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영원한 황태자 (4)
윰 시밀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역병의 저주가 타마기스 영토를 휩쓸었다. 땅에 속한 것은 무엇이든 차원문을 건널 수 없게 되었고 두 발로 걸어도 영토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피는 고름이 되었으며 손톱과 발톱이 빠져 흘렀다. 살갗에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저주에 타격을 입은 것은 육신뿐만이 아니었다. 야스와다와 바단의 마법이 뒤틀리며 노예들이 풀려났다… 늑대인간은 그들의 주인을 물어뜯었고 인간은 뭉쳐 다니며 보이는 요정이라면 누구든 잡아 죽였다. 요정들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죽고 죽었지만 진실로 죽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황태자와 그 호위무사 역시 이러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강철 늑대는 주인의 목을 친 뒤 도심의 전장으로 달려 들어갔고, 프로파나티카는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야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텅 빈 두개골 속으로 조언가 장치의 목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강철 늑대가 반역을 저지른 이유도, 살아남은 이유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이 소란을 진압해야만 했다 프로파나티카는 목과 몸을 붙였고, 마력 방벽 안쪽의 내벽으로 향했다. 용들은 대개 거기에 머물렀다.
거대한 비늘 짐승들은 태초의 일꾼으로서 오직 윰 시밀의 핏줄에게만 복종했다. 평시에는 하늘을 떠돌며 도시를 살피거나 경비병에게 등을 빌려주었으나 최종적인 결정권은 삼두정에게 있었다… 황태자는 마흔아홉 마리의 용을 이끌고 나섰다.
그럼에도 난동은 실로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육신의 손상은 은원을 지우면서 다시 그만큼의 치열함을 낳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열망 그 자체가 되었다. 도시는 황태자의 관리 아래 평안을 되찾았으나 그 시기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 그리고 타마기스 사람들의 영혼에 남아 있다.
이것은 살육 광란의 기원이다.
* * *
프로파나티카는 액체 속에서 깨어났다.
눈앞의 세계는 주홍색이었고 유리로 가로막혀 있었다. 매끄러운 벽 너머로 또 다른 벽이 보였다. 대강 덧바른 회반죽 위에서 일그러진 덩굴과 곰팡이가 뒤엉키며 질감 있는 추상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아름다운 환영 그림이 걸려 있던 시절을 돌이키다가 눈동자만을 굴려 아래를 보았다. 머리 없는 몸이 침대로부터 일어나 프로파나티카가 얹힌 선반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몸은 유리병의 뚜껑을 열어 머리를 꺼낸 뒤 손수건으로 점액질을 닦아냈고, 익숙한 태도로 얹었다. 두 부분을 잇는 부품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조립 인형처럼 꼭 들어맞았다.
도시의 소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면 프로파나티카는 자신의 머리를 침실 선반에 올려두었다. 유리병에 담긴 주홍색 액체는 독액으로서 생쥐나 벌레 따위가 살점을 물어뜯지 않도록 막았고, 몸은 마법으로 보호되었다. 이곳에서의 휴식은 그녀가 저주 이후의 시간으로부터 지켜낸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돌아갈 때였다. 너무 오래, 하루 이상 자리를 비웠다가는 살육 광란이 도시 전반으로 퍼져나갈 위험이 있었다. 지금 같은 시기는 특히 위험했다. 옛 도시의 별들이 잇달아 떠오르면서 소요 사태 역시 잦아지고 있었다. 용을 몰고 나갈 때마다 프로파나티카는 대기 중에 감도는 불안과 흥분을 느꼈다. 그녀 역시…….
<질서를 수호하라… 치안을 유지하고 반란을 진압하라… 영토를 유지하라…….>
조언가 장치가 말했다.
프로파나티카는 순간 생각의 흐름이 끊기는 것을 느꼈다.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그녀는 황태자이자 타마기스의 정당한 관리자로서 도시를 최선의 상태로 유지할 책무가 있었다. 별과, 역병 늑대와, 살육 광란은 여러 문제 중 하나에 불과했다. 타마기스의 주민들은 그 자체로 골칫덩이였다. 갖가지 이유로 다투고는 황태자에게 판결을 부탁하는 이들,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는 예술가들, 그리고 강철 군체.
강철 군체는 영혼과 사물의 융합체였고, 덩어리의 크기는 넋의 수와 비례했다. 서로 파괴하고 약탈하고 결합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살육 광란이 아니더라도 도처에서 수시로 정복전이 일어났다. 이들은 결코 소탕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하나를 부수면 다른 것이 커질 뿐이라는 점에서 골칫거리였다.
따라서 프로파나티카의 역할은 기계들을 서로 떼어 놓고 더는 커지지 않도록 막는 데에 있었다. 그밖에도 할 일이 많았다. 당분간은 특히 바쁠 것이다. 와그다스와 야스와다의 별이 뜬 후로 그녀는 휴식 시간을 기존의 절반으로 줄인 상태였다.
역병의 저주는 죽음과 생명 사이에 놓인 것들, 피로나 굶주림이나 추위 따위를 모두 앗아갔지만 잠은 여전히 필요했다. 조언가 장치를 위한 잠이었다. 기기는 황태자들의 평균 수명에 맞추어 설계되었고, 이렇게까지 긴 가동은 고려된 적조차 없었다.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장치를 쉬어 주어야만 했다.
타마기스의 별이 뜰지, 뜬다면 그 과정은 어떨지에 대한 질문들은 황태자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오로지 지금 주어진 질서와 상황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만약 염려가 있다면 그것은 장치의 수명에 대한 것이었다. 이 속삭임이 그치면 타마기스 영토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자신은…….
<우리는 영토의 사람을 위해, 그들에게 좋은 바를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영토를 관리한다…….>
다시 의식의 흐름이 멎었다. 그녀는 조언가 장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정비하고 관리했다. 안전, 도시, 인구. 자신의 몸에 대해서라면 안구, 뼈, 생각. 그것은 황태자의 의무이자 권리였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터였다. 살육 광란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주검들도 그녀의 지시에 순종했다.
프로파나티카는 재정비를 마친 후 거울 앞에 섰다. 어디에서 새어 나왔는지 분명치 않은 점액질이 테두리를 따라 흘렀고, 그 속에 갇힌 구더기들은 금박 장식과 같은 줄무늬로 변해 있었다. 반면 매끄럽게 닦인 유리판은 도착지가 들여다보이는 차원문처럼 이질적이었다. 프로파나티카는 광채 속에서 그리고 곰팡이와 덩굴과 작은 벌레들로 뒤덮인 침실을, 그리고 자신을 발견했다.
피부는 생물체의 피부라기보다는 진흙 조각상의 표면을 닮았고, 귀 밑에 닿을 만큼 짧은 머리카락마저 그 일부 같았다. 한때 귀걸이를 매달았던 구멍들은 위아래로 길게 뜯겨져 나간 흉터가 되었지만 두 눈은 살아 있을 때만큼이나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실행하라…….>
장치가 말했다. 프로파나티카는 침실을 떠나 새로운 하루를 맞았다.
* * *
늑대는 하늘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검은 형체가 밤하늘을 맴돌며 부식성 액체를 쏟아냈다. 거대한 용과 그 위에 탄 요정의 형상이었다.
프로파나티카는 소규모의 접전에서는 직접 나타나기도 했지만 보통은 이런 식으로 군중을 흩어 놓았다. 독성 구름에 휩쓸리면 대부분은 전의를 잃고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가끔은 마법사들에게 역습당해 용을 잃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번의 전투는 황태자의 승리로만 끝날 것이다.
몸을 돌리는 순간 시야 한 귀퉁이에서 와그다스와 야스와다의 별이 섬광을 발했다. 그 빛은 늑대에게 실망과 희열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다른 별들이 잇달아 떠오르는 동안 타마기스는 지난 천 년과 같은 시간 속에 잠겨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제국의 도시를 거닐었으며 제국의 일부였다… 그리고 소란을 진압하는 것은 언제나 황태자였다.
그러나 늑대에게는 예감이 있었다. 그녀는 시체들의 말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기류를 느꼈다. 야스와다의 별이 다시 떠오른 후로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었다. 동요와 기대와 불안이 있었다. 그것은 도시를 어떤 식으로든 바꾸어 놓을 터였다.
늑대는 머지않은 미래를 벼르며 이를 맞부딪혔다. 그럴 때마다 부싯돌에서 불꽃이 일듯 분노가 튀어 올랐다. 지난 시간 동안 여자를 움직인 것은 바로 그 감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정확히 누구인지도, 궁전에서 보냈던 삶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용을 탄 채 상공을 떠도는 요정이 자신의 적이라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조만간 그 살점을 찢어 놓을 때가 올 터였다. 아직은 일렀다. 늑대는 자신을 막아서는 살덩이들과 금속 조각들을 밀어내고는 달려 나갔다. 우묵하게 파인 도로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깔려 있었다. 뒷발이 깨진 포석과 부딪히며 규칙적이고 맹렬한 금속성을 발했고,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박자를 맞추며 따라붙었다.
거처로 돌아가기 직전, 늑대는 몸을 수그려 수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가죽은 곳곳이 벗겨져 고름 가득한 살을 보였고 한쪽 발목의 살점은 아예 잘려 나가 있었다. 드러난 다리뼈가 달빛을 받아치며 칼날처럼 번뜩였다.
금속제 뼈는 각인을 통해 그녀의 몸과, 그리고 영혼과 조응했다. 형상이 변할 때마다 금속은 순전한 마력 덩어리로 돌아간 뒤 적절한 형태에 맞추어 재구성되었다. 그러나 늑대는 인간 모습을 별로 즐기지 않았다. 기억이 닿는 한 그녀는 지난 천 년간 네 발로만 뛰어다녔고 네 발로만 누웠다.
대화를 시도하거나 인간 형상을 되찾아주려 애쓰던 사람들도 있었다. 강철 늑대는 그들의 몸을 찢어 전리품처럼 거처 한구석에 쌓아 두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싸움이거나 적막이었지 생각이 아니었다. 생각은 언제나 불편한 느낌을 가져왔다―지금조차도.
늑대는 기억으로부터 빠져나와 고개를 들었다. 곧게 뻗은 통로가 아치형의 입구 너머에서 점차 좁아지며 그늘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쉴 때였다. 그녀는 안온한 어둠을 향해 뛰어 들어갔고, 제동을 걸듯 멈췄다.
익숙하고 달가운 냄새, 먼지와 곰팡이와 썩어가는 물의 냄새 사이에 낯설고 불편한 게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