의 동작만 봐도 중년인이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실력은 벼슬이 맞거든.”

씨익, 미소 지은 중년인의 손이 흐릿하게 변했고.

퍽!

일직선 궤적을 그린 중년인의 주먹이 사내의 복부에 꽃혔다.

“커헉!”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분노에 휩싸여 있던 젊은 사내가 쓰러졌다.

"악!"

“끄윽!"

이와 비슷한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중년인과 마찬가지로 촌스러운 황금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이들이 소란을 일으키던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꺄아!”

“다, 당신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경찰, 경찰에 신고해!”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로 인해 사람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아이고, 진정하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수상한 집단이 아닙니다.”

“거짓말!”

하지만 중년인의 말은 설득력이 없었다.

하나같이 황금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그들은 어딜 봐도 수상해 보였다.

“거짓말 아닌데요? 혹시 절 아시는 분, 조용히 손들어 봅시다.”

"......."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안 했다기 보다는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서럽네. 서러워. 이래서 사람은 성공하고 봐야 한다니까. 자, 잘 들어주십시오. 저는 박준호. 아시는 분은...없겠지만, 초인으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박준호.

아는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랭킹에 이름 석 자를 올리지 못한 무명의 초인. 그렇기에 그를 기억하는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프리랜서 초인이 아니라 그분의 휘하에서 열심히 일하는 중이긴 합니다만...어이, 거기! 섣불리 움직이지 말지?”

분명 별반 힘을 들여 말하지 않고 있으나 그 음성은 널리 퍼지고 있었다. 상당한 마력이 실려 있는 것. 과거 랭킹에도 포함되지 못했던 무명의 초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마력 컨트롤이었다.

“으음...”

신비하게도 그 음성과 함께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광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단지 마력만이 아니라 막무가내의 적의를 가라앉히는 신비한 힘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이제야 겨우 진정이 됐군요. 좋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지금 우리는 종말의 시작에 와 있습니다.”

종말. 그것을 언급하는 단체라면 하나뿐이다.

“뭐야, 사이비 종교였어?”

“괜히 시간만 낭비했잖아.”

종말론을 부르짖는 건 백이면 백 사이비 종교가 대부분이었다.

“어허! 사이비 종교라니요. 그분이 들으면 무척 섭섭할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를 포함한 여기 모두는 사이비 종교 따위가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인물, 고인물의 권좌에 앉은 템빨의 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아!”

“이연우!”

사람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고인물의 권좌, 템빨의 왕을 모르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

지상최강의 사나이 이연우.

혜성같이 등장한 루키였다가 부동의 랭킹 1위인 무신을 넘보는 재목, 창왕을 거쳐 종내에는 무신마저 휘하에 둔 지상최강의 사나이로 거듭난 불세출의 인물.

그제야 사람들은 촌스러운 황금색 트렌치코트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효하는 수룡. 연우를 상징하는 문양이 분명했다.

의문의 여지는 없다. 죽고 싶지 않은 이상에야 그의 문양을 사칭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우리는 연우님의 친위대를 맡은 고인단이라고 합니다.”

"풉!"

"고, 고인단?"

고인단. 그 우습고도 낯선 단어에 조소와 의문이 터져 나왔다.

“거기, 비웃은 분. 모쪼록 밤길 조심하길. 그분이 뒤끝이 꽤 있으신 분이라, 갑자기 벼락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친위대. 연우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히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생소하고 낯설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세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 질겁니다. 뭐, 그건 차차 증명하도록 하고.”

훑듯이 사람들을 차례로 응시한 준호가 말을 이어갔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종말이 다가오는 중입니다. 장난 같죠? 장난이 아닙니다. 자, 주변을 둘러 보십시오.”

준호의 말에 주변을 둘러본다.

“마, 맙소사!”

“언제 이렇게?”

사방을 둘러보던 사람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어느새 주위가 눈밭으로 변해 있었다. 거리를 덮은 눈으로 인해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 것.

잠깐 한눈을 팔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토록 눈이 쌓인다고?

그것도 겨울도 아니고 여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날씨는 아니었다.

“이상하죠. 네. 이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건 종말의 전조, 이름하여 핌불베트르. 혹독한 겨울을 뜻합니다.” 물론 그건 준호가 알아낸 사실이 아니다.

연우. 과거에서 회귀한 그만이 알고 있었던 비밀을 말하는 중이었다.

“문제는 이 혹한의 날씨만이 아닙니다. 조금 전에도 봤겠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적의가 여러분을 집어삼킬 겁니다. 사소한 일에도 흥분하고,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넘어서 서로를 때리고 결국에는 죽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그런!”

불과 조금 전이였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별 것 아닌 일에 다투는 건 물론 그들 스스로 평소 느낄 수 없었던 살의로 혼란을 겪지 않았던가.

“혹독한 겨울과 함께 찾아온 적의로 인해 인류는 상상도 못 했던 대전쟁을 치르게 되겠죠.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인류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이건 비단 서울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는 종말의 전조였다.

“하지만 그분은 종말의 날을 예견했습니다. 반드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종말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그것을 우리 고인단이 돕겠습니다. 최후의 날이 도래하는 그 날까지 모든 인류가 생존할 수 있게끔 말입니다.”

고인단이 존재하는 이유. 그것은 혹독한 겨울, 핌불베트르가 일어나는 최악의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인류를 생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

「일주일 째 계속되고 있는 혹독한 겨울 핌불베트르. 과연 ‘그’의 말처럼 이것은 종말의 전조인 것인가?」

「최근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살인과 폭력 사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의 친위대. 고인단이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며 전쟁 발발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이에 많은 이들이 지지를 표하고 있으며...」

[종말을 예견한 이연우. 그는 지구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구세주...」

채널 어느 곳을 돌려도 내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종말을 예견하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고인단을 파견하기까지 했으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이런 사전 작업이 아니었다면 핌불베트르가 시작된 일주일 동안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 핌불베트르가 시작된 지 3일, 혹한의 겨울과 함께 시작된 끔찍한 전쟁으로 인해 인류의 5분지 1이 죽어 나갔었다. 비극적인 과거를 알고 있었기에 이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종말이 시작된다는 알림을 들은 즉시 신도들을 선별해 고인단이라는 무력 집단을 창단했다.

고인단의 목적은 하나. 끝없는 적의의 전염으로 일어나는 전쟁의 억제였다.

막중한 임무를 맡은 만큼 신도 중에서도 믿음이 강한 이들만을 선별했고, 그들에게 강력한 아이템을 선물했다.

믿음으로 인한 능력 강화와 아이템을 통한 전력 상승. 그 모든 것을 얻은 고인단의 단원들은 능히 전쟁을 억제할 만한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런 고인단의 활약은 내게 큰 도움이 된다.

인류의 희생을 막은 건 물론 내 신도 수 증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고인물의 권좌에 앉은 템빨의 왕의 신도 : 97,324,876]

천상의 탑에 가기 전만 해도 5,000만에 불과(?)했던 신도 수가 크게 증가해 1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그 녀석들의 방해만 아니었어도 더욱더 많은 신도를 받아들여 무의미한 희생을 더욱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삑!

채널을 변경했다.

「이곳은 정우손 회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광화문 광장 앞입니다.」

젊은 여성 리포터를 비추던 카메라가 돌아갔고,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를 찍었다.

『악마 이연우, 그의 말에 현혹되지 말라!』

『종말을 부르는 건 다름 아닌 이연우』

『사악한 악마가 지구를 망치고 있다!』

인파 사이로 보이는 건 자극적인 무구가 새겨진 팻말이었다.

녀석들이 누군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정의는 우리의 손으로, 줄여서 정우손이라 부르는 선동과 날조의 쓰레기 집단이었다.

처음에는 인터넷 소모임으로 시작된 이 미치광이 모임은 급속도로 세력을 불렸고,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팻말을 보면 알 수 있듯 녀석들이 발휘하는 영향력이란 게 내게는 상당히 불리한 쪽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가장 기가 막힌 건 사실은 내가 종말을 부르고 있는 근원이라는 것.

어떻게든 종말을 막아보고자 뼈를 깎는 노력의 내게 이따위 취급이라니.

“빠드득.”

이가 갈린다.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 온갖 선동과 날조로 나를 모함하고 있다.

처음에야 내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내버려 뒀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가 신도를 모으는 것보다 더욱더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제야 알겠다.

정우손, 녀석들은 암세포와 같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급속도로 암세포를 전이, 지구를 병들게 한다.

“뒈졌다고 복창할 준비나 해라.”

그렇게 죽는 게 소원이라면야 못 해줄 것도 없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