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외전 - 천상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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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태초의 이 세계는 지금과 같이 계급이 나뉘어져 있지 않은,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낙원이었다.
그곳에 소속된 천사 모두가 음악과 춤을 즐기며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의 시대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정오의 빛과 함께 탄생한 지배의 천사 메타트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배자의 운명을 받고 태어난 그는 자신의 무력을 이용해 모든 천사들을 발 아래 두기 시작했다.
단지 그 혼자만이 정점에 선 것이 아니다.
타고난 재능과 지닌 힘에 따라 계급을 나누어, 마치 군대와 같은 계급 체계를 만들었다.
그 압도적인 무력에 어쩔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이 굴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결사반대를 표한 이들도 있었다.
메타트론이라는 절대자에게 반기를 든 무리, 그 중심에 선 존재는 루시페르였다.
정오의 빛을 통해 탄생한 메타트론과는 달리 새벽의 별빛을 받고 태어난 루시페르. 그는 메타트론의 독재에 불만을 품은 천사들을 규합해 모두가 평등한 이전의 천상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메타트론과 루시페르가 이끄는 병력이 충돌하며 마침내 천상대전이 발발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천상에 울려퍼진 건 고통에 찬 비명과 천사들이 흘린 빛의 눈물, 그들의 피였다.
초기는 메타트론의 우세였다.
이미 많은 병력을 보유한 그의 군대가 루시페르를 압도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양상은 뒤바뀌고 말았다.
루시페르와 운명을 같이 하는 형제, 칠대 천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엘, 가브리엘, 라파엘, 산달폰, 라지엘, 사리엘, 미카엘.
비록 메타트론이나 루시페르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할지 모르나 능히 개개인이 천상의 수장이 될 만한 자질을 갖춘 절대의 천사였다.
그들이 천상의 자유를 위해 루시페르에게 힘을 보탰고, 흐름은 급변했다.
루시페르와 칠대 천사의 압도적인 힘을 느낀 메타트론의 병력이 항복을 시작했다.
적 병력마저 흡수한 루시페르에게 남은 건 하나.
저 멀리, 천공의 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메타트론을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지의 힘으로 감싸인 천공의 성으로 접근하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칠대 천사를 소집한 루시페르는 그들과 함께 수일 간 고민했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천공의 성에 펼쳐진 결계를 뚫을 수 있는 탑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천공의 결계를 뚫기 위한 탑, 그것에 ‘바벨’이라는 이름을 명명한 루시페르와 동료들은 곧장 탑의 건설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매우 순조로웠다.
천상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모인 천사들은 어떤 불평 한 마디 없이 묵묵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곧이다.
바벨탑을 건설해 천공의 성에 있는 메타트론을 쓰러뜨리면 예전의 행복했던, 그 시절의 낙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작업이 진척될수록 알 수 없는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저주를 내린 것처럼 탑의 건설에 참여한 천사들이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해를 한다거나 헛것을 본다거나, 심지어 몇몇은 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자살에까지 이르렀다.
만약 그게 소수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그러려니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형제를 죽이는 전쟁은 그만큼 아픈 상처를 그들에게 남겼기 때문이다.
분명 처음에는 소수에 불과했던 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증세가 심각해질수록 루시페르는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대로 작업을 속행하는 게 옳은 일인가?
아니. 애초에 고민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메타트론을 쓰러뜨리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지금 이 일을 그만둔다면 형제들이 흘린 피는 모두 헛된 게 된다.
결국, 강행군을 감행해야만 했고,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바벨탑의 완성을 목전에 둔 그 날. 타락천사 라바키엘은 그 날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뚝뚝.
어슴푸레한 밤 하늘에 피어나는 별빛과도 같이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검. 검신을 타고 흐르는 건 빛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천사의 피였다.
“형제들이여. 도대체 나는 이해할 수 없구나. 어찌 너희들이 내게...”
찬란했던 본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누구보다 찬란한 빛을 뽐내던 빛은 옅어졌고, 그 육신은 곳곳에 상처를 입어 형편없는 몰골이 되었다.
새벽 별빛의 천사 루시페르. 그의 눈동자에 담긴 건 불신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노골적인 적의와 함께 그를 포위한 건 형제라고 믿었던 칠대 천사였기 때문이다.
마치 위협하듯 8쌍의 찬란한 날개를 활짝 펼친 그들은 각자의 무기로 루시페르를 겨누고 있었다.
“형제여. 약속하지 않았던가. 모두가 평등한 낙원을 건설하자고.”
조용히 말하고 있으나 그 감정의 소용돌이는 울부짖는 중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칠대 천사의 배신은 냉철한 루시페르의 정신을 뒤흔들 정도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루시페르. 우리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보았다.”
침묵을 지키던 칠대 천사 중 하나. 특이하게 주황빛의 날개를 뽐내는 이가 앞으로 나섰다.
“산달폰! 너는 형제의 독재를 가만히 지켜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지 않았나!”
결국,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못한 루시페르가 부르짖었다.
기실 칠대 천사 중에서도 가장 믿었던 존재가 산달폰이었다.
천상에서도 몇몇 밖에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사실 그는 메타트론과 동시에 태어난 쌍둥이 천사였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비범한 형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힘을 받고 태어난 절대의 천사이기도 하다.
지배를 원하는 형과는 달리 평화로운 천상을 꿈꿔온 그는 메타트론이 아니라 루시페르에게 힘을 빌려주겠다고 맹세한 바 있었다.
“이건 천상을, 아니 우리 형제들이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너에게는 미안하다, 루시페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오직 그대만이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있으니...”
“그게 무슨...”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에 루시페르가 되물었지만.
“안타깝게도 더는 알려줄 수 없구나.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알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산달폰에게서 시선을 돌린 루시페르가 나머지 동료들을 차례로 응시했다.
"..."
산달폰과 다르지 않다.
형제들의 눈에 깃든 확고한 결심은 바뀔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운명이라. 정해진 운명에 대항하기 위해 그토록 최선을 다했건만, 어찌 이리 쉽게 순응한단 말인가!"
“미안해요. 루시페르.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형제여. 언젠가 그대도 모든 일의 전말을 알 수 있을 터.”
“모든 게 다 형제들을 위한 것임을 알아 주길 바란다.”
희망은 없다.
병력의 주축이었던 칠대 천사의 배신. 심지어 뜻을 함께한 대다수 형제들이 등을 돌린데다가 이에 대항하는 형제 모두가 제압되고 말았다.
그 순간 루시페르는 직감할 수 있었다.
메타트론을 향한 반기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스으으.
희망을 잃은 순간 루시페르를 감싸고 있던 새벽의 별빛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형제여. 그대가 짊어진 가장 무거운 짐을 우리가 함께 질 것이니.”
루시페르의 절망을 느낀 산달폰이 갑작스레 뛰어들었다.
푸욱!
그가 쥐고 있었던 칠흑의 대검이 루시페르의 복부를 관통했고.
“끄으으아아악!”
루시페르라곤 상상할 수 없는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화르륵!
그 순간 루시페르의 등을 장식하고 있었던 별빛의 날개 8쌍이 불타올랐다.
믿지 못할 변화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검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던 루시페르의 종적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끄아악!”
마치 루시페르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처럼 칠대 천사에게 제압당했던 천사들이 비명을 토했다.
“끄으윽!”
물론 그 중에는 루시페르를 끝까지 믿고 따랐던 라바키엘도 포함되어 있었다.
「너희의 천사 직위를 박탈한다. 이제 너희는 타락한 천사, 타락천사라 불리게 될 것이다.」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그 음성은 메타트론의 것.
그와 함게 라바키엘은 확인할 수 있었다. 찬란했던 빛의 날개 한쪽이 검게 물들어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