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235화 (236/258)

235화 꿈과 희망 (5)

"모두 죽는다고? 왜?"

"이제 끝이야? 이제 땅에 묻힐 수 있는 거야?"

"싫어! 싫어! 싫어! 죽고 싶지 않아!"

무덤이 폭발했다. 반파된 기계 몸이, 다리만 남은 요정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덩어리가 산산이 흩어져 외치기 시작했다. 입이 있으면 말을 했고, 그게 아니라면 바닥을 꽝꽝 구르고 옆의 조각들과 부딪히면서 소리를 냈다. 쓰레기 집하장 가장자리에 선 채 쏟아지는 쓰레기 무더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기분이었다.

란드와르는 정말로 개판이 났다고 생각했다. 이거 의식이 있는 거였어? 분리될 수가 있었다고?

<다소 경솔하셨군요. 저는 다른 업무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울 예정입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니 건승을 기원합니다.>

씨발, 티아! 앞으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금지예요! 이거 당신네들 일인데 구경하듯 그러면 안 된다고요! 뭐라도 해 봐요!

소리에 소리가 겹쳤고 저주가 끝나리라는 전망은 각자의 추측을 머금고 부풀었다. 뭐라 말을 얹을 수도 없는 속도와 세기로. 그러더니 이대로가 좋다는 쪽과 쉬고 싶지만 제물로 바쳐지기엔 무서웠던 쪽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상이 믹서기 속에 들어간 야채 토막처럼 갈려 나갔다. 살육 광란이었다.

이 와중 나팔 머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을 이렇게 키워 놓고 혼자서 내빼다니 개 같은 놈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볼로디아와 테네브로즈도 보이지 않았다. 인파에 휩쓸려 어딘가로 밀려난 것이다.

어쨌건 황태자와 접선하는 건 물 건너갔다 치고,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묻자마자 어디에선가 날아든 육편이 뺨을 스쳤다. 란드와르는 의식이 일시에 사그라지며 더운 어둠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반가웠다.

*   *   *

정신이 돌아왔다. 란드와르는 강한 돌풍이, 혹은 거대하고 투명한 손 같은 것이 자신을 움켜쥐고 끌어올리는 것을 느꼈다. 꼭 인형 뽑기 기계의 경품이 된 기분이었다. 멍하니 발아래의 아수라장을 감상하고 있자니 낯선 목소리가 바람에 섞여들었다.

"휴, 셋 다 무사히 건졌군."

바로 다음 순간, 란드와르는 거대한 비늘 생물의 등 위에 올라탄 자신을 발견했다. 잠깐 헤어졌던 일행도 옆에 앉아 있었다. 볼로디아, 테네브로즈, 그리고 머틀까지. 보이진 않지만 헤이딘도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티아가 이상하리만치 태연했던 이유도 짐작이 갔다. 이런 소요 사태까지도 예상 범위 내였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설명은 제대로 해 줘야 할 게 아닙니까…….

실컷 투덜거려 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바쁜가보지. 란드와르는 간신히 짜증을 억누르고는 볼로디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건 뭡니까?"

"저자가 우리를 끌어올려 주었소. 곧바로 황태자에게 갈 거요."

볼로디아는 검지로 옆을 가리켰다. 옅은 모래색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긴 남자가 용 고삐를 쥐고 있었다. 몸과 목을 잇는 고정쇠가 채도 높은 푸른색으로 반짝였고, 마력 갈래가 흐느적거리는 귀걸이는 바람의 방향에 맞추어 몸을 내뻗었다. 남자는 고삐를 당겨 속도를 늦췄고, 검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이걸 끼우느라 좀 걸렸어. 그건 사과하지."

"나팔 머리?"

"그러면 누구겠어?"

대답이 때려 주고 싶을 만큼 해맑았다. 란드와르는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일을 이렇게 키워 놓고서는 약속을 지킨다니 제정신이 아닌 새끼였다. 하기야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으니 놀랄 것도 없었다. 깊은 한숨이 손바닥을 따라 흘렀다.

"황태자님을 만나 뵈는데 격식 없게 나팔이나 꽂고 다닐 수는 없지. 참, 생각해보니 통성명을 아직도 안 했군. 내 이름은 다이사트야. 여기선 나팔이라고 불러도 되지만 황태자님 앞에선 예의를 지켜 줬으면 좋겠어."

"머리가 있었던 거야?"

"그럼. 원래 몸은 엄청난 사치품이라고. 평소에는 이 녀석한테 맡겨두고 살아. 타마기스의 주인께서 직접 하사하신 거야. 저기 하늘 위에서 돌아다니다가 호각을 부르면 바로 내려오지. 용을 타는 건 다들 마지막일 테니까 즐겨 두라고. 수명이 몇 백 년쯤이던가, 아무튼 이놈들도 죽긴 죽는다고 들었거든."

질문은 많았지만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란드와르는 직물 안장의 겉면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그 아래로, 아침해가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타마기스로 시선을 던졌다. 이렇게 보니 타일라프람만큼은 화려해 보였다. 어쩌면 그 이상으로.

제국 시절의 건물 대부분은 무너지고서 새로 지어졌지만 예외는 있었다. 그것들은 아마도 타마기스가 온전하던 시절부터 예외였을 것이다. 고전 양식의 규칙적인 배열 사이로 불쑥불쑥 솟구치는, 컨셉 디자이너의 기획안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형상들. 세로로 꽂힌 채 지저를 향해 가는 기차처럼 흔들리는 고층 건물. 각각의 직육면체 칸은 견고한 석조 기둥이 아니라 느슨한 마력 갈래로 연결되어 있다.

그로부터 몇 구획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환영 마법이 걸린 조형물이 발견된다. 생기 넘치는, 거대한 물고기들이 암녹색 허공을 유영하고 있다. 부패자 하나가 물고기를 향해 마력 갈래를 쏘아 보낸다. 환영은 잠시 흐려졌다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들은 봄철에, 괜히 벚꽃나무를 흔들어 꽃잎을 떨어트리는 아이들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문득 경쾌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리더니 그 광경이 한순간에 란드와르를, 이강현을 후려갈겼다. 머리로만 읊고 있던 문장들이 훅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야. 자신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이제야 실감이 났다. 타마기스는 저주받은 땅도 악의 소굴도 아니었고 막연하게만 상상하던 죄책감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도시였다.

그는 뒤늦게도 미사일 발사 버튼을 쥔 어린아이가 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래서는 안 됐다. 덤벼드는 신관을 고기망치로 으깨고 인간 몇을 제물로 바칠 수는 있겠지만 이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러니까 별이 다섯 개쯤 있는 장군들은 윤리학에 앞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대도시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자격이 있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끔찍한 일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언어로 풀어 설명하려면 수십 장의 종이가 필요하겠지만 가부를 논하기에는 직감만으로 충분한 것들이. 별다른 신념 없이 살아온 사람일수록 오히려 예민해지는 것들이.

"저주를 풀 거야?"

강현은 묵상을 이어갈 마음조차 품지 못하고 그냥 물었다. 그냥. 낱말을 너무 많이 썼다가는 그것마저도 정당화할 수 있을 듯했다. 나르시소에서 한 차례 그랬던 것처럼.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물어야 할 사람이 반대라는 생각이 드는데. 왜, 황태자님 앞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꿀까 두려운가? 영원한 황태자시여, 이 이방인들이 당신의 도시를 먼지로 되돌리려 하니 부디 처분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다이사트는 과장된 연극조로 읊어 대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거였더라면 용에 태우지도 않았을 거야. 저렇게 난장판이 되었을 때, 황태자께서 바쁘시면 가끔 내가 집행을 하거든. 내키면 뛰어들어서 같이 뒹굴 때도 있고. 말인즉슨 하나씩 빼낼 수 있었다면 하나씩 처치할 수도 있었단 소리지. 이것도 내 선택이야. 황태자님의 선택도 비슷할 걸."

"그래도 괜찮아?"

"괜찮냐니, 뭐가?"

"이렇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잖아. 너랑 내가 약속을 했다 쳐도, 아무리 그래도……."

그는 숨을 잠시 멈췄다가 다이사트가 조금 더 고민해야 할 이유들을 읊기 시작했다. 새 나팔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도시 전체가 아니더라도, 그 자신을 위해서라도 망설임을 남겨 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 아무 미련이 없냐는 것.

자신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지금까지 내린 결정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울쿠스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로안에게 억지로 수정 심장을 안겼다. 그리고 세카두 사람들에게는 만신전의 진실을 감췄다. 계약서에 쓰인 보수액을 위해서. 혹은 더 많은 사람의 평안을 위해서. 그러니까 지금도 다이사트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신 침묵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설득해야 했다.

무엇을?

강현은 어둠 속의 괴물로부터 미친 듯이 달아나다가 겨우 침착성을 되찾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었다. 머틀은 한쪽 팔로 용의 등을 짚은 채 나머지 팔로는 무언가를 빠르게 적고 있었다. 테네브로즈는 눈에 띄게 난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티아가 여기에 환영으로 나타난다면 똑같은 얼굴을 할 것이다. 반면 볼로디아는… 볼로디아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만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당신을 찾는 동안 저자와 대강 상의를 해 두었소. 어찌 됐건 일이 틀어지지는 않을 거요."

부드러운 만큼 사무적인 어조였다. 일이 틀어지지 않을 거라고? 계획대로, 모두가 죽는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할 수 있단 말이야?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재차 공포가 몰려왔다. 강현은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서른다섯밖에는 되지 않은 인간이 이렇게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되뇌었다. 따라서 저승의 청지기나 신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는 없다고. 천 년을 살아낸 시체나 기계조차 될 수 없다고.

그리고 티아의 속삭임이 들렸다.

<전 심리 상담은 잘 모르지만 이 말씀은 꼭 드려야겠군요. 거기까지만 생각하세요. 이런 걱정은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보수는 모두 준비해 두었으니 할 일을 하세요. 이건 이스트리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강현 씨 한 사람을 위해서, 사적으로 하는 이야기예요.>

그게 다예요? 진작 안 말린 이유가 뭡니까? 인간 한 명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인간 한 명이, 시체들을 죽이는 게 미안해서 인간을 다 죽이려 하고 있는데 신이고 천사인 분들이 그래도 되는 겁니까?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강현 씨는 모든 가능성의 세계에서, 모든 분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결말은 하나뿐이고요. 할 일을 하세요. 결국엔 하시게 될 겁니다.>

그 속삭임은 볼로디아의 말과 비슷했지만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가슴팍에 모인 공기가 모두 달아나더니 피까지 바짝 말랐다. 티아, 지금 그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요? 결국 그렇게 될 거라면 왜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겁니까? 나는 그냥 인간인데도요?

시뮬레이터에 결함이 있기를 빈 것은 처음이었다. 그건 아마도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이사트의 목소리만이 텅 빈 몸 안에서 윙윙 울렸다.

"아하, 이거 봐. 말했잖아. 넌 신은 아니야. 신들은 좀 끔찍한 족속이라고. 많이 끔찍할 때도 있지만."

윰 시밀의 충신이었던 요정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강현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대답해야 했다. 첫 마디를 입에 담으면서, 그는 발음이 너무 이상하지 않길 빌었다. 혹은 반대로 몸이 통제를 벗어나 고함을 내지르길 빌었다… 그러나 결국 튀어나온 소리는 무감각하기만 했다.

"하지만… 어쨌든 너도 사람이잖아. 야스와다 일은 네 문제도 아닌데. 그것 때문에 죽겠다는 건―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문장 중간쯤에서 숨이 턱 막히더니 혀까지 굳었다. 중압감 때문인지 보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으로 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발악할 기회는 모두 써 버렸으니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비슷한 감각에 한동안 시달린 적이 있다. 새벽이 깊어 가도록 채무증대 경위서를 써내고 지우길 반복할 때, 민혁을 돌려보내고 8인실에 홀로 남았을 때, 그때 자신은…….

"쉬게 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어. 그게 다야. 다른 놈들은 알 바가 아니지."

다이사트는 그렇게만 답하고서는 입을 다물었고 강현도 더 따지지 않았다. 바람만이 허공에 가득한 비명처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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