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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207화 (208/258)

207화 쉬운 사냥감 (1)

늑대는 슈문이 알아낸 것을 기꺼워하여 이방인을 불렀다. 그들은 일곱 남녀와 그 수하로서 헤아리지 못할 세월 동안 수많은 세계를 거친 존재였다. 이방인 중 소년 모습을 한 이가 바깥세상의 모습을 말해 주었고, 늑대의 두 머리가 그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그렇게 달이 스무 차례 뜨고 진 후 소년이 청했다.

"이 우주의 마땅한 주인께 말씀드리건대, 저희에게 별을 나누어 요정들을 대적하도록 해 주십시오. 저희는 공명정대한 뜻으로 인간을 이끌 것이며 이 땅을 그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가꿀 것입니다."

늑대는 그 제안을 승낙하여 남은 눈 중에서 일곱을 고르도록 시켰다. 그러나 이방인에게는 넋이 없는 까닭에 별의 힘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고, 다만 사람의 마음만을 빌릴 수 있었다.

"의지하는 것은 영혼의 일부를 맡기는 일과 같습니다―따라서 많은 이가 저희를 믿는다면 그를 통해 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수천 수만의 사람이 저희를 크게 우러러야 하므로 방법이 마땅치 못하며, 만약 그렇더라도 우리 스스로는 땅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이에 늑대는 이방인에게 가장 큰 꿈 조각을 빌려 주었으며, 그 기한은 요정의 신과 맞서 싸울 동안이었다. 소년이 부관으로 하여금 조각을 얻게 하자 그것은 늑대의 일부인 동시에 이방인인 존재가 되었다.

늑대는 그것에게 지혜를 가르친 후 직접 별을 골라 주었고, 그로 하여금 땅에 나아가게끔 했다. 그것이 인간들에게 이방인의 도래를 말했으므로 다른 일곱 또한 별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방인의 힘은 제국을 적으로 돌리기에는 아직 미약했다. 늑대는 다른 꿈을 떼어냈으며 솔로틀은 그것을 연마해 타마기스를 칠 검을 만들었다. 약속을 어긴 책임은 윰 시밀과 황제에게 있으므로 두 요정은 넋으로 그 죄를 갚아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은혜를 베푼 후, 늑대는 다시 긴 잠에 들었다.

*   *   *

"위험해요!"

마타치치의 외침에 헤이딘은 흠칫 놀라 수호 영역을 펼쳤다. 황금빛 막이 허공에 펼쳐지는 동시에 마력 화살과 충돌했다. 요정 모양의 오염체가 시전한 것이었다. 헤이딘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방에서 적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란드와르와 테네브로즈는 땅에 발을 붙인 채 표범과 점액질 무리를 처치했고, 마타치치와 헤이딘은 입방체 위에 올라가 주문을 쏘아 보내는 것들을 주로 상대했다… 끝날 기미가 없었다. 피곤이 점점 커지며 집중력을 흐리고 있었다.

"저거 말입니다, 보입니까?"

"세상에, 바닥도 안 보이네요."

설상가상으로 오염체 떼거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워지고 있었다. 입방체에 닿기 전에 처리해야겠지만… 란드와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헤이딘은 기계적으로 주문을 배치해 나가면서, 가장 효율적인 마법 조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타치치가 헤이딘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어느 무게까지 들어 올릴 수 있어요?"

"성인 요정이 들 수 있는 수준이라면, 가능합니다. 사실은 더 무거운 것도 가능하겠죠. 당신도 설명을 들었으니 알겠지만 여기는 신의 무의식이고, 우리는 가호를 받았어요. 그러니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건 다시 현실이 되는 겁니다. 부분적으로요. 물론 믿음의 세기가 강할지라도 우리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지극히 적고―"

"그러면 잡아 줘요."

바쁜 와중에도 설명을 늘어놓던 헤이딘은 마타치치의 몸이 치솟아 올라가는 것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말 그대로, 요정의 몸이 직선으로 날았고 땋은 머리는 칼린카의 꼬리처럼 휙 움직였다. 염동술사들이 가끔 보이곤 하는 묘기였지만… 이 경우에는 장화에서 마력 불꽃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잡아 줘요!"

마타치치는 잠시 허우적댔고, 헤이딘을 향해 한쪽 팔을 쭉 뻗었다. 불꽃이 벌써 꺼져가고 있었다. 헤이딘은 곧바로 휙 올라갔다. 유령 생활을 하도 오래 한 덕에 이제는 걷는 것보다도 허공을 날아다니는 편이 더 익숙했다. 학자를 안듯이 붙잡은 순간 그는 몸이 훌쩍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성인 요정을 안아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형상에 영향을 준 듯했다.

노인 모습일까? 만약 그렇다면 안대는 쓰고 있길 바라야겠는데… 걱정 속에서 고개를 숙인 그는 마타치치를 붙잡은 손을, 소년의 것보다 확연히 큰데다가 멀쩡한 두 손을 발견했다. 주름은 없었다. 기억을 잃었을지라도 무의식 어딘가에는 청년기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안도한 헤이딘은 마타치치와 시선을 맞췄다. 외치느라 숨이 차서 그런지, 아니면 허공에서 허우적댄 탓인지 뺨이 조금 붉었다. 그 잠깐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다니 큰일이었다. 그는 마타치치의 체력을 걱정하며 입을 열었다.

"이상한 물건이군요. 그것도 발명품인 모양이죠. 아까 하던 이야기에 덧붙이자면, 당신도 나처럼 날아다니거나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여긴 우리가 알던 땅이 아니니까요. 물론 이런 일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긴 합니다. 새로운 사고방식에 적응할 시간이죠.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한다면 체력 유지 측면에서―"

"사람을 품에 안고서 할 수 있는 말이 그런 것뿐인가요? 나는 당신을 풀밭에 누이는 동안 걱정이라도 해 줬는데."

다시 마타치치의 목소리가 말허리를 끊었다. 그녀는 헤이딘이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는 동안 손대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지막 단추를 조율하자 부품들이 빠르게 재조립되면서 조금 다른 형상을 갖췄다. 마타치치는 재빨리 품에서 작은 공들을 꺼냈고, 대포 뒤편의 구멍에 쏟아 넣었다.

"자, 봐요. 처음 보는 구경일걸요. 인간 도시에도 이런 게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녀는 총구를 아래로 겨눴다. 표범 떼와, 망령과, 형체도 없는 수액 괴물들을 향해. 그리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하게 밀려드는 적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하자 갖가지 색의 마력 줄기가 폭발적으로 쇄도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막 뚜껑을 연 발포주가 터져 나오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광경이었다.

"예쁘죠?"

헤이딘은 감탄했고, 그런 다음에는 이성적인 추론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런 걸 안 꺼냈다니, 뭔가 제약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죠? 나는 총은 잘 모릅니다만, 형태상으로 추측을 해 보자면, 그 구슬들은 서로 상극인 마력 갈래들을 맞부딪히게 하는 역할을 할 테고, 그로 인해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면서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하겠죠. 대신 그런 반응은 각인 구조 자체에 무리를 주며 결과적으로는 치명적인 손상이……."

"세상에, 맞아요. 맞긴 한데―다른 이야기를 좀 해 봐요! 연구 말고는 할 말이 없으면 주문이나 준비하구요! 잠시 뒤면 완전히 고장날 거란 말예요!"

"말을 하는 동안에도 마법은 쓸 수 있습니다. 지금도 쓰고 있어요. 당신도 마력 흐름을 느낄 텐데요. 하긴 복잡한 부분이 있긴 하죠. 입으로는 장광설을 늘어놓으면서 손으로는 아홉 자리 곱셈을 계산하는 일과 비슷하니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럭저럭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떠들면서 주문을 시전할 수……."

"좋아요, 다 좋으니까 조용히 해요!"

그렇게 외친 마타치치는 오염체가 밀집된 곳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일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손대포를 내던졌다. 정교한 각인 기계는 땅바닥에 닿기 직전에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란드와르마저도 놀라 고개를 돌릴 만큼 큰 소리였다. 효과도 그만큼 확실했다. 헤이딘은 산산이 조각나 기어 다니는 점액질 군체를 내려다보았고, 신음했다.

"대단하군요."

"그런 소리는 안 해도 돼요. 다른 말을 할 게 아니라면 조용히 있으라니까요."

투덜댄 마타치치는 품에서 주먹 두어 개 크기의 직육면체 장치를 꺼냈다. 조작을 가하자 장치는 빠르게 펼쳐지면서 기다란 막대기 형상으로 변했다. 저격총이었다. 그녀는 한쪽 팔로는 총을 가슴팍에 붙여 안은 채, 다른 쪽의 손으로는 이만 내려가자는 손짓을 보냈다. 헤이딘은 곧바로 움직이는 대신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런 걸 만들기 시작한 게 내 착오 때문이었잖습니까. 내가 십육면체를 포탑이라고 이야기해 놓고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아서요."

"왜요, 공동제작자로 이름이라도 올리고 싶나요?"

"착오가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는 데에 감탄을 표할 뿐입니다. 당신도 훌륭한 걸 했군요. 손상까지도 기능으로 승화하려면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겠죠. 멋졌어요. 아름다웠고요. 이 모습을 바깥에서는 못 볼 거라는 사실이 아쉬울 뿐입니다."

말을 마친 청년의 뺨에 붉은 기운이 일었다. 순간이었다. 그의 몸은 움츠러들듯이 소년 형태로 되돌아왔고, 동시에 어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헤이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너무 아프게 떨어지지 않도록, 위로 나아가려 애쓰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마타치치가 팔꿈치를 세워 그의 품을 쿡 찔렀다.

*   *   *

오염체 처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땅은 사방에 흩뿌려진 점액질을 빨아들이더니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잠깐의 휴식이 끝나면 저기에서 우두머리가 튀어나올 터였다. 란드와르는 진동의 근원지로부터 몇 발짝 물러나 생각을 정리했다. 헤이딘이 여러모로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티아가 읊어 준 바에 따르면 그랬다.

질문은 많았다. 저 요정들은 입방체 위가 타이타닉의 선미로 보였던 걸까(란드와르는 여기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로맨스라도 제대로 할 것이지 원리 이야기나 주구장창 하는 게 백오십 먹은 노인이 할 짓인가? 치매에 걸려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너무 오래 감금당한 탓에 사회성이 저하된 것인가?

마타치치, 프로포즈 상대가 저런 남자여도 괜찮은 겁니까? 정말로요? 당신보다 나이가… 아니, 애초에 살아 있는 사람조차 아니고…….

어쨌든 그건 나중에 따질 일이었다. 티아가 계속 소식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만, 외부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임시 미궁이 부분적으로 손상되었고 그 과정에서 격리해 둔 추적자 일부가 풀려났습니다. 첼리비다케와 쿠벨릭, 그리고 벤트레스가 그들과 대치하는 중입니다.>

아, 그래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문제로 머리를 아프게 해 주시다니 참 고맙습니다… 그래도 따로 준비를 해 뒀다지 않았어요? 미궁 바깥에도 주문을 몇 개 새겨 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벤트레스가 전투에서 이탈한 게 문제입니다. 균열로 들어간 다음 경로 내에서 이동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다른 둘의 상황은… 불분명합니다.>

란드와르는 벤트레스에게 걸어 두었던 맹약을 상기했다. 나우파나 폐허에서 놈을 동료로 받을 때 선서를 시킨 게 있었다. 맹세. 아군에게 해로운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면 즉시 머리가 터져서 죽는다. 여기에서 아군이란 인간 집단 전체를 의미한다.

맹약이 갑자기 효과를 잃었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 왜 머리가 안 터졌지? 첼리비다케와 쿠벨릭은 나르시소 소속이라서? 아니면… 해로운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 게 아니라서? 전투 도중에, 동료를 버리고 내빼는 데에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벤트레스가 도망친 곳은 차원의 틈이었다. 그 내부는 오염된 제어 경로들과 직통으로 이어져 있었다. 균열에서 오염체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도, 균열을 제때 막아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누구든 간에 그 통로만 잘 거쳐 들어오면 슈문의 무의식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와 합류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그런데, 왜? 바깥 일이나 잘 처리할 것이지, 왜?

<곧 전투가 시작됩니다. 준비하시죠.>

왜, 하고 묻는 동시에 티아의 목소리가 생각의 흐름을 잘라냈다. 땅으로부터 거대한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덩어리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무엇이었다. 돌아가면 샤워부터 해야겠군.

란드와르는 피눈물을 삼키며 망치를 단단히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벤트레스부터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놈은 지금 이곳에 없었다. 그는 베개를 상사라고 생각하며 걷어차는 회사원들의 마음을 이해했고, 눈앞의 우두머리가 정신 나간 요정이라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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