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 썩은물은 강화로 미쳐 날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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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미간이 꿰뚫린 수리아의 육신이 허물어졌다.
다른 말이 필요없는 즉사였다.
사실 천사라는 종족이 인간과는 구조 자체가 달라 뇌가 꿰뚫린다고 해서 곧바로 죽진 않는다. 그러나 내 궁니르에 걸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력의 정수를 통해 다시금 각성을 이룬 궁니르에 말살減殺의 권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급소인 머리, 심장 중 어느 한 곳이라도 관통 당하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
머리나 심장이 여러 개 있어도 소용없다.
말살의 권능이라는 건 정해진 급소를 꿰뚫는 순간 상대의 영혼을 그대로 소멸시켜버리기 때문이다.
[홍수를 부르는 천사 수리아를 쓰러뜨렸습니다.]
[‘위업 : 대홍수를 막은 구원자’를 획득했습니다.]
[최고위의 적을 쓰러뜨려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대홍수의 수문이 폐쇄되었습니다.]
수리아의 죽음과 함께 대홍수의 위협은 사라졌다.
음. 그나저나 레벨이 오르지 않았구나.
사실 큰 기대도 안했다.
300레벨, 트리플 마스터에 도달하고 난 후 수많은 악마들을 죽여 겨우 10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고작 지천사 계급의 천사 하나 죽였다고 해서 오를 만한 레벨이 아니었던 것.
그래서 긴장하려고 해도 긴장할 수가 없다.
내게 있어서 지천사는 고작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잔챙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스스스.
그깟 지천사 하나의 죽음 이후 섬을 둘러싸고 있던 절대의 보호막이 사라졌다.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팟!
바람을 불어 촛불을 끄듯 빛의 기둥이 사라졌다.
그 모든 빛을 흡수한 건 섬에 덩그러니 놓인 은빛 찬란한 갑옷이었다.
“아싸!”
심상치 않은 아이템의 드롭에 신이 난 막내 녀석이 날아올랐다.
한달음에 날아간 녀석이 갑옷을 뒤적거린다.
천상에서 얻은 첫 번째 아이템, 게다가 지천사라는 최고위급 천사가 드롭한 것이었기 때문에 잔뜩 기대한 모습이다.
쯧.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에라이. 이게 뭐야? 완전 똥템이잖아!”
익히 예상했던, 실망으로 가득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큰형 님. 이 새끼 완전 그지 인데요?”
다가오는 나를 보며 허탈한 말을 내뱉는다.
“막내야. 말은 똑바로 해. 이 녀석이 거지가 아니라 내가 준 아이템이 그만큼 대단해서 그런 것 아니겠냐.”
지천사. 천상의 상급 2위에 해당하는 최고위급 천사. 이 대단한 존재가 드롭하는 아이템이 별로일 턱이 없다.
막내가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건 내가 선별해서 준 아이템이 그만큼 굉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 선물한 아이템 대부분은 지옥에서도 대공급 이상의 존재들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천사의 등급으로 따져도 치천사에 준하는 이들인 것.
여기서 하나 더. 치천사급의 최고위 존재가 드롭한 아이템일 뿐만 아니라 마력의 정수를 통해 각성까지 마친 상태였다.
대충 보는 것만으로도 그 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그야말로 넘사벽의 아이템이었다.
“헤헤. 물론입죠. 큰형님의 은혜에 인사 오지게 박겠습니다.”
“오냐.”
속이 빤히 보이는 막내의 아부를 뒤로한 채 수리아가 소멸한 장소로 걸어갔다.
이미 내 소유가 된 아이템이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이템의 상세 정보가 나타났다.
『가브리엘의 갑옷 종류 : 갑옷 등급 : 신화
효과 : 자비의 천사 가브리엘의 모든 공격에 대해 강력한 저항력 상승
설명 : 가브리엘이 자신의 수하 수리아에게 하사한 은총의 갑옷. 가브리엘 본인의 강력한 권능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그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착용자를 안전하게 보호해준다.』
아하!
왜 막내가 그렇게 치를 떨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분명 그건 신화급의 등급을 자랑하는 굉장한 아이템이었지만, 가브리엘이라는 강력한 존재를 상대할 때 필요한 이벤트 아이템에 불과했다.
그 말인즉 가브리엘 한정으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
“쓰레기네.”
그리고 나도 이것이 쓰레기라는 데 격렬하게 동의했다.
가브리엘? 아니, 고작해야 치천사 따위를 상대하는 데 이벤트 아이템이 웬말인가.
별다른 효과도 없는 가브리엘의 갑옷을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이것도, 저것도 쓰레기. 온통 쓰레기 밭이로구나.”
드롭된 아이템을 살펴보며 가혹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지천사라는 것을 자랑하듯 다양한 아이템이 드롭되었지만, 내 성에 차는 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게 다 지옥을 쓸어버린 전적 때문이다.
천상과 비슷한 수준의 필드를 싹쓸이 한 탓에 치천사나 메타트론이 드롭한 아이템이 아니라면 내 성에 찬 아이템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 빤했다.
“이것도 쓰레기.”
터엉!
나를 흉내내던 막내가 푸른 광택의 창 하나를 던졌다.
지면을 구르는 창을 힐끗 응시했다.
"음?"
처음에는 의문이 었다.
“어?”
다음에는 당혹감.
“으어어?!”
당혹감에 이은 의문과 불신.
“우와와!”
이내 그것은 환희로 이어졌다.
“심봤다!”
막내 녀석이 아무렇게나 던진 창을 소중하게 품안에 안았다.
우르르. 내 갑작스러운 변화에 동료들이 몰려들었다.
“마스터, 그게 뭔가요?”
“어? 그것도 똥템이었는데.”
막내가 의문이 깃든 눈으로 날 응시했다.
분명 그건 조금 전 녀석이 아무렇게나 방치한 창이었다.
『게-저그
종류: 창
등급 : 신화
효과 : 모든 마법의 수호(방어 마법)를 무효화
상대의 상처를 더욱 악화시키는 쇠약의 권능 부여
대상의 방어구를 부식시키는 부식의 저주 부여
급소에 적중 시 5배의 피해를 주는 치명적인 일격 발생
설명 : 투아하 데 다난의 일원이 사용했던 창. 전설에 의하면 그들이 사용했던 창은 ‘마신’의 육신으로 만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신의 육신으로 만든 다른 창을 모두 모을 수 있다면 그 진정한 힘이 개방될 수도...』
이제는 고작의 범주에 들어가는 볼품없는(?) 신화급 아이템. 물론 그 능력만 본다면 고작 신화급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고작해야 파편의 상태일 때의 한정된 것. 모든 파편이 모이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터터텅!
지면을 구르는 다른 3개의 창.
나는 마신의 육신으로 만든 나머지 파편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다.
웅웅웅!
한 자리에 모인 4개의 창이 공명하듯 창명을 토했다.
황색의 창은 게-보
백색의 창은 게-아살.
적색의 창은 게-볼그.
마지막 청색의 창은 게-저그.
명칭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4개의 창은 마신의 육신으로 만든, 투아하 데 다난이라는 전설의 집단에서 소유하고 있던 마신의 파편이었다.
마침내 모인 마신의 파편이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공중에 떠오른 4개의 창이 동서남북, 각기 다른 방향에 자릴 잡았고.
쿠쿠쿠쿠쿵!
4개의 창 끝이 향한 그 중심부에 블랙홀과 같은 수상쩍은 홀이 생성되었다.
“이, 이건?!”
『이 무슨 초월적인 힘이란 말인가!」
불길한 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동료들이 신음했다.
그럴 만도 하다. 나 조차도 불쾌하게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이 장내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 정도 기운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존재 중 가장 강력했던 베엘제붑을 능가하는 것. 아니, 솔직히 말해 베엘제붑은 아이처럼 여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마침내 홀에서 빠져 나온 건 검게 물든 팔이었다.
쿠웅!
단지 육신의 일부 하나가 나왔을 뿐이지만, 장내를 지배하는 기세가 더욱 무섭게 변했다.
와, 이거 장난 아닌데.
이대로 본체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상대하기가 힘들지도.
「크크큭. 고맙구나. 네 덕분에 루, 그 망할 광명의 자식이 건 봉인의 일부를 풀 수 있었다.」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에 적대는 없었다.
애초에 완전한 봉인의 해제가 아니었던 듯 팔 이외에 다른 육신이 빠져나올 일도 없었다.
「나는 마신 발로르. 봉인의 일부를 풀어준 네게 특별한 선물을 하사하마.」
일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선물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툭!
내 발치까지 다가온 손이 무언가를 떨궜다.
「그것이라면 충분한보답이 될 터.」
바닥에 떨어진 건 흑요석처럼 검은 광택을 자랑하는 주먹 크기의 보석이었다.
「크하하하. 망할 광명의 자식 놈아. 기다려라!」
선물을 남겨준 자칭 마신이라는 존재의 팔이 다시금 홀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슈슈슉!
그게 끝이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녀석이 남겨준 선물을 제외하면 말이다.
『발로르의 사안
종류 : 부적
등급 : 불멸
효과 : 잠금(+5 강화에 해금)
잠금(+10 강화에 해금)
잠금(+15 강화에 해금)
잠금(+20 강화에 해금)
잠금(+25 강화에 해금)
잠금(+30 강화에 해금)
설명 : 마신 발로르가 자신의 봉인을 푼 존재에게 선물한 권능의 부적.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발휘되는 매우 희귀한 이 아이템은 강화를 해야만 그 능력을 활성화할 수 있다.』
“부적?!”
진 궁니르에 이어 다시금 등장한 불멸급 아이템. 게다가 그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종류였다.
부적. 설명을 보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발휘되는 사기 아이템이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미친. 30 강화가 가능하기나 한 거야?”
그 모든 능력을 해금하기 위해서는 무려 30 강화를 성공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12 진 궁니르를 만들 때에도 어마어마한 행운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세 배에 육박하는 30 강화를 해야만 한단다. 물론 5 강화 때마다 능력이 해금되는 형태였기에 굳이 모든 능력을 해금할 필요는 없겠지만.
“설마 이런 때를 알고 준비한 건가?”
홀로 중얼거리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곳에서 꺼낸 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빛을 발산하는 티켓 5장이었다.
지옥을 휩쓴 보상으로 담당자 X에게 얻을 수 있었던 특별한 선물.
『아이템 강화 확정권(+15[1%])
종류 : 소비 용품
등급 : Unknown
사용 효과 : 표시된 강화 수치만큼 확정 강화를 시켜주는 신비한 티켓
설명 : 담당자 X는 관리자 Z의 현혹에 넘어갔습니다.』
사실상 불가능한 강화 수치에도 웃을 수 있었던 건 강화 확정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1장이 아니다.
1%, 2%, 3%, 4%, 5%. 각각의 성공 확률이 존재하는 5장의 티켓을 얻었다.
물론 +9 강화권처럼 100% 확률로 성공하는 형태가 아니다.
1~5%까지. 사실상 성공할 확률이 희박한 티켓이었다.
그래도 깡으로 강화하는 것보다는 희망이 보이는 게 낫긴 낫다.
뭐, 정 안되더라도 강화 실패 복원권도 한 장 남아 있으니 최소한 +5 강화 정도는 노려볼 수 있으리라.
“파트로나.”
“네, 마스터.”
“지금부터 강화를 시도할 건데, 아모스에게 기도좀 올려라.”
갑작스러운 내 부탁에도 파트로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스터를 위해 기도를 올리겠어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파트로나의 몸에서부터 은은한 광채가 피어났다.
강화를 할 때마다 해왔던 중요한 의식이다.
“그럼.”
1% 확정 강화권을 손에 쥐었다.
사실 1%의 성공은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생각할 때 그나마 성공을 바랄 수 있는 건 4~5% 확정 강화권이다.
어떻게 보면 1-3%까지는 강화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 그 이상이 아니었다.
"강화의 신이시여. 제물을 드시고 한 번에 딱 붙여 주십시오!”
일단 제물 하나 투척!
찌익!
발로르의 사안을 대상으로 선택한 후 곧바로 1% 강화 확정권을 찢었다.
[+0 발로르의 사안에 아이템 강화 확정권(+15[1%])의 권능이 부여됩니다.]
자, 일단 가볍게 실패부터 하고.
[+0 발로르의 사안이 형용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을 발산합니다.]
"어?”
빛을 발산한다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0 발로르의 사안이 +15 발로르의 사안으로 강화되었습니다.]
[+5 강화를 통해 적안赤眼이 해금됩니다.]
[+10 강화를 통해 청안演眼이 해금됩니다.]
[+15 강화를 통해 백안白眼이 해금됩니다.]
그리고 그건 강화의 신이 미쳐 날뛰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