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이 회귀해버렸습니다-1화 (1/161)

1화.  소원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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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죽으란 말이야!”

발작적인 고함과 함께 포성이 터져 나온다.

각종 포탄이 날아다니는 격전의 현장. 최첨단 무기로 완전무장한 군인들은 어떤 존재를 마주한 채 떨고 있었다.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는 병력이 대체 무엇 때문에?

하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를 본다면 군인들의 반응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불타오르고 있는 머리칼. 핏빛으로 물든 두 눈. 등을 장식하고 있는 한 쌍의 검은 날개. 보는 순간 절로 고개가 움츠러드는 위엄을 뽐내는 존재는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이었다.

칠대 죄악 중 오만이 탄생시킨 악의 군주. 인류를 종말로 이끈 일곱 군주 중 하나다.

수치를 측정하는 게 불가능한 골든 포탈Golden Portal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오만의 군주는 무사의 성지인 중국을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에 상륙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지 고작 일주일.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주요 도시가 불타올랐다.

이제 남은 곳이라고 해봐야 부산과 남쪽의 작은 섬들뿐. 남하에 남하를 거듭한 피난민들은 결국, 최후의 저지선을 펼쳐야만 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하지만 고양이도 고양이 나름이다.

오만의 군주는 호랑이였다. 쥐새끼가 문다고 해서 호랑이가 아파할까? 아니. 오히려 더욱 분노해 쥐새끼를 찢어발길 뿐이다.

현대의 그 어떤 무기도 오만의 군주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애초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버틴 것도 다섯의 마스터Master 덕분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불세출의 초인超人. 그들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진즉 무너졌을 테지만, 유일한 희망인 그들은 어제 새벽 오만의 군주와 대립하던 중 한 줌의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마스터가 쓰러진 이상 대한민국에 희망은 없었다.

퍼퍼펑!

희망이 없다. 공포에 질린 군인들이 마구잡이로 포탄을 발사했다.

조준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명중률은 형편없었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가 하면 그중 운이 좋은 몇몇 개는 오만의 군주를 직접 강타하기도 했다.

지잉-

그러나 아무 소용없다.

거의 모든 물리적인 공격에서부터 군주를 보호하는 아우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멸하라!」

포탄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일까.

핏빛 눈동자가 한쪽을 향함과 동시에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콰콰콰콰!

그와 함께 일어난 검은 불꽃의 해일이 발악하는 군대를 덮쳤다.

...

소음은 없다.

검은 불꽃 해일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수천 병력이 소멸하고 말았다.

“으, 으아!”

극도의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겁에 질린 군인들은 아무렇게나 무기를 내팽개친 후 도주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들었지, 직접 바라본 그 위용은 천양지차였다.

“오, 신이시여! 제발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중에 몇몇은 양손을 맞잡은 채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절망과 고통의 비명, 그리고 구원을 바라는 기도가 어우러져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니 그건 그저 분위기가 아니다. 분명 이것은 인류의 종말임이 틀림없었다.

*

대리석 기둥이 세워진 넓은 홀. 중앙에 트인 길에는 붉은색 융단이 깔려있었다.

융단을 따라가면 낮은 턱의 계단이, 그 위의 좁은 공간에는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왕좌가 자리했다.

화려한 옥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그는 황금색과 검은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플레이트 아머를 걸치고 있었다.

몸을 기댄 왕좌 사이로는 핏빛처럼 붉은 망토 자락이 아래로 흘러 내려와 있었는데, 바람이 불지 않고 있는데도 홀로 펄럭이는 신비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

침묵만이 장내를 감싸고 있다.

의문의 그.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투구 때문에 나이는 물론 성별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고도화된 현대 문명에서 나올 법한 복장이 아니라는 것. 당연하게도 현실이 아니다. 에이지 오브 스톰Age of Storm, 통칭 아오스로 불리는 게임 속이었다.

2019년에 개발된 아오스는 초인 각성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통해 수백만 명의 유저를 확보한 글로벌 게임이었다.

상용화가 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 1위를 굳건히 수성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건 옛 영광에 불과할 뿐이었다.

인류가 종말을 고하는 중에 그 모든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껏 서버가 돌아가고 있는 것도 다섯 마스터 중 하나, 구현의 마녀 임수아의 권능이 아니었다면 진즉 게임은 중단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왕좌에 앉은 사내, 연우는 생각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최후의 날에 한다는 게 고작 게임이라니.

아니 어쩌면 나약한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날. 블랙 포탈Black Portal을 막지 못해 수많은 시민이 죽었다. 물론 그의 잘못이라곤 할 수 없지만, 그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조금만 더 수련에 힘썼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영영 기회를 잃고 말았다.

블랙 포탈에서 나온 ‘존재’로 인해 손과 발의 대부분 관절이 박살 나고 말았다.

초인의 회복력을 통해 겨우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치유될 수 있었으나 그게 다였다.

아카데미 시절에도 인정을 받는 유망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소 정식 초인이 될 만한 자질을 지녔던 그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부정했다.

어떻게든 재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진 채로 아오스를 시작했다.

임수아의 권능을 통해 개발된 아오스는 실제로 초인 각성과 실전 감각을 키워주는 데 유용한 게임이었다.

그것이 유일한 길인 것처럼, 미친 사람처럼 가상의 현실에 파고들었다.

침식을 잊고 몰두한 결과 게임 내에서만큼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부로 끝이다.

골든 포탈을 찢고 등장한 일곱 군주. 그들은 인류의 종말을 고했다.

잠시 후면 이 세계는 물론 자신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화려한 왕좌에서 엉덩이를 뗀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스스로 왕좌의 홀Hall of Thrones이라 이름 붙인 방을 나와 반들거리는 대리석 통로를 걸었다.

통로의 양측에는 수많은 문이 존재했다. 이 수많은 방 안에는 연우가 그간 게임을 하면서 모은 아이템이 쌓여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가 봤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정도로 대단한 아이템.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투구 사이로 언뜻 비치는 무심한 눈빛. 그는 보물 창고와 같은 방을 지나치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두 번째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거대한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주군. 기침하셨습니까.]

“어서 오세요. 마스터.”

“오셨습니까.”

“여어, 어서 오라고!”

각기 특색이 있는 인사를 건네는 이들을 응시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찰랑거리는 금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성이었다.

순백의 피부. 호박석과 같이 반짝이는 금안 밑으로는 연분홍빛 입술이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다. 몸매의 굴곡이 드러나게 맞춘 사제복은 금색과 하얀색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야말로 세상의 미를 한 곳에 압축시킨 것처럼 현실적이지 않은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

성녀聖女 파트로나. 플레이어를 따르는 전설 등급의 가디언Guardian이었다.

가디언이란 플레이어와 함께 전투를 비롯한 게임의 전반적인 콘텐츠를 함께하는 NPC를 말한다.

특히 파트로나는 그 수려한 외모와 사기적인 능력으로 인해 많은 플레이어가 노리던 가디언이었다.

아오스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성녀 쟁탈전’에서 승리를 거둔 연우는 그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현재 그의 앞에 있는 나머지 세 명의 NPC 또한 게임에서 단 한 명만 얻을 수 있다는 전설 등급의 가디언들이었다.

단정하게 올린 푸른 머리칼. 무표정한 얼굴. 냉소를 머금은 입술은 냉정한 그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용이 그려진 푸른색 도복을 입고 있는 사내는 빙결사氷結士젤루.

이와 대조되는 듯 산발해 있는 붉은색 머리칼. 불꽃을 간직한 듯 일렁이는 홍채, 장난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사내는 염화투사炎火鬪士 바포르.

앞서 세 명이 모두 미남 미녀인 것에 반해 마지막 한 명은 조금 특이했다.

귀기 어린 녹색 오라를 뿜어대고 있는 칠흑빛 갑주의 인물. 투구 사이로 흘러나오는 녹색 안광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원한을 품은 기사의 부활. 데스나이트Death Knight 아만.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네 명의 NPC 모두 두 가지 클래스를 극한까지 연마한 듀얼 마스터Dual Master들이었다.

수천, 수만 명의 플레이어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얻을 수 있었던 아오스 사상 최강의 가디언들.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마스터. 뭐 화끈한 일 없어?”

[주군. 어서 출정 명령을!]

“나른한 오후로군.”

맥락과 상관없이 정해진 대사를 내뱉는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했다지만, 사람처럼 대화를 나누는 건 무리였다. 결국, 이들은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인공지능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대화라도 나눠볼까, 이곳을 찾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정해진 대사만 내뱉는 그 대화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방 안에 준비된 원형의 테이블에 앉는다. 그가 자리에 앉자 정해진 것처럼 네 명의 가디언들이 착석 했다.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재앙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문득 상상해본다.

과거, 블랙 포탈이 나타났을 때 게임의 능력이 자신에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모조리 도륙, 아니 뼈 채 씹어먹었을 것이다. 상상만 하는 것뿐일진 데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하하, 우습네. 우스워.’

현실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망상이라니. 그런 자신이 더욱 비참할 뿐이다.

‘이젠 그냥 쉬고 싶어.’

인류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

평범한 그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가장 남쪽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그의 삶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답답했던지 투구를 벗는다. 가려져 있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하얀 피부. 길지도, 짧지도 않게 단정하게 자른 검은 머리칼.

눈은 동그랗고 크며 코는 약간 내려앉았다. 입술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두터운 정도. 잘생겼다고 할 수 없지만, 강직한, 어떻게 보면 쾌남의 이미지가 강했다.

얼굴을 드러낸 그는 공중에 손가락을 가져가 이것저것 만지는 시늉을 했다.

게임의 메뉴를 조작하는 중이다.

[수면 모드를 작동합니다. 편안한 휴식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익숙한 기계음과 함께 주변 사물이 어두워지기 시작해 이내 칠흑의 어둠이 되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 있겠지. 그 어떤 때보다 편안한 상태에서 눈을 감았다.

휘이잉-

한편 연우가 눈을 감은 시각. 현실에서는 신비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오스 전용 고글을 쓴 그의 목 부근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빛을 발산하고 있는 것은 거무튀튀한 별 모양의 목걸이. 오래전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유품이었다.

농담처럼 소원의 돌이라 이름 붙여진 그것은 점차 빛의 크기를 확장하더니 마침내 집 전체를 휘감을 정도로 퍼져 나갔다.

빛이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팟’하고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방안. 그곳에 연우는 없었다. 다만 바닥을 구르고 있는 고글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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