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99화 (200/258)

199화 파괴된 사나이 (1)

좌표계의 격자는 광점 간의 관계이자 슈문의 일부였다. 나트람은 광점 뒤편에서 이시 타브의 영향력을 발견했고, 제어 중추에 접근하는 척 그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모든 작업이 익숙했다. 미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대전제를 발견하고, 거기에서부터 자라나는 명제를 살피며 원리를 꿰뚫는 것. 가짜 정보를 평면좌표계에 흘려 넣어 상대의 제어 신호를 교란하는 것. 미궁의 총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고 이시 타브의 위치를 발견하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규칙을 외우고 알아내기보다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해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언제나 그랬다. 동생의 발명을 분석하는 것은 홀로 두는 차투랑가와 같은 놀이였다. 이제 탁자 맞은편에는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앉아 있었다. 열세 개의 차투랑가 판. 그러나 한 번의 패배조차 치명적일 수 있다.

포위망은 좁아졌고 각각의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고려할 것의 목록은 지수함수로 팽창했다. 사고가 가속하면서 갖가지 형태의 도형들이 머릿속에서 합리적 사고를 거부하는 형태로 맞물렸다. 삼각형 다섯 개가 늘어서 있다. 둔각으로 벌어진 이등변삼각형. 각각이 겹치면서 다른 삼각형의 변의 중점에 꼭지점이 가 닿는다. 이제 그것은 오망성이 된다. 교점이 다섯 개인 매듭 중에서 첫 번째. 매듭의 형태를 바꾸는 것은 공간의 배열을 바꾸는 일이다…….

"흠."

좌표평면에 빛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시 타브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낸 직후였다. 제어 경로가 빠르게 차단되었고 더 이상의 접근 또한 없었다. 일방적인 종전 신호였다. 나트람은 즉시 판단을 마쳤다.

"그래도 여기는 아직 무사하군… 방법이 있어."

그는 중추에 접속하는 경로 중 하나를 강제로 유지시켰고, 그것을 통해 이시 타브의 힘에 자신을 연결했다. 일종의 도박이었다. 모호한 순간의 단편들이 뇌리를 내달렸다. 각각의 장면은 초점을 잃은 채 단속적이었으며 그 자체로도 거의 이해되지 않았다. 소용돌이… 가라앉는 오후의 해처럼 빛나는… 들판, 붉은 꽃이 들판의 절반을 메우고 있다… 그리고 어둠. 어둠 속에 표범이 웅크려 있었다.

표범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뒤엉키던 상(像)이 명료해지더니 나트람을 몰아냈다. 그는 78-9-2 지점에 서 있는 자신을 새로이 발견했다. 동시에 눈앞의 좌표평면이 일그러지며 어딘가 깊은 곳과 이어지는 틈을 열었다. 그것은 표범 한 마리를 뱉어내고서는 곧바로 닫혔다. 직전에 본 환영과 완벽히 동일한 형태였다.

나트람은 짐승과 맞닿자마자 이시 타브의 뜻을 깨달았다. 표범은 잠든 신의 일부였고, 작은 크기의 차원 균열이기도 했다. 한 명을 더욱 깊은 곳으로 이끈 다음에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한 명. 더욱 깊은 곳에 동생이 있으므로 그 한 명은 자신이어야만 했다. 몹시도 오래된 불꽃이 심장 밑에서 이글거렸다.

그리고 불꽃의 둘레에는 언제부터인가 그의 곁을 맴돌기 시작한, 강박적인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가 속삭였다… 굳이 균열을 넘어갈 필요는 없어. 표범을 앞세우고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해. 너는 이 공간을 대부분 알고 있어. 시간은 조금 걸릴 테고, 저 신관 놈들은 줄곧 귀찮게 굴겠지만, 결국엔 원하는 걸 손에 쥘 수 있을 거야.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는데 왜 먼 길을 택해야 하지?

그게 우리 모두에게, 야스와다 요정들에게 좋은 일이기 때문이지. 너는 가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잘 참았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여기가 연회장이라고, 너는 이 소란이 끝나길 기다리며 2층의 테라스에 팔꿈치를 얹고 있다고 상상해 봐. 잠깐만 참으면 영웅이 되어 야스와다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너는 요정들을, 네 가문의 사람들과 반려와 자식을 지키게 될 거야. 모두가 자신의 혈족과 반려를 사랑해. 사랑하는 이가 목숨을 잃고 다치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명예와 권력은 훌륭한 목표지.

도대체, 왜?

규칙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대답을 발견할 수 없었던 질문이, 하지만 평생토록 내버릴 수 없었던 질문이 거대한 금속제 종처럼 그의 내면에서 울려 퍼졌다. 다시, 왜? 명예나 권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조언을 구하는 신관들은 성가시기만 했고 하인에게 명령을 내려 보았자 즐거울 것도 없었다. 나트람은 다만 헤이딘의 고통을 원했고 놈을 죽이는 게 자신의 몫이기를 바랐다. 오직 그뿐이었다. 그는 너무 오랜 시간을 참았다…….

그때 블리스키미르의 목소리가 묵상을 방해했다.

"신관들이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각을 하고 있네."

나트람은 짜증을 억눌렀다. 구조물에 진입한 후로 이 요정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곁을 얼쩡거리고만 있었다. 쉭겐보다도 못한 녀석. 평생 동안 이런 얼간이들을 치워 없애지 않으려 애쓰느라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딤 나겔이 여기에 있었더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사촌형제는 무슨 질문에라도 대답할 수 있을 것처럼 현명했고 언제나 옳았다.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상은 하나?"

그리고 결심이 섰다. 그는 블리스키미르의 남색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  *  *

나트람과 블리스키미르의 목소리는 충분히 컸고, 멀찍이서 대기하던 신관들도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통솔자가 벽 너머로 사라진 후 그들은 부대장을 탓하는 대신 노인의 머리를 두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상황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었던 나머지 공포나 불안마저 달아났던 것이다.

"일단 정신은 멀쩡하신 것 같은데. 미친 사람이 마력 갈래를 그렇게 잘 다룰 수는 없다고. 그걸 어디서 배웠는지는 몰라도."

"우리 집안 노친네 중에 백여든 살을 넘겨 노망이 나신 분이 계셨어. 그런데도 그분이랑 차투랑가를 두면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 제 손으로 죽 그릇은 못 쥐면서 기물은 그렇게나 잘 옮겼단 말이야."

"그래도 바로 어제까지 의회에 드나드셨잖아. 이렇게나 갑자기 노망이 난다고? 아무튼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이젠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겠군. 이런 상황은 상상한 적도 없는데. 어르신께서 마지막에 뭐라고 하셨더라?"

"필요한 건 다 해 줬다고 했지."

"뭘 해 줬는데? 혼자 벽을 뚫고 사라진 거?"

"이봐, 그걸 나한테 따지면 안 되지. 하여간 우리도 미친 게 분명해. 제정신이라면 이렇게 떠들고 있을 수는 없는 거야. 적어도 저 양반처럼은 해 봐야……."

말끝을 흐린 신관은 블리스키미르를 바라보았다. 그는 애처로울 만큼 절박한 태도로 석벽을 더듬으며 야스와다 방식을 시도하고 있었다. 작용점에 마력을 불어넣어 주문을 파훼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에 소용이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신관들은 부대장의 노력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블리스키미르는 각고의 노력 끝에 나트람이 표범을 불러내면서 강제로 열어 둔 제어 경로에 접근했다. 원리도, 방법도 그 스스로는 알지 못했지만 기묘한 우연의 일치로 해낸 것이다. 경로에 남아 있던 광점 찌꺼기가 뇌리를 할퀴고 지나갔고, 상흔은 거대한 구조도로 재구성되었다… 그는 미궁의 상태를 깨달았다. 미미한 희망이 가슴을 적셨다.

"통솔자님의 저의는 모른다. 자네들이 줄곧 떠들었던 것처럼 노망이 났거나 주문의 부작용으로 미쳐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미친 사람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도록 하자. 대신 좋은 소식이 있다. 이곳에 걸려 있던 공간 주문들은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다. 우리는 그저 앞으로 걸어 나가면 된다. 그저 앞으로―알겠나?"

블리스키미르는 몸을 돌려, 신관들을 향해 들뜬 목소리로 연설하기 시작했다. 무기력한 상태로 늘어져 있던 요정들의 귀가 쫑긋 섰다.

*  *  *

"참, 큰일 났네. 통신은 끊겼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벨레다는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로 투덜거렸다. 낭패였다. 갑자기 공간이 접히면서 이상한 곳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얼룩덜룩한 벽은 기울어지거나 뒤틀려 있었고 어떤 것은 손을 가져다 대자마자 격자 평면으로 변하기도 했다. 곳곳을 돌아다니는 표범들은 덤이었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구체는 먹통이었고 학자들처럼, 벽을 통해 무언가를 해 보기에는 마력 적성이 부족했다(영토에 저장해 둔 마법으로 할 수 있는 건 싸움뿐이었다). 맙소사, 재능의 부족을 이런 식으로 실감하게 될 줄이야.

설상가상으로 아까 전부터 크고 낮은 소리가 윙윙거리면서 진동을 전해 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가 울부짖는 것처럼.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안 좋은 꼴을 당할 게 분명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45-8-7!"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벨레다는 두 손으로 종이 구체를 받쳐 든 다음 나지막한 목소리로 목적지를 외쳤다.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 쓰던 방법이었다. 외부 미궁에 있을 때에는 이렇게 말하면 벽이 양옆으로 벌어지면서 그곳으로 이어지는 길이 생겼다.

하지만 이제, 열린 벽 너머에 있는 것은 사암질의 석벽이 아니라 아주 낯설고 기괴한 풍경이었다. 다른 공간 번호를 부르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짙푸른 잔디나 종양 덩어리, 그리고 거대한 짐승의 갈비뼈 따위가 조각보처럼 뒤엉켜 있었다. 그것도 예술 감각이 아주 엉망인 사람이 만들어낸 조각보 말이다.

이 장소도 위험한 건 사실이었지만 벽 너머라고 해서 괜찮을 것 같진 않았다. 푸른 하늘만을 보고 발을 들였다가는 쥐덫에 걸린 생쥐 꼴이 날 게 뻔했다… 벨레다는 눈을 지그시 감고서는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이상한 곳에 떨어진 꼬마 둘. 그리고 재정렬 목걸이 두 개. 목걸이는 란드와르가 직접 쓸 사람을 정해 주었다. 애들을 싸우라고 떠밀자니 기분이 나쁘다고 했지. 나머지는 알아서 몸 간수를 할 거라고도.

그건 현명한 판단이었을까, 아니면 예비용 목숨 두 개를 내버린 걸까?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긴 하지만 마음이 후자로 기울었다. 이게 볼로디아나 로안에게, 혹은 벤트레스에게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곱씹게 됐던 것이다. 자신들은 미궁이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여기에서 빠져나갈 가망이 없었다!

그러면 어쩌지? 여기에서 표범이라도 잡고 있을까? 먼저 달려드는 일은 없긴 한데. 그렇게 묻는 찰나 소낙비 소리 같은 게 귀를 두드렸다. 클렘이 처음 보는 속도로 뛰어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겠다면서 혼자 어딘가로 간 게 방금 전이었는데, 문제가 또 생긴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야? 요정이라도 만났어?"

"없어지는 중이야."

"응?"

"바닥이 없어지고 있어. 표범도 없어지고 바닥도 없어져. 그쪽으로 총을 쏴 봤는데 마탄이 그냥 없어졌어. 조금 있으면 여기도 없어질 거야."

벨레다는 반신반의하며 클렘이 온 곳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었다. 빛이 꺼지듯 공간 자체가 암흑으로 바뀌고 있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그녀는 요정 꼬마를 마주보았고, 엄지로 열린 벽 너머를 가리켰다. 순간 잔디밭 옆의 물웅덩이가 거대한 입을 벌렸다. 그러니까, 비유가 아니라, 진짜 입을. 조밀하고 날카로운 이빨 너머로 끝 모를 어둠이 뻗어 있었다.

"들어갈래?"

"싫어."

클렘이 동의하지 않은 게 내심 다행스러웠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잔디밭을 걷다가 피할 겨를도 없이 잡아먹히는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것이다. 모험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선택지는 최후로 미뤄 두고 싶었다…….

벽 너머를 살피는 동안 암흑이 부쩍 가까워졌다. 그리고 클렘이 먼저, 벨레다의 손을 붙잡고는 홱 내달리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