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고인물은 본 드래곤도 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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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득!
저 망할 괴물을 보니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과거에도 전초전에 불과한 전투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화랑의 모두는 승리에 취해 환호하거나 서로를 껴안으며 감격의 순간을 함께했다.
그러나 그건 한순간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평범한 포탈처럼 속인 뒤 나타난 적의 본진. 마치 놀리듯이 등장한 수천의 군세는 화랑을 지옥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그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비겁했기 때문이다.
제발 도와 달라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도망쳤다. 때마침 공간의 결계를 뚫고 나타난 구조대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이곳에서 뼈를 묻었을 것이다.
당시 나에겐 태산과도 같았던 화랑의 초인들을 단숨에 쓸어버린 압도적인 군세, 그 중심에 있는 게 메투스였다.
후우웅!
돌풍을 일으키며 착지한 녀석이 뻣뻣하게 고개를 쳐든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커멓게 죽어 있던 녀석의 눈.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명한 녹색 안광은 죽음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범접할 수 없는 위용에 모두가 경악한다.
하지만 놀라기는 이르다. 메투스, 녀석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인 건 사실이지만, 군세 또한 가볍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쿠웅, 쿵!
차원의 균열에서 튀어나온 군세가 지면을 장식해 간다.
수천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운동장을 꽉 채운 적. 녀석들은 조금 전 전멸했던 정찰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키익!”
“끼, 끼기긱!”
알아들을 수 없는 건 매한가지나 언어라고 느낄 수 없는 괴성. 검은 기류에도 불구하고 그 끔찍한 외형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시체.
잘린 목을 손에 든 괴물.
뼈밖에 남지 않은 짐승.
적 군세를 이루고 있는 대다수는 언데드Undead였다.
“맙소사!”
“도대체 이 강력한 기세는...”
마치 파도가 휩쓸고 간 것처럼 동요가 일었다.
알 만하다. 지금 모습을 보인 적의 기세는 정찰병 따위와 비교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언데드 병력만 해도 충분히 겁을 집어먹었을 텐데, 그들을 지휘하는 네크로멘서Necromancer,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메투스가 포악한 기세를 흘리고 있다.
아직 전투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의지를 상실한다.
과거에도 겪었던 일이다. 메투스를 비롯한 적 언데드 병력의 기세는 모든 초인의 의지를 꺾어 놓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나와 가디언들이 있는 한 과거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는다.
“5!”
의지를 실어 힘차게 목소릴 높인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전투가 시작되기까지 5초가 남았다.
“4, 3...”
카운트를 세며 슬쩍 메투스를 응시했다.
구구구궁!
주변의 대기 흐름이 바뀌었다. 그 중심에는 메투스가 있다.
과연 예상과 다르지 않다. 과거, 녀석의 저 미친 짓으로 인해 전투는 싱거운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다.
이 망할 뼈다귀 새끼야. 이번에는 그렇게 되진 않을 거다.
“광명光明이여!”
내 의지와 함께 브류나크가 더할 수 없이 찬연한 빛을 뿜어댔다.
광명의 창이라고도 불리는 브류나크. 이 강력한 창에 부여된 가장 강력한 권능을 이끌어 냈다.
그래, 이거지!
과거 블랙 포탈 사태를 경험했던 나다. 그렇기에 이번 전투를 위해 특별히 빛 속성, 그것도 상위의 속성인 광명 속성 무기를 준비했다.
브류나크는 내가 지닌 다섯 개의 애창 중 하나.
특히 언데드, 부정한 속성을 지닌 녀석들을 상대하는 데 안성맞춤인 무기였다.
고인물은 사냥을 할 때도 절대 평범한 무기를 준비하지 않는다.
적 속성의 상극.
광명 속성의 브류나크는 이 어리석은 언데드 녀석에게 강렬한 철퇴가 되어줄 것이다.
「캬아악!」
뼈다귀 용가리의 포효가, 심연에서 끌어올린 듯한 그 처절한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전투를 대비하는 10초의 짧은 순간이 지났다는 증거.
콰콰콰콰콰!
그리고 녀석의 거대한 아가리에서 뿜어져 나온 산성의 숨결이 해일과도 같이 쇄도했다.
“마, 맙소사!”
산성의 숨결에 담긴 미증유의 힘. 그것을 느낀 초인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가리 다물어, 뼈다귀 새꺄!”
과거 화랑을 절망으로 몰고갔던 산성 숨결. 하지만 이번에는 당하지 않는다.
“루 라바다Lugh Lamhfhata!”
광명의 창 브류나크가 지닌 힘의 근원. 긴 팔의 신 루의 진명眞名을 외쳤다.
번쩍!
일순간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브류나크에서 뿜어져 나온 찬란한 빛은 아주 잠깐 세상을 빛으로만 물들였다.
“흐압!”
빛을 느낀 순간 손안에 모든 힘을 집중해 브류나크를 투창했다.
쿠르릉!
손을 떠난 브류나크가 세계를 떨어 울리는 천둥을 토했다.
파직, 파지직!
광명의 창과 만난 대기가 새하얀 번개로 변해 그 주위를 호위했다.
콰콰콰!
인지의 영역을 초월한 속력으로 날아간 하얀 섬광이 마침내 산성의 숨결과 충돌했다.
스윽!
기대했던 폭발과 같은 현상은 없다.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부순다.
신화급 무기인 브류나크에 담긴 거력은 뼈다귀 용가리 녀석의 숨결을 그대로 갈라버렸다.
콰직!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뻗어 나간 브류나크가 숨결을 뿜어낸 근원을 관통했다.
「캬악!」
짧은 비명을 지른 뼈다귀 용가리 녀석이 지면으로 허물어졋다.
쿠웅!
거대한 덩치가 쓰러지며 자욱한 흙먼지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창과 의지가 연결된 나는 알 수 있었다.
콰콰콰쾅!
메투스 녀석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가한 브류나크는 여전히 기세를 잃지 않은 채 숱한 적을 뚫어버렸다.
[벨라렌스 차원의 일등一等 전사를 쓰러뜨렸습니다.]
[벨라렌스 차원의 상급 흑마법사를 쓰러뜨렸습니다.]
[시체를 먹는 자, 구울을 쓰러뜨렸습니다.]
[불명예의 기사, 듀라한을 쓰러뜨렸습니다.]
[높은 레벨의 적을 쓰러뜨려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당신과 ‘파티’ 상태인 파티원 모두에게 경험치가 분배됩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
[5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아이템의 강화, 제작, 각성을 이용할 수 있는 대장간의 잠금이 해제됩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
위력을 모르진 않았지만, 그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물론 충분히 산성의 숨결은 막을 것은 알았다. 그런데 목적했던 숨결은 물론 메투스를 빈사 상태로 만들었고 수백의 적까지 단숨에 죽여버리다니.
덕분에 60레벨을 돌파했다.
중간중간 잠금 해제에 대한 알림이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새가 없다.
정면을 본다.
아직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뼈다귀 용가리 녀석은 죽지 않은 모양. 명색이 본 드래곤인데 한 방에 죽으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섭하겠지.
“$!#!%$”
“^%^$#!”
내 일격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하던 이계인 녀석들의 꼬락서니를 봐라.
무슨 말을 하는지 내용은 알지 못하나 어딜 봐도 놀라고 있다.
“어, 어어?”
“이게 무슨 일...”
얼간이처럼 넋이 빠진 건 적만이 아니었다.
“구경났습니까? 빨리 조져요!”
지금은 전투 중이다.
그들에게 환기시켜준 후 곧바로 지면을 박찼다.
휘익, 착!
의지가 연결된 브류나크가 다시금 나의 손에 돌아왔다.
조금 전과 같은 찬란한 빛을 뿜어내진 못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근력에 96포인트를 분배합니다.]
[민첩에 96포인트를 분배합니다.]
192개의 능력치 포인트.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근력과 민첩에 골고루 투자한 창을 뻗었다.
퍽!
직선으로 뻗어 나간 브류나크가 구울 하나, 아니 그 뒤에 있던 적 병사 하나의 머리도 박살 냈다.
과연 다르다.
근력과 민첩의 상승은 파괴력은 물론 창의 찌르기 속도 또한 괄목상대하게 변화시켰다.
에키온의 '마력 폭발' 효과를 통해 총알이 떨어질 걱정 또한 없으니 망설일 이유란 게 단 하나도 없는 셈이다.
탓!
있는 힘껏 지면을 박차 힘차게 도약했다.
“!#%!#!”
“%!$^*&^”
떨어진 곳은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곳.
그러나 무엇이 두려우리. 브류나크와 에키온이 함께하는, 적어도 1시간 동안 나는 무적이다.
세상을 창의 잔상으로 물들여라.
파파파팟!
고도의 집중 속에서 펼쳐 낸 난섬이 공간을 지배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
쓰러지는 적과 비례해서 레벨도 덩달아 상승한다.
물론 조금 전과 같이 단숨에 수십 레벨이 오르는 일은 없었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오늘 안에 80은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
그러나 녀석들은 날뛰는 날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아닌 것 같다.
방패로 무장한 수십의 전사들이 포위하고, 그 뒤에서 흑마법사들이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너희 상대는 내가 아니라서 말이야.”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를 넘지 않는 이상, 누구도 주군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콰앙!
더는 거리낄 게 없는 아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녀석이 붉은 십자 방패를 들어 포위망을 형성한 전사들을 튕겨냈다.
「선봉에 서겠습니다. 주군!」
나를 돌아보는 그 말에 묵묵히 고갤 끄덕였다.
「오라. 충성스러운 나의 애마여.」
명령을 받은 아만이 한쪽 손을 지면에 가져다 댔다.
쩌억!
그 손이 닿은 지면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틈 속에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균열은 점차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해 마침내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생성된 녹색 광채가 주변을 밝혔다.
히이잉-
갑작스럽게 생겨난 녹색 구덩이에서 말의 울음이 들려온다.
구덩이를 빠져나오는 것. 그건 보통의 말보다 족히 2배나 커 보이는 거대한 말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말과는 다르다.
안광은 붉게 빛나고 발굽에선 끈적한 녹색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죽음의 기사, 그것도 고위의 존재만이 부릴 수 있는 죽음의 군마, 쉐도우 나이트Shadow Knight였다.
60레벨이 되면서 생긴 녀석의 고유 권능 중 하나였다.
쉐도우 나이트를 불러낸 녀석이 곧장 안장에 안착했다.
「주군을 막아서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죽음을!」
크게 소리친 녀석이 말 고삐를 힘차게 내리쳤다.
히히힝-
앞발을 든 쉐도우 나이트가 힘차게 울부짖더니 뒷발에 힘을 주어 점프했다.
쾅!
쉐도우 나이트가 지면을 찍자 주변이 움푹 파였다.
미처 대응하지 못한 몇몇이 그대로 찌그러졌고, 그로 인해 생겨난 충격파가 주위의 적을 밀어냈다.
「일어나라. 나의 충실한 병력이여.」
적진 깊숙한 곳에 홀로 뛰어든 녀석이 스톰브링어를 하늘로 치켜들었다.
날에 새겨진 룬 문자가 녹색으로 빛나면서 흡수해 놓았던 영혼이 사방으로 방출되었다.
쩌어억!
푸른색 구슬 형태의 영혼이 땅에 닿은 순간 균열이 일어났고, 갈라진 균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갑옷과 검으로 완전무장한 용아병龍牙兵이었다.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강력한 존재. 비록 6기에 불과했지만, 주변의 언데드와는 차원이 다른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전설급 가디언의 위용이다.
지금까지 1레벨이어서 사용할 수 없었던 강력한 권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었다.
「나의 병사들아, 주군의 앞을 막는 하찮은 존재를 베어 넘겨라.」
덜그럭!
명령을 받은 용아병이 적진 깊숙이 들어가 난장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잠깐의 틈을 이용해 뒤를 돌아봤다.
“우리도 질 수 없지!”
나와 아만이 시선을 끄는 사이 겨우 정신을 차린 초인들이 반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괜히 무리하게 되면 헛된 희생자가 생길 수도 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 명령을 받은 파트로나와 바포르, 그리고 젤루가 사이사이 끼어 그들을 보호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만이 적진을 휘젓고, 사기가 상승한 초인들이 그 뒤를 받쳐주고 있다.
녀석들의 히든카드인 뼈다귀 용가리는 누워서 헐떡대는 중이다. 물론 녀석을 없애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내 계획을 위해 메투스는 살아 있어줘야 한다.
적의 히든카드마저 제압했으니 남은 건 하나. 언데드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근원을 없애는 것이다.
블랙 포탈 사태가 끝난 후 작전팀은 말했다.
언데드를 일으키는 고위 네크로멘서를 초기에 제압하지 못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현장에서 도망친,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난 그 녀석의 실체를 모른다. 하지만 녀석을 확인할 방법 하나를 알고 있다.
[초상감각超常感覺을 활성화합니다.]
초상감각. 에키온을 가진 자만이 활성화할 수 있는 고유의 권능이다.
매 초마다 상당한 마력이 소모되는 대신 극상의 감각을 활성화한다.
매 순간 절정급 고도의 집중 상태가 되는 건 물론 적의 위협, 마력의 흐름 감지 등 다양한 이상 현상을 빠르게 포착할 수 있다.
“!%$#%@[email protected]”
고요한 호수와 같은 내 감각에 잡히는 불쾌한 흐름.
마치 컴컴한 어둠 속에 반짝이는 빛처럼 그 대상이 시야로 들어온다.
드드득!
녀석의 기도문은 주변의 시체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사했다.
아니, 기적이라고 하니까 거창해 보이네. 그것은 저주였다. 아직 혼이 붙은 망령들을 강제로 깨워 괴물로 만드는 네크로멘서의 저주.
“끼긱!”
“끼이익!”
죽어 나자빠진 그 시체는 다시금 일어나 적 병력이 되었다.
“파트로나!”
그러나 그깟 해골바가지가 무슨 대수랴.
“태양신의 안광이 부정한 모든 것을 정화할지니!”
화랑의 하늘을 장식하고 있던 먹구름이 걷히고, 강렬한 태양이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태양신 아모스. 그의 안광이 대지로, 언데드로 부활한 저주받은 땅을 비추었다.
콰콰콰콰콰!
마치 빛으로 만든 폭포가 쏟아지는 것처럼 신성한 정화가 시작되었다.
파스스-
모든 부정한 존재를 한 줌의 잿더미로 만드는 파트로나의 권능. 그녀의 권능으로 인해 배후의 적, 고위 네크로멘서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콰앙!
디딤발의 충격으로 대지에 균열이 생겼다.
그 엄청난 힘의 여파와 함께 내 육신은 쏘아진 화살과도 같이 배후의 네크로멘서를 향해 짓쳐 들고 있었다.
“^[email protected]$”
놀란 녀석의 비명이 귓가로 파고든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분명 조금 전만 해도 녀석과 내가 서 있는 공간이 달랐다. 그러나 눈깜짝할 사이, 내 창의 간극에 녀석이 서 있다.
“죽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다.
핏!
창을 뻗어내는 것. 필중과 필살의 의지를 저항할 힘이 녀석에게는 없었다.
퍽!
미간을 꿰뚫은 브류나크는 더러운 녀석의 피를 태워버렸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8개를 획득했습니다.]
...
녀석의 죽음과 함께 몇 번의 레벨업 알림이 파고들었다.
본신의 능력은 대단하지 않으나 수백의 언데드를 부리던 네크로멘서가 죽었다.
와르르!
그것은 곧 언데드 군단의 와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몰아쳐.”
“한 놈도 살려두지 마!”
전세는 이미 기울었다.
지금의 전력 차이라면 가디언의 도움이 없이도 금방 적을 몰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주군?」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아만이 강렬한 녹색 안광을 빛낸다.
과연 녀석답다. 조금 전 전해준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금방 내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시작해.”
「알겠습니다.」
과거 끔찍한 참상을 일으켰던 블랙 포탈 사태는 끝났다.
하지만 아직 내가 해야 할 일, 아니 정확히는 아만이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캬아아!」
녀석의 발걸음이 향한 곳에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메투스가 있었다.
껍질에 불과한 육신의 고통 때문에 울부짖는 게 아니다.
네크로멘서의 죽음과 함께 ‘구속의 인’이 사라져, 영혼의 고통을 받는 것이다.
지금 녀석의 신세는 주인 잃은 개와 다를 바가 없다.
그 말인즉 새로운 주인이 그 자릴 대체할 수 있다는 뜻.
「본래 고귀하나 나락으로 떨어진 존재여.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라.」
녀석에게는 특정한 언데드와 주종의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지배’의 특성이 있다. 물론 이게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다.
특히 본 드래곤과 같은 높은 격의 존재라면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성공하면 대박, 실패한다 해도 메투스 녀석의 폭주를 감당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화악.
주종의 계약과 함께 특유의 녹광이 아만과 메투스 사이에서 뿜어져 나왔고.
「캬아!」
녹광 사이로 비친 광경에 내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마치 강아지와도 같이 얌전히 고개를 수그린 메투스가 내게 경의를 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