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고인물은 동료도 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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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 실화냐?”
“어머머. 완전 분위기 깡패다.”
“진짜 잘생겼지?”
“해외 배우들인가? 그런 것치곤 본 적 없는 얼굴들인데.”
“그런데 어울리지 않게 저 오징어는 뭐래?”
“그러게. 혼자 분위기 잡쳐 놓고 정말.”
다 들린다 이 년들아.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말을 간신히 삼켰다.
아마 저 사람들은 모를 거다. 내가 초인 아카데미를 다니는 학생이란 걸. 그리고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귀가 밝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봐준다.
그나저나 하. 오징어라니. 내가 오징어라니.
어디 가서 꽤 괜찮다는 소린 들어봤어도 오징어란 말은 처음이었다.
그 원인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 망할 녀석들과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카페에 앉아 있는 건 나 혼자가 아니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아싸로 통하는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건 네 명의 미남미녀들이었다.
“마스터. 자꾸 사람들이 마스터를 바라보며 오징어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요?”
후광이 절로 비치는 절세의 미녀 파트로나가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오징어? 혼자 맛있는 오징얼 먹고 있는 거냐! 나도 줘라!”
멍청한 바포르 녀석이 주머니를 뒤진다.
진짜 이 새끼, 뒤지게 패고 싶다.
“자중하라 바포르. 주군이 혼자 드시겠다면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주군의 의지기 때문이다.”
오, 내 충실한 기사 아만. 하지만 이 녀석도 그다지 좋은 놈은 아니다.
고작 오징어 가지고 의지라니. 꼭 혼자 오징어 먹으려는 더러운 놈으로 보이잖아?
“오징어 하나 가지고 의지라니. 그게 뭔 개소리야?”
“닥치지 못할까! 지금 주군의 의지에 반하겠다는 거냐?”
여전히 사이좋은 바포르와 아만이 으르렁댄다.
“멍청이들.”
그나마 젤루 녀석이 제일 낫다.
물론 얼음장 같은 녀석과 단둘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싫지만.
기역 자 형태의 소파가 마련된 테이블.
그곳에 나와 함께 있는 건 아오스에서 수많은 전설을 함께 만들었던 가디언 사인방이었다.
파트로나를 비롯한 바포르, 아만, 그리고 젤루까지.
아, 물론 아만의 경우에는 기본 외형이 워낙 음침해서 미리 인간 형태로 바꾸어 놓은 뒤였다.
이렇게 보니 정말 가관(?)이다.
절로 후광이 비치는 절세의 미녀.
얼굴에서도 열정이 느껴지는 쾌남아 바포르.
도도하고 차가운,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시크남 젤루.
심지어 인간 형태로 변화한 아만은 이전의 분위기가 무색하리만큼 귀티를 뽐내고 있었다. 모든 걸 다 가진 재벌 2세 같은 느낌?
여기에 서 있으면 웬만한 배우도 오징어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망할 게임의 공통점은 NPC들의 등급이나 능력이 강화될수록 생긴 것도 장난 아니라는 거다.
내 앞에 있는 건 전설급 가디언이다.
게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등급의 가디언이니만큼 그 외모도 번쩍번쩍 빛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저 오징어라는 소리는 한동안 날 따라다닐지도 모르겠다.
딸랑딸랑-
상대성 오징어 이론에 실망할 무렵, 카페의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안타깝지만, 또 다른 오징어 예약이다.
이 시대가 낳은 피폐한 가장이 들어오고 있다.
머리는 얼마나 감지 않았는지 번들거리고, 수염은 얼굴을 가득 덮고 있다. 유행 지난 지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갈색 트렌치코트를 끌고 다니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처량해 보이는지.
그가 바로 하진우. 나에게는 초인이 될 기회를 제공한 은인이자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다.
물론 아저씨의 직업이 초인 스카우터이니만큼 항상 일 때문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실적에 목이 마른 직업에도 불구하고 보육원과 같은 불우한 시설을 방문해 재능 있는 아이들을 발굴한다는 사실을.
기댈 곳 하나 없이 버려진 내가 화랑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아저씨의 도움 덕분이었다.
부모가 없는 내게는 부모와도 같은 분. 그렇기에 아저씨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었다.
“아저씨!”
손을 들어 아저씰 불렀다.
힐끗, 내 얼굴을 확인한 아저씨가 다가온다
“으잉?”
하지만 테이블로 다가오기도 전 그 자리에 멈춰선다.
“너 혹시 혼성 그룹으로 연예계 진출할 생각이냐?”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와 내 주변을 살핀다.
오해할 만도 하다. 이 정도 얼굴이면 연예계 진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설마요. 저도 제 주제는 잘 알거든요.”
“그래? 잘 생각했다. 여기 있는 애들이랑 같이 하면 성공은 할 수 있겠는데, 욕은 더럽게 처먹을 것 같거든.”
“저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얼굴입니다만?”
“그건 나도 인정하는데. 여기선 오징어별 외계인 확정이다.”
반박할 수 없다.
이 사인방 곁에 있는 것만으로 주위는 온통 오징어의 기운으로 물들어버릴 정도였다.
“그보다 바빠 죽겠는데 왜 불렀냐? 혹여 시답지도 않은 일로 불렀다면 뒈지게 맞는 수가 있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아저씨가 주먹을 들어 올린다.
역시 안하무인이다. 아무리 연배가 어려 보인다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저 협박을 그냥 넘길 수 없다.
나름 현역 시절 꽤 이름을 알렸던 초인인 만큼 잘못하면 뒈지게 얻어맞는 수가 있다.
“요즘 실적 별로죠?”
“놀리냐?”
나름 이름을 날린 초인이었던 것치곤 아저씨의 실적은 좋지 않은 편, 아니 최악에 가깝다.
그럴 만도 한 게 굳이 불우한 시설 쪽에 있는 인재만 발굴하니 그 영역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놀리긴요. 이번에 제가 큰 실적 하나 올려 드리려고 왔죠.”
“왜? 어디서 쓸 만한 녀석이라도 봤냐?”
그제야 흥미롭다는 듯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인다.
“쓸 만한 정도가 아니라 아저씨를 단번에 스카우터 계의 퍼거슨으로 만들어줄 어마어마한 인재들이죠.”
“미친 새끼. 지랄하고 자빠졌네.”
아마 과장이라고 생각한 듯 찰진 욕설과 함께 피식 웃는다.
“야, 인재를 발굴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아냐. 대격변 초기에서나 길가에 치이는 돌멩이처럼 많은 게 초인 후보생이었지, 지금은 그게 아니에요. 대형 길드를 비롯한 중소길드에서 이미 인재가 될 만한 애들과 다 계약을 마쳤지, 심지어 요즘은 유스 시스템이라고 해서 아기 때부터 미리 독점해놓고 내부에서 키운단 말이야. 휴우. 나 같은 프리랜서 스카우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훌륭한 인재를 발견하는 것. 그건 초인 각성이 막 알려지기 시작한 대격변 초기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초인 적성 검사를 통해 잠재력을 측정한다. 물론 후천적으로 능력을 각성하는 이들도 많은 만큼 그게 반드시 기준이 될 수 없지만, 일단 이것으로 1차 분류가 된다.
1차 분류에서 잠재력을 인정받은 아이들은 관련 정보를 쥐고 있는 대형 길드 스카우터들의 방문을 받고 계약 제의를 받는 게 수순이다.
후천적으로 능력을 각성한 이들 또한 마찬가지.
감지, 탐색 계열의 스카우터들이 귀신과도 같이 방문해 그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것.
아저씨 또한 탐지 계열의 특성이 있었지만, 앉아서 수천 리 떨어진 곳까지 감지할 수 있는 대형 스카우터들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애초에 나 같은 애송이가 대형 신인을 발굴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저씨. 저 지금 진지합니다.”
“흐음...”
내가 실없는 농담을 많이 해도 진지할 때는 또 한없이 진지하다. 그러한 성향을 알고 있기에 아저씨 또한 장난의 기색을 조금은 거두었다.
“그래서. 네가 말하는 그 대형 신인은 어디 있는데?”
그 말을 기다렸다.
아저씨에게서 눈을 돌린 나는 파트로나를 비롯한 사인방에게 시선을 주었다.
“파트로나에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마스터의 은인이시라고. 당신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바랄게요.”
“요, 반가워. 난 바포르. 마스터의 은인이면 우리의 친구기도 하지. 앞으로 잘해보자고.”
“주군에게 은인이면 제게도 은인과 같습니다. 하해와 같은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주군의 충직한 기사이자 주군의 오른팔, 주군의 방패막이, 주군의 검 아만입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젤루입니다.”
각자 소개하는 게 가관이다.
아무리 봐도 이 녀석들은 개성이 너무 강하다.
세계에서 괴짜를 한데 모아 놓으면 이런 개판 분위기가 되려나?
성능이 좋아서 망정이지, 아마 성능이 개판이었으면 저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봉인해버렸을 터다.
“어, 어어. 그래. 나도 만나서 반갑긴 한데...”
아저씨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이 녀석들 뭐냐, 뭐 그런 의미다.
“뭐긴요. 조금 전까지 말했던 대형 신인 사인방이죠.”
“애들이? 혼성 그룹이 아니고?”
어딜 봐도 못 믿겠다는 눈치다.
그 표정에서 속마음이 그대로 나온다. 얼굴만 번지르르하게 생긴 녀석들이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후우. 아저씨가 실적이 좋지 않은 이유는 저도 알겠네요. 도대체 스카우터로서 자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무시하냐?”
“네. 무시합니다. 아니, 탐지 특성은 뒀다가 국 끓여 드실 생각이세요?”
“아, 그렇지. 그랬었지.”
자신의 이마를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친 후에야 특성을 발동한다.
아저씨가 지닌 탐지 특성의 발동 조건은 상대의 눈을 마주치는 것이다.
앉아서 수천 리를 볼 수 있는 다른 스카우터 특성에 비하면 정말 쓸모없는 것 같아도 일단 발동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치 상대의 상태창을 보는 듯 그가 지닌 능력, 특성 등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으허헉!”
파트로나와 눈을 마주친 아저씨가 놀라 뒤로 자빠졌다.
“이, 이게 뭐야?”
얼마나 놀랐는지 눈가는 파르르 떨리고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뭐긴 뭐에요. 조금 전에도 말했던 대형 신인이지.”
“야 이, 미친 새끼야. 이게 대형 신인 수준이냐?”
사람이란 게 그렇다. 너무 놀라면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는다. 지금 아저씨의 상태가 딱 그랬다.
“아저씨 놀라기는 아직 이른 거 아니에요? 아직 세 명이나 더 남았는데.”
“오, 씨발!”
그제야 남은 삼인방을 훑어본 아저씨의 눈이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꿀꺽.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가는지 목청이 꿀렁거리며 자꾸만 혀를 핥는다.
“그, 그럼 한다?”
“뭘 저한테 보고까지. 하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어, 어어. 그렇지. 그랬지 참.”
바짝바짝 타는 입술을 핥으며 아저씨의 특성이 발동되었고.
“헛”
“으악!”
“씨부럴, 미친!”
순서대로 삼인방의 특성을 감지한 아저씨는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