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 고인물은 한 놈만 팹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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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의 결계가 파괴됐지만, 협회 내부로 들어가진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콰콰콱!
보도블록 위, 힘을 주어 선을 그었다.
“당부합니다. 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 선 위를 넘어오지 마십시오.”
그건 쓸데없는 희생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혼자서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
조금 전 결계의 존재를 알려줬던 헨더슨 어르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협회에 있는 건 피를 흘려야 할 적이 아닙니다. 강력한 정신 지배 능력에 휘둘리고 있는 어제의 동료들이죠. 만약 이곳의 모두가 협회로 진입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의 사태로 번지고 말 겁니다.”
"정신 지배라...”
“역시 그랬군."
이야, 의심도 없이 믿는 것 봐라.
하긴. 다른 누구도 아닌 창왕의 말이다.
내 존재가 말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것이다.
“짐작하던 바이긴 하지만, 자네 혼자서 검왕과 협회장을 감당할 수 있다고? 그건 무신이 온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야.”
“1시간!”
구차한 말 대신 검지를 펴며 1을 만들었다.
“1시간에 이번 사태를 끝내겠습니다. 만약 1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단, 그전까지 시간을 보장해 주십시오.”
그것은 다짐이기도 하다.
어차피 1시간이 지나면 전쟁광이 모든 준비를 마칠 것이다.
그 이상의 시간은 의미 없다. 반드시 1시간 이내에 이번 사태를 수습해야만 한다.
"정말 오만하군...”
헨더슨 어르신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창왕이 하는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겠지. 나는 그대를 신뢰한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떻지?”
피닉스 길드라 하면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 중 하나였다.
특히 헨더슨 어르신은 초인계의 노장. 그 입김은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할 수밖에 없었다.
“헨더슨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저희도 찬성입니다.”
애초에 희생 없이 없이 사태를 진압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겠지.
장내에 모인 길드의 수장들과 여러 초인이 그 의견에 동조했다.
“단, 그 1시간 내에 시민들이 다치거나 혹은 다른 불상사가 생긴다면 언제든 개입하겠네. 동의하는가?"
“동의합니다.”
헨더슨 어르신이 보증을 섰다면 믿을 만하다.
종말의 날,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인 그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적어도 그라면 약속을 어길 사람은 아니다.
“그럼.”
꾸벅, 인사한 후 등을 돌렸다.
헨더슨 어르신 덕분에 생각보다 설득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지금부터 정확히 1시간.
사상 최악의 재앙이 될 수 있는 사태를 진압해야만 한다.
콰앙!
앞을 가로막은 정문을 걷어차며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1층 로비. 넓은 홀을 지키고 있는 건 협회 직원으로 보이는 수십의 초인들이었다.
그냥 초인이 아니다.
협회 본부의 초인들이라 하면 다들 한가락 했던 강자들.
"적이다!"
“쓰레기 녀석이 제 발로!”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진득한 적의와 살의였다.
전쟁광 녀석이 무서운 이유가 이거다. 단순히 대상의 이지를 빼앗는 게 아니라 조작된 기억을 심어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갖도록 만든다.
아마 저들의 눈에 비친 나는 부모를 죽인 원수, 바퀴벌레보다 더 혐오스러운 존재일 것이다.
“정신 못 차리는 놈들은 좀 맞아야지.”
세상을 살다 보면 말이나 법보다 주먹이 가까울 때를 느끼곤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키잉!
시간이 멈췄다.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만이 자유롭다.
꽈악.
여의금고봉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진다.
비록 봉이라는 독립된 형태의 무기였지만, 아오스에서 이것은 창의 부류에 속해 있다.
그 말이 무엇인가 하면 진경급 창법의 영향을 받는단 소리다.
파파파파팟!
흔들리지 않는 자세에서 이루어진 수백 번의 찌르기가 공간을 지배했다.
빠르고, 강하다.
그거면 충분했다.
퍼퍼퍽!
"큭!"
"커헉!”
꽃처럼 피어난 여의의 그림자가 로비를 지키던 초인들을 강타했다.
[불살의 금제로 인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없습니다.]
그와 함께 귓가로 파고드는 알림이 있었다.
“여윽시!”
역시는 역시다.
이 투전승불 스킨이 활성화되면 해금된 여의금고봉을 사용할 수 있거니와 긴고가 가진 추가 능력치 효과를 받을 수 있다.
다만 깨달음을 얻은 선인仙人의 의지마저 깃들어 살인할 수 없는 페널티를 받는다. 평소보다 더욱 강력한 힘과 능력을 갖추는 대신 누군가를 죽일 수 없는 금제에 빠지게 되는 것.
그것은 삼장법사가 손오공에게 가했던 금제 중 하나인 불살의 금제였다.
미후왕이나 제천대성 스킨이었다면 강력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이 투전승불 스킨이 있으면 정신 지배에 빠진 멍청이들을 마음 놓고 팰 수 있다.
“으하하하!”
퍼퍼퍼퍽!
손에서 그려지는 궤적과 잔영이 어김없이 초인들을 두드린다.
자 봐라!
이렇게 사정 봐주지 않고 패는데도 누구 하나 죽지 않는다.
“아이고!”
“어엌!”
그저 이어지는 매타작에 신음할 뿐이다.
충분히 육신을 터뜨려버릴 어마어마한 힘이었지만, 여의금고봉이, 그리고 긴고가 조절하는 것이다.
“아이고는 무슨, 일단 맞자.”
수십 초간 여의금고봉과 하나가 되어 초인들의 육신을 두드렸다.
“아악! 아파!”
“그, 근데 내가 왜 맞고 있는 거지?”
맞는 와중에도 적의와 살의로만 가득했던 초인들의 기세가 바뀌었다.
왔구나!
전쟁광 녀석의 정신 지배가 강력한 건 사실이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고통. 육신에 가해지는 충격에 의해 정신 지배를 풀 수 있는 것. 과거에는 이 사실을 몰라서 대량의 피를 흘려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녀석의 약점은 물론 그 약점을 공략할 수 있는 크고 아름다운 봉이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털썩.
모진 몽둥이찜질에 일부는 정신을 차리기도 했지만, 또 일부는 아예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다.
어차피 뒤처리는 내가 아니라 1시간 뒤에 들어올 이들의 몫.
지금 집중해야 할 일은 협회에 있는 이들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
웅웅!
마력을 집중하자 긴고가 요란하게 떨기 시작했다.
스스스-
긴고의 떨림과 함께 내 육신도 덩달아 떨렸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격하게 진동하던 육신이 하나둘 잔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잔상은 어느새 로비를 가득 채울 정도가 되었다.
“가즈아!”
"멍청이들을 족치자!”
“우릴 건드리면 아주 주옥되는 거야!”
손오공의 장기이기도 한 분신술.
그것도 단순한 눈속임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각자의 자아를 가진 진짜다.
“잔챙이들은 너희에게 맡긴다.”
“예썰!”
힘차게 대답한 분신 녀석들이 각각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비록 많은 분신을 양산해 힘이 분산되기는 하겠지만, 일반 협회 초인들을 쓰러뜨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콰쾅, 퍼퍽!
곳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일어났다.
감각의 확장을 통해 분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똑똑히 알 수 있다.
예상했던 대로 내 분신은 협회 곳곳에 숨어 있던 초인들을 쓰러뜨리는 중이었다.
잔챙이 처리는 녀석들에게 맡기고.
찌익!
미리 준비해둔 마법 스크롤을 찢었다.
[‘주시자의 눈(Lv9)’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피잉-
그 순간 위성에서 들여다본 것처럼 건물의 내부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이 편리한 스크롤 덕분에 건물의 구조뿐만이 아니라 어디에 누가 있는지도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 친애하는 윌리엄과 닉 아재는 꼭대기, 협회장실에 계시는구만.
산책이라도 나온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30층, 협회의 꼭대기를 향한 여정...
띵!
...은 금방 끝이 났다.
꼭대기 층에 올라오자 길게 이어진 복도가 나를 반겼다.
뚜벅뚜벅.
한결 여유를 즐기며 걸어가던 중이었다.
[분신(1)의 기운이 다시금 하나가 됩니다.]
[분신(2)의 기운이 다시금 하나가 됩니다.]
[분신(971)의 기운이 다시금 하나가 됩니다.]
목적들 달성한 분신이 돌아와 다시금 나의 힘이 되었다.
“멈춰라!”
“쓰레기가 감히!”
협회장실을 향해 가는 길목, 그 앞을 막아선 건 익숙한 인물들이었다.
일전에 만나기도 했던 안토니와 에밀리아, 그리고 18인의 엘더.
초인들의 힘을 통제하기 위해 수백 년 간 이어져 내려온 힘을 전승받은 이들. 내 짐작이 정확하다면 모두가 랭킹 50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강자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투전승불 스킨을 착용한 내 앞에서는 별거 아니라는 것도.
"커져라, 여의!"
쑤욱!
좁은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꽉 메우는 여의금고봉이 있다.
“합!”
의지가 닿은 순간 태양을 뚫는, 아니 태양을 파괴할 것과 같은 찌르기가 펼쳐졌다.
콰앙!
그러나 그 진로를 가로막은 게 있다.
몸에 딱 달라붙은 가죽옷을 입은 붉은 머리칼의 여인은 보호자 셀레나. 아군을 보호하는 능력에 관해서 만큼은 발군인 인물이었다.
“놈을 잡아!”
거대해진 여의금고봉 사이로 파고드는 그림자가 있다.
멍청이들!
화악!
눈에 마력을 집중하자 별안간 세계가 금색으로 물들었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그 현상은 고도의 집중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것은 고도의 집중이 아니다.
그보다 더욱 강력한, 상위의 권능이었다.
화안금정.
팔괘로에 갇힌 손오공이 터득한 비술.
그 효과를 보자면 고도의 집중과 예지를 합쳐 놓은 것과 같다. 물론 절정급에 이른 이 숙련도 따위를 절세의 비술과 비교하는 건 무리긴 하겠지만.
지잉, 지이잉-
정지된 시간 속에서 금색 선이 그어진다.
가장 선두에 있는 안토니를 비롯해서 마지막 에밀리아까지 이어지는 그 선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뚝!
동시에 화안금정으로 만들어낸 세계가 사라졌다.
콰앙!
있는 힘껏 지면을 박차며 나를 향해 쇄도하는 안토니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후웅!
파괴의 기운을 담은 주먹이 짓쳐 든다.
하지만 그건 이미 예측한 공격이었다.
화안금정이 만들어낸 선은 엘더 20인의 공격 궤적을 정확히 그려낸 것이었다.
그것을 미리 파악하고 있던 내게는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다.
옆으로 허리를 비틀어 파괴적인 일격을 피해냄과 동시에 일섬!
퍽!
“컥!”
정확히 턱 아래. 안토니의 유일한 약점이기도 한 부분에 타격을 주어 잠시 그의 균형감각을 빼앗았다.
퍼퍼퍽!
머리, 가슴, 배.
빠르게 이루어진 삼연타에 안토니의 육신이 기이하게 꺾였다.
"놈!"
파지직!
강력한 전격의 힘이 담긴 뇌전의 창 수십 개가 쇄도했다.
퍼퍼퍼펑!
보지도 않았다. 그저 의식적으로 휘두른 여의금고봉이 그 번개의 힘을 모두 소멸시켰다.
의미 없다.
화안금정을 통해 예지와 같은 예측을 발현한 이상 그들의 공격 궤적은 모두 읽혔다.
퍼퍼퍼퍽!
춤을 추듯 하나의 연결 동작으로 엘더들 사이를 파고들었고.
털썩!
육신을 두드린 여의금고봉의 타격은 아무리 단련된 육신이라 해도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뒤로 돌아 쓰러진 이들을 바라본다.
안쓰러워서? 아니.
맛있는 먹잇감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으다다다다!”
퍼퍼퍼퍼퍼퍽!
내 손을 떠난 여의금고봉이 쓰러진 엘더 20인의 육신을 강타했다. 그건 그냥 일방적인 구타이자 폭력이었다.
"커허헉!"
“어흑!”
"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하하! 내가 알 게 뭐람. 어디까지나 이건 화풀이가 아니라 그들에게 걸린 강력한 정신 지배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
“죽어라, 죽어...는 아니고! 어쨌든 맞아라!”
퍼퍼퍽!
초당 몇 대를 때릴 수 있는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1분이 지났을 시점, 넝마가 된 그들을 보면 족히 1,000대 이상은 때리지 않았을까 예측할 뿐이다.
“아이고, 나 죽네...”
“그만, 그만!”
“대체 내가 왜 맞고 있는 거야...”
쳇!
아무래도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이유는 나중에. 지금은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요."
이럴 때 필요한 건 줄행랑이다.
정신을 차린 그들을 뒤로한 채 빠르게 협회장실로 뛰어갔다.
콰앙!
협회장실의 문 또한 날 막았던 정문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다.
「놀랍군.」
마침내 드러난 협회장실 내부.
그곳에 보이는 건 살벌한 기세를 흘리고 있는 윌리엄과 닉 아재, 그리고 하얀 그림자와 같은 의문의 존재였다.
의문은 개뿔. 녀석의 정체는 명백하다.
종말의 상징. 종말을 부르는 4명의 기사 중 하나인 전쟁의 기사였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지만, 나쁘지 않아. 과연 네가 이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비웃듯이 말한 하얀 그림자의 모습이 점차 사라진다.
그래. 네 녀석이 하는 짓이 그렇지.
저 전쟁광 새끼는 과거에도 저런 식이었다.
특정 지역에 갑자기 나타나 그곳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사라진다.
다음에 녀석이 또 어디에 나타날지 몰라 모두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개소리!”
하지만 나는 녀석을 그냥 보낼 마음이 없었다.
녀석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재앙이 되는 녀석이었다.
기회가 있을 때 반드시 제거해야만 한다.
“근두운筋斗雲!”
일갈하며 내 몸에 깃든 투전승불의 힘을 방출했다.
근두운. 보통은 그것을 타고 다니는 구름, 자가용 정도로 생각하지만 아오스에서는 달랐다.
순간적으로 인지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가는 속도를 내게 해주는 초속기의 명칭.
콰아아!
투전승불의 법의가 내게 기운을 보내왔다.
이 순간 나는 지구에서, 아니 모든 차원에서 가장 빠른 존재로 화한다.
팟!
발을 땐 순간 시공간을 뛰어넘었다.
「무슨...!」
하반신이 사라져가던 전쟁의 기사 녀석이 당황한 음성을 내뱉었다.
이 새끼는 믿고 있었을 것이다.
윌리엄과 닉 아재가 자신이 사라지는 시간을 벌어줄 거라고.
그러나 그건 명백한 계산 착오다. 단순한 무력이라면 몰라도 근두운의 권능이 함께하는 내 속도는 그들을 아득히 초월한다.
꽈악!
단단해져라.
단단해지고, 또 단단해져라.
세상 그 무엇도 파괴할 수 있는 단단한 봉이 되어라!
웅웅!
내 마력을 양껏 흡수한 여의금고봉이 비명을 토해냈다.
"뒈져!”
기교는 필요 없다.
수천, 수만, 수십만 번 반복을 통해 얻은 그 절정의 찌르기가 구현되었다.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