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 썩은물은 석유가 되기 직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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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공 아이니가 집정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내정內政의 전문가입니다. 모든 자원 획득이 100% 상승합니다.]
[감동적인 연설로 병력의 사기를 끌어올립니다. 수비 병력의 능력치가 100% 상승하고, 원정 병력의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간부와의 관계가 돈독합니다. 모든 간부의 권능이 강화됩니다.]
...
싱거울 정도로 간단히 아자젤을 쓰러뜨린 후 휘하에 들어온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과연 어마어마한 재능과 특성을 자랑하는 이들답게 부가되는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다.
영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집정관뿐만 아니라 각종 상점, 정찰 및 탐색, 그리고 병력의 운용 등 모든 면에서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왕자님. 정말 완벽한 거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웬만한 공작령이 부럽지 않은 수준입니다.”
날 거지 왕자로 알고 있었던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웬만한 공작령 정도라면 두 대공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말이지?”
내게는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현재 지옥을 양분하고 있는 지배자, 바알과 베엘제붑에 비해서는 부족하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 배신자들은 위대한 왕의 은총을 받으며 영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력을 갖추었습니다. 허나 왕자님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이 정도의 거점을 마련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아스모데우스가 침을 튀겨가며 역설했다.
확실히 그는 다른 악마들과는 달랐다. 그냥 명령을 따르는 72 악마와는 달리 충심을 다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해 이 친구들이 왕자님을 돕고 있지 않습니까. 빠른 시일 내에 배신자 녀석들을 뛰어 넘는 세력을 형성하실 수 있을 겁니다.”
확실히 그 말이 맞다.
예상하지 못한 72 악마의 등장으로 빠른 시일 내에 바알과 베엘제붑을 넘볼 수 있을 만한 기반을 마련했다.
“아니. 그건 너무 늦어.”
얌전히 숨어 지내며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근방에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영지가 어디지?”
“붉은 황야를 다스리는 악마라면 남쪽의 아브락사스 공작, 그리고 북서쪽의 구시온 후작이 있습니다.”
“녀석들을 정리하면 붉은 황야 영토는 정리가 되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들을 지배하에 둔다면 북쪽 영토는 온전히 왕자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허나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당장에 움직일 것을 눈치 챈 아스모데우스가 첨언했다.
“구시온 후작이라면 몰라도 아브락사스 공작은 바알의 심복 중 하나. 그 세력은 지금의 왕자님이 쉽게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아스모데우스의 말이 맞습니다. 아브락사스는 음흉한 자. 그를 상대하는 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구시온 후작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 아브락사스라는 녀석이 붉은 황야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것 같다.
“아몬.”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당장 달려가 아브락사스의 목을 왕자님에게 바치겠습니다.”
우려가 많은 참모진과는 달리 우리의 용맹한 아몬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아니. 참모진 말 못 들었어? 위험하다잖아. 아몬은 지금 당장 전 병력을 이끌고 구시온의 영지를 털어버려.”
속전속결이다.
적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기 전에 최대한 많은 영토와 세력을 흡수할 생각이었다.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아브라삭스가 아닌 구시온이라는 말에 약간은 실망한 듯 했지만, 이내 표정을 지우곤 명령을 따랐다.
확실히 처음과는 다른 반응이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른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인정한 느낌?
아마도 그건 아자젤과의 전투를 통해 내 무력을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녀석들이 파악한내 무력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왕자님은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친정親征하시겠습니까?”
불과 조금 전에야 변변한 세력 하나가 없어서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아자젤의 병력을 온전히 흡수해 꽤 대단한 위세를 자랑할 수 있게 된 것.
더욱이 병력을 지휘할 장군도 워낙 쟁쟁한 인사들이 모여 있으니 별달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렇기에 고작 후작을 상대하는 데 나까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현명하신 결정이십니다. 정복 전쟁도 중요하나 내실을 다지는 것 또한 중요한 일. 왕자님은 영지에서의 일을...”
왠지 길어지려는 아스모데우스의 말을 끝까지 들을 일은 없었다.
“아니. 나는 지금 당장 아브락사스의 모가지를 따러 갈 건데?”
"..."
황당하기 그지없는 내 말에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
“뭐, 뭣이?!”
부하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 뜬다.
경악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만이 느껴지는 표정. 그 표정의 주인공은 수탉의 머리에 인간의 몸,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뱀으로 이루어진 다리를 가진 악마였다.
영겁의 공작 아브락사스.
북쪽 붉은 황야를 다스리는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바알의 수족 중 하나인 대악마.
웬만하면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가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출하고 있었다.
“아자젤 후작이 소멸했다고?”
믿을 수 없는 소식의 내용은 아자젤의 소멸 소식이었다.
비록 자신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중립 악마들 중에서는 그래도 꽤 강성한 세력을 자랑했던 존재다.
그런데 뜬금없이 소멸했단다.
주인인 바알을 위해 그를 끌어들이려던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설마 구시온이냐?”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배후에 누가 있느냐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경쟁 관계에 있었던 구시온 후작뿐이었다.
같은 중립의 입장이었지만, 평상시에도 물과 기름과 같았던 녀석들이라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고도 남을 테니까.
“아닙니다.”
“허어?”
아니라는 말에 의문은 더욱 증폭된다.
“그럼 누구냐?”
“아자젤의 소멸 소식을 알리고 영지를 수습한 건 분명 아가레스 공이었습니다.”
“아가레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위대한 왕의 수호대...”
“맞습니다. 위대한 왕의 수호대, 72 악마 중 하나인 아가레스 공이 틀림없었습니다.”
“맙소사!”
이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설마 잘못 봤다거나, 착각한 건 아니겠지?”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다만 상황의 심각성으로 인해 재차 확인한 것일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눈앞의 악마는 그의 심복 중 하나였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부하였던 그를 아자젤 진영에 심어둔 건 혹시 있을지 모를 베엘제붑과의 접촉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작 부하는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들이 나타났다는 건 설마...”
위대한 왕이 아니라면 결코, 다룰 수 없는 왕의 수호대가 활동한다?
아브락사스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간부 회의를 소집...”
콰앙!
하지만 그는 갑작스레 울려퍼지는 굉음으로 인해 자신의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오! 닭 대가리!”
마력으로 보호되고 있는 성벽을 뚫고 들어온 건 낯선 악마였다.
염소 머리, 오망성의 핏빛 문양이 이마에 그려진 악마는 아브락사스를 향한 강렬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녀석이로군. 누구냐?”
과연 대악마. 적이 분명한 존재의 등장에도 태연했다.
“널 고소하게 튀겨줄 치킨가게 사장님이시다.”
파앗!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염소 악마의 손에서 젓빛의 궤적이 피어났다.
*
푹!
“크흡!"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린 아브락사스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오, 용케 살았네?”
척.
다시금 손에 돌아온 궁니르를 쥐며 웃었다.
“어,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눈이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곧장 궤적을 파악하곤 마력의 방패를 펼쳤지만,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으니까.
절대관통 앞에서는 그 어떤 방어 행위도 소용이 없단다, 닭 대가리야.
“응. 그냥 죽어.”
그것이 베히의 권능, 절대적인 기동성을 이용해 성 안에 무단침입한 단 하나의 이유였다.
핏!
절대관통의 권능을 가진 진 궁니르가 다시 한 번 붉은 궤적을 그렸다.
“끄아악!”
어김없이 비명이 울려퍼졌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또 피했다.
아니, 피한 게 아니라 마지막 순간 몸을 틀어 급소인 심장을 빗겨가게 만들었다.
“뭐, 뭣들 하느냐!”
오른쪽 복부를 꿰뚫린 녀석이 고래고래 소릴 질렀고.
“공작님을 지켜라!”
“녀석을 죽여!”
아마 성 안에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었던 듯 옅은 빛이 번쩍이며 녀석의 부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둘이 아니다. 수십의 고위급 악마가 내 주위를 감쌌다.
“나야 땡큐지.”
절정의 기세를 뿜어대는 적의 등장이 반갑기만 하다.
내게 있어서 고위급 악마는 위협적인 적이 아니라 궁니르의 능력을 향상시켜줄 고마운 먹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짊어진 순교자의 성력이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성창 롱기누스가 당신을 온전한 주인으로 인정하며, 가장 찬란한 빛을 발산합니다.]
지옥에 온 이후 처음으로 바포메트 스킨을 벗었다.
“이, 인간?!”
“어째서 인간이!”
마침내 내 진실된 정체를 파악한 녀석들이 경악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악마란 존재는 모두 소멸할 테니까.
“이곳을 너희가 제일 싫어하는 장소로 만들어 줄 게.”
콰직!
악마보다 더욱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롱기누스를 지면에 꽃아 넣었다.
구구구구궁!
찰나의 순간 일어난 엄청난 진동과 함께 롱기누스가 형용할 수 없는 찬란한 광채를 발산했다.
[순교자의 성역聖域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성역의 영향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악마 종족의 능력치가 대폭 감소하고, 사악한 권능은 때때로 실패하게 됩니다.]
롱기누스라는 신기를 결계의 핵으로 삼아야만 발휘할 수 있는 순교자의 성역.
"으으으..."
일단 성역에 발을 들인 악마는 눈앞에 보이는 녀석들처럼 물에 빠진 생쥐 꼴을 벗어날 수 없다.
키잉, 키잉!
사전 준비는 끝났다.
베히가 전해준 권능, 시간의 흐름을 이용해 느려진 시간 속을 거닐었다.
“레비.”
거기에 더해 레비의 무기 강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실은 회풍을 발휘했다.
서걱!
좁은 공간, 거기에 성역으로 인해 약화된 능력까지.
띠의 형태로 퍼져 나간 회풍에 저항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
미친 듯이 울려 퍼지는 레벨업 알림. 하지만 나는 끝까지 집중 상태를 놓지 않았다.
“커흑!”
“끄으윽!”
몸통이 잘리고도 여전히 움직이는 녀석들이 대다수였다.
악마는 인간과 다르다. 사지가 잘리고도 금방 재생하는가 하면 심장을 관통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
고작 몸통이 두동강 났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것.
파파파파팟!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뤄진 무한한 찌르기가 영역을 지배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
고위급 악마가 주는 경험치는 어마어마했다.
260, 270을 돌파해 어느새 275에 도달한 그 순간.
[영겁의 재앙 아브락사스 공작을 쓰러뜨렸습니다.]
[‘위업 : 지옥의 공작’을 획득했습니다.]
바알의 수족 중 하나이자 북쪽 붉은 황야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영겁의 재앙 아브락사스는 허무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녀석이 약해서가 아니다.
내 템빨, 진 궁니르에 깃든 절대관통이 그야말로 밸붕의 권능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누가 알겠는가.
모든 방어 능력을 무효화하는, 그냥 관통해 버리는 미친 무기가 있을 것이라곤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휘유."
내가 만든 장관에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수십의 고위급 악마가 소멸한 자리. 다시금 돌아봤을 때 그곳에 남은 것은 옅은 녹광을 발하는 마력의 정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