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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221화 (222/258)

221화 소리와 분노 (3)

나트람은 대답을 거부했고 딤 나겔은 다그쳤다. 소리가 그런 식으로, 몇 번이고 허공에서 맞붙었다 떨어지기를 거듭한 뒤에 그는 원탁으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잔을 기울였다. 한 모금을 머금는 순간 의기소침한 목소리가 침묵을 가르며 웅얼거렸다.

"누구든지 주문을 쓸 수 있지만, 원래 설계대로라면 지배당하는 사람이 쓰는 게 제일 효과가 좋아… 상대의 영혼을 떼어내서 내게 심는 거야… 긴 잠을 자는 동안 넋이 서로 섞여서,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따르게 되지… 명령에 복종하는 것과도, 세뇌와도 달라…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변할 뿐이야. 주문이 쓰인 흔적도 남지 않아."

그는 사형수를 상대로 비밀리에 벌인 실험이라 기한이 촉박했다고, 그래서 부작용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영혼을 준 쪽에게도 큰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니 이건 한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속박하는 주문이 아니라 그저 하나를 희생시키는 주문이라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옮겨 심은 영혼의 크기에 따라 주문의 위력이 강해져. 영혼 절반이면 상대를 완전히, 거의 완전히 거느릴 수 있고, 그 이상부터는 준 사람이 죽게 돼… 하지만 절반보다 더 적은 영혼을 쓰는 경우에는 결과가 중구난방이야… 사람에게 쓰기에는 너무 불안정하고 위험하지……."

목소리가 흐려지면서 설명이 끝났다. 딤 나겔은 깊은 묵상 끝에 입을 열었다.

"좋아, 나는 네게 혼의 절반을 줄 거야.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다면 넌 그제야 정말로 속죄할 수 있겠지. 반대로 영영 배우지 못한다면 삶이 바로 징벌이 될 거야. 네게는 모든 시간이 고통일 테니까."

나트람의 얼굴이 소리 없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넌 망가질 거야. 너도 망가지게 될 거야… 그러면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내가 널 부술 수는 없어."

"여기에서 멈추더라도 나는 오늘을 잊지 못할 거야―평생토록. 나는 이미 망가졌어. 네가, 네 망상이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를 죽였고 나를 죽인 거야. 그러니 그렇게 해."

일어난 딤 나겔은 침대 앞에 섰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재우려는 어머니처럼 윗몸을 수그렸다. 그림자가 투명한 절단선인 듯 나트람을 가로질렀지만 그는 빛을, 작은 침실을 가득 메우고는 넘쳐흐르며 밖으로 나아가려는 마력 등불의 광채를 볼 수 있었다. 나트람은 앉은 채로, 팔을 뻗어 딤 나겔의 멱살을 잡아챘다.

초록색 눈… 미동조차 없이 평온한… 두려움이 그를 후려갈겼다.

"네가 나한테 명령할 수는 없어. 나는 3교구의 부제사장이야―명령하는 쪽은 나야! 나를 죽여!"

윽박지르는 소리에도 딤 나겔은 움직이거나 답하지 않았다. 사촌형제의 무감각한 표정은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허공을 뜯고 나온 듯 낯설었다. 나트람은 사탕을 얻어내지 못해 심통이 난 어린아이마냥 금발의 요정을 흔들어 댔고, 휘청거리는 몸을 향해 고함쳤다.

"나는 명문가의 가주고 너는 고작 귀족이야! 내 말을 들어!"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번개처럼 번뜩이고는 사라졌다. 긴 정적이 지나간 뒤에 나트람은 딤 나겔에게서 손을 떼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전적인 단절감에 휩싸여, 설명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공포 속에서. 오로지 소리만이 그곳에 있었다. 눈물은 울부짖음이 되었고 그 위에 다시 절규가 쌓였다.

딤 나겔에게 그것은 평생토록 요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만이 늙어 버린 갓난아이가 억눌러 왔던 고함을 터뜨리는 순간처럼 보였다. 그는 인내와 관용이 완전히 힘을 다하며 마지막 섬광을 발하는 것을 느꼈고, 최종적인 연민을 끌어올려 웃었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트람, 세상은 네가 이해한 대로 돌아가지 않아. 어떤 사람도 그런 규칙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지. 하지만 너는 그걸 앞으로도 영영 깨닫지 못할 거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내 마음을 나눠 주려는 거야."

그렇게 딤 나겔은 자신을 이뤄 온 것들을 모두 불어 내쉬었고, 나트람의 눈물이 그친 것을 보았으며, 따라서 명령했다. 이번의 목소리는 텅 빈 병으로부터 공명해 나오듯 멀고 낯설었으며 눈빛 또한 그랬다.

"그러니까, 해."

*   *   *

"우리는 오늘을 잊을 테고, 너는 정말로 원했던 게 무엇인지도 잊은 채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것들을 위해 살아갈 거야. 그래서 너는 제사장 자리를 탐내지만 헤이딘을 죽일 생각은 차마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 될 거야. 내 반쪽이 너를 그렇게 만들 거야. 그리고 네가 그런 삶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깨닫거나 이 순간을 떠올리기 전까지, 너는 결코 죽을 수 없을 거야―우리는 오늘을 잊는 동안 이 명령을 서약으로만 기억하게 될 거야. 그러니 이제 돌아가. 돌아가서 긴 잠에 들어. 술을 새로 줄게. 도움이 될 거야……."

*   *   *

"숨결 대신 독을 내쉬도록 만들어진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봐. 그 사람이 호흡하는 걸 죄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을 탓할 수 있을까? 그 사람한테 숨을 참으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만약 내가 사람들의 주인이라면, 내가 칼린카의 목을 꺾듯 그 사람의 목도 홀가분하게 꺾을 수 있다면, 반드시 그래 줄 거야. 그게 그 사람 자신에게도 다른 모두에게도 나은 일일 거야."

그때 나트람의 시선은 제 스스로의 발을 좇고 있었다. 그는 사촌형제가 걸음을 멈춘 것을 깨닫고 함께 멈췄다. 기다렸다는 듯 상냥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무얼 어떻게 생각하냐는 거야. 나는 모르겠어. 나는……."

말끝을 흐린 나트람은 딤 나겔의 손을 쥐어 자신의 목덜미에 올려놓았고, 그게 목을 조르는 형상이 되게끔 했다. 황금빛 눈동자 속에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담겼고 다시 검은 눈 속에는 황금빛 머리카락의 소년이 있었다. 그 두 거울상이 마주칠 듯 마주치지 못하면서 끝없이 반복되는 가운데 미풍이 둘의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다. 딤 나겔이 묘한 미소와 함께 손을 뗐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그런 생각은 하지 마."

그는 나트람을 들판 위편 붉은 꽃이 무성하게 자란 곳으로 이끌었다. 만개한 꽃잎이 산들바람에 타오르고 있었다. 둘이 군락을 앞에 둔 순간 딤 나겔은 나트람을 밀쳐 쓰러지게끔 했다. 몸이 뒹굴면서 꽃들을 짓이겼다. 그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누워만 있었다. 딤 나겔이 그 옆에 와서 풀을 헤치고 앉았다.

"돌아가면 옷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그렇지? 누가 보면 네가 칼린카를 죽인 줄로 알 거야."

"왜 밀었어?"

"네가 너무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짜증이 나서, 그래서 화풀이를 한 거야."

나트람은 관에 누운 시체처럼 배에 손을 얹었다. 딤 나겔은 소리 내어 밝게 웃었다.

"이건 아까 했던 말이랑 한 쌍이야. 목을 꺾겠다는 거 말이지, 신경질을 부린 거야. 네가 누굴 죽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정말 기분이 나쁘고 불안해지거든. 그래서 잠깐 짜증이 났을 뿐이야."

"진담이 아니었던 거야?"

"모르겠어. 사실은 널 볼 때마다 그 생각을 해. 네가 보통 사람들이랑 다른 건 사실이니까. 원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없어서 미움만 겨우 만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항상 고민하지. 물론 연을 끊고 모른 척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편하겠지만……."

말끝을 흐린 딤 나겔은 느닷없이 주제를 돌렸다.

"애인이 있어. 머리카락은 밤색이고 웃음이 참 좋아. 목소리도. 손끝도. 생각도. 옆에 앉아 있으면 저 숲 전체가, 나무들이 품어 온 세월이 바람에 흔들리며 나한테 말을 거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내가 성년식만 치르면 바로 혼례를 올리기로 했어. 부모님께도 곧 말씀드릴 거야. 만약 허락을 못 받아도 그 사람은 내 반려야."

"으응."

나트람은 대꾸했다. 미미한 바람에도 묻힐 만큼 작은 소리였다.

"애인한테 가끔 혼나. 나보다 나이가 많거든. 그 사람 말로는 내가 아닌 척 못된 말을 하는 습관이 있다는 거야. 웃으면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무슨 소리든 해도 되는 줄 안다고. 고치기로 했는데 잘 안 돼. 그러니까, 나도 너한테 또 실수를 했던 거야. 나도 항상 그래. 함부로 못된 말을 하고 싸우고 남을 해칠 마음을 품기도 해."

"너는 달라. 너는… 나랑도 다르고 다른 사람들이랑도 달라."

"아니야, 같아. 나는 평범한 요정이고, 사람들의 주인도 아니고, 세상을 뜯어 고칠 능력은 앞으로도 영영 없을 거야. 화가 가라앉은 다음이면 내 잘못을 이야기하고 사과할 뿐이야. 그리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쓰지. 단번에 되는 일은 아니지만 노력하고 있어. 그리고 너도 나처럼 하고 있잖아, 그렇지?"

"불공평해."

나트람은 그렇게만 말했다.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피가 출렁거리는 것도 아니고 현기증이 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뜨겁게 윙윙거렸다. 그는 누운 채로, 고개를 약간 들어 자신의 앞섶으로 시선을 옮겼다. 붉은 꽃잎이 으깨져서 옷이 엉망이었다.

"네가 보통 사람들이랑 많이 다른 건 사실이야. 그래서 나보다 더 힘들게 그 일을 하고 있을 테고. 하지만 너는 계속 노력하고 있잖아. 그러다 보면 평범한 기쁨도 알게 될 테고 삶이 얼마나 즐거운지도 이해할 거야. 나는 널 믿어.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웃을 날도 오겠지."

역겹도록 달콤한 꽃향기가 향수라도 끼얹은 양 사방에서 진동했다. 콧속에서도. 나트람은 콧등이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눈동자만을 굴려 딤 나겔을 보았다. 찌를 듯 날카로운 햇살 속에서 소년의 모습은 타오르는 황금색 윤곽이 되어 있었다. 그런 존재가 다른 모두와 같은 사람일 리는 없다.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도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모르겠어. 동생 때문에 아무것도 안 돼. 요즘은 옆에 없어도 계속 생각이 나."

"동생이 좋아하는 것들을 이해하려 해 봐. 그 애가 차투랑가 놀이판을 절반쯤 만들다가 버려뒀다고 했잖아. 그걸 네가 완성해 준다거나, 아니면 각인 공부를 같이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싫어도 같이 있다 보면 많이 나아질 거야."

"그러고 싶지 않아. 왜 가까워져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너 말고 친구가 없어. 그게 더 편해. 헤이딘이 눈앞에 있으면 난 정말로 화가 나.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워. 모른 척 지내고 싶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너는 모두와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해. 미움을 내려놓는 법을, 네 마음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언제까지나 내 호의에 기댈 수는 없어. 혼례를 올리고 자식을 두면 난 아주 바빠질 거야. 너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도 못할 만큼… 그리고 난 네가 언젠가는 동생과도 친해질 거라고 믿어."

"난 헤이딘이 싫어."

"그건 아니야.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어.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딤 나겔은 휘파람을 불었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우리는 조만간 어른이 될 거야. 넌 아마 별불꽃의 가주가 되겠지. 그건 내 자리는 아니니까. 상상해 봐―정원에 장미덤불을 심는 것도, 말 안 듣는 하인을 꾸짖는 것도 모두 네 마음대로야. 본가에서 제일 크고 멋진 방도 네 몫이 되겠지. 혼례를 올린 다음부터는 반려와 함께 써야겠지만. 참, 자식은 셋이 제일 좋아. 하나는 외롭고 둘은 곧잘 싸우니까, 셋. 그중에는 널 유독 닮은 아이가 있을지 몰라……."

이제는 코에 이어 입과 목구멍까지 간지러워졌다. 나트람은 입을 약간 벌리고는 아아 소리를 냈다. 아아. 벽 틈에 숨은 생쥐가 낱알을 훔칠 기회를 노리며 바깥을 살피듯, 아아, 아아아. 기침이 구역질처럼 올라왔다. 그는 가까스로 한 문장을 뱉었다.

"나한테도 그게 딱히 필요하지는 않아."

"그러면 넌 뭘 원하니?"

딤 나겔은 우둔한 제자가 정답에 닿으려는 걸 본 스승처럼 미소 지었다. 금발이 황금 더미처럼 밝았고 들풀을 헤치고 앉아 그런지 옷에 더러워진 데가 하나도 없었다. 누구도 말하지 않는 동안 봄볕이, 거기에 담긴 온기가 나트람을 부드럽게 안았다. 꾸중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목깃을 만지작거리는 순간 기침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거세졌다 나트람은 입을 벌리고 아아 소리를 조금 더 내다가 허리를 말고는 기침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거의 울부짖듯이 그러는 동안 이어지지 못한 대답만이 머릿속에서 쿵쿵 울렸다 내가 원하는 건

*   *   *

바람이 불면 그 꽃들은 꼭 피거품처럼 흐르지 고통과 생명을 함께 이고 오는 붉은 액체처럼 내가 새빨간 꽃물로 뒤범벅이 되었을 때 그날 햇볕이 얼마나 밝고 온유했던지 그리고 나는 네가 지혜의 신이고 내 주인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나는 네게 죽여 달라고 말했어 아니야 너는 아니라고 하면서 그런 건 해줄 수 없다고 그러더군 그래서 나는 네 손을 다시 목에 올려놓았어 네가 내 심장을 느낄 수 있도록 그 검은 불덩어리가 빛과 맞닿을 수 있도록 내 심장은 미칠 것처럼 뛰었지 그리고 아니야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너는 잘 할 거야 아니야 나는 알아 나는 내가 실패할 거라는 걸 알아 나는 실패했어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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