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고인물은 오는 여자도 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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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부터 18세까지. 한창 배고픈 시기의 아이들은 먹을 것에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
그리고 그건 예비 초인인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점심시간의 종이 울림과 동시에 식당은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아싸, 1등!”
순간 가속의 능력을 이용해 순위 쟁탈전을 벌이는 녀석.
“에이, 오늘 똥국이네. 야, 매점 가자!”
별다를 것 없는 반찬에 불평하며 수많은 인파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 무리.
“아주머니. 소시지 두 배로 주세요!”
맛있는 반찬에 올인하며 끝까지 버티고 선 편식쟁이.
한창 혈기 넘치는 아이들이 광기에 물든 점심시간은 개판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애송이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육신은 18세의 청년이었지만, 정신은 23살의 어른이다. 그것도 종말의 날을 맞이한, 구를 대로 구른 진정한 어른이란 말이다.
“아주머니. 소시지 하나만 더 주세요.”
하지만 나도 소시지는 사랑한다.
아이 러브 육식. 채식은 개나 줘버리라지.
“안 돼. 계속 이렇게 퍼주면 모자란단 말이야.”
“그러지 마시고. 저 소시지 아니면 밥 안 먹는단 말이에요. 한창 배고플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소시지가 부족해서 밥을 못 먹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아, 증말!”
고기를 먹기 위한 아주머니와의 힘겨운 사투(?) 끝에 소시지 두 개를 확보했다.
고갤 들어 장내를 훑었다.
테이블 수십 개를 붙여 놓은 긴 식탁. 그중 구석진 곳에 있는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먹이를 포획한 포식자처럼 당당한 걸음으로 빈자릴 향해 걸음을 옮겼다.
“쟤야, 쟤. 이연우.”
“아, 사이클롭스를 무너뜨렸다는?”
“완전히 쓰러뜨렸다곤 볼 수 없지. 사이클롭스가 양손을 쓰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그게 어디냐.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사이클롭스라고. 양손이 아니라 사지를 묶는다고 해도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있겠냐?”
“하긴. 그것도 그렇지.”
지나가는 내내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예상했던 바다. 아카데미 내에서 공포로 군림하던 사이클롭스의 낭패 소식은 단연 화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뭐랄까.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때의 화제성 정도? 여기에 더해 내 클래스가 화제에 불을 붙였다.
사실 화랑의 교직원에게 그나마 비벼볼 수 있는 학생이라면 S 클래스가 유일했다.
그들은 소수의 선택받은 천재들이었다.
다섯 명의 마스터가 운영하는 대한민국의 5대 길드에서도 러브콜을 해오고 있는 장밋빛 미래의 인재들.
선천적 재능은 물론 후천적 노력까지 괴물이라면 학주와 어느 정도 주고받는 공방전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영역에 B 클래스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 대 맞고 죽지 않으면 다행인 게 교직원과 B 클래스의 차이였다.
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내가 교직원을, 그것도 공포의 대명사인 학주와의 대련에서 승리했으니 화제가 되다 못해 전설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일은 실수였다.
설마 일섬이 발현될 줄이야. 아니, 학주가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결단코 손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만과 방심. 그 좁은 틈을 일섬이 꿰뚫었고, 예상하지 못한 불의의 일격에 학주는 손을 사용하고 말았다.
이긴 게 기분이 나쁜 게 아니다. 학주와 손을 더 섞어보지 못한 게, 숙련도 노가다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억울할 뿐이었다.
학주 정도의 실력자라면 그래도 꽤 높은 수치를 올릴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못내 아쉽고 분했다.
“그럼 조만간 A 클래스로 올라가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 아무리 양손을 묶었다고 해도 그 사이클롭스와의 대련에서 승리했으니 모르긴 몰라도 조만간 올라갈걸?”
“와 씨, 부럽다. 들어보니까 저 사람 C 클래스부터 올라갔다던데.”
“아마 최초 아닌가? C 클래스부터 A 클래스로 올라가는 게.”
“듣고 보니 그러네.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인 것 같은데?”
신경 쓰기 싫은 데 자꾸 녀석들의 말이 귀에 들어온다.
음. 내가 기억하기로도 최초가 맞다.
많은 일이 재능을 요구하지만, 초인 세계에서만큼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을 것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나뉘는 것과 같이 타고난 재능을 넘어 경지에 도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뛰어나지 못한 재능은 반드시 한계에 봉착한다. 그것을 깨고 다음 경지에 발을 들이는 것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따는 것과 마찬가지. 당연하게도 그 행운을 손에 잡는 건 소수, 아니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런 기회를 잡은 내가 눈앞에 있다.
C와 B 클래스가 같이 쓰는 구내식당인 만큼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이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쯧. 남의 속도 모른 채 지껄이기는.
뭐, 그래도 괜찮다. 학주와의 숙련도 노가다가 아쉽긴 하지만.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숙련도를 단번에 올릴 절호의 기회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금 빨리 식사를 마칠 필요성이 있다.
드르륵-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았다.
주변에 앉은 녀석들의 시선이 꽂혔지만, 상관하지 않겠다.
나는 지금 무척 배가 고프다.
푹!
아주머니와의 사투를 통해 획득한 소시지를 포크로 찍었다.
튕겨내는 저항감이 보통이 아니다. 이것은 돼지고기 함량 90% 이상의 돈육이 분명하다.
입가에 침이 고인다.
정신은 23세의 피폐한 어른이지만, 육신은 아직 18세. 한창 많이 먹을 나이의 육신이 자꾸 그것을 먹으라고 재촉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이연우!”
뾰족한 그 음성에 손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 상큼한 매력을 뽐내는 단발머리의 미녀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미녀가 갑자기? 그런데 놀랍지 않다.
사실 초인 능력을 각성한 여성들 대부분이 굉장한 미인이다.
초인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예쁘게 태어난다는 유전자라도 있는 건가? 아니. 그건 후천적인 노력의 결과다.
초인의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초인은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국가를 지키는 군인은 물론 정치, 기업, 심지어 연예계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특히 연예계에 진출한 이들 중에는 여성이 많은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능력 중 일부를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에 할애하기 때문이다.
방법은 많다.
얼굴의 근육을 미세하게 조정하거나 매력을 상승시켜주는 묘약, 혹은 그러한 효과를 가진 ‘아티펙트Artefact’를 착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초인이라면, 특히 예뻐지기를 갈망하는 여성 초인은 이러한 방법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한창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능력 중 일부를 잃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얼굴을 가꿀 확률이 높다. 아니 100%다.
“네가 어쩐 일?”
시큰둥한 말이 나왔다.
이 미녀 여학우는 내게 익숙한 인물이다.
김예인. 일명 상큼예인이라 불렸던 C-1 클래스의 동기였다.
솔직히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과거의 내가 고백했다가 차인 대상이기도 하다.
뭐, 한창 혈기 넘치는 젊은 사내라 이쁘다 싶으면 금방 사랑에 빠지곤 했다. 물론 그게 사랑이 아니라 그저 발정 난 늑대의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지금은 별 관심 없다.
조금 전 내 말투에서도 나왔지만, 지금 예인을 보는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無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예뻐 보이지도 않는다.
미녀? 세상에 미녀가 다 얼어 죽었나. 사실 애는 미녀 축에도 못 낀다.
자고로 미녀라 하면 파트로나 정도는 되어야지.
보는 순간 후광이 비치는 그녀. 바빌론에 잠시 대기 시켜둔 파트로나를 떠올리자 눈앞의 미녀는 오징어가 되고 말았다.
“야, 너 말투가 되게 띠겁다?”
내 반응에 토라진 반응을 보인다.
나름 아양을 떠는 것 같은데 하마터면 손에 쥔 소시지를 집어 던질 뻔했다.
한 번 오징어로 변하니 저게 애교나 아양이 아니라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었던 것.
“할 말 없으면 그만 가줘라. 내가 빨리 밥 먹고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이것이 바로 사람 무안해지는 축객령이다.
“와, 진짜 너무하네. 오랜만에 봤으면 인사도 하고 그러는 거지. 넌 내가 반갑지도 않냐?”
“어. 안 반가운데?”
뽀득!
입안 가득 터지는 육즙을 느끼며 소시지를 씹었다.
과거의 나라면 모를까, 내가 녀석을 반길 이유는 없다.
고백했다가 차인 원한이 남아서? 아니. 아무리 내가 좀생이여도 그 정도에 원한을 품겠는가.
예인, 녀석은 내게 꽤 싶은 상처를 준 이 중 하나다.
고백했다가 매몰차게 차인 거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친구들과 만나 내 험담을 하는 녀석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붙다 못해 고아 새끼가 붙어서는.」
「짜증 나. 쥐뿔도 없는 새끼가 눈만 높아서 말이야.」
「이래서 없는 것들한테 잘해주면 안 돼. 다 자길 좋아한다고 생각하거든.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우연히 듣게 된 그 말은 그렇지 않아도 자격지심으로 시달리던 내게 더욱 큰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뭐,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말을 들은 덕분에 노력하고 또 노력해 B 클래스로 갈 수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도 안 고맙다.
남자 하나 잘 꼬여내 인생 좀 펴겠다는 전형적인 속물. 그 시커먼 속을 알고 있는 마당에 반갑기는 개뿔.
꿈틀.
녀석의 눈썹이 춤을 추듯 아래위로 움직인다.
뭔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길 때 생기는 습관 중 하나다.
내가 고백했을 때도 녀석은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는 진짜 섭섭해 질려고 그런다.”
“그래. 섭섭한 걸 알면 그냥 가면 되겠네.”
“진짜 이러기야?”
“진짜 기러기다.”
“...”
건성건성. 이제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식사에 열중했다.
이 정도면 그냥 갈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녀석은 강단이 있는 계집이었다.
툭-
식판 앞에 떨어진 건 연하게 핑크빛이 들어간 편지지였다.
“이건 뭐?”
“예전에 네가 나에게 고백했던 거. 그거에 대한 내 답변.”
꽤 강적이다.
이렇게 대놓고 모멸감을 줬는데도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녀석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B 클래스 정도라고 생각했던 내가 화제의 주인공, 어느새 A 클래스로 가는 게 당연시될 정도로 성장했으니 마음이 바뀌었겠지.
아무리 그녀가 다른 학생들보다 예쁘다 해도 이곳은 실력 우선 주위가 만연한 아카데미 안이었다.
미모는 부수적일 뿐, 모든 건 지닌바 무력으로 판가름 난다.
현재 녀석은 B-5 클래스. B 클래스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A나 S 클래스를 넘볼 수 없다.
구분된 공간 만큼 사는 세계가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그런 도중에 기회가 온 것이다. 자신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던 호구인 나라는 기회 말이다.
과연 야망 있는 여자. 예인아. 너는 언젠가는 크게 성공하게 될 거다.
“답변이라. 분명히 그때는 거절했던 것 같은데?”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나는 능력 있는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거든. 지금 너 정도면 충분히 내가 매력을 느낄 만한 사람이야.”
자신이 쿨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대부분이 착각하는 게, 싹수없는 것과 쿨하다는 것의 차이를 모른다는 점이다.
내 처지에서 보자면 예인이의 행동은 싹수가 없다 못해 이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녀석은 모른다. 그저 그것을 당당함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
“내용에 관해선 기대해도 좋아.”
C 클래스의 여왕이 될 수 있었던 상큼한 윙크 한 방.
음. 하마터면 조금 전 먹은 게 역류할 뻔했다.
아가야. 당당한 것도 좋은 데 어느 정도는 분위기를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니겠냐?
“너도 기대하는 게 좋아.”
“정말?”
물론 내가 기대하는 것과 녀석이 기대하는 것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겠지만.
짧은 대화를 나누던 사이 식사를 끝마쳤다.
괜히 바쁜 일이 있다고 거짓말한 게 아니다. 진짜로 바쁜 일이 있어서 게 눈 감추듯 먹었다.
오징예인이를 지나쳐 한쪽에 마련된 음식물 수거함에 멈춰선 내가 한 일은 식판에 남은 잔반과 함께 우리 예인이의 편지를 버리는 것이었다.
“무슨 짓이야!”
내 행동을 끝까지 주시하고 있었던 예인이가 놀라서 다가온다.
“뭐긴 뭐야. 내 대답을 기대하라고 했잖아. 이게 내 답이야. 부족하니?”
“이, 이익...”
아무리 야망 있는 여자라도 이렇게 대놓고 멸시하는 데 참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예인아. 주제를 알아야지. 우리는 이제 사는 세계가 다르잖니?”
툭툭.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쳐주며 식당을 나왔다.
“아악! 이연우!”
먼 곳에서부터 아련히 울려 퍼지는 녀석의 비명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회귀의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과거 나를 괴롭혔던 악몽을 비틀어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과거의 악몽은 소거되고, 그 자리를 통쾌함이 대신한다.
“하하하!”
모처럼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방향을 잡는다.
내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교직원 전용 식당. 그중에서도 아주 높으신 분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사자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