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229화 (230/258)

229화 영원한 황태자 (3)

삼두정이 제국을 통치했다.

황제가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윰 시밀은 신의 뜻을 논했고, 황태자는 사람의 뜻을 전했다. 그들은 사람의 대표자로서 죽어가는 모두를 사랑해야 했으므로 그 누구도 소중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이에 후계가 허락되지 않았으며 반려나 친우 역시 둘 수 없었다.

황태자에게는 불멸의 삶 또한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선대가 죽음을 맞이하기 마흔 해 전에 태어났고, 백스무 번째 해의 생일날에 죽었다. 황제가 그 절차를 주관했다. 간혹 황태자가 삿된 마음을 품을 때에는 윰 시밀이 그 속내를 읽어 정해진 때보다 일찍 목숨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황제가 아버지를 죽이고 역병의 저주가 타마기스를 휩쓸자 권좌는 황태자의 몫이 되었다. 프로파나티카는 죽지 못한 이들을 천 년간 이끌었고, 이에 영원한 황태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   *   *

타마기스 궁전의 회당은 단조로운 회색조 공간이었다. 화려한 태피스트리나 환영 그림은 필요하지 않았다. 광활한 공간을 떠받치는 네 개의 사각 기둥과 흰 대원(大圓)은 아무 장식이 없을지라도 그 자체로 위압적이었다. 제국의 많은 중대사가 이곳에서 처리되었다. 또한 과월(果月)과 포월(葡月) 사이의 연휴마다 삼두정은 사절을 불러들여 의견을 경청했다.

가장 먼저 야스와다와 바단의 요정들이 회당에 들어왔다. 그들은 위편의 두 기둥에 자리잡았고, 대원에 신을 본뜬 조각상을 올린 후 짧은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조각상이 마력 증기를 뿜어내며 그 주인의 크기로 커졌다. 이시 타브와 이시 첼이었다. 두 신은 각자의 도시에 있었지만 환영을 통해 회당에서 오가는 말을 듣고 그에 답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와그다스 학자 한 명이 감독관과 함께 들어왔고, 오른쪽 아래의 기둥에 섰다. 각인 문자가 새겨진 종이 구체가 노인의 머리 위에서 느리게 회전했다. 슈문은 언제나 환영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를 보냈지만 발언하는 일은 없었다.

나우파나의 귀족들은 그 맞은편에, 즉 왼쪽 아래의 기둥에 위치했다. 그들에게도 말할 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한 무리의 평민이 회당에 발을 들였다. 참관 기회는 매년 추첨을 통해 주어졌다. 즉 그들은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이 중 가장 운이 좋은 서른 명으로서 여기에 온 것이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허랑방탕하게 늙어 버린 노인이 있는가 하면 노예와 귀족 주인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간 청년도 있었다.

그리고 대원 너머의 암흑이 걷히면서 계단식으로 높이를 더하는 단상과 그 위의 권좌가 드러났다. 오래된 전쟁이 끝나고 타마기스가 새로 세워졌을 때 석공이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암녹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남자가 권좌에 자리 잡았고 양옆에는 소년과 여자 하나씩이 서 있었다. 셋의 옷은 밋밋한 묵색이었으며 다른 요정들과는 달리 아무 장신구도 걸치지 않았다. 그들은 매일같이 연회를 열거나 도시를 한 바퀴 둘러쌀 만큼 많은 노예를 거느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명문가의 가보를 빼앗은 적도, 누군가의 반려를 탐낸 적도 없었다.

그것은 수집가가 보석의 광휘를 질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삼두정은 보석의 주인이었으므로 스스로 빛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수집품 가운데에서 깨진 것을 골라내 버리고 빛을 잃은 것들을 다시 연마하는 일만이 그들의 기쁨이었다.

"짐은 이곳에 앉아 수많은 사람을 내려다보았고, 대부분은 오래전에 죽어 무덤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소. 회당에 모인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오. 하지만 삼두정은 이곳에서 오간 소리들을 모두 기억할 것이며, 그 뜻은 제국의 기틀이 되어 불멸할 것이오. 여러분이 각자의 땅으로부터 가져온 말들이 영원할 가치가 있길, 그리고 제국의 영원에 보탬이 되는 것이길 바라오."

황제가 입을 열었다. 나지막하면서도 각 음절이 명확히 구분되어 들리도록 조율된 목소리였다. 정중한 환영사 뒤에는 각 도시의 사절을 소개하는 절차가 이어졌다. 접견식에 참석하는 사람은 매년 바뀌었으므로 이러한 과정은 필수적이었다. 삼두정은 면식 있는 이들의 말에 휘둘리는 상황을 꺼렸다. 평민과 노예들까지 인사를 올린 후, 황제는 다시 제국의 현안으로 운을 뗐다.

"서른 해 전에, 자미성이 위치를 바꾸며 별들의 국격이 일그러지는 일이 있었소. 열흘간 여덟 개의 별이 잇달아 떴고 마력 갈래의 흐름이 뒤틀렸으며 늑대인간들이 포악해졌지―그 일이 다시 일어났소. 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알다시피 타락한 가르침 또한 역병처럼 퍼지고 있다오. 인간들을 다스릴 신이 새로이 나타났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오. 그러나 다행히도 이들의 세력은 크지 않으며, 우리의 영광은 아직 드높소. 안식 주간이 끝나는 즉시 대평야 너머의 땅에 군사가 파견되어 노예들의 도망처를 소탕할 것이오."

그리고 각 도시의 대표자가 대원으로 나아갔다. 야스와다가 가장 먼저였고, 그 다음은 바단이었으며, 나우파나가 마지막이었다. 그들이 별점술사가 내어준 괘를 이야기하거나 인간 노예들의 이상 행동을 보고한 뒤에야 와그다스에 발언권이 주어졌다. 늙은 학자는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한 뒤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난 세월 동안 제국은 번영했으며 이 땅은 요정들에게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 감히 말씀드리건대, 제국의 역사는 계속되지 못할 것이며, 계속되더라도 그 영광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요정들은 야유를 던지거나 격분할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황제의 곁에 선 소년이 미간을 좁혔고 신들의 환영 또한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짧은 침묵이 지난 뒤 이시 타브가 종이 구체를 향해 물었다.

"슈문, 네 뜻도 이와 같으냐?"

"당신은 와그다스의 주인에게 그것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이것은 더욱 높으신 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가 청중을 휩쓸었지만 학자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목을 꼿꼿이 세우며 일어섰고, 이어 말했다.

"나는 지고하신 분의 하인이자 마지막 도시의 대표자로서 이곳에 왔습니다. 나는 무너진 도시와 깨진 심장을 기억하는 신이며 모두에게서 잊힌 신입니다. 당신은 나를 이미 알고 있으며, 내가 거느린 정원사들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문장이 더해질수록 학자의 살갗은 녹아내렸고 목소리는 음산해졌다. 요정들은 경악 속에서, 노인의 몸이 무언가 다른 형상으로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 거기에 선 것은 개의 두개골을 머리로 삼은 청년이었다. 초록색 불꽃이 텅 빈 눈구멍 속에서 이글거렸다.

그때 이시 첼의 환영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이시 타브의 환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멈춘 듯 굳어 있던 소년은 사방에서 어둠이 스멀거리며 기어 오는 것을 깨달았고, 다급히 외쳤다.

"나가라! 모두 나가!"

요정들은 조각상을 챙길 겨를조차 없이 서둘러 바깥으로 나섰다. 그는 황태자까지 몰아낸 뒤 자신의 아들을 노려보았다. 이미 회당은 암흑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늘과는 달리,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짙은 어둠이었다.

"저승의 청지기가 아버지께 인사를 올립니다. 겉모습만큼은 제 형님보다도 어려 보이시는군요.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그놈들을 이끌던 게 바로 너였구나!"

"야스와다의 주인께서 내 정원사들을 찾아 죽였지요. 아버지께서도 뜻이 같으셨을 줄로 압니다. 어쨌거나 재회가 길지 않을 듯해 유감입니다. 나는 본디 꿈을 만질 힘이 없으며, 다른 일곱 별의 힘을 잠시 빌려 이곳에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윰 시밀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엇을 원해 왔느냐?"

"지고하신 분께서 이르시길, 요정의 시대를 세어 저울에 달자 부족함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분은 제국을 쪼개어 인간과 늑대인간에게 줄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아버지와 형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까닭이므로 두 분은 넋으로 죄를 갚아야 할 것입니다."

솔로틀은 고개를 돌려 황제를 바라보았고, 두 팔을 곧게 뻗은 채로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어둠이 그 위로 모여들더니 장식 없이 예리한 장검이 형체를 갖췄다. 녹색 불꽃이 윰 시밀을 포박한 것도 그 순간이었다.

"형님은 이것으로 아버지를 찌르고 심장을 취하십시오. 그러면 해야 할 일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입니다."

*   *   *

황태자, 프로파나티카는 신의 힘을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많은 면에서 특별했다.

그녀는 요정보다는 정교한 마도공학 장치에 가까운 존재였다. 뼈는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금속으로 교체되었으며 관자놀이에는 조언가가 삽입된 상태였다. 조언가는 손바닥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영혼공학 장치로서 선대 황태자 다섯의 영혼이 담겨 있었다. 백여든 해의 수명을 다 채운다면 그녀 또한 장치에 갇히게 될 것이었다.

색이 바뀌는 눈 또한 프로파나티카가 본디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두개골에 담겼던 살덩이는 파내어진 지 오래였다. 청음 기능을 포함한 의안은 일곱 장소와 연결되었고, 이로써 평범한 요정으로 태어난 황태자가 신들처럼 제국 곳곳을 살필 수 있게 도왔다. 그 장소에는 회당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혼란에 사로잡힌 사절단을 숙소로 돌려보낸 후 자신의 업무실로 향했고, 시야를 회당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녹색 불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의 형체를 분간하려 애써 보아도 불타는 듯한 고통이 머리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번져나갈 뿐이었다.

― 형님은 이것으로 아버지를 찌르고 심장을 취하십시오. 그러면 해야 할 일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소리가 명확히 들렸지만 다시 잡음이 거세졌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프로파나티카는 시야를 되돌렸다. 암흑이 가시면서 업무실의 정경이 훅 가까워졌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슈문의 가호가 부여된 환영 접시들은 글줄을 띄워 올리거나 제국 곳곳을 비췄고, 문간에는 강철 늑대라 불리는 호위무사가 석상처럼 서 있었다. 검은 머리를 어깨쯤에서 자른 여자였다.

"어리석은 것! 뭘 멍청이처럼 서 있어!"

짜증스레 외친 프로파나티카는 환영 접시 하나를 집어 들어 호위무사를 향해 던졌다. 이마에 적중한 접시는 절반으로 깨지면서 살갗을 찢었지만 자세는 여전히 꼿꼿했다. 고통 어린 신음도 없었고 피를 닦아내는 손짓조차 없었다. 황태자는 잠시, 얼굴을 두 손에 파묻은 채 두통을 다스리다가 일어나 호위무사에게로 다가갔다.

강철 늑대는 한때 투견장의 유망주였지만 바단과 야스와다의 마법을 거쳐 완성되었다. 뼈는 마찬가지로 금속이었고 주문을 막아내는 각인이 몸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전투 기계였다. 기계는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았으며,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주인을 향한 위협에만 반응했다… 프로파나티카는 자신이 이 지성 없는 기계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늑대인간의 검은 눈을 올려다보았다. 회당을 뒤덮은 암흑을 연상시킬 만큼 짙은 색이었다. 거기에 담긴 자신의 얼굴을 살피는 동안 질문이 머릿속에서 되튀며 점차 몸집을 불렸다. 정말로 인간들의 신이 이 땅에 나타났을까? 윰 시밀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는 누구일까? 황제가 심장을 얻는다면, 그러면 제국은 어떻게 되지?

프로파나티카는 눈꺼풀을 닫았고, 엄숙한 기도를 올렸다. 금속제 뼈 너머에 남은 살덩어리를 향해. 아무 권능도 없는 살덩어리 심장을 향해. 자신을 옭아매는 모든 것이 파멸하도록. 머리에 삽입된 조언가 장치가 매 순간 의식의 흐름을 끊었지만 그녀는 계속 생각했다. 프로파나티카의 생각이 아니라 황태자의 생각만이 있는 삶에 대해. 쉰일곱 해의 삶과 조언가 장치에 담긴 시간의 총합에 대해. 눈가는 여전히 건조했고 생각은 눈물처럼 흘렀다. 그리고…….

금속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묵상을 끊었다. 칼집에서 검을 꺼내는 소리였다. 프로파나티카는 눈을 뜨고 호위무사를 올려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낯설도록 강렬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크고 정확한 동작으로 칼을 휘둘러 황태자의 목을 베었다.

잘린 머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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