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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회귀해버렸습니다-36화 (36/161)

36화.  고인물은 마스터로 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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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군...”

검은 로브의 사내, 세르게이 이바노프가 중얼거렸다.

꽁꽁 싸맨 로브처럼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아 미치광이 동료들 사이에서도 ‘냉혈한’이라고 불렸던 그.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마주하면서도 그 감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쿠웅!

수천 명의 제물을 통해 소환한 크로노스의 화신이 쓰러졌다.

제물의 덫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제외하면 사실상 크로노스의 활약이 없는 셈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저 강력한 존재를 소환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소환에 필요한 제물의 덫을 설치하는 데만 수십 일. 더욱이 이에 필요한 검은 마력을 끌어모으는 데 다시 수십 일이 소요되었다.

소환에 관해서는 세계 제일이라 할 만한 그가 이토록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광경이란 말인가.

어렵사리 소환한 신화의 거인이 이리 허무하게 쓰러지다니.

으득!

원대한 계획을 망친 장본인을 보기 위해 시선이 상공으로 향했다.

쉬이익!

수십 미터 상공,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이가 있다.

쾅!

평범한 사람이라면 곤죽이 되었을 충격. 그러나 사내는 형편없이 무너져내린 지면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먼지를 털고 일어섰다.

단편적이지만, 그 육신의 완성도를 엿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괴물 루키...인가?”

세르게이도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니. 현재 초인으로 활동하는 모든 이들이 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괴물 루키 이연우.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 출신의 초인으로 경이로운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는 신성.

“루키라는 말이 무색하군.”

신화의 거인 크로노스를 일격에 쓰러뜨리는 존재에게 루키라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

사실 처음 소문을 전해들었을 때만 해도 부풀려진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직접 대면하게 되니 오히려 소문은 축소되어 있었다.

“지켜봐야 할 존재. 일단은 물러난다.”

후드 속에 감춰진 서늘한 눈동자가 장내를 훑는다.

손 안에 잡힌 저 미천한 것들을 학살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본부로 돌아가 소문의 루키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줘야 한다.

게다가 이곳은 영국. 언제 올지 모르는 검왕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결심을 굳힌 세르게이는 자신의 검지를 응시했다. 그곳에 황동의 반지가 있다.

해골을 형상화한 이 반지는 베놈 내에서도 18명의 의원들만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아티팩트. 장인에 의해 제작된 귀환의 반지였다.

하루 한 번, 마력을 주입해 지정된 장소로 공간을 뛰어넘는다.

숱한 테러를 자행하고도 18명의 의원들이 잡히지 않은 이유. 적의 중심지 한복판에서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다.

스으으-

안개와 같이 뿜어져 나온 그의 검은 마력이 반지에 스며들었다.

지잉-

비어 있던 해골의 눈동자가 붉게 빛난다.

마력이 충전되었으니 반지에 새겨진 특별한 귀환의 권능이 발현될 것이다.

“조만간 다시 보지...”

원한이 깃든 눈빛으로 괴물 루키를 응시하던 세르게이.

평소였다면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공간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음?”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푸스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귀환의 반지가 머금고 있던 그의 검은 마력이 흩어져버렸다.

“이게 왜...?”

실패할 때가 있었던가?

의문도 잠시. 다시금 마력을 반지에 주입했다.

푸스스-

하지만 마찬가지의 현상이 일어날 뿐이다.

그제야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없어?’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 있던 괴물 루키가 사라지고 없었다.

*

콰앙!

지면을 박찬 순간 그 움직임은 인지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했다.

아직도 내게는 파트로나가 전해준 기적의 힘이 충만한 상태.

그 막강한 힘을 이용해 공간을 뛰어넘어 상대, 세르게이에게 쇄도했다.

“이런!”

뒤늦게 나를 발견한 녀석이 경호성을 발했다.

망할 새끼. 무고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죽여놓고 그냥 가겠다고?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꼴은 못 본다.

피잉!

곧게 뻗어낸 창이 녀석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콰앙!

하지만 어느새 생성된 녹색 마력 방패가 진로를 막았다.

역시 만만치 않네.

녀석은 베놈에서도 선택된 18명의 의원 중 하나. 그 능력은 랭킹 100위권 내의 초인들과 비견될 정도다.

꽈드득!

마력 방패에서 전해진 충격으로 잠시 비틀거리고 있는 찰나의 순간.

순식간에 내 주변을 장식한 뼈의 탄환이 있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수백 개가 허공에 떠 있다.

“꺼져라!”

파파파팟!

녀석의 손짓과 함께 수백 개의 탄환이 내 육신을 향해 짓쳐든다.

키잉, 키잉!

고도의 집중과 예지를 발휘했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 마치 환상처럼 붉은 궤적이 어지러이 피어난다.

예지를 통한 탄환의 궤적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핏!

피하지 않는다.

단지 창을 뻗을 뿐.

찌르고, 찌르고 또 찌른다.

이 공간을 내 창의 궤적으로 지배할 때까지.

퍼퍼퍼퍼퍽!

영역을 지배한 창의 궤적이 짓쳐드는 뼈의 탄환 수백 개를 모조리 부서버렸다.

“흥!”

하지만 녀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콧방귀를 낀 세르게이의 손에 더욱 강력한 검은 마력이 모여들었다.

꽈드드득!

허공에 생성된 건 거대한 뼈의 창.

쐐애액!

완전히 형상을 이룬 그것이 매섭게 쇄도했다.

“흡!”

쾅!

진각을 밟아 힘을 모은 후 창을 뻗었다.

콰콰콰!

마지막 순간 회의 묘리가 실리며 강력한 돌풍이 일어났다.

카카카카캉!

기의 폭풍 휘말린 뼈의 창이 무서운 속도로 깎여 나갔고, 내게 도달할 때쯤에는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주군, 합류하겠습니다!”

몇 번의 공방전 이후 가디언들이 합류를 위해 달려왔다.

“잔챙이들은 꺼져라!”

세르게이의 검은 마력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장내를 지배했다.

드드득!

지면 곳곳에 균열이 생기며 검붉은 광채가 피어난다.

“키키킥!”

“끼익!”

균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임프를 비롯한 최하급 악마.

왜소한 체구의 녀석들은 녹색 피부와 피처럼 붉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예상한 광경이다.

소환은 세르게이의 장기였다.

‘고위급 악마’와 계약을 맺은 계약자. 격이 낮은 악마를 소환하는 건 녀셕에게 일도 아닐 것이다.

“누구 보고 잔챙이래!”

화르르!

잔챙이 취급에 열이 받은 바포르가 성난 불꽃을 터뜨렸다.

퍼퍽, 퍼퍼퍼퍽!

그 불꽃의 잔상이 일렁일 때면 어김없이 악마들이 쓰러졌다.

염제의 권능은 정화의 불꽃이기도 하다. 파사의 힘을 지닌 그 불꽃은 악마와 같은 부정한 존재에게는 쥐약인 셈.

“으랴랴랴랴!”

그렇지 않아도 동작이 날랜 무투계에서도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바포르다.

한 줄기 바람이 된 것처럼 종횡무진 날뛰는 녀석으로 인해 순식간에 장내가 정리되었다.

“키익!”

불꽃의 돌풍이 일어난 순간 그곳에 존재하는 악마는 없었다.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

[보너스 경험치가 200% 상승합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작해야 최하급 악마 수백 마리를 처치하고 2레벨이 상승했다.

조금 전까지 내 레벨은 88레벨이었다.

그런데 이깟 최하급 악마를 처치했다고 2레벨이 오른다고?

아무래도 악마족, 희귀 몬스터로 인한 경험치 보너스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야야, 모두 주목!」

오직 파티에게만 들리는 파티 음성을 통해 세르게이에게 접근하는 녀석들을 제지했다.

핏!

물론 나는 치밀한 인간.

세르게이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파티 음성을 실행하면서도 견제를 잊지 않았다.

「지금부터 무작정 시간 끌기에 들어간다. 적당히 견제만 하도록 해. 약간의 상처 정도면 모를까, 치명적인 공격은 금지. 전부 이해했지?」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알겠어요, 마스터.」

「에이, 잔챙이 취급이나 받고 견제나 해야 하다니!」

「접수.」

보통은 의문을 품을 만한 명령이다.

하지만 녀석들과 내 사이는 의문을 품을 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일단 명령이 떨어지면 무조건 따른다.

그것이 설령 불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놈들!”

약을 올리는 듯한 견제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잔뜩 독이 오른 세르게이가 조금 전보다 더욱 진득한 검은 마력을 방출했다.

스으, 스으으-

마치 검은 비단이 펼쳐진 것처럼 녀석의 마력이 장내를 지배했고.

지이잉-

공중에 그려진 핏빛 오망성. 그곳에서부터 어마어마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르릉!」

오망성을 찢고 나온 것은 검은 그림자였다.

음산한 울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빳빳한 검은 털을 가진 중급의 악마인 헬 하운드.

녀석뿐만이 아니다.

허공에 새겨진 수십의 마법진에서 라르바, 나이트메어와 같은 중급의 악마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스스.

뚜렷한 형체를 가지지 않은, 마치 유령과도 같은 불가사의의 존재가 다가온다.

개꿀.

세르게이야말로 자판기다.

희귀 몬스터를 계속해서 뱉어내는 경험치 자판기 말이다.

[‘순교자의 피’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es / No]

녀석이 소환하는 악마를 본 순간 곧바로 물약을 복용했다.

[순교자의 피를 복용했습니다.]

[지금부터 10분 동안 모든 악마족 적에 대한 공격력이 100% 상승합니다. 악마족이 가지는 면역 능력에 상관없이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중독도가 45%에 달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중독도가 100%에 이르면 각종 위험한 상태 이상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형체가 흐릿한 몽마夢魔. 아마 녀석이 다루는 중급의 악마는 모든 공격에 강력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교자의 피를 복용한 이상 그러한 능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피잉!

「꿰엑!」

내 창에 관통당한 흐릿한 형체, 라르바 녀석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산화했다.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특별’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

[보너스 경험치가 400% 상승합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과연 중급 악마.

최하급 악마보다 200% 증가 된 경험치를 제공했다.

「애들아, 경험치 자판기로 꿀 빨아보자!」

세르게이. 네 녀석은 검은 마력이 다하기 전까지는 곱게 죽지 못할 거다.

*

퍽!

유려하게 움직인 궤적, 신창이 나이트메어의 흐릿한 형상을 관통했다.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특별’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

[보너스 경험치가 400% 상승합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미친!

또 레벨이 올랐다.

10분 째 계속되는 공방전으로 인해 레벨은 99에 도달했다.

드디어 헬 구간이 찾아왔다.

99레벨. 여기서 1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은 이 상태에서 계속 머무르게 될 것이다.

“허억, 허억!”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처음과는 달리 세르게이 녀석에게서 흘러나오는 검은 마력이 미약하기 그지없다.

그럴 만도 하지.

벌써 30분째 검은 마력을 뽑아대고 있었다.

물론 그 마력은 악마들을 소환하는데 사용되었고, 이렇게 소환된 악마는 나와 가디언의 소중한 경험치 양식으로 전환되었다.

“네 녀석... 대체 무슨 수작이냐...”

허탈한 음성이 뒤따랐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내가 끝낼 수 있음에도 적당히 견제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챘겠지.

“레벨업 노가다 중이었다.”

“레벨...업?”

“뭐,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검은 마력 바닥났냐?”

“...”

내 말에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역시. 이게 한계인가보군.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습다.

재앙을 부르는 악마라 불리며 인류를 위기로 몰고갔던 녀석의 꼬락서니를 봐라.

녀석의 불행은 나를 만났다는 거다.

중급 악마라 하면 웬만한 초인도 상대하기 힘든 강력한 존재. 하지만 각종 물약과 템빨로 무장한 내게는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충분히 재앙이라 불릴 만한 녀석이었지만, 상대가 나빴다는 게 학계의 정설.

그리고 나는 수많은 사람을 죽인 저 개새끼를 살려둘 마음이 없다.

이제 끝장을 내야겠다.

꽈악!

창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녀석을 노려봤다.

아마 이 위협을 통해 녀석은 자신의 마지막 수단을 빼어 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녀석에게 원하는 마지막 목적이었다.

“세르게이!”

그 순간 경기장 안 가득히 울려 퍼지는 외침이 있었다.

쉬이익!

한 줄기 선이 되어 장내에 당도한 이.

그는 황금빛 찬란한 엑스칼리버를 쥔 윌리엄 아재였다.

와, 대단하다. 런던에서 맨체스터까지 거리가 얼만데 벌써 도착하다니.

순수한 그 경지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드디어 네 놈을 잡게 되는구나!”

윌리엄 아재는 감격에 겨운 듯 안광을 빛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세르게이의 테러 활동은 주로 영국에서 이루어졌다.

조국을 사랑하는 윌리엄 아재가 녀석에게 품을 원한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준비는 철저했다.

일대를 초인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상대가 상대니만큼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을 테지.

귀환의 반지도 사용할 수 없고, 윌리엄 아재마저 도착했으니 사실상 세르게이는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 없다.

“크하하하!”

돌연 광기가 묻어 나오는 웃음을 터뜨린다.

“설마 내가, 이 내가 루키 따위에게 발목이 잡힐 줄이야!”

원한이 사무친 시선이 느껴진다.

미친 새끼. 지가 죽인 사람들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전형적인 쓰레기 새끼다.

“하지만 이대로 쉽게 물러날 순 없지. 내 비록 여기서 죽겠지만, 혼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처절한 외침을 토해낸 세르게이.

그리고 다음 순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푸욱!

녀석의 오른손이 왼쪽 가슴 부근에 박혔다.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녀석은 태연히 행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

수상쩍은 기운을 감지한 윌리엄 아재가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다.

쿠아아!

엑스칼리버가 만들어낸 기의 폭풍이 세르게이를 휩쓸었다.

“크흐흐...”

하지만 녀석은 멀쩡했다.

자세히 보면 그 주변으로 반투명한 보호막이 생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미 늦었다. 나를 제물로 바쳐 위대하신 분이 이곳에 강림할 것이니...”

촤악!

자신의 심장을 뽑아낸 녀석이 그것을 양손에 받쳐들고서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계약자인 저를 제물로 바치나이다. 꿈의 여왕이시여, 이곳에 강림하시어 세계를 지옥의 불구덩이로 만들어주소서!”

툭.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힘을 잃은 세르게이의 목이 힘없이 꺾였고, 이것이 신호가 되었다.

구구구구궁!

대지가 요동치고 대기가 비명을 질렀다.

“이, 이 무슨!”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내로 꼽히는 윌리엄 아재마저도 그 기세에 동요한다.

뚝!

그리고 어느 순간 세계의 진동이 멈추고.

푸확!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세르게이의 뱃속에서 튀어 나오는 존재가 있었다.

「계약자여. 너의 마지막 소원을 이행하기 위해 나 릴리트가 강림했노라.」

세르게이의 목숨을 담보로 현세에 강림한 건 꿈의 여왕 릴리트. 고위급의 악마로 분류되는 절대의 존재였다.

마치 점으로 찍은 듯한 흐릿한 형상 너머로 보이는 건 아름다운 여인. 그것도 벌거벗은 상태였다.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불완전환 소환. 그러나 그 존재의 조각이나마 이 세계로 불러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르게이의 강력한 힘을 짐작할 수 있다.

「꿇어라, 노예들아.」

후웅!

릴리트의 기세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흐읍!”

그 엄청난 기세에서도 윌리엄 아재는 꿋꿋하게 버티고 섰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전력을 다한다 해도 감히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괜찮습니다. 윌리엄 아재.

릴리트는 이 고인물이 처리할 테니 안심하라고!

녀석이 최후의 순간 릴리트를 소환한다는 것. 그건 회귀자인 나도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녀석의 마지막 발악으로 소환된 릴리트는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비록 온전하지 않은 소환이었지만, 고위급의 악마를 그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알면서도 소환을 유도한 것. 그건 녀석을 감당할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템 자유 사용권(1시간)을 롱기누스에 사용하겠습니까?]

[Yes / No]

인벤토리를 벗어나 내 손에 쥐어진 것.

언뜻 보면 나무 꼬챙이와 같다. 하지만 그건 이 창의 진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화악!

마력을 주입한 순간 나무 꼬챙이는 더없이 성스러운 휘광으로 빛났다.

성창聖槍 롱기누스.

상대가 악마족이라면 반드시 소멸시키고야 마는 악살惡殺의 창.

팟!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힘을 롱기누스에 담아 투창했다.

궤적은 그려지지 않았다.

마치 섬광이 일어난 것처럼 세상이 백광에 물들었고.

「아아아악!」

릴리트의 형상은 롱기누스에 꿰뚫린 채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파스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성창에 담긴 악살의 기운은 릴리트 따위가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위급 악마, 꿈의 여왕 릴리트의 일부를 쓰러뜨렸습니다.]

[‘칭호 : 꿈을 먹는 자’를 획득했습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비록 일부에 불과하나 고위급 악마를 처치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관리자가 당신의 업적을 치하하며 특별한 선물을 부여합니다. 인벤토리에 있는 선물을 확인해 보십시오.]

오래 머무르고 있을 거로 생각했던 레벨업 알림이 찾아왔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축하합니다. 100레벨이 되어 마스터의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지금부터 절대적인 위력의 ‘오의奧意’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각종 추가 효과를 부여하는 당신만의 애완동물, 펫의 잠금이 해제됩니다.]

마침내 나는 100레벨, 마스터의 영역에 올라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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