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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244화 (245/258)

244화 제국의 기계들 (7)

다행히도 조언가 장치는 오작동을 멈추고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왔다. 황태자를 도와 남은 일을 처리한 뒤 다이사트는 수목원의 오두막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오랜 잠에 들었다. 그 시간은 나우파나 청년의 평생보다도 길었다.

그리고 수십 해가 흘러 다이사트는 담쟁이덩굴로 이루어진 요람 속에서 깨어났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우선 몸과 몸이 아닌 것을 구분해야만 했다. 자신의 생각조차도. 기억은 심장에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몰랐다.

그는 머리를 바꿀 때마다 관점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고 싶을 때면 썩어 문드러진 호박을 꽂고 다녔고 철두철미한 궁정 마법사가 되어야 할 때에는 작은 금고를 붙였다. 각각의 머리는 그 순간에 필요한 태도를 선사해 주었다. 하지만 생전의 몸을 되찾기만 하면 어김없이 고통이 찾아왔다. 술이 떨어진 주정뱅이가 찌를 듯한 격통에 시달리듯이.

하지만 다이사트는 고행처럼 그 일을 했다. 매일 황궁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주인을 기다렸고 텅 빈 허공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생전에는 그 모든 시간이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졌는데도. 분명히 윰 시밀의 죽음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황홀감마저 느꼈는데도. 이유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사무관들이 아직 궁전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다이사트를 마주칠 때마다 동정 어린 눈길을 건넸다. 야스와다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많이들 그렇게 갔다고 했다. 이거 놀라운데요. 당신들이라면 이렇게 떠들어댈 줄 알았어요. 야스와다의 주인께서는 까다로우셔서 나우파나 촌놈은 제물로도 받지 않는다고요. 예전에는 내 앞에서 자주 그랬잖아요.

사무관들은 불쾌한 기색도 없이 그를 걱정해 주었다. 죄다 똑같은 신세가 된 판에 감히 그런 말을 하는 놈은 없다고, 먼 옛날 자신들이 그랬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다이사트는 미칠 지경이 되었다. 사무관들은 정말로 그가 미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얼이 빠져 돌아다니는 건 결함조차 아니니 지금 상태가 만족스럽다면 그냥 살아가라고도.

아니, 내가 미쳤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오래 전부터, 타마기스의 주인을 섬길 때부터 정신머리가 이랬으니까. 내가 묻고 싶은 건 이거야. 칼이 꽂힌 채로 살이 아물었는데 그게 갑자기 사라지면 몸이 멀쩡하겠냐는 거지.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나을 문제가 아니야. 난 이미 이렇게 됐어. 이미 이렇게 됐는데 원망을 쏟아낼 상대는 죽어 나자빠졌고 너희들은 사과나 하고 있단 말이야.

그 말을 들은 후로 사무관들은 다이사트를 멀리서만 안쓰럽게 쳐다보았지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게 차라리 편했다. 그는 황태자를 도와 살육 광란을 진압할 때를 제외하면 온종일 황궁을 떠돌았다.

그러다가 발걸음이 외곽지의 옛 거처에 닿은 날이 있었다. 목조 주택은 집 모양을 한 버섯 덩어리로 변해 있었고 새 조각상에는 이끼가 가득했다. 다이사트는 멍하니 서 있다가 조각상 앞에 가서 무릎 꿇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오래된 흉터가 추억으로 변해 가는 것을 느꼈다. 보석 눈이 번뜩이고 저 멀리에서부터 익숙한 얼굴의 소년이 가까워지는 것. 고개를 조아린 채 그간의 잘못을 고하는 것. 그럼으로써 벌을 받고 속죄하는 것. 한때는 지긋지긋했고 지금도 끔찍하지만 왜인지 놓지 못하게 된 기억들.

어느 순간 그는 조각상 뒤편에서 낯선 반짝임을 발견했다. 대관식을 치르고서는 어디엔가 던져 둔 나팔이었다. 녹슨 테두리에서 나오는 빛은 광채라 부르기에는 너무 초라했지만 다이사트에게는 그 찰나가 윰 시밀의 방문을 알리던 빛줄기만큼이나 강력한 계시 같았다. 그는 나팔을, 즐거움을 위한 머리를 주워들었고, 자신의 목에 꽂았다.

*   *   *

열하나. 지금까지 잡아들인 쥐새끼들의 수였다. 오늘 늘어난 시민의 수이기도 했다. 다이사트는 높은 음 두 개를 번갈아 내쉬며 열두 번째를 뒤쫓았다. 키가 유독 작은 놈이었다. 도망치는 솜씨가 훌륭하긴 했지만 그의 시야를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공중으로 휙 치솟아 올라간 다음 급강하하며 마지막 좀도둑의 머리를 으깨 놓았다. 고치지도 못하게 됐군. 당분간은 새 머리가 익숙지 않다며 불평을 늘어놓겠지만, 뭐, 익숙해지면 그러려니 할 것이다. 자신도 그러고 있으니까. 다이사트는 신입에게 환영사를 내뱉기 위해 목 아래만 남아 꿈틀거리는 요정에게로 다가갔고, 피리 성물을 회수한 다음, 놀란 투로 외쳤다.

"너, 안 죽는구나!"

요정의 몸이 대답처럼 허물어지더니 마력 안개로 변해 흔들거렸다. 그게 은빛 개가 되려는 듯도 했고 요정이 되려는 듯도 했다. 다이사트는 안개의 중심에 종 모양 성물이 있는 것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어느 틈인지는 몰라도 저것까지 빼돌렸군. 하여간 이놈들은 천 년만에 나타나서 기껏 한다는 짓이 도둑질이라니.

<알았으면 가서 할 일이나 해요. 난 이걸 가져가야 한단 말입니다.>

뇌리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다이사트는 판단을 수정했다. 이건 평범한 도둑은 아니었다. 최소한 신의 하수인쯤은 되는 게 틀림없었다. 윰 시밀이 비슷한 방식으로 말한 적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번뜩이는 녹색 안개라. 죽지 않는 떠돌이들과 불길한 별에 대한 이야기가 잇달아 떠올랐다. 야스와다의 주인이 그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는 것까지도.

재빨리 생각을 마친 다이사트는 마력 안개가 점차 짙어지며 움츠러드는 것을 알아보았다. 성물을 삼킨 채 어딘가로 사라지려는 듯했다. 무색 갈래를 쐐기처럼 꽂아 넣고서야 겨우 움직임이 멎었다.

"몇 가지만 묻자고. 야스와다의 주인께서 이제는 나그네까지 용서하신 거야? 그렇다고 해서 신관 직분까지 주다니 이상한 걸. 보자, 그분께서도 잠들어 계신다고 들었는데. 애당초 성물은 왜 가져가려는 건지도 모르겠군. 지금 네 품에 있는 건 게으름뱅이를 깨우는 물건이라고. 한 번만 울리면 건물 전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정신을 차리지. 사무관들이 철야로 바쁠 때마다 쓰던 거야. 야스와다 놈들이 갑자기 게을러졌다면 유감이지만―"

안개는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진저리를 내듯 바르르 떨었다. 항복 선언인 모양이었다.

<용도는 별로 안 중요해요. 성물이기만 하면 됩니다. 검고 이상한 재료로 만들어진 물건들요.>

"어디에 쓸 거야?"

<잠든 분을 깨울 겁니다. 그분의 땅과 이곳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야 해요.>

"왜? 깨워서 뭘 할 생각인데? 전쟁이라도 다시 한 번 벌일 테야?"

<하필이면 이런 놈한테 붙잡히다니. 야스와다 사람이 야스와다의 주인께 좋은 일을 한다는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다는 겁니까.>

"헛, 난 이런 놈이 아니라 궁정 마법사야. 넌 그냥 도둑놈이고 말이지. 아니, 평범한 도둑놈은 아니겠군. 사람도 아닌 꼴을 하고서는 이러고 있으니까."

<목에 나팔을 꽂은 작자한테 사람도 아닌 꼴 소리를 들으려니 기분이 나쁜데요. 아무튼 설명하려면 복잡해요. 댁도 이 자리에서 역사 강의를 듣고 싶진 않을 거 아닙니까.>

"듣고 싶으니 해 보라고. 나도 역사라면 아는 게 꽤 있거든."

<말투도 똑같은 게 역사 타령까지 하니 구역질이 나오려 하는데요. 신이란 것들한테 돌려받을 물건이 있어요. 자세히는 못 말합니다.>

"아하, 그 정도만 설명하면 나도 이해하지. 이래봬도 꽤나 배려심이 넘치는 편이거든. 그러면 물건을 얻어낸 다음에는? 야스와다의 주인께서 이 썩어빠진 도시를 그대로 내버려두진 않을 것 같은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지냈다지만 동족 아닌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잠든 분께서 그간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셨을지도 모르는 판에.>

"정말 몰라?"

<모르는데요.>

"자, 들어봐. 저기 회당에 우리 주인께서 죽어 계시거든. 그것도 심장에 성물이 박힌 채로. 그걸 뽑으면 이 짓도 다 끝날 것 같은데 우리끼리는 안 되더군. 사실은 빼낼 생각을 한 적도 없지만. 그런데 신들이라면 어떻게든 처리를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그래서 묻는 거야."

긴 침묵이 흐르더니 마력 안개가 짐승이 이빨을 내비치듯 부풀었다. 동시에 다이사트는 한층 거세진 울림이 나팔의 텅 빈 구멍 속에서 공명하는 것을 느꼈다.

<검도 빼내긴 빼낼 겁니다. 청지기님이 말씀하시길 자기 형님도 슬슬 불쌍해졌다더군요. 사실 불쌍한 거로만 따지면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긴 한데. 여하튼 난 가야겠으니까 다른 성물은 댁이 가져요. 미친 놈 때문에 열흘 밤낮은 저승에 누워 지내겠군. 일은 또 늦어지게 생겼고. 그래도 늦어져 봤자 두세 해니까 그때까지 유서나 실컷 써 둬요. 조만간 다시 돌아올 겁니다.>

안개는 속박을 떨쳐내고는 불꽃으로 변해 맹렬하게 타올랐고, 성물과 함께 그대로 사라졌다. 다이사트는 현기증에 가까운 이명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고서야 깨달음이 퍼뜩 다가왔다. 그는 텅 빈 땅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잠깐, 성물이라고만 했지 그게 무슨 모양인지는 말하지 않았어! 알고 있지? 알고 있는 거야!"

*   *   *

"다른 놈들한테 말해 보아도 내가 헛것을 봤다고만 하니 난처하지 뭐야. 그놈들은 회당 꼬라지가 어떤지는 전혀 모르거든. 그렇다고 해서 당장 말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고 말이야. 슬슬 업보를 정산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 그래서 저놈 말대로 유언이나 준비하기로 했어. 죽기 전에 최고의 연주를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

그렇게 새 나팔을 주문하고, 무덤한테 빼앗겼다가, 별점술사한테 교류 통로에 가 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서 너와 저놈을 다시 만났을 때―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넌 짐작도 못 할 거야. 그런데 저놈은 만나자마자 날 죽이려 들더군. 이상한 장난감으로 변한 다음에는 말해도 대답이 없고 말이야.

이걸 반쯤 잊고 지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군. 나팔 머리를 끼고 다니면 세상사가 온통 사소하게만 느껴지거든. 내 연주와 신들끼리의 일이 비슷한 문제인 것만 같지. 그러니까, 그런 일들이 있었어… 그런 일들이… 말도 안 되지… 하나도 말이 안 돼… 황자님, 제가 도대체 당신께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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