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고통이 있었다 (3)
이스트리아의 생물학은 지구와 같지 않다. 요정과 인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정은 말할 것도 없고, 두 세계의 인간은 실상 완전히 다른 생물종이다.
물론 이스트리아의 인간들에게는 심장과 폐가 있고 뼈와 혈관이 있다. 그러나 신체를 조율하는 것은 중추신경계가 아니라 심장 속에서, 영혼을 감싸며 흐르는 마력 갈래다. 이 특수한 형태의 마력 반응은 그릇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그릇은 혈관을 통해 신체의 모든 부위와 이어지며, 머릿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적인 반응들을 몸 곳곳에 전달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과 몸이 아닌 것을 구분짓는다. 너덜너덜해진 팔조차도 휴유증 없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릇과 연결되기만 하면 그것은 몸이다. 잘려나가기 직전일지라도 그렇다. 치유사들이 연결을 재건한 다음에는 물약을 들이 부으면서 뼈가 붙고 살이 자라기를 기다리면 된다. 부러진 뼈가 잘못 자리잡을 경우에는 추가적인 교정이 필요하지만, 일단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반면 접속이 완전히 끊길 경우에는 어떤 방식으로도 고칠 수 없게 된다. 절단이 그 일례다.
동일한 원리로, 그릇의 손상은 육신의 죽음을 초래한다.
그리고 타마기스의 부패자들은 이러한 법칙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목이 분리되더라도, 심장을 잃더라도, 그릇은 여전히 몸 전체를 떠받치며 영혼을 단단히 잡아맨다. 그들은 심지어 몸이랄 게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허공을 떠돌며 새로운 신체를 찾아낼 수 있다.
따라서 역병의 저주는 불사의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타마기스의 부패자들은 인간 도시와도, 야스와다와도, 말루카와도 다른 삶을 살아간다. 먹을 필요도, 입을 필요도, 잠잘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누릴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없으므로 욕심을 부리거나 재물을 쌓지도 않는다. 그들은 다만 살아간다… 순간적인 충동에 몸을 내맡기면서.
부패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썩어 문드러지는 몸이나 고정이 필요한 신체가 아니다. 종족 사이의 골은 오래전에 메워졌다. 절박할 일 또한 없다. 하지만 그들은 간혹, 무한한 권태와 평온 속에서 폭발적인 살육 광란에 사로잡힌다. 이 질병은 옆에서 옆으로, 순식간에 번져 나가며 도시를 집어삼킨다.
전투 한복판에는 언제나 역병 늑대라 불리는 존재가 있다. 한때 황태자의 호위무사였지만 이제는 광기의 상징이 된 존재다. 황제의 딸이, 영원한 황태자라 불리는 요정이 이에 맞서 타마기스의 평화를 수호한다. 그녀는 <조언가 장치>라 불리는, 특수한 기기의 도움을 받아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다툼이 끝나면 시체들은 머리를, 팔을, 다리를 옆구리에 끼고 수선공을 찾아 나선다. 몸이 완전히 으스러진 넋들은 그릇을 이끌고 망가진 기계에 자리잡기도 한다. 한편 완전한 안식을 택하고자 하는 이들은 야스와다 출신의 요정들을 찾는다. 타마기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제물로 바쳐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살육제와 무기력이, 증오와 포용이 공존한다. 부패자들은 역병의 저주가 축복이라 믿으며, 이러한 상태에 충분한 만족을 느낀다…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이미 이시 타브의 땅으로 도망쳤으므로.
* * *
"가디스를 제외하면, 제국의 도시는 다섯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네 개의 별이 크기를 키웠죠. 야스와다, 바단, 나우파나, 와그다스. 부패자들도 다음 차례를 알고 있습니다. 이미 살육제가 시작됐습니다―기대감과 열망이 그런 형태로 분출되는 겁니다. 우리 역할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황태자와 접선하는 것이고요."
"순순히 협조하겠소?"
"아직 재계산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자세히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될 겁니다."
제국의 영광은 농담이 되기에도 너무 낡은 어구였고, 타마기스의 부패자들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황태자만큼은 예외였다. 그녀의 생각은 넋이 아니라 두개골에 삽입된 영혼공학 장치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기기는 몇 가지의 대원칙 아래 작동했다. 치안 유지와 민생 안정을 목표로 하는 규범들이었다.
비슷한 원리가 역병 늑대에게도 적용되었다. 이 늑대인간은 오로지 살상을 위해 만들어졌고, 천 년이 흐른 지금조차도 그 책무에 충성하고 있었다.
"기계… 기계라고 하는 편이 좋겠군요. 수호하는 기계와 파괴하는 기계가 있습니다. 두 기계는 도시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서로 충돌하고, 그러면서 균형을 잡지요. 그리고 이 기계들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것은 부패자들의 충동입니다."
설명을 매듭짓는 순간 기묘한 감각이 란드와르를, 아니, 이강현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어절들을 혀끝에서 몇 차례 굴려 보았다.
"충돌―충동―충돌. 이거 발음이 어렵군요. 이곳 말로는 구분되어 들립니까?"
"충분히. 하지만 두 단어에 대해서는 깊이 논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볼로디아의 입가에 비틀린 웃음이 떠오르더니 부패자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가 흘렀다. 먹거나 잘 필요가 없고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을 쌓으려 애쓸 필요도 없는 삶에 대해서.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해서. 거기에서부터 기인하는 충동과 여전한 충돌에 대해서.
"앞서는 생명에 대해 이야기했지. 타마기스의 체제는 반대로 죽음의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 죽지 않기 때문에, 혹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제국의 기계들을 제하고 부패자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이건 보다 본질적인 사안일 거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본질적인 것을 물어야겠지. 지금의 생명에는 고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요인들이 내포되어 있소. 노화라거나 식욕 따위를 예로 들 수 있겠군. 식욕은 기쁨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노화는 거의 모든 경우에 필연적인 고통이오―이걸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겠소?"
"바꿀 수 있다고요?"
"저승의 틈에서 대강이나마 설명을 들었지 않소. 이미 시작된 꿈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고, 수정만을 가할 뿐이지만, 꿈을 새로 지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고. 나는 거기에 기대를 걸어 보는 거요."
강현은 가장 피하고 싶었던 논제가 닥쳐오는 것을 깨닫고 미간을 좁혔다. 모두의 기억을 씻는 것, 세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 혹은 세계를 다시 시작하면서 형태마저 바꾸는 것. 그 어떤 결정도 그의 몫은 아니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느낌만 막연하게 있을 뿐이었다.
"늑대가 깨어났을 때 부탁을 해 보겠단 말씀이시지요."
늑대가 깨어나는 즉시 별을 가진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될 터였다. 생쥐들이 쫓겨날지, 아니면 관리자 직분을 계속 받들지 하는 문제에서부터 세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까지가 거기에서 논의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볼로디아는 피투성이 심장의 주인으로서 정당한 발언권이 있었다.
"어떤 청을 올릴지는 확실히 정하지 않았소. 하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 할 거요. 인간들의 신이나 청지기나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
"대장군님의 뜻은 어떠십니까?"
"글쎄, 아직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소리지만… 꿈을 무너뜨려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오? 삶의 본성을 바꾸지 않더라도, 기억을 씻고 새 출발을 한다면 고통의 총량은 줄일 수 있을 거요. 그것도 확연하게. 이 상태로 노력하는 건 먼 길을 힘들여 돌아가는 일이 되겠지."
"그건 학살과 다를 바가 없어요. 모두를 죽이는 겁니다."
이강현은 짧게 신음했다. 아직 볼로디아에게는 말하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그는 타마기스의 최후 역시 알고 있었다. 황제가 저주를 거두면 부패자들의 그릇을 땅에 붙들어놓던 힘 역시 사라졌다. 모두가 한순간에, 썩어 문드러진 살덩어리로 변하는 것이다.
고전적인 도식을 따르자면 그런 일에 구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는 그렇게 남을 것이다. 아즈리온의 화신이 부패와 광란 속에서 괴로워하던 시체들에게 안식을 선사했다고… 부패자들은 괴로워하지 않으며, 그가 하려는 일은 대량 학살에 불과할지라도… 하지만 해야 했다… 누구를 위해서?
그래도 이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한 답이 있었다. 윰 시밀을 죽인 검은 꿈 조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고, 그 자체로 땅에 영향을 주었으며, 현현한 요정 신을 상대할 때에도 큰 힘을 발휘했다.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에게 너무 큰 비감을 가지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 볼로디아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억이, 언젠가는 씻길 흔적이 사라질 뿐이오. 그것도 깊은 잠과 같은 암흑 속에서. 고통이나 비탄은 없지. 그러고서도 영혼은 불멸하오."
"그렇다면 저는 이 경우에 삶을 연속되는 기억과 넋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그리고 죽음을 기억의 단절로 규정하고자 합니다. 세상이 멈춘 상태에서 영혼이 씻길지라도, 고통을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그건 여전히 학살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서 최종적인 권리를 박탈하는 일입니다. 부도덕한 일입니다."
부도덕한 일이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알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평화로운 학살을 벌이는 대신 고문실을 계속 운영하겠다는 말이군. 시끄러운 방법으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문실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어 나갈 수는 있겠지요."
<불멸의 제국> 시나리오의 결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저주가 사라지면서 두 기계와 시체들이 안식을 찾거나, 혹은 부패자 중 하나가 새로운 신이 되거나. 후자의 가능성을 뻗어 나가면 뜻밖에도 좋은 미래가 나올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천국은 욕심이 없는 곳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부패자들에게는 선택권이나 기회가 없었다.
아니다. 자신이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고통이 있겠고, 그 고통은 결국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에게로 대물림될 거요. 빚을 남겨두는 게 마냥 옳은 일이라 생각하진 않소. 부모의 슬픔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만의 몫이지만, 후손들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수없이 태어나고 죽으리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지."
마음속의 장면이 원경에서 근경으로 훅 거리를 좁혔다. 혹은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이강현은 타마기스에서 시작된 질문이 넓어지며 이스트리아 전체로 뻗어 나가는 것을 느꼈고, 재차 신음을 흘렸다.
재시작에 희생되는 사람의 수는 이스트리아의 현재 인구와 동일했다. 반면 재시작을 하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고통을 겪을 사람의 수는… 셀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무한한 만큼 계보의 아래쪽에도 끝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강현은 반박하고 싶었다. 펠로시와, 캐러웨이 부인과, 세이버리와, 작은 볼로디아와, 파르타와, 알톤과, 세이버리와, 아미라와, 이름 모를 택시 기사와, 로안의 삼촌과, 클렘퍼러와, 다른 순진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이 믿고 사랑하는 세계를 위해서.
자신이 이중잣대 위에서 곡예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어쩌면 곡예는 진작에 실패했고, 장대 아래로 떨어진 채 그런 꿈을 이어가고 것뿐인지도 몰랐다. 강현은 스스로가 윤리적 진공을 논하기에는 너무 많은 짓을 저지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실 받아들이기는 진작 받아들였다. 그는 전적으로 옳은 일이 아니라 이스트리아의 인류를 위해,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
그래, 부패자들에 대한 고민이라면 이렇게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 채로. 강현은 침묵 속에서 어구를 하나씩 분리해 나갔다. 이스트리아의 인류를 위해,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옳은 일. 옳은 일. 옳음이라는 것. 상충하는 선택과 가치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법론들, 규범, 그리고 실천…….
"학살이라는 단어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사람들을 한순간에 죽일 필요는 없다오. 사실은 청지기가 일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끝날 문제지."
그리고 볼로디아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