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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233화 (234/258)

233화 꿈과 희망 (3)

란드와르는 눈을 떴다.

교차된 손목에 느껴지는 밧줄의 감촉. 고름 냄새. 그는 나팔의 둥근 입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을 본다. 악기 손잡이는 강직된 목뼈처럼 어깨 한가운데에 섰고, 측면에는 음정을 조율하는 데에 쓰이는 단추들을 붙이고 있다.

일곱 개의 단추 중 두 개가 동시에 눌려 들어가며 높다란 소리를 냈다. 그 울림이 귀를 찌르는 동시에 정신이 돌아왔다. 란드와르는 양손을 반대 방향으로 휙 움직여 밧줄을 끊어낸 다음 놈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다른 손으로 나팔을 뽑아내려던 찰나 티아의 목소리가 분노를 짓눌렀다.

<잠깐 멈추셔야겠습니다. 요정이 저자의 손에 넘어간 상황입니다.>

곧바로 정보 덩어리가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바단 통로로 전송되자마자 이놈에게 습격당했고, 머리를 직격으로 맞고서는 쓰러졌다는 것. 신앙심을 끌어 쓸 만큼 큰 부상이었다는 것. 테네브로즈가 요정 형태로 돌아와 맞섰지만 빠르게 제압당했다는 것. 그리고 놈이 지혜의 고리를 어딘가에 감춘 게 분명한데 물건 상태에서는 추적이 불가능한 관계로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다는 것… 이런 씨발.

"너 뭐 하는 새끼야? 그거 어디 뒀어?"

란드와르는 멱살을 쥔 손을 놓지 않은 채, 그대로 나팔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얇은 원 너머 막막한 암흑으로부터 떨리는 듯한 중저음과 고음이 번갈아 올라왔다. 마치 웃음처럼. 그러더니 단추들이 마구잡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반―반가워! 내가 대답을 잘못하고 있다면 미안해! 바깥 말은 잘 모르거든!"

나팔이 말하고 있었다.

*   *   *

믿음이 이면 세계를 움직인다. 타마기스 영토에 얽매인 넋들에게 몸을 만들어 주는 것 또한 믿음이다. 그들은 망가지고 뜯겨 나가는 신체를 고쳐 나가면서 의수가, 의족이, 의안이 자신의 일부라고 굳게 믿는 일에 익숙해졌다… 따라서 그것은 그들의 일부가 되었다.

상상력은 재료와 형태를 가리지 않고 뻗어나갔다. 구태여 강철 군체의 일부가 되지 않더라도, 기계 장치에 혼을 내맡기지 않더라도,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꾸며 나가는 작업은 부패자들의 일상이었다.

보석 두 알을 눈구멍에 박아 넣은 다음 눈이라고 믿으면 그것은 눈이었다. 이러한 정신 수양의 난이도는 부위에 따라, 그리고 모습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진짜 살덩어리처럼 깎은 의수는 붙이자마자 작동시키는 게 가능했지만 바퀴를 다리라 확신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제일 고난도의 작업은 부위와 아무 연관이 없는 사물을 몸으로, 몸의 기능으로 삼는 것이었다. 널판이 날개이며 자신이 그것으로 허공을 날아다닌다고 믿기. 뱃속에 책을 넣고 다니면 그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간다고 믿기.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했고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존경받았다.

그중에는 나팔을 너무 사랑해서 머리가 나팔이 된 남자도 있었다.

*   *   *

<큰 도움이 될 상대입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협상해 보시길 권합니다.>

볼로디아는 나우파나 통로에 떨어진 뒤 역병 늑대를 쫓아 보냈고, 지금은 늑대인간의 넋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과연 피투성이 심장의 주인이자 말루카의 통치자다운 행보였다. 반면 서른다섯 살의 신용불량자는 다 썩어가는 집에 들어앉아 나팔과 떠드는 중이었다. 이거 끔찍하군.

"나는 세기의 천재였어. 누구보다도 빠르게 궁정 마법사가 된 다음 황태자를 바로 곁에서 모셨지. 타마기스의 주인께서도 나를 아끼셨어. 그런데 휴가 주일에, 집에서 자고 있는 동안 그 사달이 난 거야. 백 년쯤은 방황을 했던 것 같아. 조금 미쳐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불평하기를 멈추고 진정한 나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계시처럼 내려오더군. 돌이켜보면 나는 궁정 마법사가 아니라 나팔 연주자가 되어야 했던 거야."

란드와르는 들뜬 채로 떠들어대는 나팔 머리를 앞에 두고서는 실로 기묘한 우울에 빠져들었다. 마치 취향 나쁜 부조리극에 갇힌 것 같다고나 할까. 이 짓을 시작한 후로 항상 느끼던 감각이었지만 지금처럼 심한 적은 없었다. 울쿠스를 달랠 때에는 짜증과 불안을 억누르느라 그 점을 깊이 고민할 겨를이 없었고 반구에서 풀려나와 나트람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에는 씁쓸함이 더 컸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란드와르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지르면서, 상황을 하나씩 뜯어보았다. 바단 통로에 떨어지자마자 물리적으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기절했다는 것. 이 와중 테네브로즈는 천 년간 마법을 갈고 닦은(그리고 음악에도 취미가 있는) 나팔 머리에게 몸이 반으로 갈려나갔다는 것. 그렇게 지혜의 고리로 변한 다음엔 만신전의 추적도 끊기고 말았다는 것. 그나저나 이놈은 죽을 때마다 쓸데없이 잔인하게 죽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팔 머리는 지혜의 고리를 인질로 잡고서는 란드와르의 협조를 구하고 있었다. 음색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악기를 바꾸려 했다는 거였다. 그런데 주문제작한 나팔을 받아들고 거리를 지나가다가 강철 군체에게 빼앗겼다고. 크기가 하도 커서 바라만 보고 있던 차에, 별점술사에게 의견을 구해 보자 바단 통로에 가 보라는 답이 나왔다고.

"별점술사가 이러라고 시켰어? 뒤통수 치고 협박하라고?"

"기다리고 있으면 귀인이 나타날 거라더군. 그런데 순순히 말을 들어주진 않을 테니 고삐를 잡아 놓으라지 뭐야. 시킨 대로 했지. 제정신은 아니지만 별점은 끝장나게 잘 치는 놈이거든. 아무튼 그게 말이야, 그게, 아아아아주 커. 영혼이랑 망가진 기계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한 자리에 굳어 있는 거야. 평소엔 온순하지만 몸을 훔치려 들면 아주 싫어하고. 알겠어? 새 나팔이 거기 붙어 있단 말이야."

미친 새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동네에서 천 년간 썩었으면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겉모습이나 행동 덕분에 인기를 끌던 놈이었는데 막상 눈앞에 두고 보니 그냥 끔찍하기만 했다. 란드와르는 두통 속에서 협상을 시도했다. 도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일단은 타협을 보려 애쓴 것이다.

"일단… 나는 아주 바빠. 당장 황태자를 만난 다음 황제랑 담판을 봐야 해. 음악에 대한 열정은 존중하겠는데, 다음에 하거나 다른 사람을 찾아봐. 아니면 새로 주문을 넣든지."

"황제를 만나려고 온 거야? 다른 도시에서? 야스와다 말고는 모두 망했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길래 그래?"

"야스와다까지 망할 거야. 열흘 남았어. 그 다음부터는 세상이 망할지도 몰라."

"세상이 망한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거야? 도시가 이렇게 됐을 때도 다들 그랬어. 망했다고 했지. 그런데 우린 아직 살아 있어. 신입들도 울고불고 난리를 치지만 나중 가면 다 적응한다고. 얼마 전에 야스와다에서 들어온 쥐새끼들도 그랬지. 이런 삶도 꽤 괜찮아. 평소엔 하고 싶은 걸 하고, 싸우고 싶을 때면 싸움이 난 곳으로 가고, 너무 시끄러우면 황궁으로 가서 황태자께 부탁을 올리지. 남들이랑 부대끼는 게 싫으면 방벽 밖으로 나가서 늪지대에서 살아도 돼. 그런 놈들도 많아."

말문이 턱 막혔다. 나무가 대륙을 뒤덮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지? 사람들이 몸을 잃고 보랏빛 영혼이 된 다음… 된 다음? 그런 미래가 타마기스의 오늘과 별반 다르진 않을 것 같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가치 판단은 일단 제쳐 두더라도 나팔 머리를 설득하는 데에 도움될 말은 아니었다. 그는 이 미치광이가 외부인의 정체를 묻지 않는다는 데에 최소한의 감사를 느낀 뒤 전략적으로 퇴각했다.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황태자를 만나야 돼. 이런 일로 시간을 쓸 때가 아니야."

"흠, 나는 황태자님과도 알아. 궁정 마법사 시절에 매일 만났거든. 지금도 다른 녀석들보다는 훨씬 친하고. 날 도와주면 소개시켜 줄게. 나팔 하나만 뜯어내면 된다니까. 별점술사가 말하길 네가 적임자라더군."

"적임자라고."

"자, 쉬운 교환식이야. 넌 그걸 할 수 있으니까 그걸 해. 난 황태자님과 아는 사이니까 널 그분께 데려다 줄게. 오래 안 걸려."

"지금 당장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란드와르는 앓듯이 내뱉었다. 대답은 빠른 만큼 단호했다.

"물론이지. 세상이 망한다고 외치는 놈들은 충분히 많이 봤어. 바단 서쪽에 새 교각을 건설해 주지 않으면 도시가 망할 거라고 외치는 놈이나, 예산안을 이대로 밀고 가면 외곽의 작은 마을들이 모두 말라죽을 거라거나, 뭐, 아무튼, 한순간에 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면 정말로 망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어떻게든 계속된다니까. 이 도시가 바로 그 증거고. 오히려 훨씬 다채롭고 풍부해졌지. 하여간 바깥에서 온 놈들은 이걸 몰라서 큰일이라니까. 그런 쓸데없는 호들갑에 비하면 진정한 자아란 실로 중대한 문제란 거지. 진정하고 내 연주나 들어 보라고."

란드와르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나팔 머리의 연주를 들었다. 끔찍했다. 마법 공격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음정도 안 맞았고 박자도 안 맞는데다가 소리는 너무 컸다. 그는 부패자들이 이 미치광이의 마법 실력을 두려워하느라 정론직언을 해주지 못한 것이라 판단했다.

"아니야. 넌 재능이 없어. 그 꿈은 관둬."

그 말과 동시에 음률이 뚝 멎더니 나팔의 검은 원이 란드와르를 뻔히 들여다보았다. 순전한 사물에서, 텅 빈 놋쇠 구멍에서 표정을 읽어낼 수 있다니 놀라웠다. 치명적인 말실수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찰나 나팔이 두 음을 번갈아 내기 시작했다. 웃음이었다. 진짜 대답은 웃음소리가 한바탕 지나간 뒤에야 왔다.

"예전에는 내 연주에 마법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지. 듣기만 하면 다들 그 소리를 했거든. 기껏 모신 스승까지도 그러고 도망갔어. 지금도 도시 저편에 사는데 내가 가면 바로 내빼지. 그래서, 다들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똑같은 반응을 하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새로운 마법을 개발한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더 잘 알겠지만 야스와다 놈들은 그런 걸 잘 하잖아. 남더러 뭔가 말하게 하는 거. 남 정신을 헤집어 놓는 거. 그런데 아니더군. 그냥 재능과 실력이 처참한 수준이었던 거야."

"알면 포기해야지."

"재능이 없으니 포기하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은 죄다 패배주의자야. 삶을 즐기는 법을 모르고 진정한 자아도 못 찾을 놈들이지. 나처럼 진취적이고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는 항상 돌파구를 찾아낸단 말이야. 바로 새 악기를 장만하는 거지."

"그게 돌파구야?"

"영혼은 심장에 담기지만 생각은 머리에서 나와. 실력도 머리에 있는 셈이지."

"그래서?"

"아니, 이걸 설명해야 한다니. 내 머리는 나팔이야. 머리를 좋은 물건으로 바꾸면 당연히 실력도 좋아지지 않겠어?"

란드와르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이 미치광이는 진심으로 자신의 꿈을 쫓고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나팔 머리를 도와야 할 모양이었다. 무덤에서 새 나팔을 뜯어낸 다음 볼로디아와 합류해서 황태자를 만나는 것이다. 원래는 궁정 마법사였고 황태자와도 연이 닿는다고 했으니까. 한 말은 지킬 것 같으니 그 점은 다행이었다.

티아, 이거 도와도 되는 거죠?

<예, 조금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결과가 긍정적입니다. 일단 시도해 보시죠.>

그는 강철 군체에게서 나팔을 뜯어내는 작업이 충분히 순탄하기를 빌었다. 여기에서 더 일이 꼬였다가는 자신까지도 미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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