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고인물은 창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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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득 숙련도
초급 맷집(Lv 4) : 물리 공격에 대한 저항력』
“으흐흐흐.”
학주의 분노로 엉덩이가 불을 뿜는 듯했지만, 눈앞에 있는 숙련도 창을 보며 그 모든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
고작 열여덟 대를 맞았을 뿐인데 초급 숙련도가 4레벨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초급 맷집이어도 정상적인 상승 속도를 생각해 보면 이건 말도 안 되는 거다.
이렇게 된 이상 본래의 계획을 전면 수정한다.
적당히 틈을 봐서 아카데미를 나가 포탈을 노리는 성장은 개뿔. 하마터면 내 발로 숙련도의 성지를 기어나갈 뻔했다.
존버다.
졸업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최대한 존버하면서 숙련도 노가다를 통한 슈퍼 노비스Super Novice를 만든다.
물론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정체 구간이 오겠지. 그 때는 또 다른 수를 내면 된다.
일단 당장의 목표는 숙련도 노가다. 그것에 전념할 것이다.
터덜터덜.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마침내 배정된 반에 도착했다.
[B-4.]
과거로 돌아온 시점은 클래스 배정이 끝나고 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시점이 내 최고 전성기 때다.
나름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난 승급전을 통해 B-4 클래스를 배정받았다.
앞의 영문 B는 간단히 말해 등급이다.
F에서 S까지 나뉘어 있는 클래스에서 B 정도면 그래도 중상위권이라 부를 만한 정도. 그렇기에 아카데미 졸업 이후 거대 길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위권 이상의 길드에 취직할 수 있는, 나름대로는 보장된 등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뒤에 붙은 4는 무엇인가. 서열이다. B 클래스라도 모두가 같은 실력은 아닐 터. 1위부터 서열을 매겨 1반부터 10반까지 나눠놨다.
나름 유망주라고 기고만장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란 녀석은 참 애매한 놈이었구나.
B 클래스에서도 4. 애매하기 이를 데 없는 성적이다.
이런 주제에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닌 과거가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드르륵-
흑역사 속의 나를 떠올리며 문을 열었다.
교실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뭐, 그리 대단할 건 없다. 낮은 턱 위에 교탁이, 그리고 그 뒤에는 강의를 위한 칠판이 있다.
베이지색으로 도배된 깔끔한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가로세로 5열로 놓인 책상. 현재 24명의 주인이 정해진 책상의 빈 곳이라 하면 단연 가장 앞 열, 그것도 중앙 자리뿐이었다.
시대가 변했지만, 애송이들이 생각하는 건 다 똑같다.
가장 뒷줄은 권력의 상징. 그리고 가장 앞줄은 그들의 먹이가 되는 약체들의 집합소다.
예전엔 그게 죽을 만큼 싫었지만, 지금이야 뭐.
가장 늦게 도착한 내게 모이는 시선을 무시하며 의자에 앉았다.
생각할 게 많다.
뭔가 휙휙 지나가 버린 것 같지만, 그게 그냥 휙휙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설에서나 볼 법한 회귀라는 게 내게 일어났고, 심지어 죽기 전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졌다.
게임 속 능력과 함께 과거로 돌아오는 것.
그런데 아무래도 소원을 들어준 녀석의 심보가 고약한 모양이다. 온갖 페널티의 향연으로 인해 사실상 지금은 템빨을 제외하면 믿을 게 없는 처지다.
무쌍을 찍을 수 있었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5년 후에 종말이 온다고 알릴까?
사이비 종교 취급당할 게 빤하다. 미친놈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다면 그 말은 최후에 최후로 아껴둬야만 한다.
결국, 내가 힘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종말이 오기 전까지 힘을 기르고, 동료를 모은다.
이 계획에 관한 건 점차 윤곽이 잡히는 중이다. 그리고 한 번 미래를 경험해 본 이 기억이 많은 도움이 되어줄 터였다.
드르륵-
복잡한 상념에 빠져 있는 새 교실 문이 열렸다.
“아아!”
“어째서!”
“하늘이시여!”
주인공을 확인한 학생들이 장탄식을 터뜨린다.
하긴. 나도 과거를 알지 않았다면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원망했을 것이다.
“조용히 한다, 실시.”
“...”
단 한 마디로 분위기를 제압한 사내. 그는 바로 정문 앞에서 마주친 사이클롭스 학주였다.
평소에는 자신의 특이한 안광을 보이기 싫어 선글라스를 낀 학주는 좌중을 빠르게 훑었다.
“호오?”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지금 그의 시선은 내게서 멈춰있다. 매우 흥미롭다는 시선과 함께 말이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 1년간, 졸업반인 제군들과 함께할 임창완이다.”
“...”
보통 자기소개가 끝나면 박수로 환영할 만도 하건만 장내는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젊고 어여쁜 선생이 많기로 유명한 화랑이다.
그 많은 꽃밭에서 하필이면 걸린 게 군대 오타쿠 학주라면 하늘을 원망하다 못해 저주할 만하다.
“손뼉 친다, 실시.”
“실시!”
그러나 학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한 마디로 박수를 유도한 그가 교탁 옆에 섰다.
“본 교관과 같은 클래스에 배정되었다는 건 졸업반인 제군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일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교관은 끝까지 따라오는 이에게는 성공의 길을, 중간에 떨어지는 이에게는 실패자의 길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결의를 새겨라. 본 교관의 혹독한 수련을 견디기 위해서는 필사의 각오에 준하는 결의가 필요할 테니까.”
생각해 보니 열심히 하려고 했던 내 아카데미 생활을 망친 원인 중에는 학주도 있었다.
지금 말했던 것처럼 학주는 조금 거친 방법으로 학생들을 다뤘다.
그는 냉철한 사람이다.
재능과 노력이 부족한 이들을 낙오시키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몇몇 이들에게만 기회를 준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실패자 중 한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선의의 경쟁이 필요한 법. 제군들은 모두 교관을 따라올 수 있도록.”
쾅!
출석부를 교탁에 내려놓은 학주가 앞장섰고, 줄줄이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수련의 방’이라 불리는 연무장이었다.
사각의 링처럼 만들어진 그 공간은 강화석과 인챈트 마법을 통해 웬만한 충격에는 부서지지 않도록 설계된 곳이다.
“밖에서는 뭐라 말이 많은 것 같지만, 본 교관은 아카데미의 교육 방침에 열렬한 찬성을 표하고 있다. 실력에 차등을 두어 클래스를 나누고, 그곳에서 동등한 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것이 바로 화랑이 대한민국 제일의 아카데미로 거듭날 수 있었던 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안에서도 그렇지만, 밖에서도 말이 많다.
명색이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등급을 나누어 학생들을 차별대우한다고.
뭘 몰랐던 시절의 나도 그런 개똥철학에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다 개소리다.
여기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을 받고 있다.
졸업 후 사회로 나가 쏟아져 나오는 포탈로부터 자신의 목숨은 물론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말이다.
차별? 목숨이 오고 가는 전장에 내몰릴 이들에게 차별이 웬 말인가.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줘야 하는 게 화랑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
그들이 말하는 차별을 하는 한이 있어도 모든 목표는 실력 향상에 주안점을 둬야만 하는 것이다.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클래스의 커리큘럼은 오로지 담임의 고유 권한이다. 그래서 본 교관은 이 자리를 빌려 B-4 클래스의 서열을 확실히 정하고자 한다. 불만 있나?”
그래. 이것 때문에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학주가 맡은 클래스의 오랜 전통. 일명 랭킹전. 과거의 나는 이 랭킹전에서 꼴등을 기록하며 나락에 빠졌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B 클래스라면 그래도 비슷한 실력일 것으로 생각했건만 그 차이는 현격했다. 특히 ‘그 녀석’과는 말이다.
“방식은 간단하다. 1:1 대결에서 승리한 이는 승점 1점, 패배한 이는 0점을 받는다. 만약 5승을 거둬 승점 5점을 가진 이와 대련해 승리할 경우 해당하는 이가 가졌던 5점을 모두 가져간다. 단, 승점을 가진 자는 상대를 보고 대련할지 혹은 기권할지 정할 수 있다. 물론 한 번 기권한 이는 다시는 랭킹전에 참여할 수 없다. 이상.”
어찌 보면 눈치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압도적인 강자가 있다면 눈치고 나발이고 그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겠지.
“그럼 첫 대전에 나설 이는 내가 호명토록 하겠다.”
학주의 시선이 좌중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이연우. 앞으로 나와라.”
“네?”
명백히 그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다.
아니, 하고 많은 녀석 중에서 굳이 날 고른 저의가 뭐지?
“본 교관은 두 번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연우. 나와라.”
선글라스 밖으로 푸른 안광이 쏟아져 나온다. 더 개겼다가는 최소 사망이다.
어쩔 수 없이 억지 걸음으로 이동했다.
연무장의 중앙. 학주의 옆에 선 나는 조금이나마 그의 악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정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복수. 생긴 건 대장분데 마음은 밴댕이 소갈딱지다.
“자, 여기 이연우군에게 도전할 제군은 앞으로.”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휙!
이제야 막 B 클래스로 승급한 나를 먹이로 삼기 위해 많은 이들이 달려들었으나 그 모든 경쟁자를 물리친 녀석이 있었다.
아는 녀석이다. 녀석 또한 학주와 같이 잊을 수 없는 얼굴 중에 하나였다.
부단히 노력하며 올라가고자 했던 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었던 원인 중 하나.
아카데미 시절의 악몽과도 같았던 녀석이 웃음을 지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강우섭.
어딜 봐도 찐따 같이 생겼지만, 생긴 것과는 다르게 괜찮은 집안, 게다가 재능까지 타고난 행운아다.
사실 클래스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건 담임만이 아니다. 해당 클래스의 서열 1위, 화랑에선 클래스 마스터Class Master로 불리는 그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B-4 클래스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일단 군대 오타쿠인 학주도 학주지만, 이 병신 새끼가 분위기를 좌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력이라곤 1도 모르는, 그저 집안 빨, 운 빨의 결정체인 녀석은 자신보다 못한 이를 짓밟는 악취미를 지니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특히 주 대상이 되었던 게 나다.
실력으로 인한 계급이 나뉘는 아카데미에서 꼴등만큼 손쉬운 먹잇감은 없다. 나는 이 클래스의 꼴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녀석의 온갖 괴롭힘을 감당해야만 했다.
썅놈의 새끼!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네.
저 새끼만 아니었어도 부단히 노력해 좀 더 상위의 클래스로, 조금 더 실력을 쌓아 과거의 악몽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웠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이연우와 강우섭, 둘이 대결하도록 한다. 불만 있나?”
“없습니다!”
있을 턱이 없다.
종로구 쪽에서 꽤 이름을 알린 중소길드의 마스터가 녀석의 아버지다. 게다가 꽤 오랜 시간 동안 B-4 클래스에 머무르며 왕이 되어버린 녀석을 거스를 놈이 있을 턱이 있나.
“그럼 두 사람이 대결하는 것에 이의가 없다고 판단하겠다. 그럼 제군들은 대련에 임할 무기를 고를 수 있도록.”
위잉-
학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무장 오른쪽 구석에서 진열대가 올라왔다. 그곳에 가지런히 놓인 무기는 수련의 방과 마찬가지로 각종 강화 인챈트가 부여되어 웬만한 충격에는 파괴되지 않는 대련용 무기였다.
“전 검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전 창으로.”
“창?”
우섭 때와는 다르게 학주가 되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내가 사용하던 주 무기는 창이 아니라 검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