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고인물의 특성은 템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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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50.
「크흐흐…」
검은 갑주의 기사, 전쟁의 기사 모드레드가 처연하고 웃고 있었다.
그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건 인류를 대표하는 강력한 초인.
권왕과 검왕, 화왕, 그리고 초인 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강자들이었다.
화이트 포탈을 찢고 나타난 전쟁의 기사로 인해 인류는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사실 모드레드 자체는 그리 위협적인 적이 아니었다.
비겁자의 검이 족쇄가 되어 공격 행위가 불가능한 그는 방어만 할 줄 아는 그저 샌드백에 지나지 않았던 것.
하지만 강력한 정신 지배를 통해 특정 지역과 세력을 자신의 병사로 만들고, 이를 통해 인류의 뒤통수를 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고작 그 하나로 인해 인류는 엄청난 피해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더는 피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세계가 연합해 전쟁의 기사 모드레드를 마침내 죽음으로 이끈 것이다.
“네 녀석은 기사의 긍지마저 잃어버린 것이냐!”
아서 왕의 힘을 계승하기도 한 검왕이 일갈했다.
사실 존재를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일 수밖에 없다.
그 유명한 캄란 전투에서 모드레드에 의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그 혼이 울부짖고 있었다.
「아서 왕의 파편인가? 비겁자라. 웃기는군.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왕이 내뱉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모드레드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문 모를 말을 남기며 모두의 울분을 샀다..
「인정한다. 이번 승부는 너희의 승리다. 하지만 이게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모드레드.
부서진 투구 사이로 보이는 그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과연 마지막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희는 깨닫게 될 것이다. 너희를 지켜주던 힘이 도리어 세계를 삼키는 것을...」
여전히 영문 모를 말이다.
「그리고 나의 죽음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것이니...」
“닥쳐라!”
서걱!
결국, 참지 못한 검왕의 엑스칼리버가 그의 육신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꽈드득!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펼쳐졌다.
기이하게 꺾인 모드레드의 육신이 압축되고, 압축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검은 구체로 화한 것이다.
번쩍!
불길한 빛으로 점멸하던 검은 구체는 스스로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3개의 구체로 분열했다.
각기 붉은색, 초록색, 청황색의 구체.
파파팟!
허공에 잠시 머무르던 그것은 이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뭐, 뭣!”
“이게 무슨!”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낀 이들이 재빨리 그것을 쫓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장내 모두의 인지 영역을 넘어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인 3개 구체는 멀찍이 달아난 뒤였다.
전쟁의 기사를 물리쳤다는 기쁨도 잠시.
인류는 질병, 기근, 그리고 죽음의 권능을 가진 세 명의 기사로 인해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
모드레드 녀석은 말 그대로 전쟁을 뿌리는 재앙 덩어리였다.
그 역할에 충실해 소멸 이후에도 재앙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셈.
누구도 몰랐을 사실, 하지만 회귀자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까운 10레벨 스크롤을 써가며 인근 지역을 봉쇄했고, 이 망할 재앙의 씨앗이 퍼지는 것을 막았다.
짧은 회상을 뒤로한 채 정면을 응시했다.
시선 너머. 그곳에 붉은색, 초록색, 그리고 청황색의 위엄을 뒤집어쓴 세 명의 기사가 있다.
비록 표정은 살필 수 없으나 당황하고 있는 게 보인다.
아마 녀석들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모드레드의 죽음과 함께 세계에 뿌려져 후일을 도모할 줄 알았겠지.
그런데 웬걸? 이렇게 어이없게 봉쇄당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이르지.
구구궁!
작정하고 방출한 내 마력이 일대를 지배했다.
「흐읍!」
강렬한 기운에 반응한 녀석들이 각각의 무기를 꺼냈다.
단도, 지팡이, 그리고 수정구. 그러나 그 반응은 너무 늦다.
슈슈슈숙!
내 마력에 감응해 인벤토리를 빠져나온 창이 공간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150레벨이 되면서 사용할 수 있는 창의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사실 더는 걸리적거리는 게 없다.
불살의 금제? 개뿔.
내 눈앞에 있는 건 마땅히 죽여야 할 재앙,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손속에 사정을 두는 일은 없다.
“가라!’’
파파팟!
살의에 반응한 창이, 하나하나가 보물이라 부를 수 있는 창의 무리가 종말의 기사를 향해 쇄도했다.
「이, 이익!」
놈들에게는 너무도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다.
일련의 과정에 당황한 듯했지만, 그래도 녀석들은 재앙이라 부를 만한 존재들이었다.
부우웅!
기근의 기사, 비비안이 생성한 기의 장벽이 주변에 생성되었다.
콰콰콰콰쾅!
그러나 내 의지에 반응한 창은 장벽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순다. 반드시 장벽을 뚫어내고 재앙의 기사를 꿰뚫을 것이다. 그리고 내 창은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파캉!
수백 개의 창이 떨어졌을 때 마침내 장벽이 부서졌다.
「아아악!」
창의 비가 내렸다.
그것은 지구에서 재앙을 말끔하게 씻어낼 정화의 비기도 했다.
콰직, 콰챠챵!
떨어진 창이 1,000개가 되었을 때 녀석들을 지켜주던 위엄도 부서졌다.
그렇게 내리는 창의 비 사이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마침내 드러난 녀석들의 진정한 정체를.
“귀네비어, 비비안, 모르가나...”
그들의 정체는 아서 왕 전설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인물들이었다.
피를 물들인 것 같은 붉은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미녀는 질병의 기사 귀네비어.
마치 풀잎을 두른 것처럼 수수한 녹색 드레스를 입은 기근의 기사 비비안.
보라색의 짧은 미니 드레스를 입은 죽음의 기사 모르가나.
모드레드와는 다르다.
종말의 네 기사 중 셋은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귀부인들이었다.
「아이들아, 일어나거라!」
죽음의 권능을 가진 모르가나.
그녀의 육신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구체가 지면에 파고든 순간.
드드득!
찰흙의 인형이, 마치 사람을 빚어 놓은 것과 같은 존재들이 일어났다.
철퍽!
녀석들이 보인 행동은 단순했다.
마치 샌드위치를 하듯 종말의 기사들을 덮는다.
철퍽, 철퍽!
수백의 인형이 그곳을 덮은 이유. 그것은 창의 비로부터 녀석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푸욱!
마지막 하나의 창이 찰흙의 산에 꽃혔다.
「이놈!」
콰앙!
고함과 함께 찰흙의 산이 무너져 내렸다.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조금 전 귀부인과는 거리가 먼, 온몸에 검상을 입은 악귀들이었다.
「네 놈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말리라!」
과연 종말의 기사인가.
무한궤적을 이렇게 쉽게 받아낼 줄은 몰랐다.
물론 위엄이라는 보호막의 도움 덕분이겠지만, 창신의 비기를 버텨낼 줄은 몰랐다.
「치유.」
더욱 놀라운 사실은 무한궤적으로 인한 피해를 순식간에 치료했다는 점이다.
질병과 기근의 기사인 귀네비어와 비비안은 남을 해하는 힘과 동시에 그것을 치유하는 양면성의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들이 입은 피해는 순식간에 복원되었고, 상황은 내게 불리한 쪽으로 흘렀다.
「일어나라!」
드드드득!
조금 전 선보이기도 했던 모르가나의 권능이 발휘되었다.
오래전, 신화 속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던 카멜롯의 병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모르가나는 고위의 강령술사.
그녀의 간직하고 있는 수정구에는 수많은 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의 원혼이 가득했다.
영혼을 보관하고, 적절한 상황에 그것을 뽑아 쓴다.
그녀는 걸어 다니는 1인 군단이라 불리는 사악한 네크로멘서였다.
저벅.
원혼으로 가득 찬 언데드. 끔찍한 시체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하지만 녀석들의 권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부패의 씨앗을!」
아름다운 색색의 꽃이 귀네비어 주변으로 피어났다.
분명 아름다운 꽃이나 그것은 치명적인 꽃이다.
푸확!
꽃이 포자를 퍼뜨리자 삽시간에 주위가 녹색 안개로 물들었다.
[부패의 씨앗이 만연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감소합니다.]
[초당 1%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괜히 질병의 기사가 아니다.
귀네비어는 자신에게 허락된 질병의 권능을 퍼뜨렸고, 내게는 치명적인 디버프로 작용했다.
「굶주림의 공간으로 화해라!」
비비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쩌정!
숨 막히는 기운이 주변을 감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아의 지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생명력이 50% 감소합니다.]
[초당 2%의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공교롭게도 질병과 기근의 기사는 인근에 절대의 결계를 형성해 대상의 능력을 하락시키는 디버퍼였다.
하나만 해도 벅찬데 둘, 게다가 강력한 흑마술을 지닌 모르가나까지 합세했으니 이들을 혼자서 상대하겠다는 건 사실 자살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그으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언데드의 행렬.
키잉, 키잉!
예지가 위험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 꼴을 봐라.
전쟁의 기사, 윌리엄, 그리고 닉 협회장과 한판 했다.
심지어 남은 마력을 탈탈 털어 무한궤적을 발현했고, 녀석들은 그것을 버터냈다.
사실상 빈사 상태다.
녀석들도 그것을 감지한 듯 조금 전까지 보였던 당황한 모습은 없다.
입가에 그려진 잔혹한 미소. 녀석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크크큭.
아주 김칫국을 한 사발 드링킹 하시는구나.
“이긴 것 같지? 그치?”
히죽, 웃으며 물었다.
나는 회귀자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 전쟁의 기사를 쓰러뜨리면 나머지 종말의 기사 셋이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았지.
왜?
그들이 흩어진다면 아무리 빨리 손을 쓴다 해도 인류가 심각한 피해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온전한 전력을 갖출 필요는 없었을까?
없다. 지금이야말로 나는 만전이었다.
“미안하지만, 너희는 여기서 죽어.”
이유 없는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 이유. 그것은 하나의 티켓에서 비롯된다.
[아이템 무제한 사용권(10분)을 사용하겠습니까?]
[Yes /No]
육위계의 속성 던전을 클리어하고 난 후 나는 관리자에게 색다른 선물을 받았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굉장한’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선물. 그것이 이거다.
『아이템 무제한 사용권(10분)
종류 : 소비 용품
등급:Unknown
사용 효과 : 지정된 시간 동안 제한 없이 아이템을 사용하게 해주는 기묘한 티켓
설명 : 관리자가 당신에게 추천♥』
사용권은 말 그대로 하나의 아이템을 선택해 해당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티켓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르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주어진 대신 모든 아이템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비록 레벨 제한으로 인해 창고에 보관된 일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으나 상관없다.
지금 내 인벤토리에는 아오스 시절 내가 주로 사용하던 오대 신기가 모두 보관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꿀꺽!
가장 먼저 갤러해드에게 계승받은 권능을 발현해 신성한 포도주를 삼켰다.
[성배에 담긴 포도주를 복용했습니다.]
[치명적인 부상을 제외한 모든 상처가 회복되고, 소모했던 모든 마력이 차오릅니다.]
빈 깡통에 불과했던 육신에 활력이 도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건 신호였다.
“부름에 응하라, 브류나크.”
쿠쿠쿵!
대기가 찢기며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창공에서부터 한 줄기 빛의 점이 떨어져 내렸다.
“흩어져라, 거-볼그.”
파파파파팟!
내 손을 떠난 게-볼그 수만 개의 가시가 되어 흩어졌다.
“세상을 밝혀라, 롱기누스.”
번쩍!
감히 눈을 뜰 수 없는 신성한 백광이 세상을 물들였고.
“꿰뚫어라, 궁니르Gungnir!”
모든 적을 꿰뚫는 관통의 창, 궁니르가 적빛 궤적을 그렸다.
“커져라, 여의!"
쑤욱!
그리고 마지막, 더할 수 없이 크기를 불린 여의금고봉이 내리꽃혔다.
콰콰콰콰콰콰쾅!
오대 신기의 발현. 그것은 종말을 상징하는 세 기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