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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회귀해버렸습니다-9화 (9/161)

9화.  고인물은 전투 중에도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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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윌리엄이 흥미롭다는 듯 나를 응시했다.

그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내 몸 주위로 흐르는 수상쩍은 기운을 말이다.

“개인 특성인가?”

“글쎄요.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요?”

“하긴, 의미 없는 물음이로군. 그거야 부딪쳐보면 알게 되겠지.”

과연 듣던 대로 화끈한 양반이다.

일단 전장에 나간 순간 보이는 적을 모조리 동강을 내버린다는데. 설마 나도 그런 꼴을 당하는 건 아니겠지?

“맨 손으로 싸우진 않을 테고. 자네. 사용하는 무기는?"

윌리엄이 아니다.

교장 할배가 중간에 끼어들어 물었다.

"창입니다."

"준비해주지."

공간이동 특성이 있었던 듯 순식간에 내 손에는 목창이 쥐어졌다.

손안에 느껴지는 감촉이 B 클래스에서 썼던 것과는 다르다.

“특별히 S 클래스의 대련 무기를 준비했으니 부서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마땅치 않은 기색은 역력하신 가운데 이런 준비까지.

하긴 교장 할배가 인재에 대한 편협한 시선에, 속물이긴 해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다.

블랙 포탈이 화랑을 덮쳤을 때, 끝까지 아이들을 위해 전면에 나서 혈투를 벌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머리는 산발한 채 굳어버린 피로 뒤덮인 혈인血人.

최후의 순간에도 교장 할배는 적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며 화랑의 최고 어른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그 죽음을 다시 한번 목격하기 싫다면 나는 더욱 강해져야만 한다.

“자네는?”

교장 할배가 윌리엄을 보며 물었다.

“엑스칼리버를 준비할까요?”

“농담은. 알겠네. 그럼 모두 준비됐나?”

나와 윌리엄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고.

“언제든지.”

“준비 끝났습니다.”

오히려 빨리 시작하길 바란다.

성좌의 가호라고 해봐야 지속 시간이 10분.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 본전을 뽑을 것 아닌가.

“그럼 어울려 보게나.”

탓-

마땅찮은 할배의 시선을 무시한 채 지면을 박찼다.

도약을 통한 접근. 그리고 창을 내뻗는 동작이 물결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쉬익-

가속도를 그대로 이용해 창을 뻗었다.

“나쁘지 않군.”

B 클래스의 누구도 받지 못했던 일격. 그러나 윌리엄에게 있어서 그건 재롱 그 이상이 아니었다.

정확히 경로를 예측한 그의 신형이 좌측으로 살짝 물러났다.

스윽-

창이 그를 꿰뚫는 것 같은 건 착각에 불과하다.

불과 1cm 정도가 남을 정도의 간극. 윌리엄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위대한 격을 갖춘 상대에게 창을 들이댔습니다. 중급 창법(Lv 1)이 10% 상승합니다.]

혹시 했던 게 역시다.

윌리엄을 때리진 못했지만, 창을 들이댔다는 것 하나만으로 중급 창법의 숙련도가 10% 상승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초급 숙련도보다 중급부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10%? 게임 속에서 이게 가능했다면 개나 소나 다 트리플 마스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봐야 애송이일 뿐이지.”

그러나 기뻐할 새가 없다.

웃음기를 거둔 윌리엄의 얼굴이 전면에 나타났다.

당황해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퍽!

목덜미에 충격이 전해졌다.

전면에 모습을 보인 건 페이크.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궤적이 휘어져 목 뒤를 강타한 것.

[아주 찰지게 때린 타격입니다! 타격에 대한 고찰과 깊은 이해가 돋보입니다. 초급 맷집이 Lv 4에서 Lv 5로 상승합니다.]

맞는 건 더 대박이다.

고작 한 댈 얻어맞았을 뿐인데 초급 맷집의 레벨이 단숨에 1이 올랐다.

“흐음, 입심은 대단하나 실력은 보잘것없군.”

꼴사납게 바닥에 엎어진 날 보며 마무리 멘트를 이어간다.

아마 그 일격으로 승부는 끝났다고 판단했겠지.

물론 평상시라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성좌의 가호가 있다.

“아직입니다!”

벌떡 일어서며 예비 동작이 없는, 한 호흡의 찌르기. 일섬을 발현하며 윌리엄의 목젖을 노렸다.

“허?!”

당황한 그 얼굴이 꽤 통쾌하다.

그러나 그는 고수 중에서도 고수다.

땅으로 꺼진 듯 팟하고 사라진 그의 신형을 쫓는 건 불가능했다.

[일섬(★☆☆☆☆)의 숙련도가 5% 상승합니다. 100% 달성 시 스킬이 한 단계 진화합니다.]

퍼억-

오른쪽 뒤 사각지대. 그곳에 나타난 윌리엄이 오른쪽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강렬한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육신의 균형을 간신히 유지한다.

“이래도 버틴다고?”

윌리엄도 놀라고.

“어찌!”

“저게 가능하다고?”

관전하고 있던 교직원들도 덩달아 놀랐다.

내가 관전자였어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B 클래스의 학생이 검왕이나 되는 이의 연이은 타격을 버티다니.

아무리 초인력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육신의 업業만 해도 괴물이라 불릴 정도다.

초인 준비생 정도면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게 당연한 수순.

물론 진심으로 했다면 진즉 성좌의 가호마저 박살이 났을 테지만, 어차피 이건 대련이다.

윌리엄의 입장으로 보자면 유흥. 그렇기에 이 어처구니없는 대련이 유지되는 것이다.

“아직 멀었습니다!”

그것이 못내 기쁘다.

반동은 있으나 타격을 무시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무얼 망설일까.

스팟-

흔들림 없는 자세로 창을 찔렀다.

그것은 오직 극쾌에만 초점을 맞춘 기본적인 찌르기다.

잔재주? 그딴 건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공격을 선보일 뿐이다.

그러나 내 창은 윌리엄의 잔상조차 쫓지 못했다.

흐릿한 잔상을 남긴 그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분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초인력조차 사용하지 않는, 오직 육신의 힘만을 이용하는 윌리엄의 흔적조차 쫓지 못하는 신세 말이다.

[중급 창법(Lv 1)이 10% 상승합니다.]

크흐흐. 그러나 괜찮다.

어차피 내 목적은 그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윌리엄은 아주 좋은 숙련도 공급원이다. 이번 대련은 어디까지나 내 숙련도를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한 발판이었다.

“어디 이것도 버티나 볼까?”

윌리엄의 눈에서 광채가 번쩍이는 듯했다.

퍼퍼퍽!

“큭!”

허벅지, 가슴, 그리고 관자놀이로 이어지는 삼연타에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하지만 버틴다. 성좌의 가호가 버티고 있는 이상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다.

“합!”

비틀거리는 신형을 바로 세우고 다시금 일섬을, 누군가에게는 찌르기에 불과한 동작을 재차 펼쳐 보였다.

“물러나지 않겠다? 그렇다면...”

조금 열이 받은 걸까?

파파파팟-

마치 꽃이 피어나듯 윌리엄과 나와의 공간이 주먹으로 장식되었다.

퍼퍼퍼퍽!

셀 수 없이 많은 주먹의 잔상이 육신을 강타한다.

[초급 맷집(Lv 5)이 50% 상승합니다.]

[초급 맷집이 Lv 5에서 Lv 6으로 상승합니다.]

[초급 맷집(Lv 6)이 20% 상승합니다.]

...

미친!

고맙지만, 이건 꽤 충격이 크다.

지금 내 육신을 연이은 반동으로 인해 대략 20cm가량 공중에 뜬 상태였다.

이대로 멍하니 당하고 있으면 성좌의 가호가 부서질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순 없다. 맷집 숙련도를 올리는 것도 나름의 수확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내가 원하는 거 그보다 더 위다.

집중.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윌리엄의 궤적을 쫓는다.

아마 그의 공격에 제대로 충격을 전해 받았다면 이러한 행위는 불가능했을 테지. 그러나 나는 둔탁한 고무망치로 맞는 정도의 충격을 느낄 뿐이었다. 이 소나기와 같은 미친 타격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집중에 집중, 그리고 또 집중을 거듭했다.

다가오는 공포에 현혹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기적을 발생시켰다.

보인다!

놀랍게도 흐릿한 어떤 형상이 환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위대한 격의 공격 궤적을 흐릿하게나마 파악해 숙련도 ‘고도의 집중’이 생성되었습니다.]

[초급 고도의 집중이 Lv 1에서 Lv 2로 상승합니다.]

잭팟이 터져버렸다.

퍼퍽!

크흐. 처맞고 있는 와중에도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고도의 집중은 웬만해선 생기지 않는 레어급 숙련도다.

방법을 알고 있어도 운과 상황이 따라주지 않으면 평생 가도 얻지 못하는 것 중 하나.

하긴, 지금 내 상대가 누구인가. 1레벨의 허접이 무려 듀얼 마스터의 공격 궤적을 흐릿하게나마 꿰뚫어 봤다.

초인력을 사용한 가속이었다면 불가능했을 테지. 어찌 됐든 윌리엄이라는 강자의 공격 궤적을 파악했고, 그로 인해 레어급 숙련도인 고도의 집중을 얻을 수 있었다.

“흐음? 보호와 관련된 특성인가?”

윌리엄의 손이 찰나의 순간 멈췄다.

이 정도로 공격했는데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고 내 특성을 지레짐작한 모양이다. 하지만 틀렸수다. 이건 보호 특성이 아니라 템빨이라는 것이다!

슥-

찌르기. 단순히 일직선 궤적만을 그리는 그걸 피하는 건 무척 쉬운 일이다.

“아집인가? 아니면 고집인가?”

찌르기 일변도의 내 공격에 윌리엄이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여유로우면 피하는 도중에도 저렇게 물어볼 수 있을까.

“아집도 고집도 아닌 최선입니다.”

잔재주? 부리려면 부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 나름이다.

검왕 앞에서 무슨 변화를 줄 거며, 무슨 대단한 기술을 보이겠는가. 어차피 모든 게 똑같다면 가장 자신 있는 찌르기, 일섬을 선보일 수밖에 없다.

팟!

[중급 창법이 Lv 1에서 Lv 2로 상승합니다.]

[일섬(★☆☆☆☆)의 숙련도가 5% 상승합니다.]

결과가 없는 건 아니다.

전투 중에도 내 창법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

쉭!

청년의 손을 떠난 창이 단순하다 못해 정직한 일직선의 궤적을 그리며 쇄도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윌리엄, 검왕에게 있어서 그 정도 공격 궤적을 파악하는 건 식은 죽을 먹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놀랍군.’

하지만 그는 청년, 연우의 찌르기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고작해야 18세. 그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은 애송이의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 찌르기에는 오랜 숙련, 무거운 업의 무게가 느껴졌다.

‘내가 이 나이 때에는 어땠지?’

격변이었던 시대, 당시 그는 15세라는 이른 나이에 초인의 능력을 각성했었다.

지금이야 괴물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당시의 그는 그저 철부지에 불과했다. 18세가 되었을 때라고 해서 다른가?

아니. 그저 자신이 타고난 권능을 이용해 영웅 심리에 취해 있었을 뿐, 진지한 길을 걷지 못했다.

그러나 눈앞의 청년은 어떤가.

진지한 건 물론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한 태도의 차이라고 볼 수 있으나 윌리엄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확신을 품고 길을 걸어가는 자는 끝내 대성한다.

비록 여러 갈래의 길에서 고전할 때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끝을 향해 도달할 것이다.

어린 나이답지 않은 완숙한 찌르기?

자신의 공격을 끈덕지게 버텨내는 신비한 특성?

윌리엄은 알 수 있었다. 설사 그 모든 것을 갖추지 않았다 해도 눈앞의 청년과는 무학의 길 끝에서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을.

‘인재를 보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비록 타국의 잠룡潛龍이나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외로운 길의 동지. 그렇기에 윌리엄은 청년을 인정했다. 이연우.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 숨어 있었던 그를 무학武學의 동반자로 말이다.

‘같은 동지를 만났으니 어찌 베푸는 것을 주저하겠는가.’

폐쇄적인 성향이 강한 다른 십왕들과 달리 그는 호전적이면서도 화끈했다.

배우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연우를 위해 자신의 깨달음을 보여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파앗!

지금까지는 그저 대충 손을 휘둘렀다면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정확한 타격을 가했다.

쉭!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연우의 찌르기가 이어진다.

과연 다르다.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보인다.

슥-

이상하다. 여전히 일직선 궤적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나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컨디션에 따라 동작이 차이가 날 순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빨라지는 건 말이 안 된다.

스윽-

유심히 창의 궤적을 확인한 윌리엄의 눈동자가 커졌다.

빨라졌다. 게다가 더욱 정교하다. 마치 조금 전의 찌르기는 전력이 아니었다는 듯이.

‘설마...?’

마음속에서 이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그 어떤 괴물이라도 전투 중에 성장한다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아니 존재하지 않아야 할 일이었다.

퍼억!

불신을 담은 주먹이 관자놀이에 꽂혔다.

청년, 연우의 눈이 매섭게 빛난다. 공격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사나워지고 있었다.

스스-

복부에 꽂힌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찌르기가 이어졌다.

“맙소사!”

그 순간 윌리엄은 경악하고 말았다.

분명 조금 전보다 더욱 성장했다. 아니 이번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치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찌르기의 속도, 위력, 정교함이 모두 바뀌어 있었던 것.

괴물이 나타났다!

전투 중에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괴물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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