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193화 (194/258)

193화 악의 계승 (2)

늑대는 요정 신이 세계를 쉬이 다스리도록 꿈 조각을 선물했으며 본보기로 수정 구슬을 만들어 주었다. 땅으로 돌아온 신들은 자식에게 꿈 조각과 구슬을 맡겼다.

반신들은 수정 구슬을 보고는 그것이 저승의 물건임을 알았다. 구슬은 영혼을 먹어치움으로써 세상을 잠시 멈추는 힘이 있었으나 땅을 가꾸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에 그들은 지혜를 합쳐 꿈 조각을 땅에 어울리는 형상으로 빚을 방법을 알아냈다. 실로 많은 성물이 만들어졌지만 소실되지 않고 남은 것은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다. 황제의 왕홀이 그중 하나이다.

윰 시밀이 신들의 우두머리가 된 후에, 그는 다른 셋의 충성을 시험하고자 각 지파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요구했다. 아 드지즈는 반발했지만 이시 첼과 이시 타브는 왕홀을 장식할 꿈 조각을 바쳤다.

그때 땅에는 일곱 반신이 있었다. 세 아카틀과 솔로틀이 수정 심장을 되찾기 위해 저승의 틈으로 내려간 동안 남은 다섯은 왕홀을 세공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세공사들이 장막 아래 모이자 그중 하나가 은밀히 말했다.

"우리네 어버이는 한낱 요정이었으나 지고하신 분의 은총으로 신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단 말이냐? 그들은 마법에 능할 뿐이지 꿈을 온전히 다루는 법은 알지 못한다. 속임수가 없이도 드넓은 호수를 말려 버리고 메마른 들에 풀이 돋아나게끔 하는 지혜는 오로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땅을 다스리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에 다른 반신들이 두려워하여 말했다.

"우리는 어버이의 눈이자 귀이자 손일 뿐이다. 그런데 어찌 심장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 눈과 귀와 손이 느끼는 것을 어찌 심장이 모르겠느냐?"

"이 장막은 내가 꿈을 엮어 만든 것이니 그들은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한다. 내 말이 거짓 같거든 도시로 돌아가 너희 주인을 보아라."

반신들은 불안해하며 도시로 돌아갔지만 누구도 장막에서 오간 말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안심하여 왕홀과 함께 제례용 단검을 만들었다. 단검은 순수한 꿈 조각으로만 만들어진 것으로서 영혼을 삼키는 힘이 있었다.

"왕홀은 반역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지만 단검은 우리의 도시를 위한 것이다. 이것은 넋을 먹어치우며 점점 커갈 것이다. 백 명의 혼이 있으면 마을 하나를 거느릴 수 있고, 천 명의 혼이 있으면 도시 하나를 통솔할 수 있으며, 만 명의 혼이 있으면 이 땅 전체를 우리의 몫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단검이 완성되자 반신들이 둘로 나뉘어 서로 다투었다. 이에 단검 또한 두 조각으로 깨져 아 드지즈의 딸이 자루와 칼날의 밑동을, 이시 타브의 아들이 칼끝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칼끝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닫고 어머니에게 가 장막 안에서 일어난 바를 고했다.

이시 타브는 격노하여 아들의 혼을 거두고서는 다른 신에게 소식을 전했다. 윰 시밀은 반신들을 부러진 단검에 가두어 벌했으며 역사서에서 늑대가 나오는 대목을 모두 지웠다. 또한 단검은 나우파나의 언약궤 아래 두어 신관들이 감시하게끔 했고, 칼끝은 이시 타브의 몫으로 남겼다.

이렇게 칼끝과 자루가 떨어지게 되었으므로 단검은 힘을 잃고 말았다. 이시 타브는 칼끝을 쓸 방법을 궁리하다가 그것을 자신의 영토에 심었다. 그러자 꿈 조각은 거목으로 변해 가지를 뻗었다. 그녀는 나뭇가지에 제물로 받아낸 혼을 매달아 장식했고, 나무에는 약스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  *  *

약 두 세기 전, 일드얀이 이끄는 나우파나 조사단은 처음으로 신전에 발을 들였다.

수정 심장이 모셔진 지성소는 수정 덩어리로 뒤덮인 상태였고 언약궤는 중앙 융기 안에 갇혀 있었다. 수정을 깨부술 방법을 찾으려 애썼으나 어떤 마법도 소용이 없었다. 조사단원들을 물리고 융기 주위를 탐색하던 일드얀은 뒤편에 꽂힌 단검을 발견했다.

그 후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홀로 야스와다에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이시 타브를 깨우게끔 의회를 설득했다는 것이다. 언약궤를 가둔 수정 융기나 단검에 대한 것은 함구한 채로. 은빛매가 아홉 번째 가문이던 시절의 일이었다.

이제 소생 계획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으며 일드얀은 의회의 첫째 자리에 올랐다. 사람들은 그녀의 겉모습이 뱀이나, 종이 구체나, 표범이나, 수정 거인이 아니라 백발을 틀어 올려 쪽을 진 노인이라는 것이 기묘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곤 했다. 진작 수정 심장을 얻었던 게 아닐까, 혹은 그 힘을 받아 반신이 된 것은 아닐까 묻는 이도 있었다.

끝을 모르도록 긴 수명과 깊은 지혜가 의혹에 힘을 실어 주었다.

*  *  *

해가 창틀을 넘어 겹겹이 쌓인 나무 뒤편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둠이 장벽처럼 솟아났지만 방은 더웠다. 토텐부르그는 침대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쉭겐은 성큼 걸어 들어가 동생의 뺨에 손을 얹었다. 얼굴이 불에 달궈진 조약돌 같았다. 그는 뒤따라 들어온 일드얀을 향해 말했다.

"곧 숨을 다할 것입니다."

단약을 시작한 후로 토텐부르그의 병세는 빠르게 나빠졌다. 조사단원이 돌아와 벤트레스의 배신을 고한 날부터였다. 그런 결정에 강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억제제를 들이키는 나날이 그 자신에게도 고통이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느냐?"

"이미 모두 해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대화를 나눴던 것이 벌써 열흘 전이었다. 토텐부르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원의 꽃이나 햇살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쉭겐과 보냈던 시간을 곱씹었고, 졸린 듯 눈을 감았다. 엄숙한 유언도 비애도 없이, 그것으로 끝이었다.

토텐부르그에게는 고귀하거나 숭고한 마음이 허락되지 않았다. 태엽인형에게 신념이 없고 사명이 없듯 그의 삶 또한 그랬다. 쉭겐이 그 태엽을 돌렸다. 가끔은 일드얀의 명을 받들어, 그리고 대부분은 여흥을 위해. 그의 친우들은 얼굴이 똑같은 동생이 형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듣는 모습을 우스워했다. 악취미라 평하는 이도 있었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다.

"벤트레스가 여기에 있었어야 했는데, 아쉽군요."

"폐허에서 무엇을 발견하든 야스와다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 친구는 제가 동생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질색을 했지요. 제가 역겹다고 그러더군요. 이 녀석이 혼례를 올린 후로는 특히 그랬습니다. 이제는 역겨울 것도 사라졌으니 어찌나 좋은 일인지요."

별채에 갇히기 전은 물론이고 그 후에도, 어둠달의 광대는 갖가지 기행을 벌이며 취미가 고약한 귀족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쉭겐은 벤트레스를 동생만큼이나 훌륭한 장난감으로 기억했다. 순종적인 태엽 인형이라기보다는 사람 모습을 한 칼린카로.

"네 밤놀이 취미는 신경 쓰지 않아. 다만 그놈이 우리네 사정을 캐어묻던 것은 알고 있다. 곁에 두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느냐?"

"걱정하시는 바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대모님께 누가 될 일은 하지 않았다 장담하지요."

벤트레스는 단순한 한량이 아니었다. 놈이 횡설수설하듯 쏟아내는 헛소리 사이사이에는 예리한 관찰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쉭겐은 그런 부류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법을 알았다. 일드얀의 심복으로 지내온 세월이 자신감을 뒷받침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름난 별점술사였지만 은빛매 사람은 아니었다. 평민이었던 반려를 병으로 떠나보낸 후 일드얀의 눈에 띄어 개가(改嫁)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대모의 막내딸을 새어머니로 맞는 과정에서 소년이었던 쉭겐에게도 명문가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아버지가 대모의 별자리로부터 반역의 흔적을 읽어낸 것은 토텐부르그가 다섯 살이 될 무렵이었다. 쉭겐은 서랍에 있던 고발장을 빼돌려 일드얀에게 바치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새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별채에 몰아넣었다. 그 후로도 대모를 향한 충성은 한결같았다…….

"그놈을 보면 기분이 나쁠 뿐이다. 석연찮은 데가 있어."

"망자에게 마음을 쓰시다니요."

어둠달은 불탔고 벤트레스가 돌아올 가망은 없었다. 폐허에서 죽음을 맞이하든, 인간 세상을 떠돌든 은빛매의 일에 걸림돌이 되진 않으리라는 것이 쉭겐의 계산이었다. 별들의 의견 또한 같았다. 그는 모티스에게 지시를 내리기 전에도, 그들이 폐허에 있는 중에도, 지금도, 몇 번이고 명반을 들여다보았다.

"덕분에 두 번째 가문까지도 불태우게 되었으니 우리로서는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놈이 죽었다는 보장은 없잖으냐. 시간이 남거든 다시 그놈의 괘를 보거라. 천상성을 계산에 넣어."

"이 일만 마치면 그리 하지요."

빙긋 웃은 쉭겐은 일드얀이 침대 바로 앞에 설 수 있도록 한 발짝 물러났다. 노인이 토텐부르그의 이마에 손을 얹고는 주문식을 외우자 청년의 눈꺼풀이 힘겹게 들려 올라갔다. 안개 같은 목소리, 음절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허공 속으로 흐트러지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저도… 대모님께 도움이 되었지요? 형님께도요……."

"그래, 이제 됐다."

"다행이네요… 절 데려가 주세요……."

눈이 다시 감겼다. 일드얀은 이마에 둔 손을 그대로 두고, 다른 쪽을 토텐부르그의 가슴팍에 얹었다. 그게 잠시 옷 위를 어루만지나 싶더니 그대로 살을 뚫고 들어갔다. 그러나 피가 앞섶을 적시는 일도, 살점이 드러나 보이는 일도 없었다. 일드얀은 손을 빼내어 흐릿한 불꽃을 건져냈다.

"실로 오랜만에 온전한 영혼을 얻었구나."

단검자루는 일드얀에게 불사에 가까운 수명과 고대의 지혜를 선물했다. 단검의 다른 절반을 현계로 이끌어오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최후의 최후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지만, 매 순간은 태엽이 맞물리듯 제 자리를 찾고 있었다.

"얼마나 모으셨습니까?"

"이로써 천 명이 되었다."

그 대답과 동시에 세계가 잠시 멎었다.

*  *  *

일드얀은 천상성이, 나우파나의 별이 떠오른 것을 보았지만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알지 못했다. 단검은 오로지 땅을 다스리기 위한 물건이었으므로 저승을 들여다볼 힘이 없었다.

0