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226화 (227/258)

226화 아들의 몫 (5)

수십 해 전, 쉭겐의 아버지는 카스바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여러 사람의 소망과 악취미가 얽혀 있었다. 반려는 그가 별채에서 벗어나 의회의 문을 두드리길 원했다. 시종장은 아가씨의 소원을 들어 주고자 했다… 그리고 쉭겐이 끼어들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묘한 주문을 건 뒤 카스바에 던져 넣었다. 그 시점과 요정 향우회가 신입을 발견한 시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거나 노인은 완전히 미쳤고, 한동안 요정 향우회의 애물단지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와그다스의 별이 떠오른 날, 쉭겐은 아버지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것은 대적자에게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중이자 예우였다. 짧은 재회를 마친 후 그는 일드얀과 함께 회당으로 향했다.

의회의 이름 아래 도시의 일들을 논할 수 있는 가문은 명문가 중에서도 여섯 곳에 불과했다. 나트람의 대행인 네르갈이 쓰러져 누웠으므로 이번에 참여하는 가주는 다섯일 터였다.

*   *   *

거대한 암석을 깎아 만든 벽면이 정육각형꼴의 바닥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무 장식 없이 매끄럽게만 처리된 이음매는 여섯 벽이 완전히 한 덩어리인 듯한 착시를 일으켰고, 회당에 발을 들이는 이들은 그 모습으로부터 거대한 짐승의 내장을 연상하곤 했다.

회당에는 다섯 가문의 사람들이 모인 상태였다. 가주가 서열에 따라 자리에 앉았고 그 뒤편으로는 수석 별점술사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가주의 조언가이자 수행원으로서 어디에든 동행할 권리가 있었다. 대개는 가주가 수석 별점술사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회당에서의 모임은 기묘한 이분법처럼 보이곤 했다. 별점술사들은 색실로 수놓은 예복을 선호했고 갖가지 장신구로 치장했지만 노인들에게는 화려하게 느껴질 부분이 일절 없었다. 그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제국의 전통을 따라 검정색 정복만을 걸쳤다.

이런 옷차림은 요정 특유의 창백한 피부와 맞물려 색이 달아난 듯한 인상을 줬다. 그 느낌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기도 했다. 여기에 있는 다섯 명의 가주는 모두 충분히 나이 들었으며 위엄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이 닫히고 마력 등불의 광채가 회당을 메우자 노인들은 침묵 속에서 서로에게 묵례했다.

이윽고 세 번째 가문의 자리로부터 목소리가 시작되었다.

"의자 하나가 비었군."

"별불꽃의 몫이오… 쓰러져 누웠다더군. 제 아비와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었던 모양이지."

"깨워 부르지 않아도 괜찮겠나?"

"성년식도 치르지 못한 아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내버려 두시오. 어차피 이건 그자의 책임이니 다른 혈족이 변명할 수도 없을 거요."

그들은 일드얀의 전략적 동지였지만 최근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별불꽃의 수장에게 원수장을 건넨 일에 대해서는 특히 그랬다. 능력이나 과단성과는 별개로 나트람의 무감각한 기질은 언제나 사람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그에게는 과업을 차근차근 처리해 나가다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걸 내버릴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의회는 황무지에서의 일을 논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파견된 신관들 중 일부는 야스와다에 남은 혈족과 의식을 공유했고, 가주는 그들의 시야를 통해 나트람의 발작을 지켜보았다. 성공했더라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문제일 수 있었다. 노인들은 금지된 주문과 그 원리를 익힌 방법이 무엇인지, 일드얀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저런 행동이 무슨 의도인지 따져 묻기 시작했다.

"설명하거라."

일드얀의 대답은 짧았다. 대모의 명령에 쉭겐이 원탁 가장자리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별점술의 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면서도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는 데에서 옵니다. 현자와 우둔한 젊은이의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이는 현자를 찾아 여러 가지를 묻습니다. 현자는 말없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거기에 원하는 게 있으리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오고 이루어지는지는 일절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서는 자신의 주인만큼이나 여유로운 태도로 원탁을 한 차례 훑었다. 노인들의 표정에 언짢은 기색이 뚜렷이 드러났다. 평민에게서 난 별점술사는 은빛매의 어떤 혈족보다도 일드얀을 닮았고, 그 사실은 귀족과 명문가의 요정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신분의식보다는 맹수에게서 느끼는 긴장감에 가까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들의 뜻을 읽어 쓰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다만 우둔한 청년일 뿐이며 마력의 흐름이 바로 현자인 것이지요. 별들께서 별불꽃의 가주가 그 책임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라 말씀하셨으므로 그분이 험지로 가신 것입니다."

"각설하고 본론부터 말하게! 그런 소리를 듣기 위해 온 게 아니야!"

세 번째 자리에 앉은 이가 노호하자 공기가 보다 싸늘해졌다. 쉭겐은 야유에 익숙한 연극배우라도 되는 양 그녀를 향해 웃음을 던졌다.

"모든 것이 우리의 뜻대로 되었으니 새벽눈의 주인께서는 화를 가라앉히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시지요."

검지와 중지로 탁자를 세 차례 두드리자 거대한 빛무리가 천천히 휘돌아 올라왔다. 원탁은 제국 시절의 물건으로서 다양한 각인이 숨어 있었다. 각 가주의 자리 앞에 설치된 명반이 그중 하나였다. 가주가 대동한 별점술사들은 이를 통해 마력 갈래의 흐름을 읽었으며 탁자 정중앙의 환영은 다른 모두에게 그 모습을 비춰 주었다.

쉭겐은 우선 자미를 제외한 세 개의 보좌성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세계의 운명을 읽을 경우, 열네 개의 주성이 이루는 형상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보좌성을 적절한 자리에 위치시켜야만 했다. 길게 뻗은 손가락이 광점을 쥐고 다른 자리로 옮기자 별의 격국이 변화에 조응하여 재정렬되었다.

준비를 마친 그는 가장 먼저 녹색 별을 움켜쥐었다.

"이글거리는 녹색 갈래는 아자라스의 배후에 있는 존재로서, 그 이름은 거문입니다. 모두에게서 잊힌 신이자 이름 모를 신이 거문을 주관합니다. 제국의 역사는 그 별을 죽음이나 불길함으로 받아들였으며, 선조님들의 이해에는 과연 틀림이 없었습니다."

곧이어 크고 마른 손이 황금색 광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눈부신 황금빛 갈래는 와그다스와 나르시소의 기틀으로서, 그 이름은 문창입니다. 지혜의 주인이자 잊힌 비밀의 관리자가 문창을 주관합니다. 슈문은 제국의 다섯 기둥 중 하나였으나 배반하여 인간들에게 그 지혜를 보탰으며, 잠든 분께서 그 죄를 벌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보라색 광점이었다.

"번뜩이는 보랏빛 갈래는 이 도시의 주인으로서, 그 이름은 파군입니다. 영혼을 깎고 부수시는 분께서 파군을 주관합니다. 이시 타브께서는 긴 잠에 드셨으나 이제는 별불꽃의 가주가 그 몸이 되었으므로 다시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셨습니다. 여기에 그 사실이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의심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으므로 해석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가문의 순서대로 별점술사들에게 발언권이 돌아갔다. 그들은 쉭겐이 장광설을 늘어놓는 동안 탁자 중앙에서 증폭된 환영을 통해 마력 갈래의 흐름을 읽은 상태였다.

"이 말이 옳습니다. 별불꽃의 가주가 홀연히 사라진 것과 잠든 분께서 몸을 얻은 것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가 그와 같습니다."

새벽눈의 핏줄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들에게도 별의 형상은 부정할 길 없이 자명해 보았다.

*   *   *

중앙 전당에 모인 사람은 일곱이었다. 그들은 별불꽃과 어둠달을 제외한 명문가의 가주들로서, 3교구의 신관을 모두 내보낸 뒤 이시 타브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도, 거창한 예식도 필요하지 않았다. 신을 맞아들이는 데에는 무릎을 꿇은 채 존경을 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은 경건한 침묵 속에서 허공을 찢고 나오는 형상을 바라보았다. 신관 제복을 걸친 노인의 얼굴은 익숙했지만 눈빛에는 낯선 위엄이 있었다.

이시 타브는 오래도록 장원을 비운 주인이 하인을 대하듯 가주들을 치하했고, 차원문을 통해 회당의 별실로 자리를 옮겼다. 보다 은밀한 일을 논하기 위해, 육각형 건물 곁에 따로 마련된 장소였다. 깨어난 신이 도시의 일을 차례대로 묻는 동안 일드얀은 겸손한 태도를 지켰다. 자신의 공로를 들먹이는 일도, 대화에서 앞서 나가는 일도 없었다. 입을 열 때에도 물음이 닿는 곳까지만을 말했다.

이윽고 이시 타브는 은빛매의 주인을 제외한 다른 모두를 돌려보냈다.

"슈문의 땅에서, 너를 죽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목소리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지."

"일개 요정을 기억에 담아 두시다니 감격스럽습니다. 허나 적수의 망언을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있으신지요?"

"영토에 갇힌 동안 나는 너희가 보내는 넋들을 모아 그 기억을 읽었다. 이 몸의 주인이 무엇을 겪었는지도 알고 있다. 나의 시종들이 생각하는 바 역시 들을 수 있다… 허나 네 마음만큼은 도무지 읽히지 않는구나."

"아직 힘이 온전하지 않다 말씀하셨지요. 땅에서의 휴식을 취함이 좋을 줄로 압니다."

"그럴 것이다―네 대답을 들은 뒤에 말이다."

검은 눈이 매섭게 번뜩인 순간 일드얀이 행동에 나섰다. 이시 타브 역시 마력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나트람의 신관 제복 한구석이 피로 물들자마자 강대한 힘의 파도가 일드얀을 벽으로 몰아붙였다.

"타마기스의 주인은 이상하리만치 너그러운 면이 있었지. 나는 그 조각을 언약궤 아래 감추는 게 아니라 아예 부수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이번에도 내 판단이 옳았구나. 그러니 너희에게 묻도록 하마. 내게 대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일드얀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세웠고, 발악이라기에는 초연하고 포기라기에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여기에 오기 전에 점괘를 몇 번이고 보았지요."

"도망쳤더라면 목숨만은 남겨 주었을 것을."

"행함이 떳떳한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는 법입니다."

"너희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별들이 땅을 휘두르는 일이 달갑지 않다고, 반역에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다고 했지. 헌데 이제는 떳떳함을 이유로 하늘의 뜻을 따르는구나. 우스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으냐?"

"실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나는 너희를 가장 충성스러운 하인으로 기억하겠다. 이로써 영예만큼의 치욕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

일드얀의 입매에 삐뚜름한 미소가 일었다. 그녀는 야스와다의 주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감히 저주하건대, 우리는 실패하였으나 당신의 뜻 또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가능성을 셈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이시 타브는 거친 홍소를 터뜨렸고, 익숙한 태도로 그녀의 가슴팍에 손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이 안개를 헤치듯 살을 뚫고 나아가더니 요정의 몸이 형체를 잃고 허공에 스며들었다. 미미한 마력 흐름마저 사라진 뒤, 이시 타브는 손바닥을 펼쳐 그 안에 담긴 것을 보았다. 단검의 손잡이는 날과 같은 묵색이었고 아무 빛도 반사하지 않았다… 나머지 반절이 그녀 자신에게 있으므로 처분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꿈 조각을 삼키는 순간 깊은 잠과 같은 암흑이 밀려왔다. 그녀는 걸상에 몸을 뉘였고, 눈을 감았다. 노인의 몸으로부터 작은 뿌리들이 뻗어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