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고인물은 한 방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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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검을 쓴다고 들었는데 교관의 말이 틀렸나?”
“네. 한때는 사용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창으로 전향했습니다.”
“주 무기를 지금에 와서 바꿨다고?”
저 의아한 반응은 당연한 거다.
한 번 무기를 선택하면 웬만해선 바꾸기가 힘들다. 그간 쌓아온 숙련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검을 쓰는 이가 갑자기 창을 쓴다고 하면 적과의 간극은 물론 습관적으로 익혔던 동작, 그리고 위험 상황에서의 무의식적인 반응 또한 꼬이게 된다.
아차 하는 순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게 초인이다. 그렇기에 익숙한 무기를 버리고 새 무기를 선택한다는 건 초인들에게 있어서 금기시되는 일 중 하나였다.
실제로 내가 초인 시절 사용했던 무기는 검이다. 가장 보편화 되었고, 또한 가장 많은 초인이 애용하는 무기.
어쩌면 검을 사용하는 게 가장 완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지금 부지런히 창을 사용해 숙련도를 올려놔야만 후에 나에게 올 ‘그것’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휘리릭, 착!
가볍게 한 바퀴 돌려 손에 쥔다.
손에 착 감기진 않지만, 낯설진 않다. 아오스, 가상의 현실에서 주 무기로 사용했던 게 바로 창이었다.
게임 속이라고 해서 얕보지 마라.
아오스는 초인들을 육성하기 위해 제작된 프로그램이니까. 그곳에서 이름을 날렸다는 건 초인으로서의 능력 또한 대단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몇몇 예외도 있었고, 그중에 하나가 나였다.
“여러모로 나를 놀라게 하는군. 자네는 지금의 그 모습이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길 바라야 할 것이다.”
다시금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온다.
규격 외의 행동은 화제를 불러 모을 순 있지만, 자칫 어긋나는 순간 비난을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초인을 육성하는 신성한 아카데미에 지금 내가 벌이는 행동은 똘끼 가득한 짓이다. 그것이 허세였다고 밝혀진다면 모르긴 몰라도 클래스 생활은 지옥이 될 것이다.
“쓰레기 새끼가, 진짜 가지가지 한다.”
스쳐 지나가던 우섭, 녀석이 속삭이듯이 말했다.
오호라. 이제 망나니 본성이 나오는군. 녀석은 과거에도 그랬다. 학주의 눈을 피해 나를 비롯한 아이들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화랑이 언제부터 이런 고아들 집합소가 되어 가지곤. 주제도 안 되면 가만히라도 있던가. 꼭 없는 새끼들은 이렇게 티를 내요, 티를.”
무기를 집는 척하면서 계속 도발한다.
아니, 도발이 아닌가. 녀석은 실제로 저따위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없는 놈들은 있는 놈의 도구일 뿐이다.
졸업 후 작전을 같이 수행할 일이 있었는데 위기 상황에서 녀석은 그러한 자신의 신념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녀석에게 피해를 본 놈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거기서 피해를 본 대상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너 새끼는 오늘부터 내가 찍었으니까 알아서 길 준비해라.”
마지막 경고와 함께 옆으로 지나가려는 녀석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뭐, 뭣?!”
“병신 새끼야. 입 털지 말고 빨리 꺼져. 학주한테 뒈지게 처맞기 싫으면.”
그렇지 않아도 학주가 이상한 기류를 눈치채곤 귀를 쫑긋거리는 중이다.
여기서 더 했다간 나나 녀석이나 최소한 사망 각이다.
“칫!”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표정을 고친 녀석이 지나간다.
약삭빠른 녀석은 선생들이 있는 곳에선 착한 척, 없는 곳에서는 폭군으로 군림했다.
약한 자들에겐 한없이 잔인하고, 강한 자들에게는 순한 양과도 같은 소인배의 표본. 장담하건대 저 새낀 종말의 날에 있어 봐야 전혀 도움도 안 될, 오히려 일을 그르칠 개새끼다.
“대련에 임하는 제군들, 마주 보고!”
모든 게 준비됐다.
대략 2m 거리를 벌린 채 서로를 마주 본다.
“인사!”
이건 생사를 건 결투가 아니라 경쟁을 위한 대련일 뿐. 예의를 갖춘 후에야 본격적인 어울림(?)이 시작된다.
“시작!”
팟-
학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녀석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지면을 박차 쇄도하는 그 움직임은 쾌속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
나름 B 클래스에서도 수재로 인재로 꼽히는 녀석이다.
가속과 괴력의 두 가지 특성을 이용한 능력은 잘만 다듬으면 A 클래스도 노려볼 수 있는 재능이었다.
만약 평범한 다른 B 클래스 녀석들이었다면 그 움직임 하나에도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
새끼, 표정 봐라. 잔뜩 일그러진 게 사고 한 번 칠 기세네?
녀석의 움직임이 환히 보이다 못해 표정 하나까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고작해야 1레벨인 내가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이름 : 이연우
직업 : 노비스Novice
레벨 : 1 근력 : 41
체력 : 41 민첩 : 41
신앙 : 1 마력 : 41』
초심자의 결의는 기존의 방어구와 달리 착용자의 기본 능력을 상승시키는 고유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본래 그 효과는 20. 하지만 세트 효과가 활성화되면서 2배인 40이 상승했다.
1레벨이 오르면 4개의 능력치 포인트가 주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단숨에 40레벨에 오른 셈. 물론 그건 유일급 세트 아이템의 효과가 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40레벨의 능력치면 최소한 아카데미에서 맞고 다닐 수치는 아니라고 장담한다. 그 증거로 가속의 특성을 가진 우섭이 녀석의 동작이 환히 보이지 않는가.
남은 건 이 건방진 새끼를 참교육시키는 것.
꽈악!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끝이 뻐근한 감각. 아마 보통의 목창이었다면 근력 41에 달하는 힘 앞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각종 인챈트 마법과 강화목으로 만들어진 이건 건재했다.
무수한 목창을 보며 시선을 정면에 고정했다.
휘휙!
쉽게 경로를 예측하지 못하게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녀석의 궤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애송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2년 동안 종말의 세계를 구르고 구른 내게는 그저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쿵!
진각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으음?”
그 발짓에 실린 힘을 깨달은 학주의 의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무시한다. 지금 나의 관심사는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는 개자식이었다.
디딤발에 주는 힘, 흔들림 없이 고정된 허리, 그리고 일직선으로 뻗는 동작, 그 모든 게 하나의 동작처럼 매끄럽게 연결되었다.
양손으로 쥐고 있던 창대를 한 손으로 지탱한 채로 내질렀다.
쐐액!
일직선의 궤적이 그려진 순간.
콰앙!
“커헉!”
산산이 부서져 버린 목검의 파편이 주변에 어지러이 흩날렸고, 실 끊어진 연처럼 우섭의 육신이 뒤로 튕겨 나갔다.
[절정의 찌르기로 인한 숙련도 ‘창법’이 생성되었습니다.]
[깨달음이 느껴지는 현묘한 찌르기입니다. 초급 창법이 Lv 1에서 Lv 5로 대폭 상승합니다.]
“맙소사!”
일련의 광경에 장내는 경악이라는 감정으로 물들었다.
B-4 클래스의 폭군으로 군림하던 우섭이 일격에 패한 건 물론 강화목으로 만든 대련 무기가 부서졌기 때문이다.
“너, 너...”
놀라기는 학주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 학생 신분으로 대련용 무기를 부술 수 있는 건 적어도 A 클래스 이상이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A클래스 이상은 지금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 더욱 튼튼한 대련용 무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B 클래스, 그것도 이제 갓 승급이 된 녀석이 우섭을 압도적으로 눕혀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대련용 무기까지 부쉈다.
오늘의 이슈 확정이다.
“오, 놀라워라. 이게 무슨 일이람?”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연기 연습 좀 해둘걸.
어딜 봐도 어색한, 마치 로봇과 같은 뻣뻣한 연기가 나와버렸다.
“...”
침묵이 장내를 휘감고 있다.
소위 말하는 갑분싸.
“이러면 승점 1점 맞죠?”
분위기가 애매할 때는 화제를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
“어, 어, 그래. 자네 말이 맞다. 이연우. 승점 1점!”
B-4 클래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전광판, 이연우라는 이름 옆에 +1이 기록되었다.
눈초리를 피해 우섭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톤은 어색해도 표정 연기는 꽤 자신 있다.
마치 전우를 걱정하는 이처럼 손을 내밀며 다가갔다.
“어어?”
사실 가장 당황한 걸로 따지면 단연 이놈이겠지.
적어도 B-4 클래스에서는 왕으로 군림해야 할 자신이 한 방에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 봤겠는가.
저 넋 나간 표정 봐라.
낄낄낄. 녀석의 얼빠진 표정을 보고 있으니 개꿀. 신이 나는구나.
짜릿해. 늘 새로워. 강한 게 최고야.
“그러게 적당히 깝치셔야죠. 가진 거라곤 타고난 것 하나뿐인 새끼가 개기긴 어디서 개겨.”
손을 잡는 척하며 녀석의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이 새끼!”
“주둥이 다물어.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또 한 번 개겼다간 이번처럼 조용히 끝나지 않을 거야. 사는 게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다는 게 뭔지 알려줄 수도 있으니까 명심해.”
이건 진심이다.
과거의 원한 때문에 손을 과하게 쓰긴 했으나 여기서 더 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종말의 때가 온다면 초인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이 쓸모없는 개 쓰레기 녀석도 어쩌면 시민 한 명을 더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녀석이 주제도 모르고 더 개긴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녀석을 파멸로 몰고 갈 것이다.
물론 지 아버지 빽 믿고 설친다면 조금 복잡해지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당장은 불가능하더라도 성장을 거듭한다면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
평소였다면 길길이 날뛰었을 테지만, 기가 눌려버린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내 기세 때문일 것이다.
전장을 구른 베테랑이 내뿜는 살의는 녀석이 견딜만한 게 아니었다.
“좋은 승부였다.”
녀석을 일으켜 세워 주며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가타부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짧게 녀석을 응시하다가 내가 가야 할 곳으로 이동했다.
연무장의 중앙이자 학주의 옆. 그곳에 창을 꼬나쥔 채로 대기했다.
“흐음.”
나를 본 학주가 턱을 쓰다듬는다.
뭔가 생각하는 게 많은 눈치다.
너무 과했나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B 클래스 따위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이것을 계기로 승급 추천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빠르게 치고 올라가 강자들의 곁에서 숙련도 노가다를 한다.
일단 이것이 나의 첫 번째 목표였다.
“좋아. 이번 대련에서는 이연우군이 승리했다. 도전하고자 하는 제군은 앞으로 나온다, 실시.”
“그럼 제가...”
“저도 한 번...”
B-4 클래스의 왕이 쓰러졌지만, 도전자는 넘쳐났다.
역시 B 클래스다. 조금 전 일격에 담긴 진의眞意를 보지 못한 것이다.
내겐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알아서 숙련도 노가다의 희생양이 되고자 하는 제물이 이토록 넘쳐나니 말이다.
그래, 와라 이 새끼들아. 오늘 창법 숙련도를 중급으로 올려버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