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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회귀해버렸습니다-19화 (19/161)

19화.  고인물은 또 한 방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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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차가운 날붙이가 육신을 헤집는다.

“컥!”

“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제일의 초인 아카데미라 불렸던 곳. 수련에 매진하는 학생들의 기합성으로 가득하던 화랑은 아비규환으로 변해 있었다.

그 모든 원인이 되는 건 각종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이계의 전사들이었다.

불과 조금 전 생성된 포탈을 찢고 나타난 그들은 눈에 띄는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무참한 살육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저항이 없었던 건 아니다.

화랑 또한 초인을 육성하는 아카데미.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초인들과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피할 수 없는 격돌이 일어났고, 무참히 패하고 말았다.

수많은 포탈에 맞서며 이름을 날렸던 하이 랭커들이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미처 몰랐던 사실 하나. 그것은 이번 포탈이 지금까지의 포탈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블랙 포탈이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단 한 번도 생성된 적 없었던 차원의 균열을 찢고 나온 건 초인들마저도 가지고 놀 수 있는 강력한 전사들이었다.

푸욱!

매끄럽게 날아든 창이 아카데미 학생의 복부를 관통한 채 지면에 꽂혔다.

짧은 비명을 끝으로 미래를 꿈꾸던 청년의 눈이 힘없이 감겼다.

랭커인 선생들도 감당하지 못하는 마당에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이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저항은 순간에 불과했고, 대부분 학생은 공포에 잠식된 채 도망치기에 바빴다.

“컹!”

게다가 적은 이계의 전사만이 아니었다.

불길과도 같은 안광을 뿜어대는 검은 개 하운드Hound가 먹잇감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촤악!

그러나 십자 형태의 궤적이 하운드를 갈랐다.

녀석의 먹잇감이 될 뻔했던 청년. 다른 학생들과 달리 아직 눈빛이 죽지 않은 B-4 클래스의 이연우는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이 멍청이들아, 도망만 가지 말고 저항해. 우리가 싸울 수 있는 녀석들이 있다고!”

하지만 청년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한 번 공포라는 감정에 잠식된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주변을 보라. 명색이 그보다 상위의 클래스가, 실력 좀 있다는 것들이 하운드의 공격에 나자빠지기 바빴다.

“씨발! 너희가 그러면 시민들은 어쩌라고!”

신경질적으로 내뱉으며 달려드는 하운드의 몸을 가른다.

초인 육성 아카데미라고 해서 초인들만 상주하는 게 아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일반 시민들 또한 아카데미 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꺄아악! 사, 살려주세요!”

하운드가 제대로 먹잇감을 물었다.

희생자는 B 클래스의 청소를 담당하고 있었던 정연숙 아주머니.

그녀를 본 연우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지면을 박차고 있었다.

“차합!”

초인력이 실린 그의 검이 팔뚝을 물고 늘어진 하운드를 양단했다.

주르륵.

갈라진 몸뚱이 사이에서 핏물과 내장이 쏟아져 나와 그녀의 몸을 덮었다.

“아아...”

걸레짝이 되어버린 팔뚝과 선홍빛 핏물에 의해 의식을 잃는다.

“썅!”

양손도 부족한 지경이다.

의식을 잃은 부상자를 데리고 활동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고개가 돌아간다. 혹 도움을 요청할 만한 곳이 있는지 재빨리 주변을 훑었고.

“아!”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기대주 서홍인과 그를 호위하는 선 라이즈 길드의 초인들이었다.

‘장일우!’

더욱이 이들을 지휘하는 건 초인 랭킹 4,981위에 빛나는 선 라이즈 2팀의 팀장인 장일우였다.

현재 외부는 블랙 포탈로 인해 펼쳐진 공간의 결계를 파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2팀이 화랑 내에 머물고 있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모종의 임무를 받고 화랑을 찾은 선 라이즈 2팀은 연우에게 있어서 구세주와 다를 바 없었다.

“여기, 여기 부상자가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목이 터지게 외친 효과가 있었다.

장일우를 비롯한 선 라이즈 초인들의 시선이 연우와 쓰러진 부상자에게 향했다.

“뭘 꾸물대고 있어. 빨리 가, 가라고!”

망설이는 그들의 갈등을 눈치챈 청년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서홍인. 대한민국의 기대주라 불리던 화랑 제일의 인재는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악을 써대고 있었다.

“씨발. 빨리 안 가면 아빠한테 다 말할 거야. 잊지 마. 너희들 목적은 어디까지나 날 구출하는 거니까.”

아비규환의 사태에 대한민국 제일의 인재는 이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지금 그를 지배하는 있는 건 살고 싶다는 욕망뿐. 그런 이에게 이타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즉시 현장을 벗어난다.”

초인의 최우선 목적은 시민들을 구출하는 것.

그러나 장일우는 마스터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초인의 맹세를 가슴에서 지워버렸다.

각종 포탈을 공략하며 세간에 이름을 알렸던 선 라이즈 2팀. 그들은 서홍인 단 한 명을 구출하기 위해 아비규환의 현장을 벗어났다.

“야 이 개새끼들아!”

아련히 들리는 처절한 외침.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여전히 화랑은, 인재들의 집합소인 아카데미는 아비규환의 전장이었고, 지금도 숱한 이들이 차가운 시체가 되어 지면에 허물어지는 중이었다.

*

당시를 회상하니 다시금 깊은 빡침이 올라온다.

녀석들 덕분에 아주머니는 하운드의 한 끼 식사로 전락했고, 무리하게 부상자를 구하려던 난 온몸의 관절이 박살 나고 말았다.

물론 그게 온전히 녀석들의 탓이라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다.

당시 상황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교장 할배의 도움이 없었다면 목숨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그들이 진즉 나서주었다면, 서홍인이 자신을 구출하는 게 아니라 아카데미의 방어를 명했다면 더욱더 많은 이를 살릴 수 있었다는 것.

블랙 포탈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력한 공간의 결계였다.

당시 세계는 공간의 균열을 뚫는다는 개념조차 없던 시대였다.

화랑에 펼쳐진 블랙 포탈 이후에야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기 시작했고, 후에야 이를 파괴할 방법이 고안되었다.

우연히 그 자리에 함께한 선 라이즈 2팀은 당시의 희망이었다.

그들이 제대로 힘을 써줬다면 그토록 많은 이들이 허무하게 죽어 나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뭐?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쌍놈의 새끼가 나보고 실력을 증명해 보이라고?

오냐. 네가 원하는 실력 증명, 원 없이 해주마.

끼익.

굳게 닫혀 있던 연무장의 문을 열었다.

번쩍!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플래시가 곳곳에서 피어난다.

찰칵찰칵!

들려오는 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음뿐.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돌아본다.

마치 유명 연예인의 스캔들을 취재하러 온 인파처럼 수백 대의 카메라와 기자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연우 학생. 지금 심정에 대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화랑의 비리와 연루되었는데, 사전에 비밀 회동이 있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왜 아무 말 못 하는 거죠? 침묵으로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내 두 눈은 이 모든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을 쫓는 중이다.

그러나 소동의 장본인보다 먼저 눈에 띈 건 곤란한 표정이 역력한 교장 할배와 그 오른쪽에 서 있는 클래식한 줄무늬 정장의 노인이었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

외부인들의 통제가 엄격한 아카데미 안에 기자들이 들어와 의아하던 차였는데, 이사회가 움직였으면 그럴 만도 하다.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노인은 화랑의 이사회를 대표하고 있는 이사장 김수철 할배였다.

대격변 이전부터 굴지의 대기업을 굴리고 있던 회장님. 대격변 이후 변화하는 세계를 직감하곤 화랑이라는 사립 아카데미를 건립한, 그야말로 입지적인 할배였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선 라이즈 길드를 뒤에서 후원하고 있는 양반이기도 하다.

선 라이즈가 괜히 떠오르는 신성이 아니다.

김수철 할배의 막강한 자금력을 통해 인재들을 싹쓸이해버리니 그토록 빠른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이것들이 김수철 할배까지 동원했다면 작정을 한 게 틀림없다.

그건 뭐라고 할까. 오늘 이 자리에서 나라는 존재를 머리까지 파묻어버릴 태세라고 해야 하려나?

“여러분 잠시 길을 비켜 주십시오.”

소란의 와중 울려 퍼진 낭랑한 음성.

드디어 주인공이 행차하신다.

정면을 응시했다.

홍해가 갈라지듯 양측으로 갈라진 인파 사이로 우리의 주인공 서홍인 님이 등장하신다.

오오, 늠름한 저 자태를 보라.

초인력을 꽤 소모한 듯 조각과 같은 얼굴, 그리고 정복으로도 다 감추지 못한 다부진 몸. 손에 쥔 검은 약간 투박한 듯한데 날카로운 예기를 발산하는 게 그리 범상치 않아 보인다.

어딜 봐도 영웅의 자태 뿜뿜이다.

그래서 더 열 받는다. 허우대는 저렇게 멀쩡한 새끼가 공포에 사로잡혀 도망가는 꼴이라니.

그리고 한 놈 더.

“...”

말없이 서홍인의 뒤를 밟고 있는 녀석. 그는 과거, 나의 간절한 외침에도 등을 돌렸던 2팀의 팀장 장일우였다.

역시 그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후에 선 라이즈를 이끌 서홍인을 위해 장일우를 심복으로 붙여두었다는 소문 말이다.

하긴, 그러니까 저 바쁜 사람이 매번 화랑에 찾아왔던 거겠지.

우리 대단하신 선 라이즈 길드 마스터님은 너무 바쁘셔서 오지 않은 모양이고. 그럼 오늘의 주역은 다 모인 셈인가?

“소식은 이미 다 전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건방지게 내 앞에 꼿꼿이 선 녀석을 응시했다.

“이연우. 당신에게 정식으로 결투를 요청합니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도 결투를 피하는 비겁자는 아니길 바랍니다.”

비겁자라. 이거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녀석에게 비겁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상당히 나쁜데?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녀석의 눈을 응시했다.

자신감이 충만하다 못해 하늘을 뚫을 지경이다. 그래도 검왕의 인정을 받은 상대인데 이렇게 자신감이 넘친다?

[마력 감지 돋보기를 사용하겠습니까?]

[Yes / No]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의심. 나는 인벤토리에 있던 편리한 기능성 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리고 녀석이 보이는 자신감의 원천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야, 아주 버프 덩어리네. 근력, 민첩, 체력 강화에 심지어 가속도 있고. 와, 그것도 전부 고위급 축복이네?”

갑작스레 튀어나온 내 말에 서홍인과 장일우, 그리고 선 라이즈 길드원 대부분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승부를 피하려고 지금 변명을...”

“그리고 그 검. 투박해 보이지만 꽤 강력한 인챈트 마법이 부여된 데다가 기본 성능도 일개 초인 예비 지망생께서 가질 만한 수준은 아니네. 이야, 이번 결투를 위해 대 선 라이즈 길드 마스터께서 많은 걸 준비해 줬구나.”

“...”

내 말에 섣불리 반박하지 못한다.

이 정도 세부적인 정보까지 알기 위해서는 관계자가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모를 정보로 인해 당황하는 게 눈에 선히 보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냥 결투를 피하고 싶다면 피하고 싶다고 해. 괜히 궁색한 변명이나 잔뜩 늘어놓지 말고.”

흥분한 녀석이 악을 써댄다.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어떤 변화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이곳은 녀석의 앞마당이다.

돈으로 사주된 언론인들과 그 뒤를 봐주는 이사장. 심지어 하이 랭커인 장일우가 언제든 끼어들 여지도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무슨 행동을 하건 바뀌는 건 없다.

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죽을 수밖에 없는 사지死地.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아니 핑계를 대는 게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참 너희도 안달이다. 그렇게 검왕의 인정을 받은 게 아니꼬웠을까.”

승부를 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떻게든 검왕이라는 타이틀에 연관되어 보려는 그 모습이 그저 불쌍할 따름이다.

저벅.

결투를 위해 연무장으로 무대를 옮겼고, 이후 몇 마디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내 뇌리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나는 연무장 중앙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홍인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혹, 결투 중 어떤 불상사가 생겨도 저를 원망하지 마시길. 검왕의 인정을 받았으니만큼 전력을 다할 테니 말입니다.”

영웅의 모습 뒤,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서홍인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그야말로 잘 짜인 판.

그 모든 것을 알지만 불평하지 않는다.

지금 내 눈과 귀, 그리고 모든 감각은 오직 녀석, 상대를 향해서만 열려 있다.

[초급 고도의 집중이 발현...]

[초급 예지가 발현...]

어느새 시스템 알림마저 그저 ‘지잉’ 거리는 이명으로 바뀌어버렸다.

꽈악.

손에 쥔 신창의 감각이 더욱 선명하게 육신에 새겨진다.

“#$!$%!#@!#!”

뭐라 중얼중얼하는데 테이프를 늘려놓은 것처럼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단지 기분 때문만은 아니다. 어쩐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제자야. 상상력을 제한하지 마라. 틀 안에 갇히는 순간 네 창 또한 답보 상태에서 멎을 것이다.

달을 꿰뚫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태양을 꿰뚫고 싶다면 그것 또한 그렇게 해라.

내가 전수한 창법은 불가능하다는 영역을 네게서 해방시켜줄테니.

그러니 당장 시작해라. 저 높은 곳에서 홀로 고고히 빛나고 있는 태양을 꿰뚫어 버리란 말이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악을 쓰고 열변하는 창신의 말이 떠올랐을 때였다.

“시작!”

결투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고.

핏!

나도 모르는 새 육신이 반응했다.

그저 가볍게, 절대의 감각을 공유하던 창을 내질렀을 뿐이다.

눈앞에 피어난 흐릿한 궤적.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인지의 영역을 벗어난 궤적이었다.

뻗었다고 느낀 순간 반드시 맞을 수밖에 없는 필중必中.

“컥!”

그 단 한 번의 일격이 서홍인의 육신을 허물어뜨렸다.

[입신의 창법이 상당히 재현되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어 창법의 숙련도가 틀에서 벗어납니다.]

[축하합니다. 최상급 창법 Lv 1이 최상급 창법 Lv 3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스킬 : 관일貫日(★★★★☆)’을 획득했습니다.]

“안 돼!”

새로운 스킬을 획득했다는 시스템 알림과 함께 소스라치게 놀라 달려오는 장일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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