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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회귀해버렸습니다-87화 (87/161)

87화.  < 썩은물은 등장 타이밍도 썩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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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네 녀석은 인간이 맞긴 한 건가?”

처음의 위상은 온데간데 없다.

육신이 반쯤 사라진 베엘제붑이 허망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인간이 맞는데, 내가 좀 특별해.”

내가 바로 템빨의 왕이다!

물론 그렇게 말해 봐야 알아들을 수 없을 테니, 굳이 그 사실을 꺼내진 않았다.

지금 내가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웅웅.

내 마력을 받은 궁니르가 창명을 토했다.

1시간이 넘게 전투를 벌였다. 10분간 능력치를 상승시켜주는 흑의 피도 효과가 다한 상황.

하지만 여전히 몸속에는 무한한 마력이 샘솟고 있었다.

무한한 마력이 있는 건 아니다.

1시간이 넘는 치열한 격전 속에서도 여전히 마력이 넘치는 건 고위, 그리고 최고위 악마들을 처치하면서 계속 레벨업을 했기 때문이다.

레벨이라는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

쪽수를 믿고 더욱 대담하게 덤볐겠지만, 오히려 그게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인간. 너는 정점에 도달한 지고한 존재다. 그대의 손에 죽는다면 그것 또한 대단한 영광이겠지.”

별안간 경외지심을 표했다.

그 마음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시체뿐이다.

나름 지옥에서 이름을 날렸던 무수히 많은 악마가 쓰러져 있었다.

다른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은, 오직 내가 벌인 학살의 현장. 단신으로 지옥에 존재하는 고위급 악마를 몰살시킨 것이다.

막강한 천상의 군대도 이룰 수 없었던 불가능의 영역. 그것을 이룬 존재에게 경외를 표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고했다.”

경외를 표하는 베엘제붑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남겼고.

“그대와 같은 지고한 존재를 만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삶을 포기한 녀석은 고개를 숙였다.

꿈을 이룰 만한 병력도, 불과 조금 전 차지했던 사탄의 위도, 모든 것이 소용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팟!

적빛의 궤적이 공간에 그려진다.

정상에서 추락한 베엘제붑을 향한 마지막 선물.

푸욱!

"..."

신음은 없었다.

마지막 전사의 자존심을 보이려는 듯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묵묵히 자신의 죽음을 삼켰다.

[높은 저택의 주인 베엘제붑 대공을 쓰러뜨렸습니다.]

[‘위업 : 지옥의 대공’을 획득했습니다.]

[‘위업 : 만마전의 주인, 사탄’을 획득했습니다.]

[최고위의 적을 쓰러뜨려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단신으로 지옥의 악마들을 굴복시키는 불가능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담당자 X가 당신의 보상을 결정할 수 없다며 도리질을 칩니다.]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담당자가 다시금 등장했다.

보상을 결정하지 못한다? 그럼 다음에 누가 등장할지는 빤했다.

[관리자 Z가 슬그머니 다가와 의견을 피력 합니다.]

[담당자 X가 관리자 Z의 말에 솔깃한 것 같습니다.]

[몰래 지켜보고 있던 관리자 Y가 그러지 않는 게 좋다고 훈수를 둡니다.]

내가 알고 있는 관리자와 담당자의 총집합이다.

녀석들의 푸닥거리로 정신이 조금 사납긴 하지만, 그 보상에 대한 기대를 감추기 어려웠다.

이 문제아 셋이 출동할 때마다 주어지는 보상은 내 상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고심하던 담당자 X가 관리자 Z의 화려한 언변에 넘어갔습니다.]

[관리자 Z가 환호합니다.]

[관리자 Y가 울상을 짓습니다.]

[담당자 X가 마침내 당신에게 줄 합당한 보상을 결정했습니다.]

[인벤토리를 열어 보상을 확인해 보십시오.]

기대가 더더욱 증폭되었다.

관리자 Z라면 무조건 내게 유리한 쪽으로 보상을 결정해 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곧장 인벤토리를 열진 않았다.

맛있는 건 가장 나중에 먹어야 하는 법.

지금은 메인이 아니라 애피타이저를 먹을 차례였다.

고갤 들어 좌우를 훑는다.

생명이 다한 악마들의 시체로 가득한 현장. 그곳에 있는 건 시체만이 아니었다.

시체가 자리한 곳마다 어김없이 녹광을 발하는 마력의 정수가 허공에 떠 있었다.

비록 모든 악마가 드롭하진 않았지만, 수백은 가뿐히 넘어가는 마력의 정수가 자태를 뽐내는 중이었다.

아!

아이템도 빼놓으면 곤란하다.

에오스에서도 구하지 못한, 지옥의 고유 아이템이 지면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예전에야 창만을 다룰 수 있었던 탓에 창이 아니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진 못했지만, 웨폰 마스터가 된 지금은 다르다.

모든 무기를 창에 준하는 숙련도로 다룰 수 있다. 그건 곧 이곳에 있는 모든 무기가 곧 내 전력의 상승과 연관이 있다는 말이었다.

“휘휘~!”

내가 해야 할 일이란 건 간단했다.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며 드롭된 모든 아이템을 수거하는 것이었다.

*

"잠시 후면 문이 열릴 것이다!"

어딘가 광기가 느껴지는 환희의 음성과 함께.

드드득.

끈적이는 피로 만들어진 거대한 오망성. 그것이 새겨진 지면이 무너지며 거대한 구덩이가 생성되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칠흑밖에 없는 구덩이 속에서 언뜻 비치는 건 녹색의 불꽃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음습한 기운이 발산되는 그것은 지구와 지옥을 연결하는 차원의 문이었다.

“이제 지옥의 전사들이 강림해 이 빌어먹을 세상을 지옥의 불꽃으로 정화하리라!”

마치 광신도의 교주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내가 검은 로브를 벗어 던졌다.

그는 젊은 사내였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의식용 단도를 든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주용.

세상을 원망하던 사내는 악마와 계약을 맺었고, 지옥의 문을 여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 받았다.

혼자였다면 그 일은 결코, 해내지 못했으리라.

그에게는 동료가 있었다. 위대한 주인님과 계약을 맺은 수백 명의 계약자가 그와 함께 대계에 참여했고, 마침내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위대하신 주인이시여. 어서 이곳에 강림하시어 죄악으로 가득한 세계를 정화해 주십시오!”

“부디 더럽혀진 세계에 정화를!”

“정화를!”

계약자들이 부르짖기 시작했다.

그들 또한 주용과 같이 세상을 원망했던 이들. 지구의 멸망을 부르짖는 광신도였다.

「어리석은!」

“당장 멈춰요!”

산중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들의 은신처를 향해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속도로 빠르게 거리를 좁히는 그들은 가디언 사인방을 필두로 한 연우의 동료들.

심상치 않은 마력의 파장을 읽고서는 곧장 그들의 은거지를 습격한 것이었다.

“어리석은 건 너희다. 남은 건 절망밖에 없는 이 세계를 지킬 이유가 무엇이냐!”

이미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밖에 남지 않은 이들에게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그래. 그러니까 그냥 뒈져!”

선두에 선 아흐메디가 마력을 일으켰다.

그 마력의 흡입력으로 인해 대기가 빨려 들어갈 정도다.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키르켄이 완성되었고.

콰콰콰콰!

이 궁극의 마법은 곧장 주용과 계약자들을 향해 쇄도했다.

콰앙!

"칫!"

아흐메디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 만족스러운 결과가 펼쳐지지는 못했다.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주용을 중심으로 일어난 붉은 반구형의 보호막이 키르켄의 폭발을 대부분 흡수한 것을 말이다.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괴물도 아니고 설마 같은 인간 중에서 궁극의 마법을 받아낼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인님의 은총이 우리와 함께한다!”

위대한 주인이라 말하는 그의 진실된 정체를 아는 건 아니었지만, 계약을 통해 주어진 권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토록 강력한 힘을 가진 그들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건 주인이 내린 하나의 임무 때문이었다.

지구와 지옥을 연결하는 차원의 문을 완성하는 것.

오직 이 목적을 위해 수만의 동남동녀의 피, 그리고 순수한 영혼을 모아야만 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대계를 목전에 둔 그들은 적의 침입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콰쾅!

주용과 계약자들의 거센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건 지옥의 문을 파괴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의 사투였다.

콰쾅, 콰콰쾅!

마력의 충돌로 인해 곳곳에서 폭발이 끊이질 않았다.

놀랍게도 두 세력의 힘은 거의 대등한 수준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계약자들에게 우세했다.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지속해서 마력을 주입해야만 했고, 그로 인해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꽤 많았다.

만약 그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승부는 연우의 동료들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보아라, 드디어 지옥의 문이 열린다!”

끼이익!

하지만 전황은 급변하고 말았다.

“안 돼!”

소름 끼치는 기운을 느낀 파트로나가 소리쳤지만, 그녀의 외침으로 바뀌는 건 없었다.

"..."

"..."

문이 열리면서 악마들이 쏟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악마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당황한 계약자들이 수장인 주용을 응시했다.

“어, 그게…”

하지만 주용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

분명 위대한 주인은 문이 열리는 순간 전사들이 나와 지구를 정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지옥 전사들의 진군은 볼 수 없었다.

"이익!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직접 빌어먹을 세상을 벌하리라!”

과연 계약자들의 수장이 될 정도의 빠른 선택!

그들이 이목을 감추고 있었던 건 세간의 이목을 사지 않고 무사히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이 틀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세상을 쓸어버린다.

주인을 통해 전해 받은 이 권능이라면 능히 지구를 휩쓸 수 있을 터였다.

“놈들을 죽여라. 이를 시작으로 세상에 우리의 한을 보여줄 것이다.”

“우오오!”

그리고 변화가 시작되었다.

콰득, 콰드득!

주용을 비롯한 일부 계약자들의 육신이 변했다.

짐승과 인간, 그리고 곤충의 모습이 다양하게 섞인 괴물의 모습. 그것은 일부 ‘오래된’ 계약자들이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권능이었다. 고참 계약자들의 경우 악마의 힘에 물들어 더욱 강력한 권능을 끌어낼 수 있다.

반마半魔의 변신.

“키익!”

“캬캬캭!”

이성을 잃은 수십의 짐승이 난입했다.

「흐읍!」

사나운 공세에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던 아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앙!

공방전은 더욱 치열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분명 개개인의 실력은 동료들이 더 강했으나 반마 변신으로 인한 변칙적인 공격, 그리고 수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태였다. “태양의 은총을!”

그렇다고 쉽게 쓰러지진 않았다.

개개인의 역량은 물론 동료들의 연계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뒤죽박죽으로 싸우는 계약자들과는 달리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열세의 상황을 어떻게든 뒤집어보려고 했다.

서걱!

“제길!”

분전하던 바포르가 주춤 물러났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의 뼈 가시에 의해 오른쪽 팔목이 뭉텅 잘려나갔다.

잘못했으면 팔이 잘려나갈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위험한 건 그가 물러나면서 무너진 전열이었다.

“크학!"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주용.

완연한 파리의 형태를 갖춘 그가 쇄도한 곳에는 파트로나가 있었다.

「썩 꺼져라!」

위급한 순간 모습을 보인 건 아만이었다.

콰앙!

방패를 들어 파트로나를 향한 공격은 막을 수 있었지만,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의 이탈로 전열이 완전하게 무너져 버렸다.

소수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 것.

“키키킥. 이제...끝이다...”

마침내 포위망을 형성한 주용과 계약자들이 거센 기세를 뿜어내며 압박한다.

"..."

모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직감했다.

이 전투는 패배로 직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희비가 교차하는 바로 그 순간.

저벅.

교전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라 모두가 똑똑히 그 발걸음 소릴 들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열린 지 한참이 지난 차원의 문.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찌릿찌릿!

단지 존재를 드러낸 그것만으로 사나운 기세가 공간을 장악했다.

“마, 맙소사...”

「헤아릴 수 없는 힘이로구나!」

절로 몸이 떨릴 정도의 절대적인 기세는 지고한 존재의 등장을 알리고 있었다.

“마침내...주인님이...강림하셨다...”

주용은 짐작했다.

이 절대적인 기세라면 악마 중에서도 최고위의 존재, 바로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을.

이 승부는 끝났다.

무슨 이유 때문에 늦게 나왔는지 알 수 없으나 주인님이 함께한다면 상황은 종료된 것인 마찬가지.

이제 이 세계는 멸망의 불꽃 속에서 활활 타오르리라.

“빌어먹을...세상...다 함께...죽는 거다...크하하하!”

하늘을 움켜쥐는 듯한 시늉을 해 보인다.

그렇게나 꿈꾸던 멸망이 이제 시작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뭐래?”

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푸욱!

영역을 뒤덮은 무한한 적빛 궤적은 적이 아니라 그를 비롯해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모든 계약자의 육신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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