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Katechon (3)
두근거리던 심장도 평안을 되찾았고 시야도 뚜렷했다. 마치 거짓말처럼. 강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더듬어 눈코입이 제 자리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현실감을 얻을 수 있는 행동이 지금으로서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는 곧이어 탁자 맞은편에, 태연하게 앉아 있는 소년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저번과는 달리 표정이 꽤나 좋아 보였다.
"뭡니까? 다 꿈이었어요?"
"아니, 현실이지. 우린 지금 니코틴 중독으로 죽어가는 행려병자를 구조한 거야."
"필요 없는 참견을 했군요. 계약서도 다 정산됐을 텐데."
"말 잘 했어. 확인해 보라고."
파울리스는 종이 한 장을 척 꺼내들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갑이 을의 다른 구성원과 완벽히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임을 보장함. 을은 갑의 직무 수행을 적극적으로 지원함. 그리고 갑에게 딱히 불리할 것도 없는 문장들.
강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할 일이 남았어요?"
"솔로틀이 협상안으로 널 요구했어. 정확히는, 외부 감사인을. 우리가 일을 잘 하고 있는지를 다방면에서 평가하는 게 바로 네 역할이지. 너는 여기와 땅과 저승을 오가면서 많은 걸 살피게 될 거야."
"회계법인이나 선임하지 그래요. 난 그런 건 해본 적 없는데."
짜증스레 이마를 문지르던 강현은 계약서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서명란이 없었다.
"나머지 서류 있죠? 그것부터 꺼내 봐요."
"속고만 살았나?"
"속고만 살았죠. 서명란은 어디 갔습니까?"
"계약 자체는 꿈 조각에 걸려 있어. 계약서는 네가 꿈을 받아들인 시점부터 효력이 생기지."
파울리스는 탁자에 검은 조각이 담긴 유리병을 내려놓았다. 조각은 수정 구슬 한가운데에 박혀 있던 것과, 그리고 황제의 검과 똑같은 재질이었다. 강현은 곧바로 유리병을 여는 대신 한 장짜리 계약서를 몇 번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았고, 각각의 문장이 함정이 될 수 없을 만큼 명료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생쥐들은 정말로, 대등한 상대로 자신을 만신전에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땅의 관리자와 저승의 관리자가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사였다. 이강현은 고개를 들어 파울리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원래 몸으로 돌아가서 니코틴 중독으로 죽겠지. 모텔 직원이 널 발견하고 경찰에 전화할 거야. 네 친구들에게도 전화가 갈 테고."
"내가 성급했군요. 동해에 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발목에 돌도 묶고요."
"역사에 가정을 덧붙이진 말자고."
"어쨌든 난 싫습니다. 나한테는 삶이 필요없어요."
파울리스는 픽 웃고는 꿈 조각 곁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알약처럼 생긴, 알약 크기의 덩어리들이었다. 정말로 알약인지도 모르지.
"이건 뭡니까? 또 다른 꿈 조각?"
"네가 먹던 항우울제야. 앞으로도 계속, 규칙적으로 복용한다면 도움이 될 거야."
"신이라면 더 멋진 게 있을 줄 알았는데요. 우울은 당연히 없애 주고, 걱정이나 불안 같은 것도 없고, 실컷 삶을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거요. 효과 좋은 마약 같은 거. 그러면서도 부작용이나 중독성은 없고 정신도 멀쩡히 남는 거."
"그런 건 없어."
"그러면 난 안 해요."
강현은 꿈 조각과 항우울제를 함께 손날로 밀어냈다.
"다른 걸 생각해 보자고. 돈이 있어. <이스트리아 퀘스트>가 꽤 많이 팔렸어."
"내 돈은 아니죠."
"어차피 우리에게 지구의 재물은 중요하지 않아. 네게는 중요하겠지."
"나한테도 중요하지 않아요."
"더 많은 돈은 어떨까? 15억도, 37억도 우스울 돈은? 마약이나 항우울제보다도 더 효과가 좋아. 불안과 긴장을 가라앉히고 전능감을 주지. 그리고 실제로, 돈의 힘이 닿는 한에서는 전능해지기도 해."
파울리스는 시간을 빠르게 돌렸다. 이제 이스트리아와 우리 우주 사이의 작은 사무실은 2023년에 있다. 시점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네가 거기에 앉아 있는 동안 수익금을 적절한 비율로 재투자했어. 우리는 이제 게임사가 아니라 헤지펀드야. 놀랄 일은 아니지. 이것도 결국엔 게임이니까. 현물, 원자재 선물, 채권, 지수 옵션, 스왑 거래. 그리고 더 많은 것들. 본사도 미국으로 옮겼어. 그러니 네가 원한다면 이스트리아 시간으로 한 해에 하루이틀쯤은 원래 우주로 돌아가서 방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거야. 차원 사이의 흐름이 일정하다면."
"난 미끼 상품에 넘어갈 나이는 아니에요. 그냥 쉬고 싶어요."
파울리스는 한숨을 내쉬었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는 이대로 앉아 쉬기에는 너무 귀중한 사람이야. 생각해 봐. 넌 솔로틀의 정원사와 함께 나트람을, 이시 타브를 죽였고 늑대인간 왕의 동료였어… 그리고 넌 앞으로도 그럴 거야."
이강현은 나트람의 평생을, 그게 뒤틀어 놓은 삶들을, 테네브로즈가 겪은 시간을 생각했다. 이 기나긴 이야기는 타마기스의 주인에게서 시작되어 그 둘로 이어졌으며 볼로디아로 끝났다. 거기에는 자신의 몫이 없었다. 화신의 몸을 빌린 것이 누구든 동일한 결말에 가 닿았을 것이다. 경로는 조금 달랐을지라도.
세상은 각자가 자기네 삶의 주인이자 경영자라고 속삭이곤 한다. 그러니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지만 가능한 미래는 언제나 그 전에, 현재에, 현재를 만든 과거에 새겨져 있다. 거기에서 한 사람의 몫은 아주 작다. 혹은 아예 없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냥 그런 일들이 일어났어요."
"아니야, 네가 그 모든 걸 해냈어. 그리고 우리에게는 네가 필요해."
실수였다. 볼로디아에게 당장 세계를 다시 시작하고 이 생쥐들을 내쫓으라고 말했어야 했다. 안식을 얻으려면 그랬어야만 했다. 이강현은 자신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세카두와 타일라프람과 말루카의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스스로를 위해서.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들을 위한다는 말부터가 자기만족이었는데도.
"나는 못 해요.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신을 찾아 봐요."
"너만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이야."
"나는 그냥 한 명입니다. 인간 한 명요. 이건 한 명한테 맡겨서 될 일은 아니에요. 말도 안 돼요."
"저번 계약서에 서명할 때 그렇게 말했어야지. 늦었어."
파울리스의 태도가 고압적으로 돌변했다. 강현은 자신의 결정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달았지만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볼로디아에게 부탁했고 솔로틀이 그것을 받아들였으므로 이제는 결과를 감당할 차례였다. 그는 깜깜한 방에 갇힌 채, 점점 모서리로 밀려나는 심상 속에서 더듬거렸다.
"나한테 책임을 주지 마요. 나를 쉬게 해 줘요. 제발. 내가 더 살아있을 필요가 없게 해 줘요. 나는 빚도 다 갚았어요……."
울림이 목을 빠져나갈 때마다 강현은 점점 초라해지고 사소해졌다. 모든 문장의 주어가 그 자신임에도,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바로 그임에도 그랬다. 파울리스는 말하지 않았고 강현은 마침내 스스로가 증발하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거기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단어 뭉치만이 남아 있었다. 망집과 함께. 그 망집의 이름은 강박과 책임이었다.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시야는 구부러지고 찢어지는 탁자와 의자와 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실제로 일그러지지 않는다. 눈물의 곡면이 망막에 맺히려는 상(像)을 미리 비틀 뿐이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자 세상이 잠깐은 깨끗해졌다가 다시 어물거렸다. 파울리스의 말이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 윙윙 울렸다.
"넌 해야 돼."
개개인이 느끼는 바와 무관하게 세계는 움직인다. 그 사람이 죽고 하나의 소우주가 닫힌 후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도 그렇다. 그런 순간은 남은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는 고통과 비참을 안긴다. 하지만 다함께, 같은 시간에 허공으로 스며들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간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긴다. 많이 생긴다. 완벽히 선하진 않을지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이끈다. 그래서 대부분은 살아 있기 때문에 행복하고, 만약 불행할지라도 행복을 기다린다. 얼마나 훌륭한 마음가짐입니까?
강현은 반대였다. 그는 자신이 고시원의 침대에서, 말루카 광장의 조각상 앞에서, 세카두 외곽 수도원의 욕조에서, 폐허의 휘광 속에서 낱말 없이 꿈꾸던 것들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가는 것. 자신에게 남은 숫자들을 정산한 다음 은원마저 소거하는 것. 그렇게 어떤 슬픔도 서류도 세상에 남기지 않고 다만 사라지는 것. 푹신한 이불이나 미온수의 기분좋음보다 복잡하고 세련된 욕망.
그런 바람은 헛꿈일 뿐이다. 다음날이 되면 모텔 직원은 자신을 발견할 것이며 민혁에게도 소식이 들어갈 것이다. 시체는 이거 미안하게 됐다, 그래도 돈은 잘 써라, 하면서 멋쩍게 웃을 수도 없으니까 민혁은 늙어 죽을 때까지도 그 돈을 잘못 배달된 수표 뭉치처럼 간직하고만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는 자신의 몫이었던 우울까지도. 무엇이 더 클지는 모른다. 만약 운이 좋아서 시체가 증발하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민혁은 자신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책임감을 조금만 내버릴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돈을 약간이라도 빼돌리거나, 민혁에게 빚을 갚지 않거나, 아무튼. 강현은 지금껏 그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이번에도 그럴 것임을 알았다.
"언제까지 그래야 합니까?"
"늑대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늑대는 언제 깨어나죠?"
"언젠가."
그는 길게 울었고, 눈물이 멎은 뒤에도 한참을 흐느끼다가, 조각들을 삼켰다.
* * *
환상은 머나먼 미래에 있다. 우리는 아직 현실 속에 있다.
세계의 많은 부분은 비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비참은 연마된다. 노력과 경쟁, 희생, 그리고 순전히 치열하거나 아름답기만 할 수 없는 것들. 화폭에 담기기 전에 먼저 피고름으로 그려진 순간들. 다시 발견되어 해석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는 상처들. 그럼에도 우리가 무신경하게 아름다움이라 믿어 버리는 절규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우리는 이 세계가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에, 이 세계가 지속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 세계가 진보할 것이기 때문에, 이 세계의 사람들이 지선하거나 숭고하거나 자유롭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낭만주의와도, 정당화와도 무관하게 세계는 그저 지속된다―사람의 힘과 의지로는 그것을 일소할 수 없으리라는 이유만으로. 최소한 아직은.
그러므로 비참을 억제하고 예방하는 것은, 윤색된 절규의 첫 모습을 잊지 않는 것은 개인이 서로에게 진 유일하고 궁극적인 책임이다. 오직 그것뿐이다. 만약 그러한 책임이 또 다른 고통을 만들지라도, 누군가는 의무로부터 탈주할지라도, 여전히.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전유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그 노력이 실패의 연속이거나 다만 망상일지라도.
* * *
강현은 한 해의 1할은 저승에서 보냈고 나머지 시간 동안은 땅을 거닐었다. 운이 좋으면 지구에 잠깐 들러 익숙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휴식이 필요할 때에는 차원의 틈으로 돌아왔다.
이제 생쥐들의 사무실에는 강현의 방이 생겼다. 그는 그곳에 소파와 침대, 책장, 몇 가지의 소소한 가구들, 그리고 UHD급 빔프로젝터를 들여 놓았다. 빔프로젝터는 블루레이 기기와, 그리고 7.1채널 스피커와 연결되어 있다. 지구의 물건이다. 강현은 한국 느와르 영화를 하나 골라 재생한 후 소파에 가서 앉았다.
아이들이 작은 바위섬 위에서 뛰놀다가 폭죽을 쏘아 올리는, 짧은 클립. 하늘로 올라간 폭죽은 서로 얽히다가 영화 배급사의 로고가 된다. 그러고서도 영화가 시작되기까지는 간격이 조금 있다. 그는 옆을 힐끔 보았다.
땅에는 볼로디아가, 로안이, 슈문이,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저승에 가면 테네브로즈와 벤트레스와 은빛매의 요정들과 솔로틀이 있다. 지구에는 민혁이 있다. 여기에는 티아가 있다. 강현은 안경을 쓴 천사를 향해 팔을 뻗었다.
"콜라 좀 만들어 줘요. 홍차 약간 섞어서."
"표정만 봐서는 위스키를 섞어야 할 것 같은데요."
"끊은 거 알잖아요. 빌딩 관리인 노릇 할 때에도 술은 입에 안 댔어요."
주인공의 독백이 끝날 시점에 맞추어 콜라가 가득한 컵이 건네져 왔다. 천사의 권능이다. 차원의 틈에서만, 돌아가지 못할 세계의 마지막 잔해에서만 가능한 권능. 어쩌면 망상에 가까운.
하지만 컵은 충분히 차가웠고 콜라와 홍차의 비율도 적절했다. 강현은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인은 결국 정당하다고 합의된 망상의 체계일 것이라 생각하며 한 모금을 머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나쁠 게 뭐란 말인가. 사람은 믿음으로 살거나 죽는데. 그리고 어떤 우주는 정말로 믿음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탄산이 자글거리며 목구멍을 넘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침묵 속에서 영화를 감상했다. 재개발을 앞둔 도시를 무대로 한 정치 느와르. 권력을 위해서라면 온갖 더러운 일도 꺼리지 않는 시장과 뒤처리를 도맡는 형사. 형사는 병든 아내의 병원비를 위해, 혹은 타성으로 그 짓을 한다… 직감 같은 건데요, 여기서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검찰이 끼어들고 조폭이 엮이고 돈 문제가 생긴다. 마약 거래까지도. 형사 한 명은 감당할 수 없을 일들이 계속된다.
강현은 툭 물었다.
"나는 잘 했나요?"
"최선을 다했죠."
그는 입을 닫고 화면을 노려보았다. 이제 영화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형사와, 시장과, 검사 일행은 장례식장에 모인다. 검찰팀이 대화를 도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장은 그들을 장례식장에 불러낸다. 협상은 결렬되고 총격전이 시작된다. 시장의 이마에 총탄을 박아넣고 낄낄 웃으며 쓰러지는 형사. 모두가 죽는다.
"난 실패자예요."
청록색 자기 타일에 어두운 골을 만들다 멈춘 핏물. 부감(俯瞰)으로 보여지는 시체들. 그것들 중 하나는 장례식장 특유의 화환에 머리를 뉘고 있다. 국화는 농담처럼 포근하고 새하얗다. 눈 뜬 죽음 위로 흐르는, 로버트 플랜트의 클래식 록 음악…….
끝.
강현은 일어나 블루레이를 꺼낸 다음 불을 밝혔다. 그들은 이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다음 각자의 자리로 갈 것이다. 강현은 땅으로, 티아는 사무실의 책상 앞으로. 아직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티아에게 말했다.
"다들 실패할 겁니다. 언젠가는요."
티아는 어깨를 으쓱였고, 말없이 미소 지었다.
* * *
그래도 언젠가 끝이 올 것이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가, 태평양의 섬들이 물에 잠긴다. 그러는 동안 그레이트플레인스는 말라붙고 갈라진다. 하지만 얄궂게도 중동과 월스트리트의 돈은 석유에서 출발해 신재생에너지를 향해 흐른다. 오래 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따라서 짧은 시간동안의 미래는 묻지 않도록 하자. 그런 상상은 대개 비관적이다.
다행히도 시간이 더 흐른다. 거대해진 태양이 지구의 겉면을 그슬린다. 이제 그것은 창백한 푸른 점이 아니라 무감각한 광물 덩어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온 우주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그 후로도 태양은 계속 크기를 키우다가 수성과 금성을 집어삼킬 것이다. 지구까지도.
다시 시간이 더, 더, 더 흐른다. 우주는 팽창하던 끝에 얼어붙는다. 모두가 형체를 잃고 완전히 정지한다. 별, 소행성, 은하, 블랙홀. 아무것도 없다. 열조차도.
그리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까?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