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고인물은 광렙을 준비합니다
=======================
공수攻守와 관련된 숙련도 대부분이 절정급에 도달하면 슈퍼 노비스라는 숨겨진 격을 획득할 수 있다. 단, 여기에는 제한이 있는데 그 모든 걸 1레벨에 이루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처음 그 비밀을 알게 된 건 성녀 쟁탈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뒤였다.
파트로나라는 강력한 파트너를 얻은 나는 조금 늦은 스타트에도 불구하고 공식 랭킹 1위, 그리고 각종 레이드를 성공시키며 파죽지세의 기세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레벨은 물론 전투력, 그리고 PvP 랭킹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사실상 독주 체체를 완성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뜻밖의 방문자와 만났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아이디 구도자. 고작해야 100레벨, 흔히 말하는 마스터 레벨의 허접이 결투를 신청해 온 것이다.
결투는 당시 내게 익숙한 일이었다.
내 명성을 넘기 위해 많은 도전자들이 결투를 신청했었고, 랭킹 100위권 내의 플레이어 모두가 패배를 경험하기도 했었다.
그런 내게 100레벨의 도전자라니.
사실 그 도전은 받아들일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던 건 오만한 구도자의 도발 때문이었다.
‘캐릭터 삭제를 걸고, 결투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일명 캐삭빵이라 불리는 궁극의 도발.
게임 내에서 캐삭빵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 상대에게 쫄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도발. 당연히 나 또한 피하지 못했다.
이후 승리가 당연시되는 캐삭빵 결투가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승리는 내 차지였다. 하지만 결투가 이뤄지는 내내 나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100레벨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움직임과 파괴력. 솔직히 말해 듀얼 마스터의 아이템 효과가 아니었다면 패했을 것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상대, 구도자의 장비가 조금만 더 좋았어도 필패했으리라.
당시 구도자의 장비는 마스터 레벨이 아니라 고작해야 40~50레벨이 주로 사용할 만한 질 낮은 세트 아이템이었다.
온갖 템빨의 효과로 간신히 그를 제압한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 채 물었다.
어떻게 하면 100레벨에 그런 힘을 낼 수 있는 거냐고.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인 구도자는 자신이 얻은 것, 슈퍼 노비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어차피 이 세계에 미련이 없다는 한 마디와 함께.
약속대로 그는 캐릭터를 삭제했고, 다시는 구도자라는 플레이어를 볼 일은 없었다.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아니 안다고 해도 감히 도전하지 못할 슈퍼 노비스에 대한 정보는 내게 전해졌다.
그것이 내내 의문이었다.
대체 왜?
왜 그는 결투를 신청했고, 또한 캐릭터를 삭제하게 한 원인인 내게 슈퍼 노비스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 걸까.
하지만 그건 당사자가 직접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는 사실이었고, 당시의 내 뇌리에서 금방 잊혀지고 말았다.
우연하게 얻은 슈퍼 노비스에 대한 정보. 하지만 이것을 활용할 일은 없었다.
이미 듀얼 마스터에 이른 캐릭터를 포기한 채 새로운 캐릭터, 혹은 서브 캐릭터를 키울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원히 사용할 일이 없을 거로만 생각했던 정보였다. 그런데 그것을 현실에서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마침내 손에 넣었다.”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것이 못내 감동스러워 중얼거렸다.
쉬지 않고 부단이 노력해 마침내 원하는 격을 손에 넣은 것이다.
“경하드립니다. 주군.”
“마스터. 마침내 첫 번째 걸음을 내딛으셨군요.”
“그러면 축하 파티 해야지. 오늘 광란의 파티 한 번 가는 거야?”
“축하.”
축하하는 가디언을 돌아본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슈퍼 노비스의 격이 가디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단 점이었다.
게임 상에서도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 얻을 수 없는 격이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 것 같았다.
물론 아쉬워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가디언들 또한 갤러해드를 상대하며 절정급의 숙련도를 획득했다.
여전히 레벨은 1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전력은 120일 전과는 차원을 달리할 정도.
게다가 선물이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조금 전까지 갤러해드가 서 있던 자리. 지면을 구르고 있는 이상한 띠의 검과 붉은 십자 방패를 주웠다.
세상에 나간다면 모든 초인이 침을 흘릴 만한 상위의 아티팩트가 분명하다.
“아만.”
「부르셨습니까.」
“지금 당장은 쓸 만한 방패가 없을테니 이건 네가 사용하도록 해.”
「주군의 은혜에 감읍할 뿐입니다.」
누구나 탐을 낼 만한 대단한 보물. 하지만 내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나의 보금자리 바빌론에는 이깟 아티팩트 따위는 장난감처럼 취급할 수 있을 만한 굉장한 보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물론 레벨 제한으로 인해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없겠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슈퍼 노비스로 인해 더는 숙련도 노가다에 목을 멜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스톤헨지 밖을 나간다면 그간 미뤄두었던 레벨업, 그야말로 광란의 레벨업을 시작할 것이다.
나와 가디언들의 전력이라면 웬만한 포탈쯤은 박살내버릴 테니 그 시간도 매우 단축될 게 틀림없다.
「흐음. 그럭저럭 쓸만한 방패로군요.」
붉은 십자 방패를 이리저리 만져보던 아만이 미미하게 고갤 끄덕였다.
과연 고인물의 가디언이다.
내 가디언이 되려면 붉은 십자 방패는 쓸 만한 방패 정도로 취급해 줘야 한다.
“그리고 검은...”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사실 검을 사용할 만한 마땅한 인재가 없었다.
할 줄 아는 건 손과 발을 이용한 구타뿐인 바포르.
마력을 통해 빙결의 권능을 뿜어내는 젤루.
아만?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언데드다. 부정한 존재가 성검을 사용하는 건 상성상 그리 좋지 않다.
“...파트로나가 가져.”
“네. 잠시겠지만, 유용하게 쓰도록 할게요.”
크. 파트로나의 저 여유를 보라.
비록 검이라는 무기의 목적을 다하진 못하겠지만, 파트로나가 사용하는 게 그리 나빠보이진 않는다.
일단 성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신성력 증폭에도 효과가 있을 테고, 치유 마법 또한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급할 때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갤러해드의 강력한 유물을 간단하게 정리한 후 인벤토리를 열었다.
원탁의 마지막 기사를 쓰러뜨려 얻은 보상 중에는 의문투성이인 ‘관리자’의 선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벤토리 한편에 고이 모셔져 있는 두 장의 티켓의 정보를 확인했다.
『아이템 자유 사용권(1시간)
종류 : 소비 용품
등급 : Unknown
사용 효과 : 지정된 시간 동안 모든 아이템의 제한을 없애주는 기묘한 티켓
설명 : 관리자가 당신에게 좋아요♥』
장일우를 쓰러뜨려 한 장, 그리고 갤러해드를 쓰러뜨려 한 장, 총 두 장이 내 손에 들어왔다.
효과는 보는 대로다.
1시간 동안 레벨이나 직업의 제한을 없애주는 소비 용품.
의문점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종류의 아이템을 아오스 내에서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뭐, 게임이 현실이 된 판국에 그거야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도대체 관리자라는 게 누구냐는 거다.
나는 내내 그것에 대해 고민했고, 아주 작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시스템에 개입해 선물을 준다?
어쩌면 관리자라는 존재야말로 나를 과거로 돌려보낸 초월자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그건 내 예상에 불과한 사살이지만.
에라이, 모르겠다.
생각하면 알수록 머리만 아프다.
당장 풀 수 없는 문제라면 일단 미뤄두는 것도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겠지.
“그럼 이 지긋지긋한 곳을 나가볼까?”
120일 동안 지겹게 찾은 장소. 이제는 그곳을 벗어나야 할 때였다.
*
기하학적인 문양이 양각되어 있는 원탁.
정확히 12개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그곳에는 11명의 주인만 있을 뿐. 새하얀 베일로 덮여 있는 한 자리는 공석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원탁과 11명의 기사. 그것이 뜻하는 바를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영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강력한 세력, 바로 원탁의 기사들이었다.
이들이 원탁에 모였다는 것, 원탁회의를 소집했다는 건 중요한 사안에 대한 가부를 결정해야 할 때였다.
“어찌하면 좋을까.”
상석이라 볼 수 있는 원탁의 중앙 자리. 그곳에 자리한 건 초인 랭킹 8위에 빛나는 검왕 윌리엄이었다.
“그쪽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윌리엄의 오른쪽 사선 방향, 붉은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사내가 말문을 열었다.
정오의 기사 가웨인의 업을 계승한 오웬 헤드리그.
그 또한 랭킹 97위를 자랑하는 강력한 초인 중 하나였다.
“그렇지. 아직 차원의 균열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일 테니.”
윌리엄이 걱정하는 건 이번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그들이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있는 힘 없는 힘, 모든 걸 끌어 모아서 대비를 해도 모자를 판국에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이는 무지로 인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멀린님은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감히 추측할 수 없는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렇지 않았다면 원탁회의를 소집하는 일도 없었겠지.”
“그런데 굳이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겠습니까? 고작 동방의 작은 나라를 위해서 말입니다.”
오웬은 지극히 실리를 취하는 인물.
윌리엄 또한 그가 안건에 반대할 것을 빤히 알고 있던 바였다.
“비록 정식 요청은 없었지만,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끔찍한 참상으로 이어질 게 빤해. 그런데 그것을 방관만 하고 있으라고?”
“우리가 나선다면 피해는 줄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쪽의 피해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멀린이 추측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당연히 아군의 피해도 불가피할 것이다. 이들이 걱정하는 건 바로 그 피해였다.
자국도 아니고, 고작해야 동방에 있는 작은 나라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건 기피하고 싶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글랜. 네 생각은 어떻지?”
오웬을 비롯한 몇몇 기사가 이미 반대를 표했다.
사실 그들의 반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믿을 수 있는 건 평상시 이들과 뜻을 달리하는 글랜, 랜슬롯의 업을 계승받은 그와 그를 따르는 기사들이었다.
어딜 가나 그렇겠지만, 사람이 모이게 되면 세력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고작 11명 뿐인 원탁의 기사 내부에서도 세 개 세력이 존재했다.
윌리엄과 그의 뜻을 온전히 지지하는 네 명의 기사.
오웬과 그의 뜻을 지지하는 두 명의 기사.
그리고 글랜과 그의 뜻을 지지하는 두 명의 기사.
당연히 윌리엄의 영향력이 가장 막강하지만, 오웬과 글랜이 반대를 하면 다수결의 법칙에 의해 그의 의견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
“흐음...”
동화속 왕자님과 같은 금발의 미남자.
그는 윌리엄의 말에 한참 동안 고심하더니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예견된 참상이라곤 하나 굳이 우리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평소 윌리엄의 의견에 반대를 표하는 경우가 없었으나 이번 만큼은 사안이 달랐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아군의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그렇군. 알겠다.”
결국, 윌리엄이 제기한 안건은 부결되었다.
아무리 그의 영향력이 강해도 원탁회의는 다수결의 법칙을 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한 번 결정된 사안을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회의를 이것으로 종료...”
키잉-
“맙소사!”
그만이 느낄 수 있는 기이한 감각에 몸을 일으킨다.
“무슨 일이십니까?”
글랜이 물었지만, 놀란 윌리엄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멀린!”
다만 회의석상에 없는 멀린을 큰 소리로 부를 뿐.
슈웅!
“왜, 왜? 뭔데. 무슨 일인데?”
마법처럼 빈 공간에 모습을 드러낸 멀린이 윌리엄을 응시했다.
“빨리 스톤헨지로!”
“스톤헨지? 그곳은 왜?”
“지금 누군가 스톤헨지를 빠져 나왔어.”
“뭐, 뭣?!”
놀라기는 멀린도 매한가지.
누군가 스톤헨지를 나왔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서, 설마?”
“그건 모르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래. 당장 가자.”
120일 동안 소식이 없어서 당연히 시련에 실패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이후 누구도 출입한 적 없는 곳을 누군가 빠져 나왔다?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간다!”
멀린이 권능을 발현해 공간을 뛰어 넘었고, 그들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솔즈베리 평원, 그리고 스톤헨지를 눈앞에 둘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머쓱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청년과 그를 호위하는 미남미녀.
“자, 자네!”
설마가 확신이 되었다.
하지만 감격의 해후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당장 움직이게. 대한민국, 아니 화랑에 블랙 포탈이 생성되었어!”
윌리엄의 다급한 한 마디.
그것은 과거보다 5개월이나 빨라진 블랙 포탈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
콰앙!
마력의 결정체가 보이지 않는 막과 충돌했고, 뒤이어 강렬한 폭발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씨발. 이것도 안 된다고?”
거친 욕설이 튀어 나왔다.
폭발의 여파가 걷힌 자리. 그곳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화랑을 뒤덮은 투명한 보호막은 건재했고, 이곳에 모인 초인 팀은 누구도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짼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름 대한민국에서도 한가락 하는 초인들, 5대 길드의 정예 팀이 모였다.
그 원인은 화랑에서 발생한 의문의 포탈 덕분이었다.
마치 먹구름이 모여든 것처럼 화랑 일대를 뒤덮은 포탈의 초기 현상을 감지해 구조 팀이 결성되었다.
아무래도 화랑이라는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아카데미에 발생한 것이었기에 모여든 멤버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5대 길드의 1팀 전원. 단일 포탈을 공략하기 위해 이토록 화려한 멤버가 구성된 적은 없을 터였다.
이들이 모인 지 벌써 40분. 이곳으로 모이는데 10분이 소요되었으니 차원의 균열이 찢어지기까지는 고작 10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 하지만 그 시간이 되도록 화랑 내에 진입하지 못했다.
포탈 생성 현상과 함께 발생한 투명한 보호막 덕분이었다.
화랑 전체를 덮어버린 이 기이한 힘을 뚫어내기 위해 수십, 수백 차례의 시도가 있었으나 결코, 뚫지 못했다.
“들어가지 못해도 상관 없는 거 아냐?”
“그래. 설마 뭔 일이야 있겠어.”
“화랑 내에 상주하고 있는 초인만 해도 몇 명인데.”
급기야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일반 시민이 갇혀 있었다면 모를까, 포탈이 생성된 지역은 화랑이라는 대한민국 제일의 아카데미였다.
상주하고 있는 정식 초인만 수백. 게다가 그곳의 학생들도 웬만한 이계의 적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단일 세력으로 보자면 이곳에 모인 구조 팀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
“그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그렇기에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설렁설렁 작전에 임하고 있었다.
“어?”
“저건?”
그러던 중 장내에 변화가 생겼다.
저벅저벅.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걸음을 재촉하는 이들. 화랑을 상징하는 정복을 입은 그는 연우와 가디언 사인방이었다.
“이봐. 누구야 너. 여긴 함부로...”
“자, 잠깐!”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움직이려던 이를 만류하는 손길.
“왜?”
“쟤 그 녀석 아냐? 검왕의 인정을 받았다는.”
“아, 그러고 보니...”
작은 동요가 일었다.
이연우라는 이름은 일반 시민들은 물론 초인들에게 똑똑히 각인되어 있었다.
검왕의 인정을 받은 천재라는 타이틀은 이미 벗어던진지 오래다.
하이 랭커 장일우를 꺾은 괴물. 그것이 현재 초인들에게 퍼진 사실이었다.
만약 평범한 화랑의 학생이었다면 접근을 통제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하이 랭커를 꺾은 이. 검왕의 비호를 얻은 괴물을 만류할 수 있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보호막 영역 바로 앞까지 접근한 연우. 그는 회한이 깃든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아이템 자유 사용권(1시간)을 브류나크에 사용하겠습니까?]
[아이템 자유 사용권(1시간)을 에키온에 사용하겠습니까?]
[Yes /No]
그냥 멍하니 있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사용했다.
“부름에 응해라. 브류나크Brionac!”
그리곤 짧게 중얼거린다.
지금 연우가 중얼거린 것은 자신의 애창을 소환하는 명령이었다.
휘이잉-
돌연 미풍이 불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밀려오던 바람은 곧 거센 강풍으로 바뀌었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놀라는 것도 잠시.
쿠쿠쿠쿵!
바람을 가르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향한 곳은 연우의 발치.
피우웅!
마치 유성우와 같이 빛의 잔상을 남기며 떨어지는 그것이 마침내 허공, 아니 화랑을 감싸던 보호막과 충돌했고.
콰챠챠챵!
유리가 깨어지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발생한 충격파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으읍!”
“크흡!”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강력한 힘을 내포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고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초인들이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저벅.
하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찬연한 빛을 내는 창을 집은 연우, 견고한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그가 부서진 보호막을 넘어 화랑의 영내로 진입했다.
“오늘,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난다.”
입술을 질끈 깨문 그의 눈동자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