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고인물은 흑막을 보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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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
“도, 도망쳐!”
“비켜, 비키라고!”
흘리드스캴프를 통해 도착한 올드 트래퍼드. 장내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제길!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한발 늦었다.
‘녀석’이 준비한 제물의 덫은 이미 발동한 뒤였고, 수천의 관중을 제물로 삼은 크로노스가 심연의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고 말았다.
키잉!
고도의 집중력을 발현했다.
어떻게든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구하려면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씨발!”
멀찍이 펼쳐지는 광경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딜 봐도 단란해 보이는 가족.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갓난아기가 하염없이 울고 있다.
탓!
의지가 움직인 순간 이미 내 육신은 크로노스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도약.
그 폭발적인 힘을 손에 쥔 창에 그대로 실어 녀석의 관자놀이를 찔렀다.
콰앙!
분명 관자놀이에 적중했으나 들려온 건 살을 가르는 소리가 아니라 폭음이었다.
[소환된 신화의 존재를 공격했습니다.]
[절정급 창법(Lv 6)의 숙련도가 0.7% 상승합니다.]
[학살의 왕 크로노스를 공격해 숙련도 보너스를 얻었습니다.]
[모든 숙련도가 600% 상승합니다.]
[보너스가 더해져 절정급 창법(Lv 6)의 숙련도가 4.2% 상승합니다.]
놀라울 정도의 숙련도 상승 알림과 함께.
후웅!
거센 충격파에 의해 몸이 밀려났다.
타탓!
덮쳐오는 기운을 발로 차듯 밀어내 그 반동으로 훨훨 날았다.
허공에 뜬 짧은 순간을 이용해 균형을 잡하 무사히 지면에 착지할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볼 필요도 없다.
곧장 정면을 응시했다.
쿠웅!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거인, 크로노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여파로 경기장이 움푹 파인 건 물론 충격파로 인한 강풍이 일대를 강타했다.
파파팟!
흙먼지와 파편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녀석을 주시했다.
「재밌군. 이 나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니.」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킨다.
관자놀이를 확인했으나 조금 그을린 흔적이 있을 뿐 생채기 하나 없다.
과연 크로노스.
신화라는 격을 지녔을 정도면 가진바 힘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과거만 봐도 그렇다.
소환된 녀석으로 인해 맨체스터 일대가 쑥대밭이 되지 않았던가.
만약 영국에 윌리엄 아재와 원탁의 기사들이 없었더라면 맨체스터 일대가 아니라 영국 전체가 위험해졌을 것이다.
그 윌리엄 아재조차도 상대하기 힘들었다고 하는 신화의 거인. 그 녀석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 따위는 없다.
“고통뿐이겠냐. 너 새끼는 소환된 날이 제삿날인 줄 알아라.”
「후후. 하찮은 벌레 주제에 건방지구나.」
분노한 녀석이 낫을 치켜든다.
망할 새끼!
저 무지막지한 낫을 휘두른다면 단순히 나 혼자만 피해를 받는 거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젤루!”
“예스!”
짝!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듯 손뼉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쩌저적!
크로노스 녀석의 낫과 팔 전체가 얼어붙어 동작이 일시 멈췄다.
「흐음?」
갑작스레 얼어붙은 자신의 팔을 보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별로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여유라니.
안 봐도 빤하다. 저 새낀 지금 우릴 개미 정도로 하찮게 생각하고 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닌가.
녀석이 작정하고 난동을 피웠다면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
이번 전투는 시간 싸움이기도 하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만 헛된 희생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이 저 오만한 덩치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버릴 시간이다.
콰콰콰!
육신에 깃든 마력, 현실에서는 초인력이라 부르는 미증유의 힘이 대기와 만나 사나운 돌풍을 일으킨다.
생각해 보면 레벨업 이후 단 한 번도 전력을 다했던 기억이 없다.
상대의 사정을 봐줘야 하거나, 혹은 숙련도 노가다라는 이유로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신화의 거인이다. 전력을 다한다 해도 쓰러뜨리라 보장할 수 없는 신화의 존재가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손에 사정을 둘 이유가 없다.
쾅!
지면을 박차며 높게 뛰어올랐다.
이 거대한 덩치를 공격할 곳이야 한두 군데겠냐마는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크로노스의 유일한 약점은 얼굴이다.
그곳을 제외한, 다른 어디를 공격해도 타격을 받지 않는다.
과거, 윌리엄 아재도 이러한 특징을 몰라 쓰러뜨리는 데 애를 먹었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온 나는 그러한 실패의 과정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도약으로 녀석의 얼굴을 사정거리에 두었다.
“꿰뚫어라!”
일갈과 함께 창을 뻗었다.
피잉!
탄환이 발사된 것과 같은 일직선 궤적. 폭발적인 힘을 실은 관일이 발현되었다.
콰앙!
정확히 미간을 두드렸으나 마찬가지의 폭발이 이어질 뿐이었다.
[절정급 창법(Lv 6)의 숙련도가 4.2% 상승합니다.]
[축하합니다. 절정급 창법 Lv 6이 절정급 창법 Lv 7로 상승합니다.]
굿 타이밍!
창법의 레벨 상승. 그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창대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는 것을, 그리고 내 창법에 더욱 강력한 힘이 깃들 수 있단 사실을.
“흐압!”
충격파에 저항했다.
버틴다. 초인력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허공에서 간신히 균형을 유지했다.
“한 방 더!”
이것으로 녀석이 쓰러질 턱이 없다.
갤러해드와 같은 신화의 존재. 더욱이 인신공양을 통해 그 화신化身이 나타난 셈이다.
고작 한 방으로 쓰러질 거였다면 윌리엄 아재가 애를 먹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웅웅!
혼신의 일격, 절정급의 숙련도를 담아 창을 뻗었다.
콰콰콰!
나의 손과 창에서 생성된 용권풍이 녀석을 찢기 위해 쇄도했다.
「가볍다!」
파챠챵!
화가 난 크로노스 얼음의 구속을 깨버렸다.
「죽어라, 벌레!」
구속에서 풀려난 녀석의 낫이 공간을 가른다.
후우웅!
단지 무기를 휘둘렀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풍압이 뒤따랐다.
콰콰쾅!
이윽고 녀석의 낫과 충돌해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주군!”
충격파를 이겨내지 못해 튕겨 나가던 중 아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캬악!」
혼자가 아니다. 본 드래곤 메투스가 유연하게 비행하며 날아가는 날 받아냈다.
“워, 골이 다 흔들리네.”
“괜찮으십니까?”
“어. 괜찮긴 한데 역시 까다롭긴 하네.”
메투스의 등 위에 안착한 채로 녀석을 바라봤다.
「이놈들!」
바통을 이어받은 바포르와 젤루의 지원사격에 단단히 열이 받은 크로노스가 길길이 날뛰고 있다.
선명한 미간의 흔적. 조금 전 관자놀이 때보다는 좀 더 타격을 준 것 같지만, 역시 쓰러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솔직히 까다로운 상대다.
문제라면 역시 거대한 덩치. 100m가 훌쩍 넘는 거대한 신장, 그런데 유일한 공략 포인트가 머리라니.
하늘을 날 수 있는 특성이 있지 않은 이상은 공격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바포르 또한 적당히 시간을 끌며 주의를 돌리고 있을 뿐이다.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중인 것.
“아직 허접해서 그런가, 원딜의 부재가 아쉽네...”
트리플, 그리고 듀얼 마스터로 있었을 적에는 굳이 원거리 딜러가 필요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여유롭지 못하다.
당장, 이 상황부터 넘긴다면 쓸 만한 원딜을 구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군. 아무래도 합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만이 내 상념을 깨웠다.
「모두 죽이리라!」
성난 크로노스가 요리조리 도망가는 바포르를 무시한 채 관중들에게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메투스, 몸통 박치기!”
다급한 상황에 메투스를 향해 명령했고.
「캬아아아!」
포효한 메투스가 맹렬한 속도로 크로노스에게 돌진했다.
퍼억!
「이익!」
단순한 몸통 박치기였지만, 비행 속도, 그리고 단단한 본 드래곤의 육신으로 인해 크로노스의 균형을 무너뜨릴 순 있었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나와 아만은 공중에 낙오된 상태였다.
허공에 머무르고 있는 그 순간 내 시선은 멀찍이 떨어져 있던 파트로나에게 닿았다.
내 의지를 읽은 것일까.
파트로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그녀의 몸에서부터 찬란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태양신 아모스가 당신에게 강력한 권능을 부여합니다.]
[성녀의 기적이 당신에게 머무릅니다. 공격력 및 공격속도, 그리고 몇몇 가지의 숙련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레벨이 오른 파트로나의 기적은 더욱 강력한, 효과가 추가된 힘을 전해주었다.
마치 몸 안에서 용암이 끓고 있는 듯하다.
꽈악!
힘을 모은다.
마치 내 것이 아닌 듯한 내 것. 그 폭발적인 힘을 느낀 순간 기억의 파편 하나가 스치듯 지나갔다.
「이제 기를 자유로이 다룰 수 있게 되었구나. 그렇다면 위험한 때를 대비해 여러 개의 창을 준비해 놓거라. 부러질 것은 염려하느냐고? 아니. 이 스승님이 창안한 창법 중에는 여러 개의 창을 사용해야 하는 게 있으니.
자, 눈을 감고 떠올려 봐라. 기로 연결된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창이 적에게 쇄도하는 광경을. 내 장담하는 데 이 일격을 받아낼 수 있는 이 세계에 몇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라.”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슈슈슈슉!
그와 함께 인벤토리에서 제멋대로 빠져나오는 수십, 아니 수백 개의 그림자.
그 모든 건 고유의 형태를 가진 수백 자루의 창이었다.
레벨업과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된 창고에서 쓸 만한 창을 수백 자루 넣어두었다.
레벨 제한 50~70 사이의 창.
아주 쓸모없는 것을 제외한, 유일, 그리고 전설 급의 창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웅웅웅!
내 마력에 반응한 녀석들이 의지를 가진 것처럼 울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거미줄과 같이 뻗어 나간 마력이 수백 자루의 창과 연결되어 있는 이 장엄한 광경을 말이다.
마치 시위를 당긴 것처럼 팽팽하게 마력의 흐름을 유지한 후.
“무한한 궤적을 그려라.”
손안에 쥔 창, 신창을 크로노스에게 투창했다.
파파파팟!
신창을 선두로 주위에 떠 있던 수백 자루의 창이 그 뒤를 따랐다.
지면을 향해 빠르게 추락하면서도 그곳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잠시 후 내 눈에 똑똑히 보였다. 창공을 수놓은 무한한 궤적이 말이다.
「이따위!」
균형을 잃은 채 비틀거리고 있었던 크로노스. 녀석이 용케 균형을 잡으며 낫을 휘둘렀다.
파아아!
조금 전보다 더욱 거센 풍압이 공간을 갈랐다.
콰앙!
빠르게 쇄도하던 신창이 가로막혔다.
콰콰쾅!
뒤따라오던 창이 부딪치고 또 부딪친다.
콰콰콰콰콰쾅!
수십 자루의 창이 자살 특공대처럼 거대한 낫과 부딪쳐 떨어졌다. 하지만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쩌억!
창에 담긴 거력이 낫에 균열을 만들었고.
콰챠챵!
마침내 부서지고 말았다.
「이, 이럴 수가!」
신화의 무기가 부서지고 말았다.
경악한 크로노스가 눈을 부릅뜨며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했으나 때는 늦고 말았다.
퍼퍼퍼퍼퍽!
낫이라는 수비벽을 허문 수십 자루의 창이 녀석의 얼굴에 꽂혔다.
「크아아악!」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비명이 끝이었다.
그렇게 신화 속의 거인은 무너졌다.
[입신의 창법, 그 비기가 재현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절정급 창법 Lv 7이 절정급 창법 Lv 8로 상승했습니다.]
[‘비기 : 무한궤적無限軌跡(★★★★★)’을 획득했습니다.]
[신화 속 거인, 학살의 왕 크로노스의 화신을 쓰러뜨렸습니다.]
[‘칭호 : 학살을 끝낸 자’를 획득했습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
[신화 속 거인, 그 화신을 처치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관리자가 당신의 업적을 치하하며 특별한 선물을 부여합니다. 인벤토리에 있는 선물을 확인해 보십시오.]
역시 신화의 거인인가.
단숨에 10레벨이 올랐다.
창신의 비기인 무한궤적을 획득한 것은 물론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관리자의 선물까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쿠웅!
수십 미터 상공에서 떨어졌지만, 다리가 찌릿한 것 말고는 이상이 없다.
[구속의 완드가 공간을 넘으려는 마력을 흩어버렸습니다.]
[탐색의 완드가 마력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위치를 표시합니다.]
미리 설치해 둔 완드가 활성화되었다.
학살의 왕 크로노스는 어디까지나 소환된 존재에 불과하다.
나는 결코, 이 학살의 장을 마련한 개새끼를 놓칠 마음이 없다.
탐색의 완드. 그 감각이 알려주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해서 공간을 넘으려는 시도를 하는 듯 마력을 방출하고 있는 검은 로브의 개새끼가 보인다.
저 놈이다.
종말의 그 날까지 인류에 뒤통수를 치던 베놈.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간부라 할 수 있는 18인의 의회, 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좆같은 새끼 말이다.
재앙을 부르는 악마 세르게이.
과거에는 학살의 왕을 소환한 채 무사히 튀었겠지만, 내가 있는 이상 그럴 수 없지.
고인물은 절대 흑막을 놓치는 법이 없다.
오늘 인류를 위협하는 적, 베놈의 간부 하나를 이 땅에서 지워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